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믿음

두 가지 믿음
히11:8-11





몇일전 집사님 한 분과 대화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설
교 말씀을 들으면 가슴이 뜨겁고 좋아서 마음이 시원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말씀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서 머리 속에 정리된 것이 하
나도 없어요 이날 이때껏 성경 말씀 한 구절 암송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외워
지지도 않고 내가 이렇게 예수 믿어도 되는지 몰라요. 성경 한 구절 외우는데
6개월 걸렸는데 외워볼께요... 하며 외우는데 짧은 한 절이지만 그것도 제가
들으니 앞뒤가 뒤바뀌고 틀리게 암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지식이
풍부하고, 성경 구절을 줄줄줄 잘 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굉장히 부러워
하며 조금은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곁에서 그분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는 머리 속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성경적인 지식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고백하는 대화였습니다. 그래서 집사님... 집사님이 바로 잘 믿고 있는 것 이
예요. 집사님이 똑바로 믿는 것입니다.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신앙적인 지식
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지만 지식에만 머물고 그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뜨거운 가슴으로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적으로 경험하는 신앙생활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이 가
슴은 차갑고, 감각이 없고, 지식의 축척에만 그치고 가슴까지 내려오지 못합
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빠르게 가슴이 새로워진 경험을 한 분들
도 있지만, 아주 많은 신자들은 머리의 지식이 가슴까지 내려오려면 수 십 년
씩, 또는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머리도 채워지고 가슴도 동시에 뜨거워지
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잘 조화를 이룬 신앙생활이면 온전한 모습이겠지만
그렇지 못함이 대부분의 신자들의 모습니다. 머리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슴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머리와 가슴이
함께 움직이는 신앙생활이면 제일 좋습니다. 차가운 머리, 냉철한 판단이 좋
은 것이지만 가슴에서 나오는 뜨거운 뭉클함이 없는 생활을 하다보니 마치
기름 없이 돌아가는 기계 같이 뻑뻑하고, 힘들고 원활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신앙의 지식은 없는데 가슴부터 뜨거워서 분별없이 혼자 앞
서가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금방 무슨 일을 낼 것 같
습니다. 열심이 대단하고, 당장 세상을 뒤집을 것 같고, 조용, 조용, 차근차근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무시하고, 이래서 안 된다고 하고, 가슴이 뜨거워서 얼
굴까지 붉히며 열을 내고, 당장 신학교 가겠다, 선교사 하겠다. 이런 사람들은
잘 지도를 받으면 쉽게 조절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냉철
한 신앙지식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체험적인 신앙이 되고 믿음의 기초
위에 새로운 믿음이 자라가며 확실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즉 지식,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주도해 가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형성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뢰,
믿음을 쌓아 가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성의 믿음의 측면을 성경 속
에 아브라함을 보면서 두 가지 믿음의 양면성을 분명하게 정리하며 우리의
믿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체험되는 신앙으로 방향 전환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아브라함은 성경 속에 믿음의 조상이요, 믿음의 영
웅으로 우뚝선 복된 이름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이렇게 큰 믿음의 영웅
으로 불리워진 것이 그가 지닌 가문적인 백그라운드나, 명성 있는 집안의 자
식이라든가, 또한 가족들의 훌륭한 믿음의 배경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
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히러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 말씀에 보면 \"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
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
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시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 이
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배경을 대충은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우상
을 섬기며, 데라는 우상을 섬기는 아브라함의 아비였습니다.

우리말에 개천에서 용 났다! 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도무지 기대할 것이
없는 곳에서 큰 인물이 나면 개천에 용 났다.. 이런 말을 쓰는데... 예를들
어 지난해 청년부 회장으로 많은 수고를 했던, 희진 자매가 회장이 된후 소감
을 말하라고 하니까....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지난 선교음악회 때 부모
님들이 보스톤에서 그 바쁜 저녁에 일부러 오셨습니다. 가문의 영광으로 우
뚝 선 희진 자매가 수고하고 섬기는 교회를 보려고, 그래서 제가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 주셨을까? 물론 웃느라고 가문의 영광이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정말 가문의 영광! 민족의 영광! 인류의 영
광, 하나님 나라에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
을 여호수아 24장 3절에 보면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 I took your father
Abraham from the land beyond the River.\"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냈다.... 강 저편이 어디입니까? 갈데아 우르, 우상이 우글거리는 불 신앙의
집안, 죄악의 소굴, 하나님께서 꺼집어 냈다... 여기서부터 믿음은 시작되고
그 믿음은 은혜로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꺼집어 냄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의
의지도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하심입니다.

이것을 두고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에 이런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
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라고 결론짓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자기 집
안으로부터 꺼집어 냄을 받은 것은 자신의 의지하고, 자신의 능력, 또는 재능,
하고는 무관한 일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거부할 수 없는 \" 조직신
학적으로 불가항력적 은혜 \" 입니다.

이것이 모든 크리스챤들의 출발지점입니다. 이 출발을 믿음이라고 하고 그
출발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
하신 믿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
니다. 있을 수도 없었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만약에 있다면 믿음이 은혜가 못
됩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값으로 칠 수 없고, 갚아도 갚아
도 다 갚지 못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를 다 갚을 수 있다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로가 될수 없습니
다. 그러기에 구원은 내가 선택한 원인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
습니다. 자랑 할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
면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원인을 제공
한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
는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은혜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끄집어 낸 후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여호수
아 24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어 낸 후 \" 가나안으로 인도
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
십니다. 당장 끄집어내서 목적지에 반짝 들어다가 옮길 수도 있으셨지만. 멀
지 않은 목적지를 가는데 이리 저리 끌고 다니시면서 산전 수전을 다 경험하
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집안에서 끄집어내시더니 이젠 내 인생 마
져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도해 가시는구나! 이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
다. 때로는 피난도 가고, 부인을 빼앗길까봐 거짓말도 하고, 조카한테 배신당
하고, 헤어지고, 전쟁도 경험하고,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
는 모습도 보게 하고, 그래서 이 과정 속에서 아브라함은 더디어 인격적인 하
나님을 가슴으로 경험하고 만나게 됩니다. 일차적인 믿음 위에 이차적인 경
험, 체험, 인격(하나님과 일대 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신뢰가 쌓이게 된 것
입니다.

정리합니다. 일차적인 믿음은 은혜요, 선물로서 믿음, 내 의지와 상관없는
믿음, 이것을 구원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구원은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
런데 아브라함은 그 엄청난 선물을 받은 후에 그 은혜와 선물을 주신 하나님
을 이제는 막연하게가 아니라 확실한 관계 속에서 체험하게 되면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끄집어냄을 받습니다. 그후 하나님은 아브라
함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까지 가보면 12장과 15
장 사이에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15장에서 아브라함이 그동안 끌려 다니면
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드디어 스스로 고백하는 항복이 있습니다. 그것
은 15장 6절에 \"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
와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더라!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입술을 통해서
이 항복을 받아 내시려고 그렇게 끌고 다니신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하나
님이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젠 누가 뭐래도 하나님을 저는 믿습
니다. 이 믿음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맺어진 신뢰의 믿음이기
때문에 빼앗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엄격히 따지자면 우리가 저는 예수를 믿습니다.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렇게 고백할수 있는 것은 이미 예수를 믿
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선물로, 거부할 수 없는 축복
으로 주신 것이고, 그 결과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
니다.

그래도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공로 없이 대가 없이 주어지는 은혜
요, 선물임에도 예수 믿으세요. 하는 것은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량
없는 은혜의 원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엄격히 말씀드리면 끄집어내시고 믿게 하신것이지요...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선물로서 믿음과, 구원의 선물을 받은
후에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서 쌓여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격적인 믿음,
체험적인 믿음이 깊어져야 합니다. 일차적인 믿음은 거져 주시는 은혜와 선
물로 받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도 아브라함 처럼 우리 입술로 항복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하나님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권자
가 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제가 확
실히 믿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믿어지는 데 어떻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서 우리 인생을 이끌고 가시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군요. 제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없이 못삽니다. 이 소리 들으시
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에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고 선언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믿음, 일차적인 믿음의 은혜 위에 새롭게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체험적인 믿음의 고백이 점점 많아지도록 우리는 하나님과 아주 친
하고, 가깝게 동행하는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하
나님의 마음을 꿰뚤어 보고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은 예수님을 더 많이 닮았다는 뜻입니다. 예수
님을 닮아 가지도 않으면서 믿음이 좋다고 하면 안됩니다. 좋은 믿음으로 하
나님의 기분을 좋게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