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동일 하신 예수그리스도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히13:7-9/ 은급주일/ 2008-06-09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히13:7-9





오늘은 2월 첫주일이면서 은급주일입니다. 금년부터는 매월 첫주일에는 성찬식을 갖고자 합니다. 성찬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어진 성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일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에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념”이 무슨 뜻일까요? 국어대사전에는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나누면서 주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당하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그 사랑과 뜻을 되새기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성찬의 시간에만 기억하라는 것이 이 아닙니다. 날마다 시시 때때로 구원의 은총을 잊지 말고 그 은혜에 푹 젖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전에는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엡2: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하였는데, 구원받기 전에 우리들은 그렇게 죄로 부패하여 쓸모없고 무가치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무가치한 죄인 괴수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죄 없고, 귀하신 그 몸을 우리 위해 내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진노으 l자녀 버림받은 자녀가 이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부끄러운 죄인인 내가 받아야 할 멸시와 천대, 저주와 고통을 홀로 다 당하신 것입니다.
성찬은 그렇게 쓸모없는 내가 주님 십자가의 고난으로 가치있는 주님의 백성 삼아 주심을 기념하여 되새기는 예식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죠? 너무나 잊어버리기를 잘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고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서운하게 한 일들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가 많습니다.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은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는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쉽게 잊습니다. 내가 돌아가야 할 본향도, 인간의 본분도 잃어버렸습니다. 분별력도 잃어버려서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들을 좋아 합니다. 결국 죄를 사랑하고, 사탄을 사랑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이 기억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다시 회복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될 때 잃은 것들을 다시 되찾게 될 줄 믿습니다. 이시간 되찾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사랑하는 주의 제자들에게 성찬을 베푸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되새길 뿐 아니라 십자가 지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고 청산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결단 하는 시간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주님, 그러나 다시는 죄를 범치 않고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주님의 모습을 닮아 살겠습니다. 이시간 나의 죄성과 나의 죄를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겠습니다.“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의 흘리신 피로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된 것을 확인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떡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주님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 . .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 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한 떡에 참예 함이라”(고전10:16-17).

성찬에 참예함으로 우리 각 사람이 예수 이름을 영접함으로 주님과 하나 되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찬양>> 우리는 사랑의 띠로 . .
성도 간에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수없이 많이 드리고 우리 속에 좋지 않는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많은 예배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많은 기도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성찬은 성도가 주안에서 사랑으로 뜨겁게 연합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심같이 나도 희생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양보하고, 위해주고, 봉사하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시간인 것입니다.

또 성찬은 이 몸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을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롬12:1-2). 이 시간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각오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은급주일입니다. 은급주일은 일생동안 목회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은퇴하신 주의 종들을 기억하고 그 목사님들을 섬기고자 교회가 책임을 다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일찍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헌신하신 주의 종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희생의 유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들이 따뜻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받들어 드리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해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은급사업은 1914년 6월 3일 제7회 조선미감리회(북감리교회)에서 고 전덕기먹사님의 유족과 교회를 담임하지 못한 권신일목사님에게 월15원씩 생활보조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은급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2006년12월 현재 월평균 982명에게 은급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원로목사님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감리교회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많은 성도들이 그 목사님들을 통해서 양육을 받았다는 뜻이고 그만큼 일을 많이 한 흔적입니다.

1. 은급주일은 사랑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목회자는 믿음의 스승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기 가지 은퇴하신 원로목회자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히도 열악하고 어려운 시대에도 절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굳게 서서 오직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긴 것이 오늘의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또 목회자는 영적인 부모입니다. 목회자도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에 노인이 되면 인간으 연약함을 드러내고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평생 목회의 길을 걸어 오신 원로 목회자들을 믿음의 부모로 생각하고 효도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대하듯 관심을 가지고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룻기를 보면 룻이 홀로된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유대 베들레헴까지 따라와 끝까지 봉양하고 섬기는 효성을 봅니다.
갈6:6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출20:12에도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6:1이하를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복, 자녀의 복, 재산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결코 궁핍함이 없었고 모든 일에 자족함을 누렸고 풍족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공급, 자원하는 사랑 때문에 . . . 그 때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복을 기원했습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풍성한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노년의 기회를 의미 있게 보내도록 도와드려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사람들이 노년의 시기에도 위대하게 쓰임 받았음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모세는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어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갈렙은 85세에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던 사람입니다.
어떤 학자가 세계역사에서 400인의 위인을 선정하고 그들의 가장 위대한 능력을 발휘한 시기를 조사했더니 60세에서 70세 사이에 가장 훌륭한 일을 해낸 이가 35%, 70세에서 80세 사이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 이들이 23%, 80세 이상이 되어서 불멸의 업적을 남긴 이들이 6%나 되었다고 합니다.

신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노인은 나자신의 미래이기도 한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함은 나의 효도요, 자녀의 교육입니다. 노인을 공경하면 훗날 내가 공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노인을 멸시, 천대, 학대함은 결국 나 자신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새 구두만 좋아 합니다. 새 구두는 반짝거리기는 하지만, 발이 아픕니다. 물집이 생깁니다 .즐거운 여행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신은 구두는 발이 편합니다. 오래 사귄 친구가 편하고 좋습니다. 나무도 오래 말려야 뒤틀림이 없고, 포도주는 오래 숙성해야 짙은 향기를 냅니다.
오래된 사랑, 오래된 우정, . . 오랜 세월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12:12) 은퇴하신 교역자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더없이 귀한 분들입니다. 원로목사님들은 참으로 한국감리교회의 영적 스승이요, 부모들입니다. 영적스승이 많다는 것은 많은 영혼들이 양육을 받고 자랐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지도자에게 순복하십시오.
7절, 17절을 보면 7절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7절에 말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이란 이미 세상을 떠난 자들이거나 아니면 이전에 지도하던 자들입니다.

또 17절에 말씀하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란 지금 있는 목회자, 인도자를 말씀합니다.
목회자들은 17절에 말씀한대로 맡은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것으로 알고 기도하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의 중요함을 알아서 목회자가 즐거움으로 이 일을 감당하도록 교인들은 도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에게 구원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도자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완벽하기 때문에 순종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생활 하면서 실망하고, 시험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 중에, 교회의 지도자들과 관련된 일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스스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 대개는 그 선포되는 말씀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 복음을 위해 살다가 순교한 지도자들은 아무런 흠이 없었던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다 훌륭한 인격자들이었을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목회자도 학력, 은사, 인격적인 부분들에서 연약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계입니다. 이런 것은 용납해야 합니다. 나보다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목회자를 무시하거나 괴롭힌다면 몰지각한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성입니다. 만일 목회자가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상대적인 것들로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들입니다.
우리는 선한목자와 삯꾼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하려고 한 일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선한 동기를 의심하면 안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어쨌든 목회자와의 사이가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시험 가운데 가장 큰 시험이 목회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무리 해도 신앙생활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아무리 바로 되려고 해도 목회자 이상으로 더 되지 못한다는 말을 선배목사님들을 통해서 많이 듣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기쁨으로 목회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생이 목회자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목회자를 키울 수 있고, 또 만들 수 있습니다. 비록 유약하고 어리고 흠집 많은 지도자일지라도 성도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위해 자지 못하며 성도의 영광스러움을 같이 기뻐하며 성도의 슬픔과 타락을 같이 가슴 아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들이 기쁨과 감격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에게 영적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신실한 교훈과 권고를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세우셨고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 목회자를 주셨음을 언제나 기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 할 때 힘들고 상처입고 마음이 흔들리고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사람도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영원하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을 늘 바라보십시오.
“동일하시다”는 말씀은 “한결같으시다”, “영원하시다”, “불변하시다”는 말씀입니다. 봄, 여름, 가을과 겨울, 언제 봄이었다가 여름이 오는지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어김없이 찾아오듯이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오늘도 살아 계시며 신실하신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8절“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벧전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을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황금을 귀한 보물로 여기는 것은 일반 쇠붙이처럼 빛이 변하거나 녹슬거나 하지 않고, 언제나 그 눌한 금빛이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격도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러우면 안됩니다. 침착하고 꾸준한 성품이 더 좋은 인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우리 주님의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환경에 의해 변질되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