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새천년(1)

믿음으로 사는 새 천년(1)
히12:1-12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믿음의 정의와 믿음으
로 산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았던 모
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공했고 승리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새 천년과 2000년의 새해가 되었습니다. 성경속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
들처럼 그리고 성공하고 승리했던 사람들처럼 저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과 사업장도 믿음을 따라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습
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현대인의 성경은 본문 1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 11:1)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
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은혜가 두 가지로 정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즉 \'희망이 사실화 되어지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따라하게 한다 \'믿음은 희망이 사실화 되어지는 것이다\')

믿음과 희망은 언제나 병행합니다. 우리 희망의 목적과 믿음의 목적은 같
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바라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전적으로 믿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둘째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즉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제를 영혼의 눈으로 볼수 있도록 해주는 마음의 눈 혹
은 영적 지혜\'입니다.
(따라하게 한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는 마음의 눈이요 영적
지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사실만은 인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믿음
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까지도 영의 눈으로 알고 깨닫아 그것을
삶속에 반영하고 적용하여 살아 갑니다.

이 말은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신 것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았습니까? 그러
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저 보이는 만물이 처음에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손으
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렇게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 보았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천국에 아직 가보지 않았
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압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있는 면류관을 보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받아 보았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만 듣
고도 깨달아 그 말씀에 대하여 믿음으로 대처합니다.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
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
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
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1) 그 후에 남
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2) 대답
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
니라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
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의 뜻을 깨닫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항상 깨어 있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며 삽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미련한 다섯처녀와 같이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그래서 준비
는 하나 늘 깨어 있는 준비가 아니라 생각날 때만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합
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련한 다섯처녀도 예수님을 믿고 준비하는 성도
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만날준비를
온전히 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온누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그 믿
음이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같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또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에 (마 25:14) \"어떤 사람이 타국
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
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
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
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
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2) 두 달
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
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
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
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
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
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
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
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
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
라\"는 비유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반응은 다르게 나타 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섯달란트나 두 달란트받은자와
같이 살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별반 반응이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급과 칭찬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칭찬
과 상급을 보고 이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저는 우리 온누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이 새 천년을 갈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즉 희망이 사실로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중심
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 하나님앞에 믿음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보니까?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
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절이하에 보면 첫 사람 아담이 그 아내와 동침하여 큰아들
가인과 둘째 아들 아벨을 낳습니다. 큰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작은 아
들 아벨은 목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앞에 제물을 드릴 때 가
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을 제물로 삼아 드렸습니다. 그
런데 하나님이 농산물로 제물을 삼아 드린 가인의 제물은 받아 주시지 않고
양의 새끼로 제물을 삼아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의 제물은 열납을
하지시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낳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벨의 제물이 가인의 제물보다 더 낫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더 훌륭했다는 말입니다. 더 좋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4장 1절 이하는 우리는 좀더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
라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
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
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가인은 그져 땅의 소산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무엇으로 드렸습니
까?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는 양의 첫 새끼로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 받기를 원하십니까? 새 천년에는 하나
님이 받아 열납하실 만한 예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십일조 생
활 철저히 하십시오. 감사생활도 가장 귀한 것으로 드리십시오. 하루의 첫
시간, 일주일의 첫 날, first f st a. 1 제 1의, 처음의, 최초의 2 가장 중요한,
최고의, 첫째자리에 하나님 섬기를 일을 놓으십시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가장 귀한 산제사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앞에 아벨과 같이 첫새끼로 드리는
신앙이 복된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상급과 칭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
앙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본문 5절-6절 말씀에 보니까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
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
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
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엘리야와 함께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바로 올라간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러면 에녹이 어떻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창세기 5장
24절에 보면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
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은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입
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요?
예배하는 생활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입니
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소홀히 하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
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사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예수그리스도와 동
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와 무릎 꿇지 않는 생활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새벽기도, 각종 작정기도, 또 각종 목장별 혹은 기관별 모임이나 기도회
이런 생활에 충실하는 삶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그리스도
와 동행하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새 천년에는 바라는 희망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또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영의 눈으로 보고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
기를 바랍니다.

아벨과 같이 하나님앞에 하나님이 받아 열납하실만한 가장 귀한 것을 드
리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에녹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도의 삶 역시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러한 보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믿음을 가진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
분 모두에게 믿음이 있어서 이 새천년과 2000년에는 모든 바라는 것들이 실
상이 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증거로 나타나는 믿음으로 사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