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벧전1:23-25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벧전1:23-25
2003-10-29 14:48:43 read : 218


한 임금님이 자기의 소중한 아들인 왕자의 아냇감을 찾기 위하여 아름답고 또 동네에서 칭찬을 받는 아가씨들을 전국에서 다 불러 모았습니다.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모두 아름답고 예뻐서 어느 아가씨를 왕자의 아냇감으로 결정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임금님은 아가씨들에게 예쁜 꽃씨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너희가 모두 예쁘고 좋아 보여 내가 한 사람을 도저히 선택할 수 없구나. 이 꽃씨를 줄 테니 화분에 잘 심어서 꽃을 아름답게 가꾸어 오너라. 꽃을 제일 아름답게 가꾸어 온 아가씨를 내 왕자의 아냇감으로 삼겠다.\"
그리고는 아가씨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모든 아가씨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정성스럽게 꽃씨를 심고 물을 주며 잘 길렀습니다.
그런데 한 아가씨의 화분에 심긴 꽃씨는 아무리 정성껏 물을 주며 돌보아도 싹이 트지를 않았습니다. 꽃이 피어나지를 않았습니다. 아가씨는 너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기한이 되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꽃이 없는 빈 화분, 흙만 담긴 화분을 갖고 가면서 임금님께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떨었습니다. 궁궐에 가 보니, 다른 아가씨들은 모두 아름다운 꽃이 핀 화분을 갖고 왔습니다.
모든 꽃을 살펴 본 임금님이 꽃을 아름답게 가꾸어 온 아가씨들은 본체만체 하고, 꽃이 없는 흙만 담긴 화분을 갖고 있는 아가씨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내가 준 그 귀한 꽃씨를 어떻게 하고 이렇게 빈 화분을 갖고 왔느냐?\"
아가씨는 무릎을 꿇고 \"임금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미련하여 그만 꽃씨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도 싹도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으니 저를 벌해 주세요.\" 하면서 울었습니다.
\"아니야, 너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꽃을 피운 최고의 아가씨다. 너는 내 며느리가 될 자격이 있다. 내가 나누어 준 꽃씨는 삶은 꽃씨이기 때문에 꽃을 피울 수 없다. 여기에 피어 있는 꽃들은 내가 나누어 준 씨에서 핀 꽃들이 아니다. 죽은 씨에서 어떻게 꽃이 필 수 있겠느냐? 너만 정직하구나.\"
그래서 꽃이 피어 있는 화분을 들고 간 다른 모든 아가씨들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고, 정직한 아가씨는 왕자의 아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정직하면 이렇게 좋은 일이 많습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죽은 씨는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꽃씨, 삶아서 죽인 꽃씨는 아무리 심어도 싹도 틔우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말은, 대통령의 말이나 아무리 힘있는 그 어떤 사람의 말이라도, 세상의 말은 죽은 말입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십시오. 이세벨이 자기 남편 아합 왕의 이야기를 듣고 화를 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하늘의 불이 떨어지게 해서 제단을 태우고 바알 선지자들을 쳐죽였다는 보고를 들은 이세벨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까지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모든 신이 내게 벌을 내리기를 원한다.\" 라는 말을 전하게 합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세벨이 왕비로서 왕 같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자기가 죽고, 엘리야는 죽지 않습니다.
세상의 사람의 말은 힘이 있어 보여도 힘이 없고, 살아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죽었습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나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영원한 씨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죽고, 채소도 몇 달만 지나면 죽고, 과일 나무도 몇 년이 지나면 죽지만, 생명나무는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항상 살아 계시고 항상 능력이 있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말은 생명이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사람의 말이나 어떤 우상의 말, 어떤 가르침에도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있고 항상 있는 말은 오직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비로소 사람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이상하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는데, 어떻게 말씀으로 거듭나나?\' 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성경은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사람은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말합니다.
\"랍비여, 랍비께서는 하나님께로 오신 분인 줄을 우리가 믿어요. 하나님께로 오지 않으셨으면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 맞아요.\"
예수님께서 말씀만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다 되니까, 말씀하신 대로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니까, 니고데모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양곡교회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나타나야 하지만, 사람이 못할 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사람들이 \"아하! 양곡교회는 사람이 만든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온 교회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구나.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시는 교회구나.\"하고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두 번 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아니, 이렇게 장성한 사람이 어찌 두 번 날 수가 있어요? 어머니 태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도 죽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분명히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18절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우리를 낳으셨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썩지 아니하는 영생의 말씀, 살아 있는 말씀, 이 말씀으로 너희가 거듭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말씀과 성령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가는 곳에 성령께서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의 불이 임하지만 성령만 내린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120명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말씀 없이 성령께서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도 예수님께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듣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신을 받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말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 문자적으로는 달라도 내용적으로는 같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떠난 성령은 없습니다.
귀신들은 말씀 없이 점을 칩니다. 귀신은 그냥 옵니다.
우리 성령님께서는 말씀과 함께 임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말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 3000명이 언제 성령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2장을 읽어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다가 거듭남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분은 거듭나고 있을 것입니다. 기도 시간이 아닌 말씀 시간에도 어떤 분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지금 이 시간에 성령께서 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떨어질 때 사람이 변화됩니다.
전두환 대통령 고향의 한 교회에서 집회할 때의 일입니다. 낮 말씀을 전하고 나서 목사님 방에 들어가니, 경찰 고위 간부 한 분이 제 앞에 와서는 무릎을 꿇고 \"목사님, 저는 요강단지입니다.\" 하면서 막 울었습니다.
제가 그 날 요강단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관절염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최용문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나았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목사님이 최 목사님이신데, 그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가정에 사모님이 결혼할 때 가지고 온 놋 요강단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도 밀어뜨리고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 요강단지가 깨어져 못 쓰게 되어서 거름터 옆에 던져 놓았습니다.
하루는 놋 그릇을 만들어 파는 집사님이 목사님 사택에 왔다가 그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두를 닦는 분의 눈에는 구두가 보이고, 치과 의사의 눈에는 사람의 이가 보이는 것처럼, 저는 사람을 만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놋 그릇 만드는 공장을 경영하는 그분의 눈에 놋으로 된 요강단지가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아이구, 사모님. 저 놋쇠, 버리실 것이면 저를 주세요.\"
며칠 뒤에 그 집사님이 금그릇 같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모님이 물었습니다.
\"웬거예요?\"
\"아, 그때 그 요강단지를 녹여서 새로 만든 그릇입니다.\"
\"아이구, 집사님. 정말입니까?\"
마치 순 황금 그릇 같았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서 사모님이 황금 그릇 같은 그 새 그릇에 목사님 밥을 푸려 하는데, \'아무리 새 그릇이지만 그래도 주의 종이 드시는 음식을 어떻게 요강단지에 담냐?\'하는 생각에 꺼림칙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밥을 푸려 하니, \'장래가 만리 같은 아들의 밥을 어떻게 요강단지에 담냐?\' 싶어서 또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이구, 안 되겠다. 여기에 내 밥을 푸자.\'하고 사모님의 밥을 푸려 하니, 혹 새 그릇을 자기 밥그릇으로 사용한다고 목사님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과거는 과거다. 지금은 새 그릇이 되었으니 뭐가 문제냐? 목사님의 밥을 담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그릇에 밥을 푸면서 생각해 보니, 사모님 자신이 마치 이 요강단지 그릇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처녀 때만 해도 생활이 좋지 않고 깨끗하지 못했던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목사님의 사모가 되어 이렇게 사는 것을 생각하니 바로 그 요강단지 그릇이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한 사모님이 그만 그 자리에서 한 손에는 밥주걱 들고 또 한 손에는 밥그릇 들고 춤을 추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어서 주 앞에 새 사람 된 것은…」
부엌에서 계속 나는 쿵덕덕 쿵덕덕 하는 소리를 듣고 목사님이 부엌으로 가 보았습니다. 아니! 사모님이 미쳤는지, 밥그릇을 들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여보! 왜 그래요?\"
사모님이 여차여차 저차저차 하며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도 \"나도 그래.\"하며 같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그 소문이 교회에 퍼져 온 교회가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집회 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경찰 간부가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저는 요강단지입니다. 이제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저도 요강단지입니다.\"하며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분이 그때 거듭나고 깨어진 것은 가만히 있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듣다가 깨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거듭나는데, 그냥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을 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이제까지 성령을 경험하지 못한 분은 이 밤에, 성령 강림절인 오늘 이 밤에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마귀도 압니다.
오래 전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제직 세미나를 인도하셨던 류우열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교회의 새 신자가 귀신이 들려서 고생을 하고 있으니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그 새 신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집으로 들어서는데, 새 신자의 아들이 뛰어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도 이제 예수 믿어요. 오늘부터 예수 믿어요.\"
그때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학생이 흥분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기로 했지?\"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세요.\"
교회에 나오지도 않던 학생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알지?\"
\"우리 엄마가 15분 전에 이렇게 말했어요. \'날 죽이러 온다! 날 죽이러 온다! 날 죽이러 오는구나! 하나님의 사람이 날 죽이러 오는구나! 15분 뒤에 도착하겠네.\' 그래서 제가 시계를 보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15분 뒤에 목사님이 도착하신 거예요.\"
귀신이 목사님을 알아맞히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이 \'목사님은 참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다.\'라고 결단한 것입니다.
그 일로 그 집안 식구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물론 귀신도 쫓겨 나갔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귀신도 알고 자기 자신도 압니다.
이런 확신에 거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할렐루야!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 항상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풀과 같은 우리가 영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풀과 같습니다. 본문 24절에 우리의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우리의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의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육체도 죽고 사람의 영도 죽는데,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항상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생명의 씨가 되어서 영생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하나님께도 영생하는 생명이 있고, 예수님께도 영생하는 생명이 있고, 성신도 영생하는 하나님의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성신, 성령을 받으면 우리도 영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받는 하나님의 신은 영생하는 신이기 때문에 우리도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 눈은 흐려지고 내 얼굴에는 주름살이 끼어도, 내 영혼은 흐려지지 않고 더 맑아지고 주름살도 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내 손과 다리는 흔들리고 기억력은 왔다 갔다 해도, 내 안의 성령님께서는 영생하는 영이시기 때문에 내 영혼이 같이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육체, house는 무너져 흙이 될지라도 우리의 영은 성령과 더불어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영원히 변함 없는 말씀을 받은 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이 우주가 변하고 하늘의 해와 달은 떨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영혼이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한 영혼도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순간에 영혼이 하늘나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또 성령으로 영생하는 존재가 된 사람은 이제 생리적으로 영생하는 양식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육체는 흙으로 났기 때문에 흙에서 난 것을 자꾸 먹고 싶어합니다. 사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흙, 이 지구에서 난 것입니다. 곡식도 흙에서 나온 것이지요, 모든 물고기도 이 지구에서 나온 것이지요, 우리가 잡아 먹는 새나 짐승도 다 땅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체는 땅의 것을 먹고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하늘나라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하늘 양식을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영생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우리는 밥은 굶을지언정 말씀은 먹어야 삽니다.
왜입니까?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체질상으로 말씀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육간에 잘 드셔서 강건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고 영생하는 존재가 된 다음에도 계속 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점점 자라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한 식당에서 우리 청년회 임원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제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아침과 점심 식사는 알맞게 하지만, 저녁 식사는 제 양의 반 정도만 하는데, 제가 조금만 먹으면 우리 청년들이 제 눈치를 보느라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두 접시나 갖고 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청년들이 너무 조금밖에 먹지 않아서 제 속이 상했습니다. 청년들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어서 좋은 식당에서 만났는데 말입니다.
우리 육신도 어느 정도는 먹어야 강해집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우리 나라 유학생들은 코피를 흘리며 공부하는데, 미국 청년들은 이틀씩 밤을 새우며 공부해도 끄떡없습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 때 잘 먹지 못해서 하루만 밤을 새워도 진액이 빠져 한계 상황을 느끼는데, 미국의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잘 먹으며 운동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만큼 체력이 든든한 것입니다.
잘 먹고 알맞게 운동하는 사람의 육신이 강한 것처럼, 우리의 영도 말씀을 먹고 활동하는 사람의 영이 강한 것입니다.
영육 간에 강건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틀거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은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상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전도하게 됩니다.
영국 한 교회의 다섯 살 먹은 아이가 1페니를 헌금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 1페니는 절대로 딴 곳에 쓰시면 안 돼요.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꼭 보내 주세요.\"
1페니는 신약성경을 살 수 없는 작은 돈입니다. 목사님은 돈을 보태어 신약성경을 사서 그 아이의 사인을 하여 인도의 선교사님에게 보냈습니다.
20년 후, 목사님이 인도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아주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마을 사람 전체가 예수님을 믿는 정말 복된 마을을 만났습니다.
\"이 마을은 어떻게 해서 전 마을이 복음을 받아들여 이처럼 복 있는 동네가 되었습니까?\"
\"예, 20년 전에 한 선교사님이 보내주신 성경 때문입니다.\"
교회 책임자가 성경을 가지고 와서 보여 주었습니다. 다 떨어져서 너덜너덜한 신약성경을 보는 순간, 목사님은 20년 전의 일이 생각나 얼른 성경을 펴 보았습니다. 20년 전에 목사님이 다섯 살 먹은 아이의 사인을 해서 보냈던 바로 그 성경이었습니다.
그 성경이 그 마을에 떨어져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다섯 살 먹은 아이도 성령의 사람이 되면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 성령의 사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구, 목사님.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기가 막힌 방법으로 전도를 하는 한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도하는지 아십니까?
할머니의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학교 앞에 가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부릅니다.
\"학생! 학생!\"
\"예, 할머니.\"
\"나 좀 도와주렴.\"
\"뭘 도와드려요?\"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나는 눈이 나빠서 못 읽으니 좀 대신 읽어 줘. 요건데….\"
할머니가 부탁을 하는데, 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
다 읽고 나면 그 학생에게 묻습니다.
\"학생, 이 뜻을 아는가?\"
\"모르는데요.\"
\"하나님께서 학생과 나를 사랑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학생과 내 죄가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야. 학생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이야. 얼마나 좋아?\"
그래서 많은 학생을 전도한답니다.
우리 1남 여 선교회원님들도 온천에만 다니지 마시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앞에 가셔서 \"학생, 이것 좀 도와 줘.\"하시면서 전도도 하시기 바랍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할머니가 되어도 성령의 사람은 전도하게 되고, 또 전도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모신 사람을 언제나 도와 주십니다.
우간다의 이디아민 대통령이 그 나라를 통치할 때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 때 생킹이라는 목사님이 교인이 7천 명인 교회에서 목회하고 계셨는데, 우간다를 위해 기도하며 정의를 부르짖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비밀 경찰 다섯 명이 쳐들어와서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 목사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죽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오.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 받아서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가오. 그러나 나에게 2분만 시간을 주시오. 내가 우리 우간다를 위해 기도하고 죽겠소.\"
비밀 경찰들이 2분간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하나님, 이디아민 대통령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본인들은 원치 않지만 대통령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를 죽이는 아무런 죄가 없는 이 경찰들을 주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 주세요. 우리 우간다를 축복하시고 내가 죽은 이후에는 이런 슬픈 일이 없도록 의로운 땅이 되게 해 주세요.\"
목사님이 2분 동안 그 경찰들을 위해서, 대통령을 위해서, 우간다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목사님을 죽여야 할 경찰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눈을 뜨자 그 일을 책임진 경찰관이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목사님, 용서하세요. 우리는 목사님을 죽일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벌써 피신하셨다고 보고할 테니 빨리 피신하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피신하여 살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에 있어도 거기에 성령님께서 같이 계십니다.
확실한 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사명이 끝나기까지 절대로 악한 세력이 해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명이 있는 한, 악한 세력이 손대 대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는데, 그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이런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신령한 생활, 가슴 뜨거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밤에도 성령으로 재충만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또 이 세상에서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