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9장... 마지막 강해
오늘은 요한복음 마지막 시간으로... 주님은 이 사건 즉 소경을 치유하시는 사건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때는 A. D 29년 11월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역의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귀신들린 자라 하였고,
예수님의 약점을 잡아 볼 생각으로 갖은 수단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노한 무리들을 뒤로 하고 제자들과 함께 성전 층계를 내려섰습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의 발아래는 날 때부터 소경이 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소경을 두고서 제자들과 예수님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렸습니다.
그 소경을 보는 이해와 관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사실 한 사건을 가지고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과 문제 앞에서,
그것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받으며, 또는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경에 대한 제자(弟子)들의 입장(立場)과
예수님의 말씀을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새롭게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소경에 대한 제자들의 해석입니다.
제자들은 그 소경을 볼 때 우선 그들은 히브리적인 전통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눈먼 것이... 자기 죄 때문인가
아니면 자기 부모의 죄 때문인가를 묻는 것은... 랍비들이 흔히 묻는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욥의 친구들이 그의 재앙(災殃)을 확실히 그의 죄로 인함인 줄 믿었고,
미리암의 문둥병도 그의 죄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간의 질병이나 불행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는다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의 판단은... 지극히 표면적이고 외면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사건의 본질, 의도, 영적인 싸인을 볼 줄 몰랐습니다.
죄악의 몸인 육체의 눈으로...사건이나 문제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경의 눈짓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본문 요9장에서... 답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눈으로는 사건과 문제의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더더욱 그 사건이 주는 영적인 사인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욥도 그것을 알지 못하여... 한때 얼마나 많이 고통을 받았습니까? 그의 친구들은 더 했지요...
-다윗도 그랬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아니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도무지 못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지 못하는데...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심각한 문제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탄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학문이라고 기독교 학문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관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재물관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윤리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적 관점, 구원사적 관점, 하나님나라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정답이 찾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진리를 왜곡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민중신학이요, 회중교회요,
공산주의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김일성, 레린, 스탈린, 히틀러 이들은 다 장로의 아들이요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육적으로만 본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안목과 영적인 통찰력이 필요한것입니다.
천하범사에 다때가 있는것입니다.
돕는것도 무조건 돕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떼와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다 영적인 때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버릴 때도 있고 주울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안아 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을 너희 길과 다르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체 함부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육의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영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불행도, 실패도, 아픔도,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생동안 흑백싸움만 하다... 세월을 다 보내게 됩니다.
본질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그 사건이 주는 하나님의 사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그 사건이 주는 하나님의 사인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는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너희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눈을 빼고자 하느냐고 엄중히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에 최고의 지식층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엘리트를 길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소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남도 죽이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그들이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도 소경이면서 남을 이끌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차라리 소경이었으면...자기도 더 나빠지지 않을테고...
남도 어렵게 만들지 않을텐데...
자기가 잘 보는 줄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귀가 먹었기 때문에 남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합니다.
귀먹어리에, 소경에 벙어리에...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하는 전신마비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장애가 문제입니다.
송명히 시인은 육신은 장애가 있었지만 그는 영적으로는 건강했습니다.
헬렌켈러, 이지선자매, 강우영박사, 안요한목사등
오히려 육신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영의 세계를 더 잘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거듭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눈을 떠여 한다는 것입니다.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은 차원의 세계를 보아야 하는데... 보지 못합니다.
- 그런데 보지 못하고 듣지 못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못보고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먼저 거듭남이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영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알기는 아는데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먼저 영혼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부패하고 타락된 영혼이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교만과 부패, 강퍅, 패역 등 완악한 불신앙의 죄 문제가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단지 육신적인 안목으로만 죄의 결과를 찾는 지극히 어리석은 우를 저지를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인간이 거듭나지 않고는
불행이나, 사건이나, 문제가 주는 참의미를 못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이 안 되면... 그저 남을 정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사건건 정죄와 비판만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생각하십시오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일삼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말도 부딪기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도 주님의 말씀에 부딧겼습니다.
나중에는 증오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마침내 죽이기로 했습니다.
혹시 말씀을 듣다가 부대끼시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참으로 교만합니다.
제가 항상 남에 대하여 평가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기를 일삼습니다.
나를 고쳐 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주님께서 그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우를 범하는지 모릅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욥 자신도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욥이 고난 중에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리새인 또한 불행한 사건을 앞에 두고...위로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그들을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제자들 마져도... 불행당한 사람을 앞에 놓고... 흑백을 가르는 무정한 자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따지고, 정죄하지 말고
그 가운데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런 자격도 없습니다.
내 앞에 놓인 사람은... 나에게 주시는 거울입니다.
-주님께서 거울을 주시면서 나를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바로 깨달으라고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거울을 보고 정죄하고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고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 앞에서 소경을 고쳐주고 벙어리를 고쳐주셨지만 저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지의 소치요, 영적 소경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하십시오.
그 말씀의 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남에게 갖다 비추지 말고 먼저 자기에게 비추십시오.
어떤 말씀이든지 자기에게 비추십시오...
그리고 누가 잘못되어 감옥에 가거나 신문에 오르면 정죄하지 말고
나는 저런 부분이 없나 살펴보십시오
예를 들어 어느 유명한 정치인이 간음해서 대서특필되면...
-그것을 보고 심판하고 정죄하는 일에 시간 보내지 말고,
-나는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간음한 일이 없는가? 하고 자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남에게서 죄를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찾으려 하지 아니하고... 남의 죄를 찾아보려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경된자의 행동인 것입니다. 눈을 자기에게 돌리십시요
2.소경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제자들이 소경에 대하여 잘못된논리를 전개했을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론, 곧 하나님의 이론은... 다른 사람들의 이론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제시한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것도 인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된 사람을 두고 죄에 대한 징벌이나 우연의 소산으로 간주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사람(사건)을 통해서...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운 세상의 빛이시며, 구원의 주가 되심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에서... 자신이 누구이심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소경된 자를 고치기 위해서... 좀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방법이란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장님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시지 않고도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그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함입니다.
장님된 사람이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물론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에 근거한 것도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꿈에도 소원이던 광명한 천지를 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나타내 그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시고자 함인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도... 따져보면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불행한 한 사건을 두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건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장님의 불행을 보면서... 누구의 죄 때문인가고 캐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불행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냈고,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나타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나의 불행이나 남의 불행을 볼 때 여러 가지 시각이 가능합니다.
-자기 불행에 대해서... 철저히 좌절하고 절망해버리는 유형이 있습니다. (절망주의자)
-그리고 자기 불행을 자학하며 저주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자학주의자)
-그런가하면 그런 불행(不幸)을 하나의 운명론(運命論)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운명론)
자기(自己)의 생을 체념하는 태도(態度)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느 정도 자위는 할 수 있으나 아무런 생산적인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처절하고 불행한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나타낼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철저히 부패하고 어두워진, 소망 없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서 가장 큰 기쁨과, 가장 큰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야 합니다.
나의 불행과, 가정의 불행과 문제들을... 단순히 흑백논리로 보지 말고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영적 시선이 열려져야 합니다.
야베스....불행이 변하여 축복이 되었습니다.
요셉...고난이 변하여 승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시련과 핍박이 변하여 존귀한 자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미국의 죠지 워싱톤 카버는... 못난 흑인이었습니다.
민족적인 천대와 멸시와 신체적인 어려움을 딛고 승리했습니다.
그는 문을 잠그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천대받고 못난 검둥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검둥이를 사랑하여 주시는 줄 압니다.
이 종에게 지혜를 열어주사 주님이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시요\"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땅콩을 가지고,
수십 가지의 물질을 만드는 지혜를 주셨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실로 약점 투성이요, 문제투성이요, 죄악투성입니다.
그리고 절망할 수밖에 없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약점(弱點)과 불행(不幸)을 가지고
그것을 180도로 변화(變化)시켜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이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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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리석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바리새인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은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자답게 사는 길은... 우리도 은혜를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은혜 받은 자답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