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

사자의 입을 막은 믿음
단6:9-24





오늘 본문에는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이 하룻밤을 무사히 지내고 나온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니엘을 모함한 악한 자들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에는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뼈까지 부숴뜨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비교됩니까?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도 몸에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는데, 악한 자들은 땅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의 이빨에 뼈까지 부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배웁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해를 받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신자 중에는 신앙생활이 힘들고 짐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안 된 일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신앙생활이 오히려 짐이 된다면 잘못 믿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한 신자가 있습니다. 믿어도 그렇고 안 믿어도 그렇습니다. 신앙은 하나의 겉치레입니다. 실제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런 경우도 실망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신앙생활을 통해서 힘을 얻습니다. 죽을 자리에서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힘을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 앞에 무죄함이 능력입니다(22절).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다니엘은 스스로 밝히기를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이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22절)”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무죄함이 죽지 않고 사자굴에서도 살아난 비결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니엘은 모함을 당해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신임을 받는 총리였는데, 다른 신하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다니엘을 시기하였습니까? 다리오왕이 다스리던 메대는 거대한 제국이라 총리를 셋 두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셋 중에 가장 신임을 받는 총리였습니다. 정치적인 적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인입니다. 이방인이기에 그들에게는 더욱 시기의 대상이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만든 함정이 무엇입니까? 석 달 동안 왕 외에 어느 누구나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아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절).”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우리도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아름다운 것은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도 다니엘이 기도를 멈추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동적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입니다. 비록 왕의 명령으로 기도를 금한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해온 기도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왕의 금지 명령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계속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굶주린 사자가 다니엘을 삼키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니엘의 무죄함입니다. 굶주린 사자라도 무죄한 자를 해치지 못합니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28:1).” 사자가 다니엘을 삼키지 못한 것은 다니엘이 더욱 강한 사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보기 원합니까? 하나님 앞에 무죄하게 삽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도록 담대하게 삽시다. 무죄하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완전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없는 법까지 만들어서 지킨다고 야단을 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칭 의인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한에는 이런 것은 신앙의 양심으로 지키자는 것입니다. 신앙의 양심을 지킵시다. 이것이 사자의 입을 막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신앙의 양심을 지키면 이미 기적은 일어난 것입니다. 기적을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사는 것이 기적을 만듭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신앙 지키고 양심지키면 됩니다.

세상에는 위험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일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보험을 듭니다. 자동차 보험이나 생명보험, 농산물이나 축산보험도 있다고 합니다. 보험은 아무 조건 없이 가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이 정해진 보험금액을 지불하고 정해진 약관대로 혜택을 받게 됩니다. 실제 보험 혜택을 받는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지난번 태풍 루사로 농산물이나 축산 농사가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순간 최대 풍속이 규정에 미치지 못해서 농작물 피해보상을 받지해 안타까워하는 농민들이 많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생 보험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생명의 관리자와 보호자로 삼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보상하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보험금도 약관도 달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데 어떻게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는 길에 지중해에서 큰 태풍을 만납니다. 배는 파선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구원해서 멜리데 섬에 상륙하게 했습니다. 왜 바울을 살렸습니까? 바울이 죽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황제 앞에 변호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죽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자입니까? 떳떳하게 “나는 예담교회 교인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일성수합니까? 물질로 헌금합니까? 성경을 읽고 기도합니까? 신자답게 삽시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일들이 있을 때에는 더욱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군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할 것을 기대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교회와 하나님의 기업을 섬기는 일군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을 맡았습니까?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 목숨보다 귀하게 여깁니까? 내 가정보다 내 직장보다 내 가족 보다 더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님을 섬깁니까? 사자는 충성스런 일군을 해치지 못합니다.







2.사람 앞에 무죄함이 능력입니다(22절 하반).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무죄하지만 왕 앞에도 무죄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충성스런 일군인 동시에 메대 나라의 총리입니다. 왕에게 충성스런 신하입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금하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코 왕에게 불충한 신하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죄한 것과 사람 앞에 무죄한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무죄해야 하지만, 사람 앞에서도 똑같이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죽이려 한 모르드개는 왕 다음 가는 높은 자리에 올랐고 하만은 자기가 세운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선과 악은 뒤바뀌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하만의 악한 음모대로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죽을 것 같은데, 그날 밤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해서 역대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의 선행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모르드개를 상주고, 악한 하만을 나무에 달아 죽였습니다. 우리가 맡은 일이 적은 크든 충성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고 흠이 없도록 살면 그것은 언젠가 우리에게 큰 상급으로 돌아오는 것을 믿읍시다. 세상에서는 선과 악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진리와 비진리가 뒤바뀌는 일이 일어날지 몰라도 하나님에게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다니엘이 왕을 거역할 마음이 없었는데, 원수들의 음모로 다니엘이 해를 받도록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물론 무죄한 자가 죽을 수도 있고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봇은 포도원을 팔라는 아합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왕의 미움을 받아 죽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열납하는 예배를 드렸다고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야임을 증거하고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죽었습니다. 억울해 보입니다. 이들이 정말 불행합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영광스런 순교자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심판의 죽음이나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순교는 가장 영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우리가 무죄하면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죽으면 순교할 것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편입니다. 악한 자는 어떻습니까? 살아도 욕되고 죽으면 더욱 비참합니다. 이들의 죽음은 심판과 멸망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엄한 진노와 형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곧 도살장으로 끌려갈 살찐 돼지를 누가 부럽다고 합니까?

우리의 무죄함의 영역을 넓힙시다. 하나님 앞에도 무죄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무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신실한데 사람 앞에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다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한데 세상에서는 부패하고 어둡다면 안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무죄함이 교회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정의의 빛과 같이 빛나야 합니다. 생활이 부패한 자나 죄 가운데 먹고 마시는 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칩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짓고 용서해 달라기보다는,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얼마 전 이런 사기 협박이 있었습니다. 대기업의 임원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당신의 미리를 알고 있는데 어느 계좌로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다 폭로하겠다”고 했더니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즉시 돈을 입금했답니다. 사기협박입니다. 왜 모르는 사람의 전화 한마디에 돈을 입금합니까? 사람에게 숨기고 싶은 잘못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비난받을 일을 해서 안 됩니다. 사자굴에 던져진다면 사자가 당장에 삼킬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도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3.하나님을 의뢰함이 능력입니다(23절)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은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23절).” 하나님, 이 시험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늘 기도하던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사자굴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사자의 입을 막아 주옵소서! 다니엘은 믿음으로 사자굴에 들어갔고 믿음으로 살아서 사자굴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할 마음이 있다면 즉시 엎드려 기도합시다. 다니엘은 평소 기도하던 대로 사자굴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22절).” 하나님이 왜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했습니까? 다니엘의 기도를 들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기적을 행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자의 입을 봉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삼키려는 사자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기도하면 사자는 입을 다 물고 말 것입니다.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와 같이 삼킨 것도 토해 낼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삼키려는 큰 풍랑도 잠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18:4-6).” 다윗은 블레셋 왕 앞에서 극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믿음이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읍시다. 사자가 아무리 무섭고 힘이 세다고 하지만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실제 삼손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자의 입을 찢기도 했고, 다윗은 작은 물맷돌로 사자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를 어떻게 이겼습니까? 사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평화롭게 있도록 해서 이겼습니다. 사자와 하룻밤을 평화롭게 지낸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은 갖가지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믿음의 역사는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믿으면 나사로가 살아가는 것을 볼 것이고, 믿지 않으면 나사로의 죽은 시체를 볼 것입니다. 믿으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을 볼 것이고, 믿지 않으면 물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가뭄에도 잘 견디고 시절을 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아집니다. 아름다운 모양도 없고 죽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어디서 얻습니까? 누구나 사자굴에 던져지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능력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면 힘을 얻습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말씀을 붙잡을 때 믿음의 능력을 얻습니다. 말씀에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힘을 주는 말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흉년의 때에 어떻게 이삭의 농사와 목장을 축복하셨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100살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아람 군대 18만 5천명을 죽게 해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모세의 손을 통해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전쟁을 승리케 하셨는지? 다 말씀에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사자의 입을 막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0;16-18).” 말씀의 검으로 승리합시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까지 말씀의 깊은 감동이 우리 가슴을 두드릴 때까지,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서 역사할 때까지 말씀을 붙잡읍시다. 말씀의 생명력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강 가운데 물 가운데 불 가운데 지날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런 말씀으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기적을 보았습니까? 절망에서 승리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준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말씀이 생각나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자의 입을 봉할 만큼 강한 말씀의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그리고 “나와 싸울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이스라엘을 조롱합니다. 이런 수치스런 말을 듣고도 이스라엘 군사들은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수치스럽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를 향해 감히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합니다. “당신이 교회를 다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과연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줍시다. 접시에 빠져도 죽는 사람이 있고, 바다에 빠져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자굴에 던져져도 살아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사람이 있고, 궁궐에서도 잠을 못 이룰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사자굴에서 나옵시다. 사자의 입이라도 막고 나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