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 요일5:10-12
교육방송(EBS)에서 노자를 강의하였고, 지금은 KBS에서 논어를 강의하는 도올 김용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학자이면서 서태지 못지 않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분입니다. 저는 이분을 바라볼 때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한때 그는 한국 신학대학에서 신학도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공은 동양철학이었습니다. 그의 학력을 살펴보면 고려대학교 생물학과 한국 신학대학, 고려대 철학과 대만대 철학과 석사 일본 동경대학 중국 철학과 석사 하버드대 철학박사 그리고 원광대 한의학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김용옥은 탐구력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엉덩이에 굳은 살이 뱃길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공부벌레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자신을 그는 자칭 우주보(宇宙寶)라고 했습니다. 양주동 박사가 자신을 국보라고 말한데 비겨 김용옥은 자신을 우주보라고 부른것입니다.
그러한 김용옥이 노자를 강의하다 성경의 내용을 폄훼하는 말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왜 동양철학에 빠졌을까요? 그것은 동양철학의 사유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구원 할 수 있는 예지(叡智)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 신학까지 공부한 분이 성경적 신앙에 대해 무지(無知)할수 있을까요? 그에게 무엇이 부족하여 성경에서 \"구원\"의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동양철학에서 구원의 예지를 찾으려 했을까요?
중국의 임어당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상하이의 성요한 대학을 졸업했으나 성경적 신앙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하게 살려고 애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려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자의 부활도 믿었고 내세에서의 상벌도 믿었습니다. 니고데모는 특별히 유대 의회원이었고 존경받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면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누구보다 열심히 율법을 지켰고 경건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가룟유다는 제자로 제법 쓸만한 재목이었습니다. 물론 유다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가룟유다는 삼 년 가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도 했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도 보았고, 직접 전도도 나갔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밀고 했습니다. 가룟유다는 더 이상 예수님에게 애착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는 노선(路線)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가룟유다에게 멍에를 함께 멜 만한 동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딴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느껴지기 보다 자신의 야심을 이룰 기회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기 보다 자신의 계획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배경음악쯤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으나, 내적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용옥이나 임어당, 그리고 니고데모나 가룟유다,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이다\"하고 붙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가 볼 때 그들은 안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생명(목숨)입니다. 사람의 모든 활동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과 자기 생명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염려합니다. 질병은 목숨을 위협합니다. 실직(失職)도 목숨을 위협합니다. 우리가 자연적 재앙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것이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육신의 생명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다만 좀 더 일찍 죽고, 좀 더 나중에 죽는 차이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순복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자식이 부모의 뜻과 다른 길을 가면, 자식의 생명이 부모의 생명과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쓸쓸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업적을 통해 또 어떤 사람은 이름을 남김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하늘은 큰 소리로 떠나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긴다 할지라도 부질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생명에는 육신의 생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에는 육신의 생명 이외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입니다. 영생은 암과 같은 병이나 굶주림 같은 궁핍에 영향을 받지 아니합니다. 사탄과 마귀도 영생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군사력으로도 영생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진 자는 복받은 자입니다.
영생이 있는 자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생을 얻은 자는 자기 생명을 자기가 지키기 위해 자기의 것을 움켜지지 아니하고, 아낌없이 남에게 베풀 수 있고 흩어 구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끓고 물은 것이 바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니고데모나 그 부자 청년은 나름대로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았으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을 채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이 생명이 그리스도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되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요3:15, 36, 5:24, 6:40, 47)
여기에 \"나\"가 있습니다.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 나의 모든 활동과 노력과 성취가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이 쓰러질 때 나의 모든 것도 쓰러집니다. 생명이 쓰러진 후 나의 성취가 얼마동안은 남아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맥박이 멈춘 후 체온은 얼마동안 남아있어도 얼마 못 가 식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영생을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이것이 사람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신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전부 해독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영생이 있지 아니합니다. 생명을 보(補)하는 명약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인으로 믿으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부르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김용옥씨가 영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변에 영생을 모르고, 썩어질 것을 위하여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학자와 지식인들이 허튼 소리를 하여 그것을 마치 진실인 양 전파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워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거짓을 믿고 그것을 진리라고 떠드는 어리석은 사람임이 눈에 보여 가슴이 아픕니다. 영생이 세상에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이 있어도 병이들고 영생이 있어도 굶주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바리새인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영생을 얻고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은자는 그 삶이 변합니다. 죄의 세력에 얽매인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삶으로 변합니다.
죽음의 장벽에 가로막힌 한정적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으로 변합니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삶으로 변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리스도와 영생입니다. 그리스도와 영생을 전하는 삶을 삽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