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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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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습니다. 약물 치료나 물리 치료나 그 외의 업무에 자신의 가족을 대하듯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모든 의사, 간호사, 청소부, 식당 직원, 경비원까지 모두들 친절과 세심한 배려로 환자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뒤,그병원의 회복률은 타 병원보다 2배나 빠르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왜 사랑이라고 합니까?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 때문에 생명을 버리셨고, 그 사랑으로 우리 인간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을 얻게 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음으로 죽을 자까지도 살릴 수 있다면 사랑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요일 4:18-21) 요일 4:18
1. \'주님의시선\' 카페와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마산시민교회가 주님의 전도전략을 따라 제자삼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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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바로 구별하라 (요한일서 4:7-21)
사랑은 상대방을 좋아하고 상대방을 위하고 기쁘게 하고 평안하게 하고 유익되게 하고 편리하게 하고 복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든 것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평가하는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더 귀한 것이 없고 더 요구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은 한 말로 하면 상대방을 좋게, 평안하게, 복되게 하고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이 이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을 좋은 것으로, 귀중한 것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원인과 방편과 결과가 있는데, 원인과 결과를 알지 못하면 속게 됩니다. 사랑은 원인도 사랑이라야 하고, 결과도 사랑이라야 하고, 방편도 사랑이라야 합니다. 방편은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원인과 결과가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지극한 사랑을 가졌다고 해도 그 원인이 더 이상 좋은 것이 없고 어떤 침해라도 받지 아니할, 완전한 것이 원인으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그 사랑은 완전하지 못한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과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말하면 몇 십 년 가다가 마지막에 그 사랑이 변하여 불행이 되고, 고통이 되고, 해가 되고, 슬픔이 되고, 죽음이 되고, 멸망이 된다고 하면 그 사랑은 속인 것이 됩니다. 미움이 아닌 미움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이제까지 사랑해 온 그 사랑의 성질도 끝나고 상대방을 복되게 한 것도 끝나고 기쁘게 한 것도 끝나고 평안하게 한 것도 끝나고 유익하게 한 것도 끝나고 사는 것도 끝나면 그 사랑이 끝났기 때문에 사랑이 끝났을 때에는 멸망으로 바꾸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상대방을 사랑해서 한달 동안 상대방을 유익되게 하고, 평안하게 하고, 좋게하고, 기쁘게 하고, 위하는 일을 했는데, 한 달 후에는 그것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 사랑이 거기까지 끌고 간 것은 속인 것이요, 속은 것이요, 그때에는 다 후회가 될 것이요, 원망, 불평, 미움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사랑하므로 지도를 했는데 이 지도가 얼마 동안은 옳고 바르고 좋았는데, 얼마 후엔 어떤 지도가 오니까 이제까지 지도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천추만대를 가도 옳은 것으로 지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을 속인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을 사랑하므로 제일 좋은 음식을 대접했는데 상대방이 그 음식을 먹고서 병들어 죽었다고 하면 이것도 무지한 사랑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미움 중에 가장 강한 미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을 사랑하므로 좋은 처소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곳에서 행복스럽게 살았는데, 뜻밖에 그 처소가 전쟁터로 변하여져서 그 사람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을 해치고 속인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해하는 것이 있고, 무지해서 결과적으로 상대방을 해치는 것도 있고, 위하고자 하지만 무능해서 결과적으로 해하는 일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좋은 것인데, 좋은 것이 좋은 것으로 계속될 때에는 사랑이 되지만 그것이 변하여 나쁜 것이 되면 그것은 사랑이 끝난 것입니다. 사랑이 변해서 미움이 되었으면 좋게 되는 그때와 나쁘게 되는 그때를 연결시켜서 통계를 맞추어 보면 그것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좋은 것이 내일에 나쁜 것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요, 오늘에 사랑한 것이 다음날에 해치는 것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요, 오늘에 유익한 것이 내일에 해치는 것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유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유익된 것이요, 결과적으로는 해가 된 것인데 사랑에 대해서도 일시적인 사랑, 결과적으로는 미움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그 수명을 측량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의 수명이 어디까지인지, 이것을 측량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 이것을 측량해야 하고 그 사랑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것도 측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곳에서는 사랑이 되지만 저 곳에서는 사랑이 되지 않고 멸망이 될 수 있으니 사랑이 미치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이것도 측량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에는 사랑이지만 내일에는 미움이 될 수도 있고, 이곳에서는 사랑이 되지만 저곳에서는 미움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랑의 권위와 수명과 지능이 어느 정도인지, 사랑의 시간과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사랑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여기에 대하여 측량해야 합니다. 심사해 보아야 합니다.
희망찬 청년이 나쁜 친구에게 끌려서 일시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일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랑에 대해서 심사를 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좋게 하고, 유익되게 하고, 기쁘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인데, 그 사랑이 끝이 나면, 정반대로 기쁨이 변하여 슬픔이 되고 평안이 변하여 고통이 되고 유익이 변하여 손해가 되고 부요가 변하여 가난이 된다고 하면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미움이기 때문에 사랑의 실력은 전지 전능해야 합니다. 전지의 지혜를 가진 사랑이라야 그 사랑이 지혜면으로 상대방을 사랑함이 끝이 없습니다. 전능의 능력을 가진 사랑이라야 능력면으로 사랑함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전지자에게만 있는 것이요, 전능자에게만 있는 것이요, 완전자에게만 있는 것이요, 영원불변자에게만 있는 것이요, 자존자에게만 있는 것이요, 주재 주권자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이분 외에는 어떤 자라도 상대해 줄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영원히 기쁘게 할 수가 없고, 유익되게 할 수가 없고, 행복되게 할 수가 없고, 평안하게 할 수가 없고, 존영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상대방에게 준다고 해도 상대방의 생명을 영원토록 보존하지 못하면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상대방에게 준다고 해도 상대방의 생명이 끝나 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진 것입니다. 사람은 이 사랑을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있는 실력이 없어서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 어떤 사람이 사랑을 가졌다고 해도 그 사랑은 반드시 미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들어서 좋게 한 것이 좋게 한 것보다 몇 배나 더 불행스러운 결과를 맺게 됩니다. 또 자기 주관에는 아무리 사랑하고 싶어도 실력이 없어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 자체라는 것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했기 때문에 자존자 하나님이 자기 존재의 원인이기 때문에 그분이 흔들리면 자기 자체가 흔들리고 자기의 주관적인 사랑이라는 것도 흔들리고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 10절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뭉치가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사랑인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게 해 주시려는 좋게 해 주심이요, 우리를 유익되게 하려는 유익이요, 우리를 행복되게 되게 하려는 행복이요, 우리를 평안하게 하려는 평안이요, 우리를 한없이 기쁘게 하려는 기쁨이요, 우리를 살게 하려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좋게 하시는가? 우리는 영원 전 자존자시요, 모든 존재의 원인이 되신 하나님과 끊어졌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하나님에게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존재가 그분에게서 나왔고 영원히 그 분으로 말미암아 보존이 되고 운영이 되고 살고 행복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분의 속성화시켜서 그 분에게 연결시켜 주셨고 그 분의 움직임과 우리의 움직임을 연결시켜 그 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해주셨습니다. 한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움직임에게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속성에서 역사하여 우리의 속성을 통하여 나타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게 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고 하니 영원 전 자존자시요, 완전자시요, 창조주시요, 주재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대하여 거리낀 것을 완전히 정리해 주시고, 하나님이 영원히 만족해하실 수 있는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사랑 뭉치요, 이 사랑은 영원토록 우리를 행복되게, 유익되게, 평안되게, 영생하게 합니다. 어느 곳에 가도, 영원히 가도, 어떤 것에게도, 거리낄 것 없고 어떤 존재가 와도 배치될 것이 없고, 어떤 법칙이 와도 정죄 받을 것이 없는 완전한 것으로 변화를 시켜서 하나님에게 귀속시켜 주셨는데, 이것 외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전부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전부 받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요, 받은 사랑으로서 사랑의 행사를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받은 사랑을 활용하는데, 받은 사랑을 활용할 곳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 외에는 활용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는 그 사랑을 하나님에게 쓰지 못하고 피조물에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실 때에 그것을 받아 가지는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주신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속하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사용하신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으로 사랑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예수님께서 받아가지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행하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영원히 복되게 하고 유익되게 하고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법에 만족을 이루신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대형(代刑)과 대행(代行)과 대화친(代和親)의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세 가지 대속을 아버지를 향하여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므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에게 그 사랑의 행위를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므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대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행사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그 사랑의 행사를 하나님 아버지에게 대하여 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므로 그 사랑의 행사를 우리에게 대하여 하셨습니다. 그 길 외에는 할 길이 없고, 달리할 법칙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영원성(永遠性), 완전성(完全成), 불변성(不變性)을 가진 것인데, 영원 전 자존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는 것이 생명이요 평강이요 행복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게 하는 것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지는 것이요, 사죄(赦罪)요, 칭의(稱義)요, 완전이요, 영원이요, 불변이요, 하나님의 속성과 역사에 연결케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독생자(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평강이요, 영원한 유익이요, 영원한 기쁨이요, 영원한 영광이요, 영원한 존귀요, 영원한 행복입니다. 사랑은 완전이요, 불변이요, 깨끗이요, 기쁨이요, 행복이요, 평강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마7:20에 \"그 열매를 보아서 안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랑은 그 결과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그 결과에 생명과 평강이 맺어져야 하고 존귀와 영광이 맺어져야 합니다. 이런 결과가 맺어지지 않고 사망과 고통과 불안이 맺어진다고 하면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구별해서 참 사랑은 하나뿐임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부모 형제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부모 형제를 사랑해야 하고 친구를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세상이 사랑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합니다. 그 사랑의 실력을 측량해 보지 않고 그 사랑이 하루살이 사랑으로 이틀 후에 떨어질 것인지, 그 사랑이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인지, 축복의 원인이 될 것인지, 이것을 심사해 보지 아니하고 사랑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아하는데 사랑 때문에 망하는 사람, 불행스럽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전지 전능이라 하고, 완전 불변이라야 하고, 주재 주권이라야 하고, 영원 무한이라야 하는데, 우리가 부모 형제를, 자녀를, 친구를,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면 그 사랑에게 완전히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연결시켰다고 하면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고, 영원한 평강을 주었고, 영원한 기쁨을 주었고 영원한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이고 죽이는 사랑을 참사랑으로 착각하지 말고 사랑은 하나 뿐이라, 이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이 사랑을 받고 이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부모 형제를 참 사랑하는 것이요, 친구를 참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참 사랑하는 것입니다. 속이고 죽이는 것이 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명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의 이름과 모양, 이것만 보면 마지막에는 미움이 되고 속이고 죽이게 되기 때문에 사랑과 사랑을 바로 구별해서 사랑을 바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랑에 대하여 바로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 사랑으로 부모 형제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