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예수생명 선교 계22:1-22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륜과 섭리 속에 새 천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는 바야흐로 \'황금시대\'를 구가할 듯이 보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과 정보의 혁명, 생명과학의 실험, 갖가지 창의와 도전이 21세기의 벽두에 세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소위 21세기의 3D라고 부르는 디지털, DNA, 디자인의 세 가지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더욱 풍요하고 행복하며 건강 장수할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복된 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러한 시대에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말하거나, 사죄 구원의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시대착오의 사람으로 내몰리기 쉬운 말세지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 진리는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대 최고의 학문과 사상이 만발한 아테네의 거리에서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였을 때 헬라의 문화 시민들이 바울의 \'새 교\'를 기롱하였던 장면(행17:16-31)을 연상케 합니다.
\"가장 새로된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았던\"(행16:21) 아레오바고의 아덴 사람들처럼 \'범사에 종교성\'을 부여하는 풍조와 \'알지 못하는 신\'과 우상들을 위한 제단을 쌓아 가는 혼란이 거듭되는 때인 것입니다.
바울이 초대교회 시대에 펼쳤던 예수 생명운동을 이제 다시금 맹렬히 전개할 시점에 도달하였음이 분명합니다.
21세기는 분명히 \'예수 생명 운동\'의 세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전국교회가 \'고려신학교 주일\'을 지키며 신학교를 기억하고 그 사명의 귀중함을 되새기는 복된 날입니다. 유일한 생명수이자 생명나무이신 예수에 대해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말씀에 의지하여 \'21세기 예수 생명 운동\'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간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자기 마음대로 제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자주장 하에 모든 인생들은 이 땅에 태어났고, 그 분의 주재 하에 쓰이다가 결국 본래의 흙으로 되돌려지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주어진 생명과 호흡의 시간과, 누릴 수 있게 된 만물도 이 모든 것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이 나그네 여로에서 향유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순간적인 것입니까? 6000년의 인간역사를 살고 갔던 수많은 영웅호걸, 재사가인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참으로 인간의 생명은 짧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에 대해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시90:9)라고 절절히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인생이 유한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기전 2000년경에 동방에 살았던 의인 욥은 이에 대해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나의 날은 베들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욥7:6-7).
유한한 생의 애통함을 잘 묘사한 곳은 욥기 14장외에 달리 없을 것입니다. 꽃의 쇠함과 같고 그림자 같은(욥14:1-2) 인생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짤막한 경구로 이런 말씀을 새기고 있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그야말로 구름 같은 인생, 한낱 그림자 같고 꿈같은 인생마저 수고와 슬픔, 그리고 험악한 일들로 채워질 뿐인 것이 유한한 우리 인생의 본 모습입니다.
애굽의 바로를 만난 야곱은 나이를 묻는 그에게 \"내 나그네의 세월이 일백 삼심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창47:9)라고 회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중에 실려있는 다음구절은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라는 인생의 허무를 또렷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젊은 시대는 이런 말이 별다른 의미 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그만한 세월을 살아본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무상한 인생이니 어쩌니 하는 것에 대해 사색하거나 해답을 구하는 일 자체에 무관심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젊은이들은 \"세월을 아끼라\"(엡5:16)는 말씀을 그저 어른들의 잔소리쯤으로 넘겨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의 유한성이나 허무함에 대해서는 동서양의 모든 종교나 철학 사상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심하게 지나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갓 생의 정서로써 표현하고 말거나, 절망과 불안으로 아예 회피할 수만도 없는, 이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해 답하고 있는 진리가 있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세상은 여전히 혼잡 속에 방황하며, 허락된 시간과 생명과, 위임된 소유와 존재를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의 진리가 그저 시편 기자의 노래처럼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89:47)라는 한탄에 머무는 한 그것은 유대교나 마호멧교보다 나을 것도 없고, 도교나 유교, 불교나 힌두교 등과도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현대 문명의 어떤 이론이나 사상보다도 나을 것이 없을 터이므로 어느 종교학자의 말처럼 기독교가 쇠퇴하여 없어질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21세기에 사람들이 찾아가야 할 것은 디지털 혁명이나, DNA 실험이나 디자인 개발에 의한 생활의 편리함이나, 복지나 장수촌 건설이 아니라,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리 앞에 놀라며, 그 하나님의 비밀한 생명 진리를 알아가고, 하나님의 진리이신 예수 생명 운동을 전개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는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명을 만드신 분이시요,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다고 창세기 1장 28절에 일러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창설하여 그 땅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게 하셨다고 창세기 2장 8-9절이 밝혀 놓고 있습니다.
첫사람 아담은 동산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으며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게 지어진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1) 죄의 값은 사망
그런데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선악과 언약(창2:16-17)을 불순종하는 범죄 행위를 함으로써 모든 인류가 죄의 삯인 사망의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아무라도 예외 없이 죄값인 사망의 저주의 굴레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인애하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죄인된 인생에게 양식을 주시며, 심판의 날까지 율법아래 살도록 보존하심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명령과 약속을 저버리고, 자의 자행하며 죄악의 종노릇을 하다가 수없이 많은 징벌을 당했습니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대표되는 각종 재앙이 인류사회를 엄습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위에는 전쟁과 자연 재해와 질병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과 그로 인한 저주와 징치 아래 고생하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때마다 끊임없이 회개하여 돌아오도록 하나님은 예언자들의 말로 선포하였습니다.
2) 돌아오라 부르심
하나님의 것인 인생이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라는 지엄하신 명령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영원히, 주님 오실 때까지 유효한 축복의 명령입니다.
구원의 메시아이신 예수는 바로 이 위대한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 고난으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려졌느니라\"(호14:1).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2-13).
하나님의 부르심, 구원에의 초청입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렇듯 간절하게 책망과 경고와 함께 선민 이스라엘의 회심을 촉구하였습니다. 결과는 완악한 인생의 불순종과 그로 인한 멸망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인생에게는 그 존재 의미가 결국 허무와 절망입니다. 평생 썩을 양식을 위해, 한낱 썩어짐의 종노릇만 하다가 안개처럼 사라질 무가치한 인생, 불쌍한 영혼들이 세상에 가득차 있습니다. 구원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러한 인생의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수이자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나셔서 하나님의 본체를 알 수 있게 하신 기적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마11:5,눅7:22) 이적과 기사의 놀라운 일들이었습니다.
4)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던 이가 구원역사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단지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조건 한가지로 영생(요3:15-16)하게 되는 은혜의 새 언약이 성취된 것입니다. 육신에 거하며 땅위의 것만 찾던 자들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의 부활 영생을 발견하게 하신 분이 예수이십니다.
1세기말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계시하셨던 주님은 그이 재림 심판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다시금 천국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예수를 믿는 신자로서 이 환상적 장면이 자기 삶의 비전이 되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소경일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 성도는 또한 성령의 일깨우심에 의해 천국을 바라보며 걸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천국 문에 이르도록 구원의 서정을 가는 동안 기쁨과 소망, 찬양과 감사의 경건생활을 지속해 줍니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은 사실 앞에 죽었을 죄인 다시 살리사 새 생명 얻게 하신 주님 앞에 감격하며 눈물짓는 \"예수 생명을 받은\" 거듭난 생을 살게 됩니다. 상실한 생명이 회복되어 예수 생명의 길, 구원 진리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3. 성도는 복음 전파의 사명 때문에 삽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결국 죽기 위해 헛되이 삽니다. 죽기 위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죽기 위해 병 고치고, 돈벌고, 즐기고, 죽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갑니다. 죽고 마는 그것이 인생의 도착점이요, 종착역인 줄로 압니다. 심판과 지옥 영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신자들은 비록 여전히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로운 성결의 삶으로 나아가므로 생의 목적과 지향점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생업의 목표가 생계나 일신을 위한 것에 머물지 않게 되며,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것으로 일대 전환을 하게 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6:27).
이제 영생 양식이신 예수를 위한 삶으로 바뀐 성도는 주님의 최대 명령을 따라 삽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새 삶은 전도의 사명, 선교의 목적으로 생의 행로가 획기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생명수 강물이 흐르는 길입니다. 만국을 소성케 하는 생명의 실과가 달린 생명 나무의 길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수 강가 생명나무의 회복인 것입니다.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하였고,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영어를 왜 배우고 있습니까? 외국어를 열심히 배워 국제 무역을 잘해서 돈을 잘 벌어 하나님 나라 사업에 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과 재능으로 하나님 영광 위해 살라고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컴퓨터는 왜 배웁니까? 세계로 네트워크된 인터넷 공간을 최대 활용하여 GOOD NEWS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의 영생 복음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성도의 사명은 복음 전파입니다. 예수 생명을 얻은 자의 삶의 목적은 택자 구령운동입니다.
성도는 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계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어집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 되심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21세기에도 하나님은 예수 생명 운동을 명하고 계십니다. 먼저 믿고 진리를 깨달은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 생명을 더욱 힘쓰라고 재촉하십니다.
고려신학교는 바로 21세기의 예수 생명운동의 보루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목사가 나왔고, 전도자가 양성되었으며, 또한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선교사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의 일꾼인 선지생도들이 훈련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전파에 앞장서는 효율적인 방법은 신학교를 통해 예수 운동의 지도자를 배출시키는 일입니다.
전국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물질의 후원으로 고려신학교는 21세기 세계를 선도할 개혁주의 신학교, 예수 십자가의 신학교, 구속운동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고려신학교는 명실공히 21세기 예수 생명운동의 산실이요, 요람이며, 목회와 선교와 신학의 본부로 기틀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이제는 내실을 다지며 조국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웅비할 때입니다.
예수 세계화 운동의 전초 기지가 되며 정병의 양성소가 되도록, 전국 교회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과 사업과 직장이 고려신학교를 통한 예수 생명 운동으로 말할 수 없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새로 맞이한 21세기는 이전 세기보다 더욱 복음의 생명력을 요구하는 시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만이 영생의 유일한 통로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사는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들입니다.
고려신학교는 오직 성경진리만을 가르치고 배우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살고자 하는 주님의 제자 훈련소임을 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마다 기도로 지원하는 선지 생도들이 생기고, 섬기시는 교회마다 고려신학교를 후원하는 모임이 커지며, 각 노회마다 신학교수들을 책임지고 뒷받침하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