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교회의 비전을 소유하자
에베소서 4:7-16 2010.1.31.주일설교
오늘은 2010년 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저는 4차례에 걸쳐 올 한해 우리 교회 핵심적 사역과 비전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100% 성공하는 예배로 성도 여러분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예배 준비에 최선을 다하며,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로 성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일에 온 노력을 기우려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전도로 교회를 채우는 일에 온성도가 올인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전도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서 강력한 셀이 구축되어 영혼구령에 매진해야 합니다.
전도는 매 절기를 전도축제로 셀 속에서 강력한 전도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헌신적 일군으로 교회사역에 온성도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불러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입니다(엡4:12).
이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은사에 따라, 모든 성도가, 최소한 한 가지 사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성장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소유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교회성장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교회가 질적으로나 수적으로 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교회가 성장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은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11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교회성장의 주체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를 성장시키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성장의 주체가 하나님이시지만 교회 성장의 책임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고, 효과적으로 사역하는 교회는 성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하고, 효과적으로 일하지 못할 때,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열매 맺기를 바라십니다.
마태복음21장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주님이 단순히 먹을 것이 없어서 저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무화과나무의 본분과 책임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을 때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입니다.
성도들에 대한 주님의 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온갖 희생을 통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직분도 맡기시고, 축복도 주시고, 넘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받고도 남기지 않은 사람을 꾸중하셨습니다.
가장 악하고 게으른 종은 생산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13장6-9절에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에 나무를 심고 3년을 가꾸었지만, 그러나 열매가 맺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땅만 버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버리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포도원 농부는 일 년만 참아주시고, 기회를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런 다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찍어 버리시라고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더 위급한 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찍히는 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비유는 열매를 맺어도 되고, 열매를 맺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오늘의 신자들에게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열매도 없이 무의미하게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자가 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교회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성장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님은 교회성장을 도와주십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이 어떻게 믿는 것입니까?
교회에 나온다는 것으로만 만족하게 느껴서는 안 됩니다.
십일조도 하고, 주일성수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과연 얼마나 열매를 맺으며 신앙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매를 맺는 신자가 예수 잘 믿는 신자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열매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향한 성령의 일이나 성도 개인을 향한 성령 역사에도 목표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 능력이 무엇입니까? 날아다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는 내적 열매와 외적 열매라고 정의합니다.
성령의 내적 열매는 갈라디아서5장 22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역사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뻐합니다. 인내합니다. 충성합니다. 겸손합니다.
속사람의 변화를 받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성령의 외적인 열매는 사도행전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외적인 열매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희귀한 일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능력이 나타나는데 그 능력을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사역도 성도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이 땅 끝까지 뛰어 다니며 예수를 전하겠습니까?
전도는 알고 느끼고 체험한 것만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 속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드러내어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기쁨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사랑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내적인 열매를 통해서 외적인 열매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셋째, 교회성장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에베소서2:19-22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성장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말씀입니다.
교회성장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성장되길 원하시고 바라십니다.
왜 그토록 하나님은 교회성장을 원하실까요?
건물을 짓고, 교인 수를 늘리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건물이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낫고, 교인이 적은 것 보다, 많은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성장에 대한 정의를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개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가는 진행형이며 미완성이라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성전이 되어가는 것은 모퉁이돌과의 관계입니다.
교회는 예수와의 계속된 만남과 연합으로 점점 세워져가는 것이지, 지금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한 몸 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예수의 힘이 계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라 할지라도,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든지, 멀어지면 신령한 주님의 힘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탈이 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며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이 교회성장의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도,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는 교회 생활에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 교회를 나가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주님과 한 몸을 이루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붙어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결과의 행복이 아니라 존재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이란 예수님과의 관계회복이며 예수님과의 철저한 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성장하는 교회가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전을 향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자신의 못된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밤낮 눈물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코자 몸부림치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목사나, 성도나, 할 것 없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의 삶을 따르기 위해 발버둥치는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장이란 그 교회 신자의 영적성장 만큼만 성장합니다.
교회의 성장을 기대하기 전에 나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본문13절을 보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다시15-16절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니라.”
본문에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와「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입니다.
장성한 신앙인이 되는 것과 예수를 목표로 자라는 것이 신자의 생명입니다.
이런 성장을 성경은 신자들에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교회 현실은 장성한 신앙인 보다 어린아이 신자가 많습니다.
홀로 서기에 실패하고, 용기를 잃고, 자신감을 잃고, 갈등과 방황으로 교회생활을 합니다.
교회가 안정되지 못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별로 굴곡 없이 교회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많으면 그 교회는 안정된 교회라고 합니다.
가정도 뭔가 자꾸 불안해하고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가정을 보면 남편이나 아내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공부하라고 말해서 책상에 앉는 아이는 공부를 못합니다.
억지로 하라고 해서 하는 아이는 책상에 앉아서 사회나 도덕책 펴놓고 있지 영어 수학 펴놓는 아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생님이 말하길 공부 못하는 아이는 영어 시간에 꼭 수학책 보고, 수학 시간이면 국어책 본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자기가 원해서 해야 잘 하듯이 신앙생활도 자기가 원해야 잘 합니다.
안정되지 못한 아이들은 책상에 앉으면 자꾸 잡생각 들고, 오락실 생각나고, 노래듣고 싶은데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공부하라면 시간표를 짜고 계획표는 잘 짜는데 공부는 잘 못합니다.
장성한 신앙인이란 안정된 신앙인 입니다.
흔들림이 적은 사람, 요동이 적은 신자, 폭풍 속에서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 신자, 문제 때문에 진통제를 찾지 않는 신자가 장성한 분량에 이른 신자입니다.
자꾸 문제가 있을 때 골치 아프다고 진통제를 찾고 청심환 먹지 말고 신앙의 체질을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을 때 교회를 찾으시고, 교회로 오셔서 주님과 조용히 만남을 가져 보시면 신앙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관계가 잘 되어있는 신자가 장성한 신자요 안정된 신자입니다.
주님과 함께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믿음이 장성한 신자입니다.
남에게 의존하고 늘 다른 곳에서 도움을 찾으려는 신자는 어린 신자입니다.
여러분의 목사가 어떤 목사가 되길 원하십니까?
목사 없이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목발신자로 만들어 주는 목사가 될까요?
아니면 여러분 마음대로 갈멜산도 가고 겟세마네도 오를 수 있도록 용기와 꿈과 믿음을 심어주는 목사가 될까요?
공부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절대 그림을 대신 그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줄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런 목사의 길을 갈 것입니다.
장성한 신자가 되고 홀로 서기에 성공하는 성장된 신자가 되도록 소망과 믿음을 심어주는 목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시며, 할 수 있다고 소망을 주십니다.
성장형 신자가 모여야 성장형 교회가 됩니다.
성장형 마인드(Mind)를 가져야 성장형 사람이 됩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앙 성장과 교회성장은 올 한해 우리교회의 비전이며 사역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 성장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교회 성장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언어를 과감하게 버리고 사탄의 낙망케 하는 모든 시도를 깨뜨려 성장하는 교회를 함께 만듭시다.
이제 우리는 성장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교회성장을 원해야 하고, 반드시 성장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성령의 능력과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교회성장을 원한다.
나는 교회성장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나는 교회성장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이런 확신 있는 믿음을 소유하는 만큼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장하는 축복이 우리교회와 성도 여러분에게 올 한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