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에 알파를 더하라

제 목    의식의 알파를 더하라.
의식의 알파를 더하라.
고린도후서15:35-49                                          2010.1.10주일설교

오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러분에게 축복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듣고, 보느냐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좋은 정보를 듣고, 생각하고, 말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복한 설교를 듣고, 행복한 것을 생각하고, 행복한 것을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가정 행복에 대한 설교를 듣고, 우리 가정의 행복을 생각하고, 가정 행복을 위하여 노력한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만일 교회 성장의 원리를 듣고, 교회 성장을 생각하고, 교회 성장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한다면 교회 성장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진취적인 인간형은 긍정적인 사고의식과 적극적인 삶의 스타일을 갖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교회나 행복을 만드는 뿌리가 의식에 달려있습니다.
반대로 불행을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하면 얼마 안 가서 그 사람은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안 되는 쪽을 생각하면 불행한 사건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부부의 결혼 생활도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면 그리 후회스럽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내 팔자에 무슨 행복이며 호강이겠느냐고 한탄하면 불행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행복한 결혼을 조사 해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게 되고 못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살게 될 이유만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사시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은혜는 돌에 쓰고 미움은 냇물에 흘러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되도록 좋은 쪽의 생각을 품고 살라는 마음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것은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고, 감정을 상하게 하고 몸을 지치게 만들었던 말이나 일은 빨리 흘러버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식을 기초로 하느냐, 어떤 의식으로 사느냐가 모든 것에 영향을 줍니다.
의식이 바로 돼 있으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잘못된 의식으로 살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의식과 피해의식으로 살게 되면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인은 어떤 의식을 소유한 존재인가?
어떠한 의식을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요구하시는가?
오늘 여러분들은 신앙인으로써 확실한 의식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는 좋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열심히 주일 성수를 하고, 봉사도 하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합니다.  
열심 있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벌써 남북통일이 되었든지 전 국민 복음화가 일어나야 정상입니다.
사회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너무나 좋은 밭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백년이 약간 넘었지만 1/4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축복해 주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지금도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열심은 어느 나라의 성도들에게 비교를 해도 지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고, 세계의 10대 교회 중에 4개가 한국에 있습니다.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한국교회를 배우기 위해서 많은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이 몰려옵니다.
이렇게 세계에 알려진 한국교회지만 이제는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교회 간판만 걸어 놓으면 믿는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우리의 옛 기억에 교회 부흥회를 한다면 예배당에 들어갈 곳도 없어 창문으로 설교 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불신자를 구원시키고 예수님의 사람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원인이 의식의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이 즐겁고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믿음생활 바로하고 교회생활을 바로하면 즐겁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의식이 있어야 진정한 믿음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2010년은 성도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바르게 신앙생활의 가치관을 세우시기를 부탁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치관은 의식의 문제를 먼저 확인되어야합니다.
누가 나를 세상에서 불러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구원을 받게 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예수 믿도록 부르신 주인공은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이 의식입니다.
자신 스스로가 예수를 믿게 된 신자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려면 반드시 부모님이 있어야 하듯이 혼자서 만들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주셔야 예수 믿게 되고 구원 받은 신자가 됩니다.
구약성경 이사야43:1-3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 할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자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야곱을 불렀으며, 누가 야곱을 만드신 분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은 야곱을 지명하셨고, 부르셨습니다.
택한 자를 위하여 물이 침몰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불 속에서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고 지명하고 부르셨기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실감나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사야45:1-7절을 보십시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받은 고레스의 오른 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꺽고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늘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것이요 해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이가 없는줄을 무리로 알게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 얼마나 확실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까?
야곱을 부르신 그 하나님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목사만 부른 것도 아니요 선교사만 부른 것도 아니고 목사든 집사든 신자든 누구나 부름 받았다는 것은 같습니다.
일의 역할만 다를 뿐 부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무엇보다 “부름 받았음의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름 받은 의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신자란 하나님의 은혜로 살뿐이지 내가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란 의식입니다.
바울은 부르심의 의식을 깨닫기까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기 전에는 자아도취, 자기우월과 자기교만에 사로잡혀 살다가 주의 은혜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15:9-10절에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니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깨달음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핍박했던 사도바울을 엎드리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았다는 의식으로 어떤 사역이든 감사와 열정으로 수고할 뿐입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를 회개할 뿐입니다.
이런 의식 때문에 바울은 다시 고린도전서15:30-31절에서 “또 어찌하여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왜 신자에게 부활이 절대적인 축복이며 은혜인 까닭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빼면 기독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체질을 갖고 어떤 의식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본문 38-44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듯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사람의 육체와 짐승의 육체, 하늘의 육체와 땅의 육체,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과 땅에 속한자의 영광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자는 모두 신령한 영적 사람들의 모습이고 후자는 썩을 육신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전자는 신자가 추구해야 될 의식이고 후자는 세상 사람들의 의식입니다.
전자는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이고 후자는 은혜를 모르는 자의 모습입니다.
다시 본문48-49절에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눠집니다.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면 「흙에 속한 자의 체질」은 어떻습니까?
짐승의 체질과 세상 사람들의 의식입니다.
갈라디아서5:18-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바탕함과 또 그와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육신적인 짐승의 체질은 자기 유익만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짐승은 주인도 모릅니다.
짐승은 절대로 받은 은혜에 대해서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먹지 못해도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선 죽는 길을 택합니다.
나에게 손해와 희생을 치루더러도 가치 있는 길을 택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가 바로 신자입니다.
바울은 육체를 설명하면서 음행의 이유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했습니다.
분쟁이나 시기나 분내는 것이나 모두가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찾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런 체질과 의식이 신령한 의식과 신령한 체질로 바꿔져야 합니다.
「신령의 체질」은 우리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체질로 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영광을 버렸습니다.
자신에게 이익 되는 길을 버렸습니다.
바로 이런 신령한 삶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0년을 우리 모두 이 길을 가십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축복과 행복이 올 것입니다.
주일예배를 통한 한국교회의 모델로 하나님이 쓰실 것입니다.
시간마다 살아있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며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올해는 수많은 자랑거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마다 어려운 일들이 풀리고 새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고 분명한 비전의식으로 교회생활을 하신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고 축복할 것입니다.
신앙의식이란 은혜를 알고 은혜를 통해 예수를 닮아 예수께서 사신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도 실망이나 좌절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제 우리는 천국의 여행을 위해 한 배를 타고 주님을 선장으로 모시고 2010년이란 긴 항해를 하게 됩니다.
어떤 파도가 일어나도 우리 선장되신 예수님께서 잠잠케 하시면서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2010년을 예수님의 삶의 의식으로 사십시다.
앞의 영광을 보며 저도 뛰고 성도 여러분도 뛰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십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는 교회를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