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다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주셨다/행2:14, 22-32, 벧전1:3-9, 요20:19-31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주셨다/행2:14, 22-32, 벧전1:3-9, 요20:19-31
2008-06-12 10:41:20 read : 43


장례식이 있을 때마다, 저는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면
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가짐을 새롭
게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도 말하기를‘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7:2)’고 했습니다. 그 이유
는, 사람은 누구나 다 결국 죽게 되어 있는데, 아직 생각할
시간이 남아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저는 동서(同壻)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몇 가지 교
훈을 얻고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장모님은 사위
가 입원한 이후, 저보다 훨씬 더 많이 병원에 찾아가서 병상
에 있는 사위를 위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
다. 물론, 그 사위가 건강을 회복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
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모님은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말씀하시기를 “아무개가 복 있는 사람이지!”하는 말씀을 하
셨습니다. 저는 장모님께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
까?”하고 여쭙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
의 뜻이 무엇인지 대충은 짐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짐작컨대, 우선은 고생스러운 인생살이를 일찌감치 마치고
천국에 들어갔으니,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면, 혼자되어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딸의 입
장을 생각해서 죽은 사위가 더 복되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모님의 인품과 신앙을 생각해볼 때, 후자보다는 전
자가 더 장모님의 생각에 가까우리라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장모님 스스로가 참으로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세월을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칠남매를 낳
아 키우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겠습니까? 장모님은,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모두 겪으신 고생을 다 경험하셨을 뿐
만 아니라, 보통 어머니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하셨다
고, 제 아내는 수시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장모님은 인생을 산다는 그 자체가 고생이라고 여
기셨기 때문에, 당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사위에 대해서
야속하다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산다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고
고생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즐거움은 잠깐 뿐이고, 고달프
고 괴로운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처럼 고달픈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주
님의 제자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어 영원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벧전1:3)’고 말합니다. 왜
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값을 도무지 따질 수 없는 영
생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선물은, 하늘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았으며, 절대로 변질되거
나 부패하는 일이 없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저께 천국에 먼저 들어간 동서(同壻)도 이 선물을 분명히
받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늘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음을, 제가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인이 작고하기 바로 전날, 몇몇의 교우들과 함께 인하대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를 드리려
고 하자, 동서는 찬송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쩍 마른
손으로 찬송가를 잡고 눈으로 열심히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
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병실에서 나올 때에는 손을
흔들어 우리를 환송해주기도 했습니다.

손을 흔들어준 것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분도 없지 않아
있겠습니다만, 동서가 그 다음날 아침에 운명했으니, 그가 그
당시 어떤 상태에 있었음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는 그야말로 사경을 헤매는 중에 있으면서 그처럼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우리에게 작별 인사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못내 아쉬운 것은, 그가 조금 더 일찍이
그처럼 열심히 주님을 가까이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언제 갑자기 하나님
의 부르심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뒤로 미
루지 마시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으면서, 그 뜻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금 세상에 치
우쳐 살게 될 경우, 영생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시금, 주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오늘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믿음생활
을 충실히 하려고 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는 잠시 여러 가지
시험과 고통을 당하나, 그 앞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시련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
고 순수한지 알아보려는 시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바르게 살려
고 할 경우,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험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살기가 어려운 세상인데, 믿음생활을 바르게 하고자 할 경우
에는 더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니,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생활에 충실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일생을 마쳐야 할 때가 올 될
텐데, 그 때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냥저냥 쉽게 살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후
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나 항상 믿음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며 사는 것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직 천국에 들어갈 준비만 부지런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1.우선, 죄와 죽음의 길을 멀리하고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
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무꾼인 알리바바가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습
니다. 그리고 나무를 많이 베어 당나귀의 등에 실으려는 순
간, 40인의 도적이 나타났습니다. 알리바바는 그들이 도적들
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재빨리 가지가
많은 아름드리나무로 올라가서 숨었습니다.

도적들은 곧 동굴 앞에 도착했고, 도적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동굴 앞에서 ‘열려라, 참깨!’하고 외쳤습니다. 그러
자, 동굴의 큰 바위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금은보화와 값비싼 보물들이 수북이 쌓
여 있었습니다.

도둑들이 떠난 후, 알리바바가 나무에서 내려와 그 동굴 앞
에 서서 자신도 그들처럼 ‘열려라, 참깨!’하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동굴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알리
바바는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형 카심이 동생에게 그 주문을 알려달라고
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너무나 많은 보화에 카심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그만 주문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건망증이 무척 심했던 것입니다. 그
래서 그는 원래 주문한 것과 비슷한 말들을 다 외쳐보았습니
다. ‘열려라, 들깨!’ ‘열려라, 콩깨!’ 이것저것 다 외쳐봤
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무지‘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카심은 다시 나타난 도적들
에게 들키는 바람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의 보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주
문과 암호는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가 우리
에게 생명의 보화를 가져다주는 열쇠입니다. 다른 그 무엇이
나 사람도 우리에게 참생명을 제공해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
수님만이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생명의 길입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8절에서 다윗의 시(詩)를 인용했습
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나에게 알려주셨으니, 주님 앞에
서 나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가
치가 있는 인생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두
려움도 사라지고, 항상 밝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
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
하리로다(시16:8)’라고. 그러니까,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
고 살면, 우리는 어떤 역경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크게 흔들리
지 않습니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중심
을 잡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쌍둥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쌍둥이 중 하나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
들은 한결같이 그 아이가 곧 죽게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간, 그 아기는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습
니다. 그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하나의 인큐베이터 안에
함께 넣어두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병
원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담당 의사는 잠시 고민
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자궁에서처럼,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혀놓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쌍둥이
는 한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
어서 아픈 동생을 감싸 안아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
다. 그리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체온
도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그
리고 드디어, 두 아이는 완전히 정상아가 되어서 무럭무럭 자
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의 주님을
우리가 모시고서 바르게 살고자 부단히 힘쓴다면, 주께서는
그 오른 팔로 우리를 안아서 그 따뜻한 품 안에 품어주실 것
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무슨 염려를 하며 무슨 걱정
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되어 참으로 성숙한 믿음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뵐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뵙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죽음
과 두려움의 무덤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자기 생각이라는 무덤에 갇혀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뿐
만 아니라,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을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그 마음에 원치 않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께서 이미 부활하셨
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유대인 지
도자들이 자기들을 죽일까봐 무서워서, 그들은 문을 꼭꼭 걸
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자기 생각과 잘못된 생활습관에 갇혀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나오면 큰일 날 줄로 알
고, 그 방안에서 나오려고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꼭꼭 숨
어 있는 것을 아시고서는, 제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오셨습니
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자기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면서 그 마음을 편히 가지
도록 권고하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음을 편히 갖도록 권면하
시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염려와 걱정 때문에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
습니다. 그처럼,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 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
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변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
는 신앙생활을 계속하려면, 우리를 항상 지켜 보호해주시는
주님을 굳건히 붙잡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의
무덤에서 벗어나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길을 열심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가
야 합니다.

자꾸만 고인이 된 사람을 거론해서 아주 죄송합니다만, 그
가 운명하기 하루 전날 밤, 힘이 다 빠진 그 손으로 안간 힘
을 다해서 찬송가를 부여잡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데, 고인은 그 이전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그처럼 찬송가를
꼭 잡고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고 살았으
면 좋겠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의 손을 단단히 꽉 부여잡아
야 생명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거니와 불행의 늪으로 빠
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아야 불
평과 원망을 하지 않게 되고,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시험이 있습니다. 악한 마
귀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을, 마귀는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할 경우, 반드시 마귀가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믿음생활을 온
전하게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련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려는 시험에 불과하다고,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잘 이겨내
고 승리할 경우, 그래서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된다면, 주
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많은 칭찬과 영광을 얻게 된다고 말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취
에서 깨어나자마자, 고통을 호소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
습니다.
그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
습니다. “잠깐만이라도 불평하기를 멈춰보세요. 그러면, 당신
이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제서야, 그 환자는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고통은 아
직도 나에게 생명이 있다는 증거로구나!”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아
직도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믿음생활
을 하면서도 아무런 고통이나 시련을 겪지 않고 있다면, 그런
사람의 믿음은 죽어 있는 상태라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생활을 하고자
원한다면, 믿음 때문에 오는 고통이나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
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이나 시련을 잘 이겨내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한 신앙을 갖게 되거니와, 그 결과 더
욱 아름답고 귀한 생명을 갖게 된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서,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특
별히 허락하신 영생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