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 히12:1-3 언젠가 신문에 보니 직업 청소년이 국민학교만 나와서 고학을 하며 갖은 고생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에 합격하게 된 이야기가 있었다. 또 소녀 가장으로서 부모님이 없이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힘겹게 가정 살림을 꾸려 가는 감동어린 이야기의 주인공도 텔레비젼에서 보았다. 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되는 것은 이들은 나름대로 인생의 경주장에서 훌륭하게 달리고 있는 선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위대하냐? 내가 위대하냐를 떠나서 적어도 그들은 인생이 라고 하는 힘겨운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선수들임에는 분명하다. 인생은 달리기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직장에 몸을 담고 열심히 달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기술에 몸을 던지고 열심히 달리고, 어떤 사람은 리어카에 몸을 담고 열심히 달리고, 어떤 사람은 버스 핸들에 온 몸을 내걸고 열심히 달린다. 학문의 경주를 하는 이가 있고, 미의 경주를 하는 이가 있고, 권력의 경주를 하는 이가 있고, 사랑의 경주를 하는 이가 있다. 그 중에서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의 경주를 한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모세가 그렇고, 여호수아가 그렇고, 에스더가 그렇고, 사무엘과 다윗과 삼손이 그렇다. 구약 시대를 살아간 믿음의 선진들을 볼 때 참 존경스럽다.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는 나도 하면 되겠구나 하는 용기도 생긴다. 그들 중에는 탁월한 믿음의 용사도 있었지만 일평생을 부끄러운 얘기만 남기고 간 사람들도 있다. 여하튼 그들은 한 시대를 살고 간 믿음의 경주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것은 그들이 어떻게 달렸건 간에 그들은 한 시대를 담당하고,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지금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퇴역 선수들이고, 은퇴 선수들이지만 우리는 이제 열심히 달리면서 현장에서 뛰고있는 현역 선수들이다. 한 가지 위로되는 일은 그들이 달릴 때 함께 해 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은퇴한 그들보다도 하나님께서는 현장에서 뛰는 우리에게 더 관 심을 가지고 계시고, 더 힘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달리는 이 믿음의 경주를 더 성공적으로 달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많은 교훈의 말씀으로 잘 코치해 주고 계신다. 수많은 선배들이 살다간 인생이 산 교훈이 되고 있지만 읽은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하고 있다. 1.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는 경주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믿 음의 경주를 하는데 방해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걸치고 있던 겉옷을 팽게 치고, 예수님께 달려나왔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는 세상적으로 걸치고 있던 모든 명예와 학문과 배경들을 다 내동댕이 치고 주님께 바짝 따라 붙었다. 믿음의 경주를 대강 대강 하려고 들 때는 별로 방해되는 것을 못 느낀다. 현상 유지나 하고, 이만하면 되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벧전 2:11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다스리고, 절제하고, 통제하고, 조절해야 한다. 우리 편에서 적극적으로 죄를 대항하여 싸우며 절제해야 한다. 믿음의 경주에 짐이 되는 것은 맡겨야 한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에는 수없이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그런데 달려가는 나 자신이 이미 무거운 짐을 지고 달려간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가 있겠나? 벗을 것은 벗고, 내려 놓을 것은 내려 놓고, 던져 벌릴 것은 던져 버리고, 제쳐 놓을 것은 제 쳐 놓고, 경주자는 유니폼 하나만 입고 달려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죄를 대항하여 싸우며 절제하라는 말씀이다. 얽매이기 쉬운 것은 죄이다. 죄를 지으면 거기에 얽매인다. 그러니 이미 지은 죄는 다 벗어버 려야 한다. 우리가 지고 있는 모든 인생의 짐을 우리 주님께 맡겨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달려야 한다. 여러분을 얽매고 있고,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세상에서 대접받고 살던 것이 여러분을 얽매고 있나? 따지는 태도가 여러분을 얽매고 있나? 계획성 없이 살던 것이 얽매고 있나? 세상의 학벌과 혈통과 명예가 얽매고 있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주 예수를 바라보고 달렸다. 주님을 믿기 전에 가 지고 있었던 쓸데 없는 자존심마저도 신앙의 경주에 방해가 될 때에는 다 벗어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2.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는 내적인 무장으로 인내를 해야 한다. 인내가 무엇이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는 것이다. 본문/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모세는 여러 모로 배울 것이 많은 분이지 만 인내의 경주자로 모범이 된 분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우리가 보이는 것들만 보고, 인간이나 문제 자체만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참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예수님은 인내의 모범이시다. 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 를 생각하라\" 고 말씀한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참기 어려운 일은 십자가 고난을 참는 일이었 다.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그 처참한 고난을 예수님은 앞에 있는 부활의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참아내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믿음의 경주를 완성하셨다. 내 자아가 죽는 것이 믿음의 경주를 완성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참고 인내하는 것은 우리의 성품 때문이 아니다. 성품 때문에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아 무도 없다. 오직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인 예수님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 주님께 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인내케 하신다. 예수님은 인내의 모범을 친히 보이셨으며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자에게 인내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고, 완성시켜 주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다. 그러니 믿음의 경주는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달려야 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경주를 시작했다. 바울을 좌절케 하는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시작하게 하신 그 주님이 완성하실 것을 굳게 믿고, 앞을 향해 달려 갔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달리다가 피곤하여 쓰러질 수도 있고, 슬픔과 오해와 유혹을 당할 수도 있 고, 실패와 다툼으로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달음질이 기어이 완성될 날이 온다. 경주자는 인내로써 인격 무장을 해야만 끝까지 달려갈 수 있다. 장거리 마라톤 선수에게 승리의 관건은 인내에 달려 있다. 목이 마른다고 주저 앉는다면 입상 권 안에도 들지 못 하고 낙오하고 만다. 이를 악물고 포기하지 않는 승부 근성만이 골인지점에 닿게 할 수 있다. 믿음의 경주자들은 인내로써 훌륭한 경주를 해 냈다. 믿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인내이다. 27 에 보면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고, 믿음으로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믿음으 로 보이지 아니 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믿음은 포기할 수 있게 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참아내게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오래 참는다. 모세는 오래 참음으로써 기어이 80세에 지도자 되었고,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했으며, 120 세에는 기어이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면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모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참을 수 있다. 보이는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계시는 우리 주님을 보는 자는 오래 참을 수가 있다. 인내야 말로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이다. 3)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목표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달리기의 푯대는 예수 님이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본문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눈을 고정시키자. 믿음의 주란 믿음의 근원자란 뜻이며, 온전케 하시는 이는 믿음의 완성자 되시는 분이란 뜻이다. 믿음을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요, 믿음을 완성시키실 분이다. 골인 지점에 서 계신 주님께 고정시키는 것이 믿음이다. 베드로/ 물 위에서 흔들림. 믿음의 경 주는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달려야 한다. 믿음의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주님을 주로 모신 자만이 믿음의 달리기를 할 자신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 새로운 경주를 시작했다. 바울 사도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를 만난 후부터 새로운 경주가 시작되었다. 신앙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빌 3:14/ 바울은 말하기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상을 위하 여 좇아가노라\". 바울이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앞만 향해 달음질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푯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달음질을 해도 코스를 이탈해서 목적없이 방향없이 뛰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앙의 푯대는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목표는 교회에 등록하거나 직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 의 인격에 부딪혀서 내가 깨어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를 받는 데서부터 목표는 이루어져 간다. 4.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자는 상을 보고 달려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 보고 달려 갔다. 경주자 앞에는 고난도 있으나 반드시 영광스러운 보상도 약속되어 있다. 십자 가의 주님은 자신의 고난을 바라보고 참으셨고, 마침내는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주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도 상이 기다리고 있다. 예배 생활에 회의가 올 때에는 아벨을 기억하세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결단코 헛되지 않다. 고독과 좌절이 몰려올 때에는 엘리야를 기억하세요. 천사의 어루만짐을 얻고, 먹고 마시는 은혜 안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심을 받을 것이다. 오해와 멸시 속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는 요셉을 기억하라. 우리의 믿음의 경주가 결단코 헛되지 않음 을 오늘 본문은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5.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응원단을 의식하면서 달려야 한다. 우리 앞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경주를 성 공적으로 마친 자들이다. 그들은 현역 선수인 우리를 지켜보면서 함께 힘을 모으고 격려해 주는 하늘 나라의 응원단들 이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보면 경기장에 가 보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되어 있다. 1) 상인들/ 이 사람들은 경기장에는 왔으나 장사를 하거나 도박을 걸어 돈을 버는 일에만 신 경쓰는 사람들이다. 2) 선수들이다. 오핸 훈련을 쌓고, 기술을 닦아서 승리와 명예와 인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3) 관중들이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경기의 신비를 보고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그 경 기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상인은 돈을 벌고, 선수는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 관중들은 경기 자 체의 의미를 지켜 보고 즐기면서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는 구름같은 응원단들은 운동 경기장의 관중들과는 또 다르다. 너는 경기해라. 나는 보고 즐기겠다 하면서 자기 기분만 내는 응원단들은 아니다. 우리의 응원단은 내 안에서 함께 믿음으로 경기하는 자들이다. 모세를 생각할 때 우리가 얼마 나 힘을 얻나? 아브라함이나 야곱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용기를 얻나? 경기자에게는 고난과 희생과 영광이 함께 있다. 우리가 달려가다가 피곤할 때는 응원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의로운 제물로서 제사드리는 그들의 증거들을 본 받아야 할 것이다. 피곤하고 고달픈 생활과 믿음의 갈등에 빠질 때는 네 녹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다. 그리고 고독과 좌절이 몰려 올 때는 엘리야를 바라보면서 천사의 어루만짐을 얻고, 먹고 마시 는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나서 달려야 겠다. 어떤 일에 중대한 선택이 주어질 때는 기생 라합 의 결단을 본 받아서 의로운 결단을 해야겠다. 오해와 멸시 속에서 고통을 당할 때는 요셉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성폭행의 오해를 받으면서 극복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도 경험하면서 돌파해 나가야겠다. 중대한 범죄에 빠져 낭패를 당할 때는 다윗의 회개와 회복을 기억하세요. 그러면 회개를 배우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현역 선수인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역사상에 그들의 얼굴을 보여 주셨 고, 우리를 위해 그들의 음성을 남겨 주셨고, 우리를 위해서 그들의 삶의 증거를 남겨주셨다. 이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주인공이다. 물론 그들이 역사상에 생존해 있었을 대는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엑스 트라이고 우리가 주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난관 앞에서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뜻하지 않는 패배의 순간이 몰아 닥칠 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명백한 사업의 실패 도 생각할 수 있고, 원수가 생길 수도 있고, 병을 얻을 수도 있고, 어렵고 난감한 일을 만날 수도 있다. 또 소망하고 기다리던 일이 더디 이룰 수도 있고, 답답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혼란과 비방과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바라보면서 달려야 한다. 다음에 잘 뛸 것이라 생각지 말고, 지금 잘 달리시기 바란다. 다른 곳에 가면 잘 뛸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늘 여기서 잘 달리시기 바란다. 여기서 실패하 면 다른 곳에서도 실패할 것이고, 지금 실패하면 다음에도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금 여 기서 최선의 경주를 다 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지도자 모세는 무거운 짐을 느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언제나 불평과 원망으로 일 관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길이 조금 험하고, 막히면 불평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물이 없고 고기가 없을 때는 당당하게 따지고 나왔다. 잘해 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더니 조금만 못했다 싶으면 가차없이 불평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먹을 물을 내고, 먹을 고기를 주었을 때는 어느 한 사람 모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모든 불평의 소리에도 낙심하지 아니 하고, 믿음으로 나아갔다. 왜냐하면 하 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다 주께 맡겨 버 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을 붙잡았기 때 문이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은 모세가 주인공이 아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상에 나게 하시고, 모세를 훈련시키신 것은 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위해 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주의 일에 충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등장시키 신 것이다. 그러니 모세를 부러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천사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은퇴한 선수들 은 현역 시절을 그리워하고, 현역 선수들을 부러워하는 법인데 현역인 우리가 은퇴 선수들을 부러워해서야 되겠나? 천사들도 우리가 복음 증거하는 것을 부러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역 선수로서 긍지와 자 부심을 가지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낙심할 필요가 없다. 해 보지도 않고, 두려워할 필 요가 없다. 여러분이 일년을 어떻게 살아왔나? 열심히 살았나? 최선을 다 했나? 그렇지 못 해서 실패했다 고 생각하나? 혹 일곱 바퀴 돌아야 할 여리고를 여섯 바퀴만 돌고 낙심한 것은 아니냐? 제대로 기도도 해 보지 않고, 제대로 훈련을 받다 보지도 않고, 제대로 전도해 보지도 않고, 될까 말까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 시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이미 모든 가능성을 열어 주셨다. 우리가 오늘 현실에서 당하는 것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다 당했다. 다 당하면서 승리한 사 람이 있었고, 실패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넘어지면 두 손을 들고 기뻐할 사단의 군대를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승리하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달려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열심히 달려야 한다. 다른 사람에 게 주신 직분에 신경쓰지 말고, 내게 주신 직분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란다. 일년 동안의 여러분의 삶은 경주자의 삶이었나? 장사군의 삶이었나? 관중의 삶이었나? 하나님 은 우리가 경주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내년에는 훌륭한 경주자의 삶을 다짐하면서 송년 주일 을 마무리 하시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