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새천년(2)

믿음으로 사는 새 천년(2)
히12:1-12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른다 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정의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며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와
그 가정과 자녀손을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볼 수
있는데 믿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히 6:14) \"내가 반
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하시고 그 약
속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보아 알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새 천년과 2000년
은,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처럼 믿음으로 새 천년을 열어가는 복
된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이라 했습니까? 믿음이란 바라는 소망과 희망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육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영
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새 천년과 이 2000년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안에서 바라는 소망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육의 눈으로 보지 못
하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들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 했습니까? 아벨과 같
이 믿음의 제사 즉 믿음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했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
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정성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받으
실만한 예배를 드림으로 아벨과 같은 의롭다 함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
는 것이라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에녹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 즉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음에서 나온 애녹의 그러한 행위를 기뻐하셨습
니다. 그래서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게 하시고 하늘로 데려 가셨습니다. 여
러분의 동행자는 누구입니까?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성도의 예배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이렇게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의 생활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
음으로 사는 복된 성도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생활 역시 하
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의 증거입니다. 전도를 하는 일이나,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나,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나, 각목장
원들과 교재를 나누며 사는 생활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에녹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믿음
의 삶으로 새 천년을 맞이했고 또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시작과 끝이 동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말씀을 경외함 받는 삶
입니다. 즉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삶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
니다.
본문 7절에 보니까.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
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
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 11:7) \"노아도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
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
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만들어 자기 가족을 구해 냈습니다. 하나님
을 믿는 노아의 신앙은 그 당시 거역만을 일삼던 사람들의 죄나 불신앙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받아들
이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당장 우리 앞에 하나님의 어떠한 심판이나 징
계 같은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두렵고 떨림으로 그 말씀을 받아 노아와 같이 주님 만날 준비를 하며 삶
아 갑니다. 여러분의 삶이 진실로 노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
으로 받아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진정한 힘은 순종입니다.
사람들은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은 힘있고, 순종하는 것을 나약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입니다. 아래서 위로 퍼올리는 물을 가지
고 수력 발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아래로 만유 인력을
따라 떨어지는 물은 바위를 뚫고 전기도 만듭니다. 이렇듯 저항하는 힘보다
순응하는 힘이 더 크고 강한 법입니다.
아브라함은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
를 들면 명확한 조건의 제시도 없이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역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
하신 산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그의 순종은 가나안 땅의 지주가 되게 해주었고,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하는 복을 받게 해주
었습니다. 순종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그 결과는 화
려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순종하고 복받
은 사람들과 불순종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순종이라는 헬라어 휘파코
에(hupakoe)라는 말은 \"아래에서 듣는다\", \"주의 깊게 듣는다\", \"따르다\"라는
뜻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주의 깊게 듣는 것,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대
등한 위치에서 듣거나 경청하지 않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그리고 행동으
로 따르지 않는 것도 순종이 될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던 롯의 처는 불순종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
다. 요나는 불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났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
나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순종에는 몇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 힘들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손해가 되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 억지로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
종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은 아멘입니다. 아멘은 곧 인정하고 순종하겠다는
외적 표현이며 고백인 것입니다.

애기하면 다 알 수 있는 저가 잘 아는 목사님교회에 지난 연말 아직 세례
도 안 받은 자칭 집사라고 하는 할머니성도가 있는데 그분의 남편이 쓸개에
혹이 생겨서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할머니가 그렇게 믿
음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수술
전에 오셔서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 줄것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이 다음날
병원을 심방해서 간절히 기도 할 때 믿음이 없는 이 할머니 성도와 그리고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고 반대하던 할아버지도 목사님의 기도를 아멘으로 받
았습니다.

무엇으로 받았다고요? ... 다음날 병원에서 수술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사
진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합니다. 이
상하다. 어제까지 있던 혹이 어디론갔지?... 할렐루야! 의학적으로 설명할수
없는 믿음의 역사를 의사는 어디고 숨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송시온이 몸
이 이상해서 또 장이 꼬였나 해가지고 성모병원에서 사진찍었는데 장은 이
상이 없고 가슴사진을 찍었는데 폐가 이상하다고.......믿음으로 기도하고 결과
보러 가던날 \'이상없을 것이다\' 결과보고 전화왔는데 아무이상없음, 하나님이
치료하신줄로 믿습니다)

순종은 힘이 있습니다. 아멘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고 응답이 있
습니다. 그러나 반항하고 거역하는 것은 영적 힘을 빼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마귀에게 순종하다가 에덴 동산에서 쫓
겨났습니다. 순종하는 것은 복받는 비결이지만 불순종하는 것은 버림받은 지
름길이요 심판 받는 조건이 됩니다.
여러분! 이 새천년에 순종함으로 아멘함으로 축복의 탑을 쌓아 가는 복된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은 소망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본문 히브리서 11장 24-26절 말씀을 보면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
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
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
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뭣을 바라 본다고요? 상주심을 바라보았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을 가진 사
람은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보고, 현세를 살면서 미래
를 보고, 순간은 살면서 영원을 봅니다. 11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는 아이를 잉태할 수 없을 만큼 나이 들었으나 아이를 잉태케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오늘을 보지않고 내일을 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모세는 \"임금
의 명령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했고, 25절을 보면 \"고난받기를 더 좋
아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를 이렇게 강하게 하고 힘있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내
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었
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참을수 있고 기다림이 있다면 고난이 겁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서울 시내 22개 구 가운데 구로구의 경우 매일9건의 폭력
사고가 발생 연간 3천 3백 43건의 각종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장기 거주자가 적은 곳이나 이혼 비율이 높은 곳일수록 그리고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가 빈번한 곳일수록 인간의 의지를 묶는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에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삶의 안정이 없습니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
할 짓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참고 견
디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도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
를 대적하리요\" \"환난도 핍박도 기근도 칼도 죽음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망입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과 여건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앞으로
될 일을 믿습니다. 물론 희망이나 소망은 오늘의 사건은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 될 일을 바라는 것이며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소망을 갖는 것도 어렵고 소망의 성
취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13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
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 했습니다. \"멀리서 보았다\"는 말은 소
망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내일을 바라보았다는 말입니다. 소망은 멀리 있는
것이고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기 때문에 인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멀리 있는 일들을 소망중에 바라보고 그것을 환영
하며 인내했습니다. 환영했다는 말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입
니다.

우리는 천국을 갔다 왔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눈으로 보았
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멀리서 보고 환영했던 믿음
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바라고 환영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천 온누리 교회에 소망을 주셨습니다. 약속
을 주셨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듯 이 약속 또한 모든 성도의 것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믿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소망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
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내일을 바라보며 소망중에 현재의 고난을 이기며 살
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감히 말합니다. 우리 인천 온누리교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므
로 저는 이 교회의 목사로서 아브라함과 같이 모세와 같이 저 멀리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들을 바라보며 장차올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는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
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육신의 눈이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먼 훗날
의 큰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이 새 천년과 인천 온누리교회의 역사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큰 확신과
감격속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가는 복된 새 천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