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능력 히11:1-3, 히13-16
오늘부터 한국에는 한가위, 음력 8월 추석 명절로 인하여 민족 대이동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먼저 한가위 추석에 관련하여 한가지 아름다운 속담을 소개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지난 여름동안 바삐 살다가 이제는 쉰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성묘하고 친교하고 씨름놀이도 하고, 반보기(고부간에 맺혀진 한을 중간 지점에서 만나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고 해서 나온 말)도 거행합니다. 원래, 한가위는 신라 유리왕 때 서라벌 6부에서 뽑힌 왕의 궁녀들을 둘로 나누어서 음력 7월 15일부터 8월 14일, 추석 전날까지 여자들이 \"길쌈(실을 뜨고 옷감을 짬)\"을 하였습니다. 이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가위는 \"노래와 춤을 추면서 즐기고 논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한가위 추석 명절에는 송편을 먹습니다. 이 송편은 반달 떡입니다. 원래 중국 사람은 월병(둥그런 달떡)을 먹으면서 달빛을 맞이하였습니다. 제가 3년 전, 7월경에 중국에 가서 월병을 어느 마켓트에서 발견해서 여러 개를 사먹었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으니까, 꽤 많이 먹었습니다. (김 명[조선족] 청년이 중국에서 왔는데, 명이는 월병을 좋아해요? 맛있어요? 참 맛있어요.)
오늘 아침에는 한국의 명절을 기억하면서 특별히 \"말씀의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기쁘고 즐거우며 은혜로운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를 소개한다면 예수님의 산상 설교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베드로의 설교, 바울의 설교, 그리고 스데반의 설교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조나단 에드워드의 설교가 유명하고, 영국에서는 스펄죤의 설교가 유명합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많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설교를 잘 준비해서 \"이번에는 대 히트 작이 될 것이다!\" 라는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설교하면서, \"오늘은 많은 성도들이 정말 까무러칠 것이다!\" 라는 착각 속에 강단에 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설교 단에 올라오면, 성도들이 까무러치는 커녕 어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설교냐(?)\" 하면서 하품을 하고 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설교는 \"이렇게 준비하고서 어떻게 많은 성도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겠나(?)\"하며 오히려 부끄러움과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강단에 설 때 하나님은 의외로 역사 하셔서 큰 은혜를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인간의 실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래서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 함께 은혜를 받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아침, 히브리서 11장과 12장의 내용으로 설교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설교는 매우 은혜가 넘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을 증거하는 메시지가 담뿍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도다\" 또한,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에 보면, 저들의 믿음과 신앙으로 이긴 영혼의 개선가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이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능력!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 보시지 않으십니다. 인물을 보시지 않으시고, 가진 것 보시지 않으시며, 배운 것도 보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중심을 보십니다. 믿음을 보십니다.
39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분명히, 구약의 성도들은 확실한 증거를 받았습니다. 아벨의 경우, 그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에녹의 증거는 그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고, 모세는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약속일까요? 영어 성경에는 약속 앞에 정관사(The)가 붙어있습니다. \"The Promise\" 이 약속은 많은 약속 중에 한 약속이 아니라, 특정한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 특정한 약속은? 사도행전 13장 23절에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아멘. 더 나아가서, 32절-33절에서,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결국, 이 특정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할렐루야!
분명히, 구약에서는 메시야가 임할 것을 약속했으나 구약의 성도들은 그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구약의 성도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7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즉, 구약의 많은 성도들이 보고 싶어했고, 듣고 싶어했던 메시야!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그 메시야를 똑똑히 보고있고, 또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지금 여러분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뿐아니라, 주님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다 약속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다섯 가지 특색이 있습니다. (잘 들으세요.) 첫째,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언과 약속을 통해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바라보았으나 우리는 확실한 그리스도 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어로 \"His-story\" 그의 역사 속에서 말씀을 듣고 살고 있습니다. 둘째, 신약의 성도들은 확실한 구원관이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성도들도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관은 확실합니다. 셋째, 신약의 성도들은 성령님이 내주 하심을 믿고 삽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신이 역사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속에 언제나 내주하고 계십니다. 넷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스라엘 중심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온 세계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구약에서는 내세관이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내세관이 확실합니다. 하늘나라 천국과 영생에 뚜렷한 비전과 소망이 있습니다. 재림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는 천년 왕국에서 잔치에 참여하며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내세관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40절에서 말씀하기를,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고 믿음으로 찬국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약속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신앙이 온전히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귀합니다. 요한 일서 5장 5절에,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이긴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앞에는 구름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위의 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의 것으로 사는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바라보면 어떠한 장애도, 어떠한 약점도,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단점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고, 가정이 어렵다고 부모가 없다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파스칼은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까지 잃었지만 위를 바라봄으로써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고, 훌륭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록펠러가 가난한 소년이었지만 위를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은 저를 가장 위대한 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힐튼이라는 사람은 언제나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호텔의 왕이 되었습니다. 헨델이 위를 바라보았을 때 위대한 영감을 얻고 오라토리오 메시야를 완성하였습니다. 시인 코울리지는 우리가 위를 바라 볼 때에 비로소 시인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위를 바라볼 때 위대한 삶을 갖게 됩니다. 우리 성도는 위를 보아야 합니다. 멀리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달라지느냐 하는 것은 \"얼마만큼 위를 바라보느냐? 얼마만큼 기도하느냐? 얼마만큼 꿈을 가지느냐? 얼마만큼 앙망하느냐? 얼마만큼 달려가느냐?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생애에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는 것만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도의 보화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긴다 하였습니다. 앉은뱅이가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38년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수많은 기사와 이적, 수많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다윗에게는 두려워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원래 다윗은 용장이었습니다. 불레셋의 장군, 구척장신 골리앗 대장도 무섭지 않았고, 악신이 든 사울 왕을 무서워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편 13:3에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잠을 자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망의 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의 사망입니다. 인생은 육신의 사망이 있습니다. 숨을 쉬지 않거나 심장이 뛰지 않거나 뇌의 활동이 정지되어 있으면, 육신은 죽은 것입니다. 육신의 사망이 두려운 것입니다. 둘째는 양심의 사망입니다. 흔히 사람들의 말 가운데. \"양심이 죽었다\" 라고 말합니다. 양심이 마비되었거나 양심이 썩었거나 양심에 털이 났다는 말은 양심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악한 일을 하고도 악한 일인지를 모릅니다. 나쁜 일을 하고도 나쁜 일인지 모릅니다. 심지어 살인죄를 지었어도 묵묵권 행사를 합니다. 양심이 죽은 사람입니다. 셋째는 영의 사망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 인간의 영혼이 죽습니다. 로마서 6장 3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야고보서 1장 15절에,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는 영혼이 죽은 인생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망의 잠에 빠져 있습니다. 사치의 잠, 음란의 잠, 쾌락의 잠, 방탕의 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사망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죄 짐의 무게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설교를 마친 후에 평소 따지기를 좋아하는 어떤 교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의 말 대로라면 나는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죄 짐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동차를 배에 올려나도, 아니 그 위에 기차를 올려나도 무거운 줄 모르는 법이지요.\" 죽으면 자기가 무엇을 행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육신이 죽으면 육신의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양심이 죽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못합니다. 영이 죽으면 죄의 무서움을 알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에 말썽을 피우는 여자 집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셔서 반가워서 예수님의 손을 꽉 잡았는데 손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2천년 전에 못 박히셨으니까 이제는 다 나으셨을 터인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예수님이 저기를 보아라 하셔서 보았더니 저 쪽에 양들이 있는데 그 양들이 다 예수님의 손목, 아직도 상처가 있는 손목에 끈에 달려 있었는데 한 양이 자기 맘대로 뛰어 다니니까 예수님의 손에 상처가 다시 찢어지고 또 찢어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을 잡아 없애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꿈이 깨었는데, 그 양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고 그 잠자리에서 거꾸러져서 회개하고 순종을 잘하는 모범적인 여 집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이 분은 빨리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를 모르며 방황하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망해도 왜 망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죽어도 왜 죽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돈 좀 벌었다고, 출세 좀 했다고, 은혜 좀 받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닙니다. 이때 조심해야 합니다. 승리의 자만감 후에는 언제나 패배가 찾아오기 쉽습니다. 마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에서 패배해서는 안됩니다. 사단은 우리를 처음에는 잘 되게 하다가 나중에는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마귀는 잘 되게 하면서, 친절하게 하면서, 졸게 하면서 아주 사망의 잠을 자게 합니다. 물론, 우리도 자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자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며 잠을 자야 합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찍 깨어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도 나를 도와주세요. 우리 자녀들을 도와주세요. 우리의 가정을 지켜 주세요. 승리의 길로 이끌어 주세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제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성도는 단잠을 자야 합니다. 은혜의 잠을 자야 합니다. 평안의 잠을 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잠을 자야 합니다. 사단이 주는 잠은 사망의 잠입니다. 사단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특별히, 남성들이 깊은 잠에서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아내들은 교회에서 깨어 기도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80대 20, 또는 70대 30의 비율로 월등히 많습니다. 실제로, 50대 50으로 구성된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남성들이 비교적 많습니다. 매우 보기 드문 이민 교회의 특색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그러므로 각 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하였습니다. 남자는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고 여자는 순종하기를 힘쓰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남자에게 최고의 약점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른 것은 다 뒤쳐져도 기도하는 것은 여자에게 질 수 없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기도의 멍에는 남성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동안 남자 때문에 여성들이 기도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제는 여성을 위하여 남자들의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아버지의 기도가 필요야 합니다. 남자의 기도소리가 높아 가는 교회가 든든하게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이제 교회는 남성들에게 기를 살려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일으켜야 합니다. 남성이 살면 교회는 생명이 넘칩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기도의 능력이 있으면 가정이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생명이 넘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들을 지켜주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기도하는 부인의 기도로 남편을 지켜주십니다. (아멘) 기도하는 성도의 영혼에는 사단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사업은 사단이 틈타지 못합니다. 기도의 자녀는 죄의 길로 가지 않습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바쁠수록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바쁠수록 기도하자!\") 여러분, 바쁘다고 신앙생활에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사자는 보통 때는 잠을 많이 잡니다. 그러나 먹이를 찾을 때는 얼마나 행동이 빠른지 모릅니다. 기도는 사단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단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 어머니가 아홉 살난 자기 딸이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을 들었습니다. \"뚱뚱이, 뚱뚱이 바보!\" 하고 놀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빌리는 유난히 뚱뚱하고 못생겼습니다. 어머니는 저녁 식탁에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빌리야, 운동을 하면 몸도 날씬해 질 것이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라\" 그런데, 빌리는 오히려 명랑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두고 보세요. 나는 세계를 놀라게 하는 운동 선수가 될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서 정말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가 바로 테니스의 여왕, \"빌리 진 킹\" 여사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실상!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먹는 것, 결심하는 것, 꿈을 꾸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의 생활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나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힘차게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소망의 믿음입니다.
베스트 셀러 중에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는 책이 있습니다. 결국 긍정적인 생각이 성공적인 인생을 만든다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믿으면 믿음대로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 오늘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산에 올라가자\"고 말씀하시면서, 각자가 돌 하나씩 들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ꋅ가 쓰일 데가 있겠지\" 하고 큰돌을 하나 주워 들고 올 갔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왜, 돌을 들고 오라고 하시지?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나?\" 하고 의심하면서 아주 조그만 조약돌을 집어들고 올라갔습니다. 빌립은 \"너무 큰돌은 부담되고 조약돌은 체면상 못 갖고 가겠고...\"하고 적당한 크기의 돌을 골라 들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왜, 쓸데없는 짓을 한단 말인가?\" 하고 그냥 올라갔습니다. 이제 산 정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너희들이 가져온 돌들이 떡이 되게 하자\"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의 믿음대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베드로와 같은 순전한 믿음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강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능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능력으로 새 역사를 펼쳐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