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세계 히11:1-3 사람은 누구든지 소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지혜가 있어서 공부를 잘 하기를 원하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건강을 회복하기를 원하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유능한 사람이 되고 연봉이 올라가기를 원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이 형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또한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은 좋은 배필을 만나서 결혼을 하기를 원하고, 가정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훌륭하게 자라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대답해 보세요.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는 소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떠한 소망이 있으세요? 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믿음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누구보다도 어느 때보다도 좋아지기를 원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믿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저께, 제자훈련을 하는데 어느 형제가 그런 질문을 했어요. 다른 종교를 믿는 어느 형제가 그랬대요. 너네들은 한번 배웠으면 됐지, 배운 것을 가지고 또 배우고 또 배우고 그러냐? 그랬대요. 구원받았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 조금 더 있으면 또다시 설교하고 이야기를 하고 공부하고, 믿음으로 의로워졌으면 됐지, 조금 있으면 믿음으로 의로워졌다고 또 설교하고 배우고, 왜 자꾸만 반복하느냐 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그래요. 왜 자꾸 반복을 해요? 중요하니까 그러는 거예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믿음이나 은혜나, 구원이나 이러한 것들은 믿음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예요. 생명과도 같은 거예요.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는 믿음만큼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어요. 그래서 자꾸 반복을 하는 거예요. 자주 반복을 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되고, 또 마귀의 꼬임에 빠지게 되어서 결국은 믿음을 잃게 됩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꾸 반복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자꾸 반복하는 종교가 좋은 종교이고요, 그러한 교회가 좋은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반복하려고 합니다. 잘 들으셔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을 가리켜서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11장 전체에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믿음의 장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믿음이 어떤 것인지, 믿음의 성격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4절부터는 일일이 열거하면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절부터 3절까지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다같이 읽었는데, 다시 한번 다같이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아멘. 믿음을 정의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믿음의 선배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여러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말씀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생활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마음에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간혹 혼동하는 분이 있어요. 신앙과 신념을 분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신앙과 신념은 분명히 다른 겁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객관적인 분명한 대상이 있지만, 신념은 주관적인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무서운 함정이 바로 신념입니다. 이 신념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고, 자기가 가진 생각을 스스로 믿으면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예요. 신념이에요.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것을 말합니다. 3절에서 말하는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생활을 한다고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7절에 보면 노아가 나와요.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방주를 지었던 것이구요, 8절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미지의 땅을 향하여 떠났던 것입니다. 23절에 나오는 모세를 보아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출애굽을 시켰고 홍해를 건널 수가 있었던 것이에요. 여호수아를 보아도 그래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여리고 성을 넘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을 돌고 칠일에 일곱 바퀴를 돌아라.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일곱 바퀴를 돌고 나니까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졌던 거예요.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 구름 한 점 없는데 자기 생각을 믿고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었을까요?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에 자기 생각을 믿고 갔을까요? 모세가 6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때에 자기 생각을 믿고 했을까요? 여호수아가 자기 생각을 믿고 여리고 성을 돌았을까요? 아닙니다. 자기 신념을 믿고 행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믿고 순종했더니 기적과 같은 일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삶이 놀랍도록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어느 간행물에 소개된 얘긴데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벤슨 아이다호라는 사람이 이야기예요.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아이다호가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18년 동안 이 사람을 통하여 5000개의 교회가 세워졌어요. 그리고 5천 개의 교회에 다니는 교인수가 5천만 명이랍니다.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믿은 지 얼마 안된 후에 굉장한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다호가 예수를 믿고 나서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를 듣고 있었어요. 그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아이다호가 이 복음을 들을 때에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일어났어요. ‘야, 우리 주님은 참 대단한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로구나. 예수님 앞에는 병도 문제가 아니고, 죽음도 문제가 아니구나.’이런 믿음이 생겼고 그 예수님의 모든 것을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님, 내가 믿습니다.” 이런 고백을 한 거예요. 설교가 끝나자 아이다호는 설교하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다고 하셨는데, 목사님은 죽은 자를 살려보셨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려 보셨나요?”좀 황당한 질문이잖아요. 이 질문을 듣고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아니요. 나는 살린 일이 없어요”그 때에 아이다호가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내가 만약에 예수 이름으로 죽은 자를 살리면 살아날까요?”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예. 만약에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그리고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얼마든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좋아요. 목사님. 제가 한번 해 볼께요”이랬답니다. 그리고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죽은 사람이 없느냐고 소리치며 찾아다녔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죽은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한 명을 찾았어요. 죽은 지 몇 시간 지난 세살 된 아이였어요. 그 집에 갔더니 아이 부모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있고, 점쟁이들이 와서 주문을 외우고 있어요. 아프리카 부족의 신접자들이 다 와 있는 거예요. 그런 집을 아이다호가 들어가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말씀을 통해 배우고 왔습니다. 오늘도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치고는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다 마치고 눈을 떴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기도합시다.”하고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눈을 떠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주변에서 킥킥거리며 손가락질하고 놀리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두요 아이다호는 포기하지 않아요.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다시 한번 기도해 봅시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간절하게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눈을 떴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죽었던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 일로 용기를 얻은 아이다호는 며칠동안 죽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죽은지 사흘이 지난 8살 먹은 소년이 죽은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도 살려 주셨습니다. 그가 지난 18년 동안 이렇게 찾아다니며 다시 살려낸 사람은 무려 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물론 기도했음에도 살리지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도 아이다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낙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응답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 구하면 산을 옮기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엄청난 대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이들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에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생활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믿음으로 다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믿음하고 관계없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처럼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믿는 맛이 아니라도 할 수가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부류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사람 만나는 재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민교회가 주의를 해야 할 것이 이 점입니다. 이민 생활 속에서 외롭기도 하고 한국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으니까 자연 교회에 나오게 되는 확률이 많아집니다. 교회에 나오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먹고 하는 것들이 좋거든요. 믿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거든요. 이러한 것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어색해도 조금 다니다 보면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됩니다. 그 재미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회가 아니라 이민사회나 다름이 없게 되고, 결국은 교회가 흩어지게 되고 어려워집니다. 둘째 부류는 일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하면 직분을 맡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은 믿음 있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직분이 주어져야 하는데, 교회에 어느 정도 다니고 헌금생활도 하고 그러면 직분을 주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이러한 경우도 본인도 그렇지만 교회를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를 교회 생활을 오해하거나 직분을 받으면 믿음생활을 잘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 때문에, 직분 때문에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믿음 때문에 다녀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성장하다가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가 성장할 때에 무너지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믿음을 보고 사람을 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보고 사람을 세우지 않고 세상적으로 출세했거나 유능하거나 돈이 많으면 그것을 보고 교회 일도 잘 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꾼을 세웁니다. 집사도 세우고 권사도 세우고 장로도 세웁니다. 심지어는 세상적으로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목사까지 됩니다. 믿음은 약하거나 없는 사람인데 세상적인 기준으로 유능하고 능력이 있다고 교회의 일꾼을 세우면 교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교민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예요. 어느 나라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목사하는 맛 때문에 목사를 하면 안 됩니다. 목사가 힘은 들어도 목사하는 맛이 있거든요. 남들이 목사라고 불러주고 목사 대우해 주고, 그러는 것 때문에 목사를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도 망하고 교회도 망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보다는 집사가 듣기가 좋고 집사보다는 권사가 듣기가 좋고, 권사보다는 장로가 듣기가 좋은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러나 집사라고 불러 주고 집사 듣는 소리가 좋아서, 권사라고 불러 주고 권사소리가 듣기 좋아서, 장로라고 불러 주고 장로 소리가 듣기가 좋아서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런 집사가 있는 교회, 그런 권사가 있는 교회, 그런 장로가 있는 교회는 무너져요. 망합니다. 청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청년들이 있는 교회, 청년회 보나마나 망합니다. 교회는 믿음 때문에 다녀야 합니다. 사람 만나러 다니고, 직분 때문에 다니고, 일 때문에 다녀서는 안 되는 곳이 교회예요. 아시겠어요. 절대로 다른 맛에 정신을 빼앗겨서 교회를 다니는 어리석은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가 좋은교회라고 생각하세요. 이렇게는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세요? 이왕이면 재력이 있는 사람이 나와서 헌금도 많이 하고, 학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지적 수준도 높이고, 능력있는 사람이 나와서 활동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오면 좋은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세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재력이 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유능한 사람들이 믿음이 함께 있으면 좋지만, 믿음은 없이 재력있고 지식이 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유능한 사람이 나오는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교회를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믿음 있는 사람이 교회 일을 맡아야 하고 믿음 있는 사람이 봉사도 해야 하는 거예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 교회의 일을 맡으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주의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은 자기의 믿음을 다시 한번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세요? 내 믿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부족하지는 않는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나아지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뺀질뺀질거리면서 요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하지는 않는가? 체크해 보세요. 부요한 믿음을 소유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충만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부족함이 없이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는 칭찬의 말씀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생활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 외에 그 어느 것으로도 믿음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살면 증인이 됩니다. 성경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는 믿음으로 살아서 말씀의 증인이 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을 오늘 이 자리에 불러 세우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세울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 4절부터 40절까지에는 믿음으로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처음으로 노아가 나옵니다. 노아는 어떠했습니까?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다 멸망될 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120년 후에 홍수로 멸망한다. 그러니까 방주를 지어라.”여러분은 이 말씀이 믿어집니까? 그것도 바닷가에도 아니고 산꼭대기에다 120년에 걸쳐서 지으라고 하시는데, 노아는 그 말씀 그대로 삽니다. 그 많은 날 동안 식구들과 나무를 산꼭대기로 올려서 방주를 짓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믿음으로 방주를 짓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믿음이에요. 아브라함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라고 하니까 아무 말 없이 따르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살았더니 아브라함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33절을 보면 그 외의 증인들은 믿음으로 살아서 나라들을 이기기도 했고, 의를 행하기도 했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고,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했고, 칼날을 피하기도 했고, 연약한 가운데 강하기도 했고, 37절에 보면 심지어 톱으로 켜서 죽고 칼로 베임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32절 끝에 보시면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말하라고 한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정말로 믿음으로 살면 믿음의 역사를 이루고 믿음의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고서 좋은교회 어느 집사는 믿음으로 살더니 그런 은혜를 받았대. 좋은교회 누구는 믿음으로 살더니 저런 복을 받았대. 좋은교회 누구는 믿음으로 살더니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데, 뭐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증인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서 증인이 되면 우리의 믿음이 성경에는 기록할 수는 없지만 천국에는 기록이 되지 않겠어요? 천국에 가면 그렇게 쓰여진 것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서 이러한 믿음의 증인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생활을 하다가 조금만 힘들면 믿음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쉬운 데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뭐 좀 같이 하려고 하면, 목사님 꼭 제가 해야되나요. 누구는 더 잘하는데요, 저 요즈음 바쁜데 요 다음에 하면 안 되나요. 성경공부를 해서 영적으로 성장을 해야지요? 그러면 다음 기회에 하지요. 뭐 이런 소리를 해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해서 미꾸라지처럼 빠지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무슨 믿음생활을 할 수가 있어요. 무슨 증인이 될 수가 있어요. 제가 함께 일하자고 하는 이유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증인을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서 증인이 되게 하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증인이 되는 기회는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예요. 한번 놓치면 다음에 좋은 기회가 올 것 같아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지난주간에 우리교회의 웹사이트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예랑선교회”라고 아마 예수사랑선교회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이 선교회는 북한을 탈출한 동포들을 돕는 선교회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어떤 형제가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 땅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예랑선교회로 보내온 편지입니다. 이 글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남쪽의 형제 자매 님들에게 드립니다. 지금쯤 고국에는 봄기운이 젖어들 때인데 여기 두만강 변에는 아직도 수은주가 영하20도에서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한 겨울 내린 눈은 지천으로 깔려있고, 칼날 같은 바람은 살갗을 쓰리게 합니다. 그래도 올 겨울은 우리에게 행복했습니다. 남쪽의 형제들이 보내준 쌀로 따뜻한 밥을 먹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위를 가릴 옷을 보내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또 감사한지... 우리는 남쪽의 형제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한끼 식량을 얻으러 왔다가 우리는 예수를 알고 영생을 얻어 돌아갑니다. 지금까지는 먹을 것이 가장 소중한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보다는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이것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갑니다. 내가 등에 지고 가는 쌀과 옷은 빼앗길 지라도 내 영혼 속에 모신 주 예수를 어찌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나의 삶은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지난 날 당과 수령님에게 충성했던 그 마음으로 오직 예수만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이 속아왔습니다.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라는 허울 좋은 속임수에 우리는 한평생을 희생당해왔습니다. 아니 인생 전부를 착취당해왔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은 이 기쁨은 지금까지의 고통을 다 보상받고도 남습니다. 남쪽의 형제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자유가 있는 곳.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 마음껏 찬양하고 마음껏 기도하며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곳. 사실 우리는 자유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도 이곳 중국에 와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세살 짜리 딸이 하나있습니다. 내 딸만이라도 남쪽에 있는 형제 자매들처럼 자유롭게 신앙 생활할 때가 오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저는 다시 저 어두운 북조선 땅으로 돌아갑니다. 나를 맞이하는 것은 안전부 요원들의 날카로운 채찍이겠지요. 그래도 부양해야할 처자가 있으니 얼마간의 양식과 옷가지를 얻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가족에게 내 형제에게 전해줄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배고픔도, 안전부의 심문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기쁨만이 넘칩니다. 남쪽의 형제 자매님들 통일이 되면 만나 뵙시다. 아니 그 때까지 살아남지 못한다면 천국에서 만납시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남쪽의 형제 자매님들을 사랑합니다. 청진의 형제가 드립니다. 이 형제는 이 글을 남기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에 증인이 되어서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어요. 여러분, 믿음은 이런 거예요. 믿음은 감상이 아니에요. 믿음은 행동으로 옮기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에 증인이 되는 거예요. 이런 증인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믿음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에 들어오셔서 믿음의 역사를 이루며 믿음의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듯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교인이 교인 될 수가 있고, 교회가 교회 될 수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세상의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면 날마다 순간마다 믿음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증인이 되어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놀라운 믿음의 세계에 저희들이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세계에 다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을 통하여 믿음생활을 하는 은혜를 느끼게 하시고, 믿음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복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저들이 영혼이 죽어갑니다. 하나님! 믿음을 통하여 저들을 구원하는 증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