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본질

옛 사람의 본질 (창세기 6:1~8)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어떤 얼굴이 잘생긴 선교사가 자기는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외치면서 자기의 말만 들르라고 부르짖었는데, 그의 이마에는 은으로 만든 둥글 한 것을 붙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그것으로 가리고 다니느냐고 물어 보면, 만일 그것을 떼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빛이 나타나 그 빛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소경이 되는 까닭에 부득이 이마에 은으로 만든 것을 붙였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를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그 선교사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것을 몰래 뜯어보니까, 그 이마 속에는 문둥병이 걸린 흔적만 있더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알지 못할 때에는 이 육신의 삶 속에서의 죄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또한, 그러한 죄 속에 속아 삽니다. 그리고 그 더럽고 추한 죄의 마력에 끌려 다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온전하게 영적으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들은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를 깨닫게·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까지 고통을 받게 하였던 그 죄의 정체도 깨닫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에게 육적인 죄를 따르게 하는 사단의 권세 역시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바라볼 때, 우리 모두를 구속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렇게 힘든 고통과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신의 살을 찢고, 피와 땀방울을 쏟으셔서 우리를 구속하신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때에는, 우리는 한 때, 옛사람의 본질로 죄 속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義로서 다시금 살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보통 구제불능이라는 말을 쓸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격이 비뚤어져서 상대가 어찌할 수 없을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그런 말을 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제불능 같던 우리의 옛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 극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 육신의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셨는데, 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이 육신의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시지 결코 의인을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생기는 궁금증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부패하기 짝이 없는 것이 인간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시대의 사람들만 멸하시고, 지금의 우리 인간들을 그대로 두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기다리실 뿐,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장차 지옥의 불로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심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악에 대한 심판이 있고, 영적인 의미에서는 베드로가 홍수 사건을 세례의 사건으로 보았듯이, 지금도 옛 사람을 장사시키는 은혜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밝혀 주는 것은 옛 사람의 정체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의 말씀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의 말씀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아멘!

즉, 노아시대의 그 죄인들의 모습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 옛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만 잠재해 있던 인간의 악함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처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옛 사람을 처리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옛 사람의 본질을 져버리고 새롭게 거듭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구체적으로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옛 사람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이 옛사람을 처리해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알아보아 오늘 함께 영적으로 깨닫는 귀한 예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육체를 따라 살았던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20세기 인도의 유명한 전도자 썬다 싱이 길을 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광경을 봤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 들여다보니, 수도승 한 사람이 팔을 쳐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지은 죄가 많아서 그 손을 스스로 벌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썬다 싱은 그 모습이 하도 측은해서 ‘수십 년을 그렇게 벌을 선다고 해서 그 손이 깨끗해지겠소? 라며 타일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옛 사람의 본질은 손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온몸을 매질한다고 해서 새롭게 되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방법의 명상이나, 고행을 통해서도 옛사람이 새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옛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온전히 죽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으로 장사될 때, 그 죽음을 통하여 새 생명이 시작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6장 2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인 줄 아시겠습니까? 즉, 심판의 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결혼의 기준이 신앙이 아니라, 육체의 아름다움을 좆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창세기 4장 25절로 26절에 나오는 경건한 신앙의 줄기인 셋 계통의 사람들로서 요새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녀들로서 요새 말로 표현하자면,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신령한 사람과 육적인 사람으로 구분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사람들이 육적인 것을 따를 때 생겨지는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는데 이 표현은 육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란 외견상의 미모와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는 고려하지 않고 사람의 외모만 보고 따라갔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육을 따라 사는 것 중에 눈으로 범하는 죄가 크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죄를 많이 짓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안목의 정욕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보는 안목의 정욕으로 망했습니다. 또한, 다윗도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다가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아간도 여리고성의 황금과 시날산의 외투 같은 전리품에 홀려 범죄를 저질렀으며, 삼손도 아리따운 들릴라를 봄으로서 마음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은 이 안목의 정욕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아멘!

이와 같이 마음으로라도 범죄 하였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스폰지와 같아서 마음에 사진이 찍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육신의 세상을 아주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덜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폭력이나, 음란, 우상 이런 내용이 짙은 프로나 매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자주 그러한 환경에서 살면 죄를 의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방종교나 이단들의 말을 자꾸 들으면 생각의 구조가 그렇게 바뀌어서 그 사고방식에 진리를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사람이라고 마음을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숨기면, 진짜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내어놓고 회개하면 복된 은혜로 제거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본질적으로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토설치 않고 무엇인가를 숨기고 가리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사악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우리를 지으신 분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이미 그것 자체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몸에 상처를 입은 어떤 사람은 썩은 부위를 드러내놓으며 도려내달라고 의사에게 이렇게 간청을 합니다. ‘선생님! 제 몸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잘 진단하여 그 상처를 내버려두지 말고, 확실하게 고쳐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병이든 환자가 의사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고 맡길 때, 그의 치료와 회복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자백할 때, 그들에게는 진정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사악한 죄인일지라도, 아무리 뼈 속까지 썩은 상처투성이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의사 되신 주님께서 고칠 수 없거나, 죄를 사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은혜라는 통로가 언제나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본문 4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피림이란? 악한 거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네피림에 대하여 이단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인데, 천사와 사람이 결혼해서 네피림을 낳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자들의 말은 참고할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성경 어디에서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2장 30절을 통하여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는 영물이라, 결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섬기라고 창조된 천사는 어떤 성적인 구별이 없습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간 즉 중화적 존재도 아닙니다. 천사는 육체를 갖지 않은 영물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네피림이란 은 무엇을 말할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히 고대의 용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3장을 보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 온 사람들이 아낙의 거인들을 보았는데,

그들을 가리켜 네피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피림들이 고대시대에 유명했던 것은 그들이 너무나 악하고 악명이 높아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거대한 신체를 이용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사람들을 지배하여 온갖 만행과 약탈을 일삼는 폭군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셋의 자손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점점 하나님을 버리고, 가인의 후손들과 결혼하면서부터 그 자손들이 네피림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옛사람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여러분들 중에 설마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한 번 하나님을 멀리해 보세요! 틀림없이 우리 옛 사람의 습성과 습관이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악의 모습이 네피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사람들 심령 속에 잠재해 있던 이것들이 요동을 치면 괴물이 따로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들 심령 속에서 고통스럽게 하고, 또한,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언제, 어느 때나 수시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가까워지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이 네피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자신이 오직 악할 뿐임을 호소해야 합니다.

우리 창세기 6장 5절로 6절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아멘!

여기서 관영이라는 말은 가득 찼다는 말씀입니다. 죄악이 가득 찼다는 말씀입니다. 넓게는 그 당시의 세상이 극도로 타락했다는 뜻으로서, 지금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양심과 도덕이 있어서 선한 것도 있는 것 같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것마저도 처리해야 할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이사야서 64장 6절을 통해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은 환경이 악해지면, 대부분 인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악인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을 고문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누구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쉽게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처럼 저와 여러분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직 악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 하나님 앞에 진실한 심령으로 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들이 왜 죄인인지를 이 시간 그 증거의 말씀을 한 번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사야서 1장 2절로 6절 말씀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 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아멘!

이와 같이 이사야의 외침처럼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자만이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노아의 홍수 심판은 이 세상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에서 이 사건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되풀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가 넘치는 곳에서 은혜도 넘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처리가 필요한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모두는 노아시대 사람들처럼 자신이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부르짖어, 우리 옛사람을 처리해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