성장하는 믿음의 생활을 위하여

성장하는 믿음 생활을 위해서
히5:11-6:2,히13:7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는 대단히 중요한 서신입니다. 그러나 쉽게 접근하기에는 부담이 가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서들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제가 히브리서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서 서점을 여러 군데 방문해 보았으나 별다른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에 관한 자료들만이 출간되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 강해를 시작하기를 결정하고 다른 서신서나 구약의 선지서쪽으로 방향을 돌려볼까 하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왕 결정하고 자료 수집을 시작한 것 담대하게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정리하고 이제 첫 강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히브리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구약의 인용이 현저하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인용이 29회, 암시적인 인용이 50군데 이상이 됩니다. 저자 자신이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많고 수신자들이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이 설명 없이 직접 전달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히브리서를 접근할 때에는 구약적인 배경들을 잘 이해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히브리서를 공부하기 전에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리는 작업을 하여야 합니다.

조감도가 잘 그려져 있으면 건물 내부에 들어가도 당황하지 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윤곽이 없으면 미로를 헤매 이는 것과 같은 암담한 지경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을 중심으로 저자와 수신자,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 분해를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왜 쓰여져야만 했는가를 이해하는 일은 편지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를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썼으며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상황은 어떤 것이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로 히브리서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모쪼록 히브리서의 교훈들을 통해서 많은 도전과 은혜가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저자와 수신자 : 히브리서의 저자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19세기 이전에는 바울이라는 견해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연구를 통해서 후대의 많은 신학자들은 적어도 이 책이 바울의 저작은 아니라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나바 또는 바울의 사상을 누가가 기록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정확치 않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익명의 저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영감성과 귀한 메시지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의 제사장직 개념과 예수의 죽으심에 대한 대속죄일의 의식을 사용한 점은 초대 교회의 신학을 뛰어넘는 탁월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때때로 탁월한 변증서 내지는, 신학 논문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히브리서를 바르게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히브리서는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쓰여진 실제적인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은 지금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어떠한 행동들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히브리서기자는 신학을 사용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즉 히브리서는 대단한 수사학적인 기교들을 동원하여서 수신자들이 빠져 있는 위기에서 구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신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져 있는 것입니까? 저자가 미상인 것처럼 수신자들의 신분을 정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히브리서가 다른 서신서들과 다른 것중의 하나는 분명한 수신자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라는 전통적인 명칭은 2세기말에 붙여진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목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이 제목 역시 무시되어서 안된다는 것이 최근의 논의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의 선교권은 가장 좋았던 것이 유대인들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초기의 전도자들은 회당을 기점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좋은 밭이기도 한 반면에 가장 지독스럽게 기독교를 고발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수신자들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히1:1,2절은 수신자들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3:1절은 이 서신이 이스라엘 나라 전체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도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에게\"만 보내졌던 것임을 말해 줍니다. 또한 이 서신의 수신자들은 결코 초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5:12절에 의하면 이들은 때가 오래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핍박과 환난을 견뎌 내기도 했습니다(10:32-34). 그렇지만 아직 피흘리기 까지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12:3,4). 이 피흘리기 전이었다는 말은 이 편지가 적어도 {네로 황제의 박해}인 A.D65년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말해 줍니다. 네로황제는 AD54년에 즉위했습니다. 그런데 AD49년에 글라우디오 황제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합니다. 소위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추방령은 네로 황제의 즉위까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54년에 즉위하여서 점차적으로 정신이상자처럼 변해 갑니다. 그러나 주후64년의 대화재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게 지독스럽게 기독교를 핍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였고 많은 역사가들이 지금도 네로가 로마 화제의 주범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황금의 집}을 세우려는 욕심 때문에 로마를 태워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탈출구가 필요했고 당시에 그것을 덮어씌우기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좋지 않은 소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사람을 먹는다는 둥, 음란한 행동을 한다는 등의 소식들은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좋은 자료들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지독하게 고문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피흘리기 이전이라고는 하지만 형편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자신의 연고지를 박탈당했습니다. 자기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은 외국 땅에서 순례자로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조롱을 받아야 했고 고문을 당해야 했으며, 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의는 그들의 주변에 계속되고 있고 그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자신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 모든 권리들을 박탈당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요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을 격려하고 바르게 세워야 할 필요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주제 :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골격을 이루는 주제는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절대적 탁월성을 논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천사 등등의 비교가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것이 편지이며 이 편지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을 세우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권면들 또한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 내용 분석

히브리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논증적인 진술로 1:1-10:18까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10:19-13장 마지막절 까지로 논증들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히브리서기자는 중간 중간에 교훈들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집약적으로 다시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1)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대한 논증(1:1-10:18)



주 예수는 선지자 보다 크심 (1:1-3)

⑴선지자는 하나님이 그에 의해(by) 말씀하셨으므로 위대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들\"안에서(in)\" 말씀하시므로 아들이 더욱 위대하다 예수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⑵ 3절\"앉으셨다\"에 주목할 것:히브리 개념으로 일을 완전히 마쳤음을 의미



주 예수는 천사보다 크심(1:4-2장)

⑴천사는 귀한 존재이지만 주 예수는 ①하나님의 아들이요②하나님의 나신자③다른 누구에게도 주예수 같이 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더욱 위대하심-\"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8절)

⑵\"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9절)는 우리 예수님이 슬픔을 당하셨을 뿐아니라 기쁨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주예수는 모세보다 크심(3장)

⑴모세는 충성된 종으로 위대하였지만 예수는 충성된 아들로 더욱 위대하심 ⑵그 당시 유대인에게 이 말은 상당한 의미를 주는 말이었다.



주예수는 여호수아보다 크심(4:1-13절) - ⑴여호수아는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실패했으나 그리스도는 더욱 크시며 그만이 참 안식을 줄 수 있다. ⑵4:12절 주목-하나님의 말씀이란 그리스도를 말함



주예수는 아론보다 크심(4:14-10:18) - 아론보다 크신 이유

⑴ 주는 죄가 없으시나 제사장들은 죄인(4:15)

⑵ 그는 아론보다 더 높은 제사장의 반차(order)를 따름(5:6)

⑶ 앞서 가심, 아론은 그렇지 못함(6:20)

⑷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 더큼을 인정(7:4)

⑸ 멜기세덱의 반차는 영원함(7:16-17)

⑹ 아론은 모형을 봉사했으나 예수는 실체이심(8:1,5)

⑺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8:6,13)

⑻ 더 나은 성소에서 일하심(9:1-25)

⑼ 더 나은 희생으로 일하심(9:25,28)



2) 적용(10:19-13:25) - 우리가 살아야 할 생활

히브리 기자는 중간에도 교훈을 되풀이 하긴 했지만(2:1-4; 3:7-19; 6:1-12)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 일을 맨 마지막에 가서야 언급하는 현명함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 하자\"(Let us....)에 주목할 것.

1) 초보를 버리자(6:1)

2) 나아가자(10:19,22)

3) 굳게 잡자(10:23)

4) 서로 돌아보자(10:24-25)

5) 인내하자(10:26-11:)

6) 무거운 것과 죄를 벗어버리자(12:1)

7) 인내로 경주하자(12:1-2)

8) 남자답게 견디자(12:3-29)

9) 형제애를 계속하자(13:1-4)

10)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자(13:5)

11) 그에게 나아가자(13:3)

12)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13:15)



4. 기록 목적

당시의 박해받고 있는 형제들은 그들이 들은 바에서 흘러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2:1). 그리고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하고 있었으며(2:3),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3:12) 있었습니다. 지속되는 박해와 어려움은 그들을 강퍅하게 만들었습니다(3:13). 그러므로 이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이는 히브리서의 기자는 먼저 그리스도가 얼마나 믿을 만한 분이시며 구약의 인물들과 비교 조차할 수 없는 분이 신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들을 격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격려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책망 또한 엄하게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성장할 만한 시간이 지났습니다(13:7). 그러므로 이들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 그대로 였다는 점을 나무라고 있습니다(5:11-6:2). 그들은 단단한 고기를 먹을 만큼 장성 한자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인해서 갈등하면서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도 않았고, 유대 국가는 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그들로 하여금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를 연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0장과 11장을 바로 믿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논증으로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교회의 성도 여러분! 오늘날 박해도 없고 유대교적인 상황도 아닌 우리들과 1900여 년전의 수신자들과 무슨 연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까? 왜 그러한 그들에게 보내진 서신이 오늘 우리를 향한 권면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그들이 박해와 유대교의 제의들 때문에 엉거주춤했다면 오늘 우리는 너무나 편안해진 일상들과 분주한 일상들과 돈에 사로잡힌 세계관 때문에 엉거주춤해 있기 때문입니다. 전폭적인 헌신은 FULL-TIME 사역자들의 몫이고 우리 같은 평신도는 그저 적당히 따라가면 된다고 하는 생각들이 우리를 엉거주춤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우리는 동질인 것입니다. 성장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쉬운 것, 적당한 것, 편안한 것만을 찾는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서를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확고히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인가를 우리를 앞서간 믿음의 영웅들은 확고하게 제시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히브리서를 공부하는 동안 우리의 허물어지고 무너진 신앙의 성벽들이 회복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쁨을 되찾으시는 놀라운 기간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믿을 만한 분이신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