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요일5:9-13
요 며칠 죽음에 관한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서 마음이 몹시 무겁습니다. 엊그제는 원로 탤런트 여운계씨가 암으로 별세했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무척 아쉽고 섭섭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씨라는 드라마를 보았던 기억도 나고, 제가 살아온 세월과 겹쳐서 줄곧 방송을 통해 보아 온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살아온 추억의 한 자락이 저렇게 흘러가는구나, 나의 날들도 저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겠지요 . 어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충격적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뭔가 좀 稙嗔?기분이었습니다. 대통령 그만 둔 지 얼마나 됐다고, 비유해서 말하자면, 전직 대통령으로는 현역인데, 감옥에 간 것도 아니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입니다
.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거나, 죄가 있다거나 혹은 없다거나 하는 걸 다 떠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쿠데타나 IMF 같은 일로 정말로 나라를 말아먹은 사람들은 아직도 멀쩡히 큰 소리 치면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 최근에 대법원에서 존엄사를 허용한다는 판결을 내려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존엄사는 안락사하고는 다른 것인데요, 안락사는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죽여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게 하는 것인데 비해, 존엄사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기계장치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을 중단해서, 자연스럽게 죽게 한다는 것이지요. 안락사가 적극적으로 환자를 죽게 하는 것이라면, 존엄사는 치료를 중단함으로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 저는 기독교계 일각에서 존엄사에 반대한다는 말을 듣고 좀 의아했습니다. 존엄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기계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망하도록 두는 일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기계의 힘을 빌려서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쪽이 하나님의 섭리에 더 가깝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물론 수명 연장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해야지요. 그걸 하지 말아야 한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계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손에 맡기겠다는데, 기독교가 그걸 반대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거지요. 만약 존엄사에 반대한다면, 그래서 기계장치에 생명을 맡겨서 그 힘으로 살리는 게 하나님의 뜻이고, 기계 장치를 떼어 내는 게 살인이라고 하면,
생명 복제에 대해서도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것 역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생명을 연장하자는 것이니 말입니다. 존엄사를 반대하면서 생명복제에도 반대하는 건 자기모순입니다. 이건 기독교가 생명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어서 생기는 혼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건들이 가지는 의미가 다 다르겠지만, 이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생명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이 사는 것이고 무엇이 죽은 것인지, 무엇을 보고 살았다고 말하고 무엇을 보고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멀쩡히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은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인격도 인권도 무시당하고, 자유도 빼앗긴 채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은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살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은 과연 죽은 것인지 살아있는 것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니까, 결국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죽음 같은 상황이라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장 자체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용이 그랬습니다.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유서에 쓰여 있는 대로만으로 본다면, 그런 상황에서 계속 살아가는 걸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혹은 자살하기 전부터 이미 죽은 것일까요?
얼마 전에 자살한 장자연이라는 여자 배우가 있었지요. 한동안 온통 언론들에서 떠들어대더니, 이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잠잠해져버렸습니다. 유서가 있다고 하는데 전혀 공개되지도 않고, 유서에서 언급된 사람에 대해 입을 열기만 하면 국회의원이고 언론사고 할 것 없이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발됩니다.
결국 장자연씨를 자살로 몰고 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다른 딸 또래의 여성들을 농락하고 있겠지요. 관련된 사람들에게 대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본인이 아니라니까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고 재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났습니다. 그 사람들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만 감옥에 가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을 죽 지켜보면서,
과연 누가 죽었고 누가 살았나,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과연 살아있다고 말해도 좋은지? 죄를 짓고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이 과연 살아있는 사람인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구나 다 아는데, “피의자가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니까 아무 일 없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수사당국은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무엇을 보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있다 혹은 죽었다고 말하는 걸까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병에 걸려서 죽었답니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써주었고, 장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관에서 소리가 나더니, 관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아내가 깜짝 놀라서 가보니까, 남편이 살아난 거예요. 나 아직 안 죽었으니까 빨리 여기서 꺼내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내가 하는 말이, 아니 무슨 소리에요? 의사가 틀림없이 죽었다고 했단 말이에요. 의사가 죽었다고 했는데, 당신이 뭔데 살았다고 우기는 거예요? 당신이 의사보다 더 잘 알아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요, 하더랍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도 사는 것과 죽은 것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는 것이고 무엇이 죽은 것인지. 무엇을 보고 살았다고 하고, 무엇을 보고 죽었다고 하는 것인지.
공식적으로는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써주면 죽은 겁니다. 행방불명이 된 채로 오래된 사람은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안 써도 죽은 걸로 치지만, 그건 그야말로 죽은 걸로 치는 거지, 죽은 건 아니란 말이지요. 하지만,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것만으로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을까요? 죽었다 살아나거나 혹은 임사체험을 하거나 천국에 갔다 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과연 의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죽음만 죽음인거냐 하는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연세가 높은 노인뿐만 아니라, 갓 태어난 아기도 죽습니다. 그 때가 언제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죽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도 사실 별거 아닙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은 백오십년 안에 다 죽습니다.
그러니 차이라고 해야 백년 남짓인데, 적어도 몇 만 년이라고 하는 인류의 역사에 비해서 백년이라는 시간 차이는 차이도 아니겠지요.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모든 사람은 죽은 겁니다. 지금 살아있다고 하는 사람도 사실은 죽은 겁니다. 지금 살아있다고 하지만, 살아있는 지금과 내가 죽을 시간의 시차가 긴 역사에서 볼 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죽은 겁니다.
로마서 5:12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도 죽음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미 죽은 것입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확정판결을 받고, 집행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살아있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살아있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속에 죽음을 가지고 있으면 죽은 사람이고, 그 속에 생명이 있으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죽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생명만이 생명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사는 것만 사는 게 아닙니다.
성경은, 숨 쉬고 심장이 뛰는 생물학적인 생명보다 더 크고 중요한 생명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것을 영원한 생명,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영생은 시간적으로 한없이 계속된다고 해서 영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뿐만 아니라, 그 가치와 삶의 질에 있어서도 끝이 없는 겁니다. 영원한 생명은 가장 긴 생명이 아니라, 가장 높고 가장 귀하고 가장 풍성한 생명을 말합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영생이 없어서 죽은 게 아니라, 그 속에 죽음을 가지고 있어서 죽은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내일을 기다릴 자격이 있습니다. 살아있으니까요.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음이 정해져있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해서 죽는 게 아니라, 이미 죽어 있어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죽은 채로 사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죽는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소망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자기 최면이고 신념의 힘이지, 소망하고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가지는 소망은 살아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기 때문에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소망이지요.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은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생명이 있으니까 소망이 있는 겁니다. 살아있으니까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소망은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신념의 힘이나 긍정의 힘이 아니라, 생명이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으면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고, 영생이 없으면, 지금 당장은 숨 쉬고 걸어 다니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은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 영원한 생명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습니까, 혹은 죽어 있습니까? 혹시 죽어 있으면서도 살았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반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있다고 생각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오늘 성경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직접 증언하십니다. 우리가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는데, 하나님의 증언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신 증언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 증언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증언하시고 보증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결단코 죽은 사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영원하다!
무슨 말입니까? 바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우리 속에서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넣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생명이니, 예수를 우리 안에 모시는 그 순간, 그와 함께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큰 부자가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기를, 자기 전 재산을 그 집에서 가장 충성스럽게 일하던 종에게 다 물려주고, 자기 아들에게는 자기 재산 가운데 단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들은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들이 아니라 종에게 전 재산을 다 물려주나? 아무리 내가 미웠어도 그래도 아들인데, 아들이 종만도 못하단 말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유언은 유언 그대로 집행해야 하니까요. 아들이 고민 고민 하니까, 보다 못한 아내가 나섰습니다. 여보, 간단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고민해요? 한 가지만 선택해도 아버지의 유산 전부를 다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들은 귀가 솔깃해서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아내가 대답하기를, 그 종을 선택하세요. 종이 아버지의 전 재산을 가졌어도, 당신의 종이 되면 그 재산도 모두 당신 것이 되잖아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을 내가 가지면,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우리도 가지려면,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겁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내 안에 모시고 살면, 그분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역시 내 안에 있게 됩니다. 생명을 가졌으니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있으니 우리는 죽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성경은 못 박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은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늘 속이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으시는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변하고 달라지고 속이는 사람은 믿으니, 어리석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죽음과도 같은 절망과 아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어도, 마치 무덤 속과 같이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갇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때때로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낙심되어도, 때때로 우리 육신의 질병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받더라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 생물학적인 생명은 그칠 수 있지만, 그게 우리의 죽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살아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도무지 절망이란 없습니다. 우리에게 도대체 마지막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영원이라는 말에는 마지막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란 모든 마지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제한과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영원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일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아프고, 아무리 두려워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그래서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커다란 무덤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비정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살로 자신의 아픔을 호소한 힘없는 한 여배우의 음성을, 그냥 없었던 일로 간단히 묵살해버릴 정도로 암울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무덤도 우리를 가두지 못합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 눈 부릅뜨고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아프고 힘든 일이 있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너무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그건 죽은 사람들이나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무덤을 무너뜨릴 겁니다. 무덤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나오셨듯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무덤도 결국 문을 열고 우리를 토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소망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모든 죽음, 모든 악한 것들, 모든 부정한 것들을 다 쓸어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만 가득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서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으니 말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그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