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궤의 삶 삼하19:31-37
은급주일은 은퇴하신 사관님들의 생활을 후원, 또는 보조하기 위하여 일년 일차씩 특별헌금을 합니다. 일생을 목회에 바치고 나서 노년을 보내면서 거처할 집도 있어야 하고, 양식도 있어야 하고, 일상 잡비도 있어야 하고, 건강 관리해야 하고, 은퇴는 했지만 가족들과 같이 보내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은퇴하고 나면 속 시원하다! 하고,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아서 여기저기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몇 개월이지 목회가 좋아서 하신 분들이니까 목회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뿐이랍니다. 그렇다고 농사를 질수 있는 힘이 있나요? 배워둔 기술이 있나요? 그 동안 못한 연구를 하자니 몸은 쇠하고 물질의 뒷받침이 없다보니 한정된 공간에서만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교단의 은퇴 목사님들도 그렇겠지만 구세군의 은퇴 사관님들은 워낙 물질이 부족합니다. 제가 목사로 있을 때입니다. 아는 사관님이 제게 목사님! 부업할 때 없어요? 부업 좀 해야겠어요. 하는 것이었어요. 얼마나 생활하기가 힘들면 그러실까? 얼마나 목회가 힘들면 부업을 해야 하겠냐고 생각하니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던 일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구세군 사관은 부업도 하면 안되고, 혹 어떻게 해서 했다손 치더라도 그 돈은 본인 돈이 아니고 구세군에 납입을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참 어렵죠... 일생을 목회에만 전념하다보니 몸도 일찍 망가집니다. 건강진단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간단하게 체크하는 정도입니다. 적어도 일년 일차 정기검진을 받도록 교회에서 대주면 조기 발견할텐데, 목회라는 것이 정말 힘든 직업입니다. 제일 힘든 직업입니다. 단순 노동이 아닙니다. 단순 기술도 아닙니다. 힘 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식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물질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정도 가족도 목회의 조력자입니다. 아내가 먼저 세상 떠나면 목회하기 힘들고, 목사가 먼저 떠나면 사모는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교회라도 크면 후원자도 있겠지만 자그마한 교회라면 빈손 들고 사흘 세방 구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장로교 목사님은 장로님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일로 고민이 되었는데.. 때마침 중풍에 걸렸습니다. 결국 목회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교회 재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거든요. 또 다른 목사님은 교회 짓고 나서 너무 몸이 쇠하여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목회자는 성도만을 생각하고, 교회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만 생각하다가 슬프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보고들을 때면, 사명이 아니고는 갈수 없는 길이구나... 하고, 다시금 십자가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올 여름인가? 조기 은퇴하신 사관님이 계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사관님은 수술을 몇 번하고 나서도 몸이 회복이 안되고 해서 더 이상 목회하는 것이 무리라 조기 은퇴했습니다. 은퇴 예배때 동기 사관님들이 참석하고 보니 참으로 처량하고, 안됐고, 눈물을 흘리고 왔답니다. 우리 구세군은 조기은퇴해도 은급비 안나옵니다. 65세 지나야 은급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목회하는 일이 감사하고 좋아서 부르심에 응답하여 왔지만, 그런 저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저러지는 않으려나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관심을 두고 있다면 조용히 기도하여 주는 것처럼 후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관이 돈을 빌리러 갈 수도 없고 친구가 있어도 만나는 시간이 적고, 모임이 다르고 자연히 간격이 생깁니다. 어디다 손 벌릴 곳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후원이 아니면 안된다 이 말씀입니다. 성서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기록되기를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했고, 신명기 12장 19절에는 \"너희는 삼가 그 땅에서 사는 동안 레위인들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여라\"했으며, (공동번역)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물질이나 정신적으로 공궤를 해야 하는 일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미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 성도들에게 말씀을 공급하다가 이미 은퇴하신 사관님들을 공궤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님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을 위하여 눈물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은퇴 사관님들의 수고하신 그 수고로 우리의 믿음이 자랐고, 이나마 라도 있다고 하는 감사의 표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바르실래와 다윗의 공궤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삼하19:32-33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 세라 저는 거부인 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여기서 \'공궤하다\' (히: 쿨) 는 \'떠받치다\', \'제공하다\' 의 뜻으로, 특별히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해 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길르앗의 거부 바르실래가 다윗 왕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안 내내 왕과 그의 일행들을 공궤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일이 고마워서 그동안 자기를 공궤해 준 바실래에게 보답하겠다는 다윗 왕의 말입니다. 바르실래는 나이 80이나 되는 고령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어려움을 당하며 이리저리 쫓길 때 공궤한 사람입니다. 함께 잘 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했습니다. 성서에서는 바르실래가 무엇으로 공궤하였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삼하17:28-29) 바르실래 그가 부자이기에 다윗을 공궤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긍휼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위험한 줄을 알면서도 다윗의 일행을 위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공궤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르실래가 부자였기에 긍휼을 베풀었다고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공궤할 수 없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못본체 할수도 있습니다. 안들척 할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남을 돌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입니다. 성도에게 예배는 참 중요합니다. 예배가 살면 성도의 삶이 삽니다. 그런데 주님은 예배 잘 드리는 것보다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하십니다. (마9:13) 예배도 성공하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도 성공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윗 역시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노인, 바르실래를 잊지 않습니다. (33절)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왕의 권세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고 망명 생활을 할 때 자신의 공궤한 한 노인을 잊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을 받았으면 또 줄줄 아는게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세태가 각박하게 되는 것은 주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은 것을 느낄 때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원로 목사님의 말씀에 \"다 소용없어. 돈이 있어야 한다니까. 자네도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몸 망치지 말고 적당히 하며 노후대책 세워!\" 좋은 충고인지 나쁜 충고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사랑의 메아리가 없음을 가슴으로 뼈아프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메아리칠 때 아름답습니다. 어제 구세군 사관학교 교장님의 말씀 중에 운동경기는 주어야 이긴다고 하시면서, 공을 주어야 하고, 받아야 하고, 받아야 하고, 주어야 하고/ 주고, 받는 것이 운동경기다. 이와같이 사랑도 주고, 받는 실제적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공궤는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한쪽 사랑은 짝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이웃과 짝사랑하지 마세요. 특별히 부부와는 짝사랑하면 안됩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스게 글을 소개합니다. 어느 청년이 결혼 주례를 교수에게 부탁하러 갔습니다. \"교수님! 주례를 부탁하러 왔습니다. 사례는 얼마나 해야 할까요?\" 제자의 말을 들은 교수는 \"신부가 이쁜 만큼 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결혼 예식이 끝나고 100원을 교수에게 주었습니다. 100원을 받은 교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후 교수는 50원을 제자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는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이 돈은 무엇입니까?\" \"거스름 돈 일세....\" 사랑하면 모두 이쁨니다. 공궤는 마음만 아니고 실제적입니다. 십일조 드리고 성미 드리는 것이 마음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일 때 복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은 마음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었습니다. 구원도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실제적으로 영접하면 죄에서 구원받습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먹고삽니다. 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입니다. 영생을 얻은 우리입니다. 이제 우리가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알고 경험했다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희생하는 분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주님 바라보고 선교비를 보내듯이 이미 일생을 쏟아 부은 은퇴 사관님들을 우리가 각자 만나 뵙지는 않았지만, 주님의 종으로서 노후를 안정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은급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보답입니다. 감사하는 보답의 신앙을 가지고 헌금을 합니다. 혹 오늘 잊으신 분이 있다면 다음주일에 꼭 참여하여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상이 있기에 선행도 하지만, 마땅히 할 일이기에 한다는 마음이 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 마음, 그 신앙으로 공궤의 삶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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