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큰별

믿음의 큰 별
히11:23-29





고전13장이 \"사랑장\"이라고하는 것처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1절에 믿음의 정의로 부터 시작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16명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믿음에 관해서는 큰 별과 같이 빛나는 신앙인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이 모두 40절로 되어있고, 40절에 16명을 소개하려면 한 사람 당 평균 2절 반쯤 소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32절을 보십시오. 단 한 절에 6명을 이름만 소개하고 지나갑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래서 정말 위대한 큰 별과같은 여섯명을 이름만 올리고 그냥 지나가 버리는데, 이 성경을 겉으로 보지말고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묘하고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윗과 같이 위대한 사람을 그냥 이름만 살짝 비치고 지나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본래 히브리서는 저자가 확실치 않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오리겐은 히브리서 저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것은 하나님만 아신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지적하기를 바울이나 바나바나 아볼로 중에 한 사람이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믿음에 대한 강조와 고난에 대한 확신과 미래에 대한 상급과 구약성서의 해박함을 볼 때에 사도바울이 기록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성서 27권중에 사도바울 혼자서 약 14권을 기록했다는 말인데 그래서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기독교를 탄생시켰고 사도바울은 기독교를 완성했다고 이야기 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4복음서가 기록되어 예수님의 행적은 알 수 있게 되었지만, 만약에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없었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신득의>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가 세워지기가 힘들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히브리서를 기록했다고 보고, 사도바울의 관점으로 볼 때 그 16명의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을 바울은 모세로 보고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에게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절에 6명씩 이름만 쓰고 지나가는데, 오직 모세에게만 7절을 할애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을 초청해서 않는 좌석만 봐도, 그에게 비추는 조명만 봐도, 소개하는 순서만 봐도, 소개되는 내용의 길이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절수가 많다하는 것은 모세는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로 비쳐졌다 이 말입니다.

구약에 가장 위대한 믿음의 큰 별은 모세요. 신약의 가장 위대한 믿음의 거성은 사도 바울입니다. 이 두 믿음의 큰 별(거성)들을 비교해 보면서 오늘 같이 은혜를 나누고져 하는 제목은 \"믿음의 큰 별이 되리라\"입니다. \"믿음의 큰 별\" 그래서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듣고 정말 믿음의 큰 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1.믿음의 큰 별은 기도의 수준이 다르다.
그런데 이 믿음의 큰 별인 모세와 바울은 기도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믿음의 큰 별은 기도가 달라야 합니다.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은 그 사람의 기도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그릇은 그 사람의 기도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내용이 자기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 경우 큰 별이라고 불리워질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슨 가족의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울타리를 초월할 수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어떻게 기도했는가? 한번 볼까요. 출애굽기 32장 32절을 봅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요.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요\"

지금 모세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범죄하고 죽을 수밖에 없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앞에 서서 당당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저들을 용서해 주시기 아니하시려면 하늘 나라의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리시옵소서\". 그 기도가 얼마나 멋 있습니까? 그 기도가 얼마나 믿음의 큰 별다운 기도입니까? 민족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모세의 기도, 하나 밖에 없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이름을 민족을 위해서 걸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걸었던 것처럼, 모세는 자기의 생명을 자기 동족을 구원하는데 걸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깨닫고 보면 이것은 100%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할 수 없고, 반대로 무죄한 자를 형벌할 수가 없습니다. 죄 없는 자를 형벌할 수가 없어요.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대속자이신 예수님을 지옥에 보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잘못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사람을 감싸버리면 그 잘못은 같이 탕감받을 수 있다는 굉장한 중요한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옥갈 수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지옥갈 수 없는 예수님은 지옥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이름을 온 인류를 구원하는데 걸었어요. 모세는 자기 동족을 구원하는데 걸었어요.

그렇다면 나는 오늘 나는 어디다가 내 귀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걸 것인가?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 분명하면 그 생명책의 내 이름을 아무데다가 걸어놓고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그를 구원해 낸다는 겁니다.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죤 낙스는 하나님이여 내게 스코트랜드를 주시옵소서, 그렇치 않으면 내 생명을 거두어 가주십시요. 그랬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두어 갈 수 없습니다. 대신에 스코트랜드를 줄 수 밖에 없지 않겟습니까?
예레미야는 민족의 망함을 바라보면서 홀로 하나님 앞에 울었던 선지자요, 다니엘은 유다의 멸망 속에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왕의 수랏상을 거부한채 매일 매일 세 번식 기도했던 사람이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여러분의 귀중한 생명록에 기록된 이름을 걸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시한대다가 목숨걸지 마십시다. 어떤 사람을 먹는데 생명을 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스피드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있어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달리는데 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예요.

사도 바울은 모세의 영향을 받았음에 충분한 증거가 첫째는 모세를 좋아한다는 것이고, 좋아하니까 7절식 표현했고. 둘째는 기도의 내용이 같다는 겁니다. 로마서 9장 3절에 보면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사람은 누구의 영향을 받는냐 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2. 믿음의 거성은 자기 희생이 있다.
사도 바울에게 비쳐진 모세는 그토록 휼륭하게 비쳐졌는데 왜 사도바울에게 비쳐진 다윗은 이름난 그냥 올려졌는 정도로 밖에 비쳐지지않았는가. 얼른보면 다윗에 모세에게 뒤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사도 바울은 모세를 7절씩 할애하고 다윗은 이름만 올라갔는냐 하는겁니다. 모세 지금 여기에 있는데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 받는 길을 애굽의 왕의 공주의 아들되어 잠시 죄의 향략을 누리는 것을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왕자리를 포기하는 고난을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왕 노릇을 다하면서도 주를 위해 살았서도, 왕을 포기하면서 주를 위해사는 것은 없었다는 겁니다. 같이 성공을 해도 고생하고 성공한 사람은 고생하고 성공한 사람을 알아줍니다. 하나도 고생하지않고 성공한 사람은 알아주지 않습니다. 바울이 볼 때는 모세가 왜 휼륭하냐하면 모세는 좋은 조건을 포기하면서 주를 위해서 고난을 받은 것이 맘에 들었다는 겁니다. 바울을 고생을 했기 때문에 고생을 일부러 사서한 모세가 그렇게 위대해 보인다는 겁니다.

리챠드 범브란드란 목사님이 말하기를 \"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를 건넜다고해서 그 다리가 튼튼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차가 지나가면 그 다리는 튼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밥 잘먹고 등 따습게 하고 하나님이 있네, 없네. 계시네, 안 계신네. 어리석은 소리말자는 겁니다. 당신이 죽음 앞에 탁 서서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 말할 수 있는냐 하는 겁니다. 전쟁참호 속에는 불신자가 없다고 그럽니다. 총알이 빗발
치고 폭탄이 여기저기 터지는데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런말 못하고 다 하나님 계시면 살려주세요. 다 그렇게 기도한다는거예요. 죽음앞에서 당신이 하나님이 없다고 애기할 수 있느냐. 자기는 다 만나보니까 죽음앞에 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받고 가더라는 겁니다. 이 목사님이 기적적으로 살아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책이 \"하나님의 지하운동\" 리차드 범브란트저, 크리스쳔의 필독서입니다.

3.확실한 영적체험(믿음의 거성은 성령충민의 사람이다.) .
세번째 영적인 체험이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영적인 체험을 합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엉적인 체험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달라졌는냐.
첫째, 그렇게 혈기방자한 사람이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공부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성령이 사람을 만듭니다. 성령만이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의 가족의 신자화 한 사람 전도 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닌 됩니다. 둘째, 모세는 살인하고 도망간 사람이요. 한마디로 진정한 용기도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함께하시는 민족을 구하려 지팡이 하나들고 바로에게 찾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용기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셋째, 모세는 팔십될 때까지 한 번도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서 금식기도를 여러차레합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모세가 제일 많이 했어요. 세번씩햇습니다. 기도도 성령이 도와주셔야됩니다. 기도의 영을 부어주셔야 됩니다. 기도의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의 큰 별은 성령충만이어야 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 예수믿기전에 사람을 잡아죽이던 사람이 이제 예수를 위해 죽는 자가 되었다.그러나 주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신득의>의 중요한 교리를 세운 신학자만이 아니라 자기몸을 내어던져 세계를 향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산 증인
어었던 겁니다.

나는 여러분이 성령충만하셔서 믿음의 큰 별이되어 한 시절 적당히 사시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40절로 끝나는데 41절을 \"믿음으로 윈저한인연합교회 아무개 성도는...\"이렇게 41절을 여러분 나름대로 기록해 갈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1절은 누구 쓸 차례입니까? 나의 이름을 쓸 차례입니다. 다같이 41절을 읽습니다. \"믿음으로 아무개는 보지 못하는 것에 부르심을 받아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살았으니...\" 그렇게 쓸수 있도록 살아 보자고, 그렇게 쓸수 있도록 살아보라고 지금 전하는 겁니다. 무어라고 쓸 것인가? \"믿음으로 누구는 새벽기도 새 자도 관심없었으나 40일 작정하고 나와서 성령충만 받아.....\" \"믿음으로 누구는.. 전도의 전자로 몰랐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전도의 열매를 맺었나니...\" 장차 믿음의 큰 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