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과 쭉정이 (마태복음 3:10~12)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자신의 차를 타고 출근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옆 차가 바짝 붙어 지나가면서 그 장로님 차 문짝을 ‘찌익’ 긁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즉시 차를 멈추자 상대편의 차를 운전하던 젊은 부인이 허겁지겁 내리더니 장로님에게 다가와서 많이 놀랐는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운전에 서툴러서요. 변상해 드릴게요!’ 하며 그 부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자기 차 앞 범퍼가 찌그러진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틀 전에 산 새 차를 이렇게 찌그러뜨려 놓았으니,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장로님은 그 부인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보고서에는 운전면허증과 보험관계 서류 등에 관한 내용들을 함께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필요한 서류가 담긴 봉투를 꺼내려고 운전석 옆의 사물함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봉투 속에서 서류들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부인은 ‘이건 저의 남편이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담아둔 봉투예요!’ 하며 또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봉투에서 서류들을 꺼냈을 때, 제일 앞장에 굵은 펜으로 다음과 같은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만약 차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이것을 기억하기 바라오!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말이요!’ 라고 말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바로 그 부인의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쓴 글이었습니다. 그 때 장로님이 그 부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 부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고를 통해서 알게 된 이 행복한 부부처럼 추수감사 주일을 드리시는 성도님들 가정과 직장과 사업체 위에 주님과 함께 날마다 동행하시는 귀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년 가을은 풍년이 들어서 그 어느 해 보다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농부들이 신음에 빠져 있으며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분노하고 농민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동안 피땀 흘려 수고하고 애써 가꾼 농작물을 정부가 수매를 하지 않으므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수입쌀 자유화가 되니, 농부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격어야 될 것입니다.
농부가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드려서 가꾸어주는 이유가 있다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며,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며 잡초를 뽑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농부가 바라는 것은 무성한 잎도 줄기도 아니요! 잘 여문 알곡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은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오늘 본무의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해 보면, 농사를 짓는 농부는 하나님이시요! 알곡은 온전한 믿음을 지닌 성도들이요! 쭉정이는 형식적인 성도들을 비유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알곡 같은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나, 쭉정이 같은 형식적인 성도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 불에 던져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본문의 말씀을 통해 부탁하신 것은 알곡과 같은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알곡과 쭉정이 같은 신앙이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말씀을 전하오니 은혜의 귀한 예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알곡은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생명이 없습니다.
알곡이나 쭉정이는 외관상으로 보면, 똑같이 보여도 알곡에는 생명이 있으나, 쭉정이에게는 전혀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씨앗을 논밭에 뿌려도 생명이 없는 쭉정이는 그대로 썩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알곡은 싹을 낼 수가 있습니다. 알곡은 살아 있고 쭉정이는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살아있는 것처럼 숨은 쉬고 있으나, 실상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생명을 가지고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쭉정이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로지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믿음과, 알곡과 같은 믿음을 지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을 소유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육신의 땅에서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여도 생명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행한 모든 것들은 세상을 위한 것들로 죽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심령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생명이 살아있는 성도가 알곡이요! 사람들 심령 속에 생명이 없는 자들이 쭉정이인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전혀 행하지 않을까요? 심령이 죽어있으면 생명이 없고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 나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에게 온전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 생명인가를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요! 그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는 것은 죽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죽어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따라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리며 위로 힘차게 차고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온전한 믿음의 생명이 있는 알곡 성도는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며 세상을 거슬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쭉정이 신앙을 가진 성도는 이 세상의 풍습을 따라 어울려지고 세상에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그들은 그 어떠한 유혹이나, 시험을 이길만한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쭉정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심령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로마서 8장 9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성도들에게 새 생명을 주실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통탄이 여기며 가슴 아파하면서, 그러한 죄 때문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마음에 온전한 구주로 겸손히 모셔 드린다면, 이 순간에 저와 여러분들에게 거듭난 새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 속에 존재하는 성도에게는 새 생명이 요동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 속에 존재하지 않는 형식적인 성도는 이미 죽어버린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쭉정이가 되지 않고, 온전한 믿음의 알곡이 되시기를 원하신다면, 이 시간을 통하여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심령 속에 모셔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알곡은 고개를 숙이고 쭉정이는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벼가 누렇게 익어있는 논에 가보면 알곡일수록 고개를 아래로 숙이지만, 쭉정이는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벼이삭이 처음 나올 때는 고개를 쳐올리고 나오지만, 알곡이 되면 될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알곡 성도일수록 겸손해지고, 알곡이 아닌 쭉정이 일수록 교만하다는 것을 교훈하여 줍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을 통하여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교만한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강조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진정한 믿음을 지닌 알곡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겸손한 미음으로 온전하게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고의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처럼 내 자신이 항상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것을 아는 성도가 겸손한 자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어떤 자들이 교만한 자들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기의 세상적인 지식과 노력으로 구원함을 얻은 줄로 착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요!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며 감격해 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고백 할 수 있는 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한 때는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알곡이 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자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알곡이 된 후에는 그의 고백하는 내용이 달라져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자다. 죄인 중에 괴수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자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수록 알곡이 되어 겸손해 졌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룬 것으로 착각하며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쭉정이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절대로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한 알곡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알곡은 겸손함을 갖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성전에 두 사람이 기도를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은 일어서서 큰소리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하나님께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렸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세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고개도 들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니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어떤 자가 알곡이며, 어떤 자가 쭉정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바리새인은 쭉정이라면, 보잘것없는 세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알곡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쭉정이 같은 신앙을 가진 교만한 성도들은 전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관심조차도 없고, 오로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데 몰두합니다.
그러나 알곡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 앞에 중보 기도하며,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겸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항상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는 성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면, 매사에 항상 하나님은 물론, 모든 사람들을 겸손히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신앙은 논리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올바른 행실과 겸손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행실과 겸손이 동반되는 겸손한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바람에 날리면 알곡은 남으나 쭉정이는 날아가 버립니다.
농부는 곡식이 누렇게 익으면 추수를 합니다. 알곡도 거두고 쭉정이도 거두어 드립니다. 그리고 농부는 창고에 보관하기 전에 먼저 풍로 질을 합니다. 그러면 알곡은 앞으로 나오고,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뒤로 멀리 날아갑니다.
키질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곡은 앞으로 모이지만, 쭉정이는 퍼지면서 멀리 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추수를 한 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곡이나, 쭉정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나, 바람에 날려보면 쭉정이는 멀리 날아가 버리지만 알곡은 남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알곡 속에 숨어 있는 쭉정이를 골라내신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알곡 같은 성도인지, 쭉정이 같은 성도인지는 겉으로 보아서는 모르지만, 시험의 바람이 불어오고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알곡 성도들은 끝까지 그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지만, 쭉정이 같은 성도들은 바람에 떠밀려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또한, 가정과 사업이 평안할 때에야 다 알곡 신자 같으나,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예수를 믿다가 손해를 보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쭉정이 성도들은 멀리 떠나가 버립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여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시며, 기적을 행하시어 떡을 먹이실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심지어 예수님을 억지로 왕을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을 때에, 그 많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그들이 알곡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들을 보시고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너희도 가려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뉘께로 가오리까?’ 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온전한 말씀으로 무장된 알곡 성도들은 그 어떠한 시험과 환란, 그리고 어려움이 닥쳐올수록 더욱더 주님께 의지하며 따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쭉정이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더욱더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쭉정이는 아무리 안 날아가려고 발버둥 쳐도 날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짜 알곡은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멀리 날아 갈 수가 없습니다. 알곡 같은 성도들은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이리저리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항상 무게 있는 알곡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온전한 믿음으로 체험하고 겸손하게 받아 드려, 헌신과 충성하는 무게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의 무게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 어떠한 시험과 환란이라는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으십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한 믿음으로 끝까지 지킬 수 있으십니까?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몰려오는 비바람에 쭉정이들은 다 날아가 버린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온전한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에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여 나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한 믿음을 달라고 이렇게 간절한 심령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부족한 저에게 더욱더 강인한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떠한 시험이나 유혹 앞에서도 온전한 믿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요즘에는 농기계가 발달되어서 벼를 자동으로 거두어 드리면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탈곡기를 발로 밟아 타작을 한 다음에 풍로를 가지고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냈습니다.
그렇게 풍로 질을 하면, 알곡은 앞으로 나오고 쭉정이는 뒤로 날라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풍로 질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이 세상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잘 여문 알곡을 불로 태울 주인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껍질뿐인 쭉정이를 창고에 쌓아두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완전히 구별하여 알곡은 알곡대로 모으고,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모아서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로 태워 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쭉정이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농부이십니다. 그래서 속이 꽉찬 알곡 된 온전한 믿음의 성도는 천국 창고에 들어가게 허락을 하십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을 알곡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있으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만이 있는 곳입니다.
또한, 다시는 이별이나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곳에 들어갑니까? 알곡 된 성도들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쭉정이가 들어가는 곳은 영원히 꺼지지 않은 지옥 불입니다. 그곳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무서운 곳입니다. 더 이상의 소망도 없는 곳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 가운데서 영원히 쉬지 못하며 고통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알곡과 쭉정이와 함께 있을 때, 영적으로 깨어나 거듭나지 않으면, 잘 모르나 반듯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비로서 땅을 치고 후회하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온전한 믿음으로 바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이라도 나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부르신다고 할지라도, 천국창고에 들어 갈 수 있는 알곡 된 온전한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하여 잠시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눈물도 한숨도 걱정도 없는 저 천국을 소망하시면서 믿음을 굳게 지키며, 살아가시다가 주님오시는 그 날에 아름다운 저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