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따르는 자! (로마서 8:5~6)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靈的인면에서 ‘육신을 따르는 사람과 靈을 따르는 사람’으로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육신을 따르는 자’ 즉,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연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그가 인간인 이상, 아무리 고상한 인격과 높은 학문과 훌륭한 재능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육에 속한 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구원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그 사람들은 ‘자연인’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육신의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그 가치기준이 결코 육의 범위를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숭고한 사상, 이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생활의 이치나 삶의 방법을 일깨워 준다 할지라도, 그孤湧?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결국 육신적이기 때문에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인의 모든 행위는 인간적이며, 육신적이며, 반 하나님적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육신의 삶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장인 로마서 7장 18절로 23절 말씀을 찾아서 잘 생각하며 은혜롭게 읽어 보겠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아멘!
오늘 본문 다음인 로마서 8장 12절로 13절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아멘!
다음에는 갈라디아서 5장 24절 말씀도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아멘!
이와 같이 사람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도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선한 마음에서 선한 행위가 나오며, 악한 마음에서 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4장 23절에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저와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중에서도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만을 생각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또 도모합니다.
즉, 육신을 좇는 자는 결코 선을 행할 수도 없으며, 선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육신의 일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육신이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영을 따르는 자!”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하오니,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들의 삶을 비교해 보는 귀한 예배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합니다. 우주만물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원수 된 자가 사망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육신의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기 위함이셨지만, 사탄이 온 것은 인생의 멸망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육신의 삶을 좇아 살게 하려 합니다.
그렇기에 부패한 육신에 의하여 사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마음속에 이 세상의 썩어질 것만을 위하고, 생각하게 되며, 그것은 후에 사망의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좇는 것은 곧 사탄을 좇는 것이므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좇는 사탄이 멸망할 때, 더불어 멸망을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육신의 삶에 집착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완전히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의지해 힘들어 하시면서 ‘아이구! 이놈의 세상 내가 죽어야지, 너무 피곤하고 허리가 아파!’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이때, 그 말을 곁에서 들은 효자였던 손자가 할머니를 도와드린다고 큰 그릇에 양잿물을 타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할머니 이거 드시면 죽을 수 있어요!’라고 하자,
그 순간 할머니는 지팡이로 손자의 머리를 때리면서 ‘이 자식이 날 죽이려고 한다.’고 노발대발하더랍니다. 그러나 이 순진한 손자는 자신의 할머니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또한 어느 날, 어떤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발이 미끄러졌습니다. 그러자 그 사형수가 하는 말이 몇 분 후면 죽을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쿠!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라고 하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이 육신의 삶에만 집착하며 살게 되면, 추후에 반드시 후회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은 곧 사망’이라고 하였으므로, 항상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영적인 삶만을 추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교회에 남자 집사님의 실화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님 부친은 그 교회 장로님이셨으며, 모친은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은 사업이 아주 잘되어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의 신앙생활은 시원치 못했습니다. 또한, 그 집사님은 영적인 일보다는 육적인 일에 더욱더 치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보다도 거래처 사람들과 어울려 골프장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새벽에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끝나는 즉시 차를 몰고 골프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그 교회에서 안수집사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그 집사님의 믿음이 별 볼일이 없었지만, 장로님, 권사님이신 그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교인들은 그 서리집사를 안수집사로 뽑아 주었습니다.
여러분! 그랬으면 그 집사님은 정신을 차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육신적인 일에만 늘 분주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집사님을 너무 사랑하시니까, 그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손을 드셨던 것입니다. 항상 건강을 자랑하던 그 집사님은 어느 날, 갑자기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큰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았더니, 위암 3기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담당의사는 수술날짜를 잡아 그 집사님의 배를 갈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지나,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다시금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며칠간의 시한부 생명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마지막 순간에 흐느끼면서 그는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장로님, 권사님의 부모님을 주셨고, 나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게 하셨건만, 내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했구나!
또한, 하나님께서는 형편없는 나를 쓰시겠다고 안수집사로 세워주셨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깨닫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내 육신과 내 영혼이 다 지옥에 떨어질까 봐, 내 육신은 불러 가시고, 내 영혼은 구원해 주셨구나!
그러니 얘들아! 너희들은 어찌 하든지, 예수님 잘 믿고,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라! 그럼 우리 모두 이 다음에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자!’ 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의 장례식 때, 방금 말씀드린 그 유언이 녹음된 육성이 녹음기를 통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귀에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함께 흐느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을 항상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매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삶을 우선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새 영을 받아 중생할 때,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영이 죽음에서 소생하는 순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으로 중생한 성도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연합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영의 일을 생각한다는 의미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뜻에 따라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도가 영에 속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 속에 거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어, 언제나 어느 때나 성령과 동행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을 소유한 자에게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기적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그 분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영광의 그 순간까지 계속하여 저와 여러분의 온전한 믿음의 근원을 이루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르도록 자라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당연한 의무이자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자는 육신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하였으므로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이 세상의 삶을 위해 모든 목표를 세우면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성도는, 그 분을 위해 모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하는 온전한 믿음의 성도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민담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등에 업고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친구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 등에 업고 가는 아이는 누구인가?’,‘응! 우리 아들일세!’ 그러자 짓궂게도 그 친구는 이번에는 등에 업혀있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정말로 너를 등에 업고 가는 이 아저씨가 너의 아버지냐?’ 그러자 아이는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글쎄요? 사실은 잘 모르겠는데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기가 막혀 아들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다그쳤습니다. ‘내가 지금 너를 등에 업고 가는데도, 너의 아버지인줄 모른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들이 당돌하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를 등에 업고 간다고 해서 무조건 내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집 일군도 나를 등에 업어주고, 옆집 아저씨도 내가 귀엽다고 업어주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또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아들이 아니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너를 먹여 살리겠느냐?’ 그러자 아들이 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를 먹여준다고 해서 무조건 내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삼촌도 나를 먹여주고, 다른 사람도 나를 먹여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아들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내 아버지라면 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대 보세요?’ 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안의 탕자들 모습이요! 지금의 우리 주변의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저와 여러분에게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지금도 풍성하신 축복을 베풀어 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을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여, ‘영의 일’만을 추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이러한 생명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 안에서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새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 성도의 특징 중의 하나는 마음의 평안함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성도들은 자기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알기 때문에 평안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다가오는 고난이나, 환난이 있을지라도, 궁극적인 기쁨이 영적으로 주어질 줄을 믿고, 알기 때문에 그러한 평안은 이 세상 그 무엇의 평안과도 비교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공원을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공원 안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벌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벌은 큰 아이의 얼굴 주변을 맴돌면서 윙윙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큰 아이는 무심결에 손을 들어서 벌을 떨쳐내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깜짝 놀란 벌은 갑자기 큰 아이의 눈언저리에 따끔하게 침을 쏘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큰 아이는 퉁퉁 부어오른 눈언저리를 손으로 쥐고서 아파 죽겠다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도 벌은 성에 차지 않는 듯이 이번에는 작은 아이의 얼굴 주변을 어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작은 아이는 지레 겁을 먹고서 아버지 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아빠! 벌이 나를 물려고 해요. 살려주세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작은 아이를 토닥거려주면서 이렇게 달랬습니다.
‘얘야! 겁먹지 말아라. 이미 저 벌은 네 형을 쏘았기 때문에 그 벌에는 더 이상 침이 없단다. 너를 쏘려고 해도 쏠 수가 없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큰 아이의 얼굴에 박혀있는 벌의 침을 뽑아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작은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여기 벌의 침이 있잖아! 저 벌이 너를 위협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침으로서 너를 해치지는 못한단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죄의 침은 사망, 곧 죽음입니다. 그러나 죄는 무서운 침을 이미 쏘아버렸습니다. 죄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침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사망의 침을 이미 쏘았기 때문에,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사망의 침으로 더 이상 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고전 15장 55절에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 하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 하실 때, 한 여인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혀 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세우고는, 예수님께 그 여인에 대한 처리를 물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모세 율법에서는 간음한 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용서하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부정한 죄로 고소하려 함이요,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의 교훈인 사랑의 법에 모순됨을 지적하며, 비난하려는 그들의 속셈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그 서기관들의 질문에 대하여, 그들 중에 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먼저 돌로 쳐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응답에 그 곳에 여인을 처벌하러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 모두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현명한 대답은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 그 여인을 구원을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의 올무에 걸리지 않고, 지혜롭게 벗어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다 떠나고, 여인과 예수님만 남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모든 자와 더불어 자신도 정죄하지 않으니, 이곳을 떠나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죄에 대해 용서를 선포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용서하심과, 명령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적용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는 주님의 용서와 사랑하심에 대해 감사해 하며 항상 영적으로 무장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시편 32편 1절로 2절의 말씀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아멘!
이와 같이 ‘영을 따르는 자’가 목표를 세우고 추구해 가는 모든 과정에 성령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 누가복음 15장 12절로 24절 말씀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멘!
여러분! 이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깃 즉, 재산을 나눠 달라는 이야기로 시작을 하십니다.
이 내용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부자 아버지 슬하에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세계를 동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오게 될 분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의 고집을 안 아버지는 그에게 돌아갈 재산을 주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곧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중에는 돼지를 치는 종의 자리에까지 전락하였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심한 굶주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배고픔으로 인해,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회상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뒤늦게 깨닫고 바로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목격하고, 아직도 거리가 먼데도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즉,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아버지의 기뻐함과 아들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신겨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며, 이웃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아들로 인해 기뻐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도 죄인의 회개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영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담대히 부를 수가 있으며, 더 이상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 됨은 성령님께서 증거 하시며 보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들은 靈을 따르는 자들로서 靈의 일만 생각하고,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산 소망과 평안을 누리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신 사명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