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히11:4-7





지난 주일에는 본문 11장 1절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선포하고 있는
믿음의 정의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믿음이란? 일반적으로 사전을 통해서 내리고 있는 정의는 \" 믿음은 어떤
사물에 대한 신념과 어떤 존재,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
독교의 믿음은 초월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나타냅니다. 믿음은 한 인격
체에 대한 신뢰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믿음에 대해 혼선
을 빚고 있습니다. 믿음은 그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
서 막연하게 갖는 신념이나 확신정도로 생각하고 그 믿음에 대해서 갖는 열
심이나, 정성, 또한 간절한 소원을 비는 것으로 믿음을 정리하면서 일반 무
속신앙의 믿음과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1절의 말씀처럼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다 맡겨도 괜찮은 하나님
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시면 눈에 안보여도, 또한 이성적으로 이
해를 할 수 없어도, 상식에 맞지 않아도, 또한 경험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
서 속하시고, 말씀하신 내용들을 믿는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전능하시고,
무한하시고, 지혜와 지식이 무궁무진 하시고, 인자하시며 성실하시고, 한번
말씀하시면 천지가 변해도 그 약속을 깨트리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 또한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주시사 그 언약을 지키셨는데 무슨 말씀인들
신뢰가 가지 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믿어보고 아니면 그만이고, 사
실이면 다행인 밑져아 본전이다\" 이런 사행심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믿음을 붙잡고 나갔더니 그 믿음은 실상이요. 사실이요, 보
이지는 않았지만 증거가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이것으로
임상체험을 거쳤다는 고백입니다. 그 임상체험을 가지고 믿음의 거장들로
우뚝선 믿음의 조상들의 빛나는 이름들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열되어 있습니
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의 이분들 뿐이겠습니까? 기독교 교회사에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신뢰 때문에 목숨을 던진
수많은 순교자들. 그리고 한국 기독교 교회사에도 빛나는 믿음의 영웅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백미터 지하 카타콤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뜨거운 불가
운데서. 차가운 감옥에서, 매을 맞으며, 고문을 당하며, 굶주리며, 공산치하
에서 생명을 내 놓고 믿음을 지킨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름도
없이 믿음 하나로 죽어간 수천 수만, 헤아릴수 없는 먼저 천국가신 분들이
있으며, 또한 현재 우리 주위에도 믿음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믿음
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서머나 교회 설립자 순교자 폴리갑.... 나이 80에 순교 당하기 직
전에 다시 묻습니다. 한번만 예수를 부인하면 이 죽음에서 너를 살려준다!
그러나 폴리갑은 \" 그분은 내가 80평생 예수를 믿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나
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그 분을 모른다고 부인하겠습니
까? \" 그러면서 거룩한 순교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속에서 나타난 최초의 순교자에 대한 기록을 생생하게
읽어볼 수 있습니다. 히11:4절 말씀에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오히려 말씀하
느니라. \"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창세기 4장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
어봅시다. 4-5절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했고, 가인과 그의 재
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두사람의
제사에 반응이 다르셨을까?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기에 자신의 소유물, 양
을 잡아서 하나님께 정성스럽게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
기에 자신의 땅의 소산 곡물로 제사를 드렸는데 뭐가 잘못됐을까?

두사람의 제사의 기준을 두고 분분한 의견이 많습니다. 제사에 피가 있다.
없다. 또한 가축과 곡물의 차이다 등등...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두 사
람의 제사의 초점이 제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를 드린 사람에게 있는
것을 금방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고, 가인과 그 제
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였다. 아벨과 제물, 가인과 제물, 주체가 사람입니다.
즉 다시 말씀드리면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신 것은 그 제사를 드린자가 하나
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였고,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아니하신 것은 가인
자신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의 제물이나
제사의 방법상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제사들 드린 장본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자들인가가 중요한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제물과 사람을 열납하신 아벨이 하나님께서 제물과 사람
을 거부하셨던 가인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자는
죽고, 그 반대 가인은 살아서 승승장구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어떤 보상이
없고, 비참한 죽음뿐입니다.

그런데 또한 성경속에는 믿음에 대해서 엄청난 축복으로 보상하시는 하나
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 지키다가 이 세상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 지키다가 영광스러운 축복도 누리게 됩니다. 믿음
의 기준은 이 세상에서 보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아벨은 본문 4절에 믿음
으로 죽었지만 죽음으로서 그 믿음을 말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
음 때문에 망하는 듯한 꼴을 당할수도 있습니다. 또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에서 영광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꼭 현실의 보
상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리고 교회를 봉사하면서 가장 두려워하고 긴
장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일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과
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열납받으실 만한 사람인가? 성가대원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집사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사람인
가? 여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혹시 우리가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
지는 않은지? 열납될수 없는 수고와 열심, 직분,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 두려울때가 많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인데. 그렇다면 그분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해
서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우리 자신을 다듬고 깎아서 합당한 제사를 드
려야 하는데 그 열납하실만한 사람으로 오늘도 우리 자신들을 훈련해야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지켜서 고난과 환란속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 또
한 믿음을 지켜서 눈에 보이는 축복의 대표적인 인물로 우뚝 선 사람. 그러
나 하나님께서 이 믿음의 조상들을 히브리서 11장에 열거, 기록케 하신 이유
는 믿음 때문에 손해보고, 믿음 때문에 망하고, 믿음 때문에 곤란함에도 불
구하고 믿음을 지킨 영웅들도 보여주시고자 함입니다.

믿음을 현세의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바라
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