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생명입니다 요일5:11-13
1. 할렐루야! 우리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저의 집안에 내가 목사가 되었을 때 나를 만나기만 하면 나를 붙들고 부활을 증명 해 달라고 떼를 쓰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해도 부활이 이해가 안 된다며 부활을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도 진지하고 열중적으로 묻기에 내 아는 한에서 다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설명해 드리면 그 분은 늘 ‘그게 정말일까? 그건 증명될 수 없는 거야’하며 믿음의 문턱에서 주저앉곤 했습니다.
그러더니 작년에 오랜만에 만나 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양 목사님, 내가 잘못 접근을 했어. 부활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그걸 믿느냐 아니냐 인데 내가 그걸 몰랐어요. 내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걸 믿는다는 것이 신앙인데 내가 실수했어요.” 그리곤 그 분은 그 해에 70이 훨씬 넘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말이죠 믿음의 대상입니다. 이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걸 믿는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기시기 위해 돌아가신 주님께서 오늘 아침 물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 부활하신 주님, 그 주님은 생명이라고 성경이 증언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망의 권세가 주님을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사망이 주님을 삼켰으나 삼킨 후에 그 주님을 자신 안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감당 못한 것이지요. 그러기에 주님께서 그 사망의 철문을 부수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말이죠, 생명이신 주님, 어떤 생명인 줄 아십니까? 고전 15:4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최초의 인류 아담은 생령이었습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령, Living Being,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a life-giving spirit\" 자기 안에 생명이 가득한 것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넘쳐 타자에게도 생명을 부여하는, 나누어 주는 그런 존재이십니다.
그러기에 마악 죽어가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요? 건강하게 사는 법, 돈 많이 버는 법, 선거에서 승리하는 법, 연애 잘 하는 법, 심지어 세상 모든 지식을 담은 대영 백과사전, ... 그런 것 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죽어가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셔서 여전히 살아계셔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죽음 앞에 겁을 내는 자여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하늘나라 바라보는 자여 주 예수께 아뢰라!” 왜? 그 분은 생명을 부여하는 life-giving spirit,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찾아와 초조해 하는 분들, 그런 분들을 찾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마침내 예수를 영접하고 마음이 평안하여, 지극한 평안 속에, 아니 예수의 생명 속에 편안히 눈을 감으며 영생을 소유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3. 오늘 본문을 봅시다.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러기에 우리가 받은 복음의 핵심, 요 3:16절은 늘 이렇게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외워 볼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12절을 봅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한번은 친구 목사님 집에 놀러갔는데, 그 목사님이 딸딸이 아빠였습니다. 딸만 셋이었습니다. 그러자 짓궂은 친구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쯧쯧쯧 이 집엔 생명이 없군.” 이에 옆에 있는 친구가 ‘아니 목사님 댁에 실례되게 그게 무슨 말이야’ 하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사님 집이니까 성경적으로 말해야지. 성경에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대. 딸만 있으니 무슨 생명이 있겠어!”
그런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잘 생겼어도,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그에겐 생명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죽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생명이 있습니까? 영생이 있습니까? 왜 있으면서도 없는 척 하십니까?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생명이, 영생이 있습니다.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요? 사실입니다. 그 때가 되어 보면 압니다.
그러나 이미 그 사실을 믿고, 그 믿음 위에 사는 사람은 현실의 생활 속에 하늘의 무궁한 에너지를 갖고 사는 이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에너지가 주어져 있는데, 어떤 이는 그것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어떤 이는 ‘그저 그런 게 있대’ 하며 없는 것처럼 살아서, 똑같은 조건, 똑 같은 은혜를 받으며 살면서도 남보다 뒤진, 어둡고 힘든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그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는 ‘왜 일찍 이것을 깨닫지 못했는지, 왜 진작에, 왜 좀 더 일찍 이 사실을 몰랐는지 한스러워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성경이 쓰인 목적이 뭐라고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이 쓰인 목적은, 구구절절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시는 말씀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70, 80년, 잘하면 100년 조금 넘게 더 살다가 썩어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을 사는 생명, 하나님의 씨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 이에게 어찌 생명력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이 영생의 확신이 있는 이가 늘 죽지 못해 사는 표정이겠습니까! 이 영생이 있음을 아는 이가 좀 사업에 실패했다고 자살을 한다? 좀 괴롭다고 못 살겠다?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녕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내 친구네는 조상 중에 이성계가 있다는 데, 우리 양 씨 집안에는 누가 있어요?’ 아마도 친구와 설전을 벌이고 기가 죽어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응, 우리 집안에도 훌륭한 분이 계시지. 양만춘이라고 이성계 보다 훨씬 이전에 중국의 쳐들어왔을 때 훌륭하게 안시성을 지키신 분이시지.’라고 가르쳐 주자, 이 아이의 얼굴이 단번에 환해 집니다. 그리곤 어깨를 으쓱하며 뛰처 나갑니다. 왜요? 자신이 누구인줄 알았다는 것이지요.
훌륭한 집안이라고 알기만 해도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런데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라고, 내 안에 그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고 믿는 이가 어찌 세상을 향하여 풀 죽을 수 있습니까?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생명이 충일하여 능치 못함이 없는 이입니다.
미국 반도체 장비 분야 업계 1위 기업인 라이트 하우스의 경영주는 재미 동포로 여성인 김 태연 씨입니다. 68년에 이민 가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85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 실리콘 밸리에서 작은 사무실 하나와 컴퓨터 한 대로 소프트웨어와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면서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모국도 아닌 이국땅에서 여성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성경에서 따온 ‘할 수 있다’는 정신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좌우명은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왜 못해) 인데, 이것은 미국에 특허 등록이 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요, 자신에게는 이 하늘의 생명이 충일하다고 분명 믿는 이들은 주저앉지 않습니다. 이 사람도 축복 받고, 저 사람도 축복 받는데, 왜 나라고 못 받겠는가? 김 집사도 능력 받고, 이 집사도 능력 받는데 왜 나라고 못 받겠는가! 앞 사람에게도 기쁨이 넘치고, 뒷사람에게도 기쁨이 넘치는데, 왜 나라고 기쁨이 없겠는가! 믿음을 갖고 나아가십시오. 믿음을 갖고 주 안에서 일어서십시오. 그러면 그 생명의 주님께서 굳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4.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셔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 낙심하여 어두움으로 사라져가는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서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행하신 한 특이한 퍼포먼스를 보게 됩니다.
요 20:21-22,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셨답니다. 방금 사망에서 부활하신 그 분의 숨결을 불어주셨다는 뜻인데, 이게 뭔가요? 생명의 기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구체적으로 그것을 성령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앞에서 본 것처럼 ‘a life-giving spirit’입니다.
이것을 받은 이들은 살아납니다. 이것에 충일한 이들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생명의 기운이 오늘 이 자리 여러분에게도 충만하기 바랍니다.
한 사람 그리스도인이 제대로 살아 있으면 그 옆 사람이 살아납니다. 늘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어느새 나도 그 사람 따라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밝고 긍정적인 영을 갖고 사는 이가 있다면 그 주위에 있는 이들은 살아납니다. 진정 부활하신 주님을 제대로 영접하고 믿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속해 있는 구역, 선교회,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생명은 가만있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곤욕스러운 주문이 뭔지 아시지요? ‘가만히 있어, 얌전히 있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고, 얌전히 있으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입니다. 왜? 아이들은 생명력이 충만하여 가만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활달하게 움직이는 게 곤욕스럽습니다. 노인들은 그저 가만히 놔두면 좋아 합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생명력이 쇠잔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들어도 활달한 분이 계신데, 이 분들은 여전히 생명력이 충일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정체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결코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습니다. 생명은 일종의 도미노 현상 같아서 계속 그 옆으로 옆으로 그 기운의 역사를 펼쳐갑니다. 부활의 예수님으로부터 참 생명을 받은 한 사람 때문에 그 옆 사람이 역시 생명의 역사에 동참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이 영생의 축복을 얻습니다. 부활의 생명은 결코 정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계속 무한정 뻗어나가며 죽어가는 영들을 살립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생명입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모셨기에, 생명이요, 또 다시 그것을 옆으로 옆으로 퍼져나가게 하기에 생명입니다.
주일이면 반드시 그리스도인은 교회, 신앙 공동체에 나와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세상에 살며 약해진 생명력, 주일이면 주님 앞에 나아와 생명의 기운을 얻고, 또 함께 만나는 그 생명이 충만한 성도들로 인해 다시금 충만해져 세상으로 다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생명 살리기만 하십시오. 주일에는 나에게 있는 생명, 함께 나온 성도들에게 나누어주는 역사에 참여하십시오. 그러기에 당신은 뭐다? 당신은 생명입니다!
오늘 당신을 만남으로 나는 또 다시 생명력이 충만해 집니다. 오늘 교회에서 당신을 만남으로 나는 다시 한 주간 넉넉히 살아갈 생명의 힘을 얻습니다. 오늘 나는 부활의 주님을 모신 당신을 만남으로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이왕이면 예수님의 숨결이 담겨있는 자신의 손으로 잡아줌으로 그 손으로 자신에게 있는 부활의 생명을 나누자. “당신은 생명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삽니다.”
The life-giving spirit 이신 부활의 주, 우리 예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늘 하늘의 생명 넘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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