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빛을 얻으려면

생명의 빛을 얻으려면?/요3:20

생명의 빛을 얻으려면?
요3:20





유대인들의 절기 중에 초막절(草幕節)이라는 아주 중요한 절기가 있습니다. 모든 추수가 끝난 다음 한 주간 동안 느긋하게 행하는 풍요로운 축제로서 오늘날 우리의 추수 감사절 정도에 해당되는 절기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기간 동안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약 20 마일 경내에는 광야든 사막이든 오두막이나 천막을 치는데 심지어는 길거리나 성전 부근까지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절기 때는 12세 이상 되는 온 가족들이 천막이나 오두막에 거하면서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일주일 동안 생활을 하되 집에 들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토론하며 예배드리고 또 기도 시간을 갖는 등 철저한 종교의식을 지닌 중요한 행사로 진행하되 이 기간 중의 신앙 교육의 주제는 주로 ①만나와 메추라기 ②조상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일 ③불신앙적인 일 ④반석에서 물이 솟아난 일 등 주로 율법서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모이는 군중의 수도 대단하였다고 하는데 무려 한 30만 명 정도의 군중이 각 지방으로부터 와서 회집 되었다고 하니 대단한 인파가 아니겠습니까?
이 절기의 일주일 동안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은 두 가지의 특별한 행사 즉 실로암에서의 물긷는 일과 성전에서의 등놀이(불꽃놀이)를 행하게 됩니다.
이처럼 초막절을 두 가지 행사의 축제로 행하는 의도는 조상들의 광야생활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그때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다소나마 체험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만큼 우리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서 당시의 일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실로암으로부터 물길어 오는 행렬이 있습니다.


매년 이 절기를 맞이하면 예루살렘에 모인 수십만 유대인들은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10리밖에 있는 실로암 못으로 물을 길러 행렬을 지어 갑니다.
이때 제사장들은 순금 항아리를 들고 가서 실로암의 물을 담아 조심스럽게 들고 다시 긴 행렬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오는데 그때 제사장들은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시 12:03) 라는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은 찬양과 감사의 내용이 담긴 시편 113편과 118편 두 편을 찬양으로 합창하게 되는데 이렇게 두 편으로 나뉘어서 찬송을 부르며 물 항아리를 가지고 오는 긴 행렬이 성전으로 들어오면 그 물을 제단에다 붇는 또 하나의 예식을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세가 광야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반석을 치게 한 놀라운 역사를 기념하는 의식으로서 물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감격스러운 찬양과 많은 군중의 함성이 있는 이 장소야말로 감격의 물결과 영적인 은혜의 충만함이 가득차 있는 곳 아닙니까?
바로 이곳에서 주님은 그 집회가 마치는 날 이렇게 외치시고 있는데 요 07:37,38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아무리 감동적인 집회들이라 할지라도 일시적으로는 그들의 주린 영혼을 채울지언정 영원한 갈증은 채워 주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성령님이 아니고는 그들의 영적인 갈함을 채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서 시편 기자는 인생의 갈증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시 42:0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명절 끝날: 초막절은 한 주간이지만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켰기 때문에(레 23:36; 민 29:35) 명절 끝날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이 큰 말씀은 메시야로서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의 권위는 사 55:01절이나 마 11:28 말씀과도 같습니다.

사 55:0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러므로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이 말씀은 주님만이 인류의 갈증을 해갈하여 주실 수 있는 분임을 확인하게 되는 말씀으로서 적어도 한 번만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원한 물을 사모하고 생각하라는 내용으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와 나를 막론하고 그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목말라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돈이 없어 갈증하고, 명예와 지식에 목말라하고, 사랑에도 갈증을 느끼고, 때로는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에 무작정 목말라 할 때도 있습니다.

요 0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쉬고 계시던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이 있었지 않습니까? 육신이 목말라 우물을 찾아온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더 깊은 인생의 갈증이 있었음을 주님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요 0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너희가 마시고 또 너희 조상들이 마신 물은 먹어도 다시 갈하게 되지만 내가 주는 물은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주님께서는 대화 속에서 여인의 아주 민감하고도 아픈 부분을 끄집어내시는데 그것은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별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는 문맥상으로는 알 수가 없으나 한 마디로 사생활이 좀 복잡한 여자인 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다섯이나 거치면서도 마음의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과의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주님이야말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생명의 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도 영적인 목마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영원한 생수이신 주님을 메시야로 알아보고는 물동이를 버려둔 체 동네로 달려가서 내가 만난 참 생명의 물이신 주님을 와 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도하게 됩니다.
주님은 물을 보고 신령한 물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도 이와 같이 집을 보면 영원한 집을 생각하고 옷을 입으면 의의 옷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말씀을 들으면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야말로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 등놀이 행사와 예수님의 메시지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행사 기간의 마지막 즈음에 특별히 예루살렘 성전 앞뜰 여인의 뜰로 불려지는 곳에는 높은 대가 세워지고 그 위의 네 개의 금촛대에 등불이 켜지게 됩니다.
당시에는 전기가 발달되지 않아 밤이면 그저 컴컴한 세상 아닙니까?
그런데 대형 등불 네 개에 불이 밝혀지니 그 불빛은 예루살렘 온 도시를 환하게 비추면서 그 밝기로 인해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그 불빛 아래서 바느질까지 했다고 합니다.

등놀이 행사란 이렇게 밝은 불빛 아래서 제사장과 바리새인 또 종교 지도자들이 춤을 추고 일반 백성들은 빙 둘러앉아서 구경을 하다 마침내 어울려지게 되는데 이 행사의 의미는!
①마음의 빛 도덕의 빛으로 임하는 율법의 빛을 찬양하며,
②하나님께서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 빛으로 시작하셨으므로 빛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③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보이시고 인도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초막절 절기 행사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날인 안식일 저녁 네 촛대의 불이 가물가물 꺼져 가고 이제는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아주 한적하고도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갑자기 군중들을 헤치고 여인의 뜰의 한 복판에 들어섰습니다. 잠시 긴장이 감도는 순간 드디어 무리를 향해서 외치기를,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초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 도성을 비추고 있던 인공적인 모든 불빛이 사라져 가는 극적인 순간에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어쩌면 꺼져 가는 등불과 불기둥을 다시금 연상하였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러면 이 말씀을 선언하신 주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으로서 지금 주님 자신이 바로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빛을 기념하는 등놀이의 마지막 시간에 옛날 그 시절의 불기둥만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빛과 또한 미래의 빛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빛은 그 근원이 본래 하나님이시므로 그 빛을 우리가 볼 수 없으나 그 생명의 빛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빛 속에 살면서도 그 빛을 모르고 있는데 왜 그렇습니까? 죄와 허물로 영안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길거리에 소가 많이 다니고 있는데 굶어 죽으면서도 소가 신(神)이라고 해서 내다 버릴망정 먹지 않고 있음을 볼 때 종교적인 어두움이 이렇게 답답하게 합니다.

멀리도 말고 우리 주변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볼까요. 얼마나 어둡기 짝이 없습니까?
무슨 일만 있으면 북어나 돼지 머리를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좋은 것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북어요 돼지 머린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유를 물어 보면 그저 한잔하는 것이 좋아서 그렇다고 얼버무려 버리는데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식적으로나 지혜로나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나를 따르는 자: 사병이 지휘관을 따르는 것과, 종이 주인을 따르는 것과, 제자가 스승을 따른다는 의미하고도 꼭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이와 같이 따라 갈 때 세상의 빛으로서 세상 곳곳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 내시는 주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곳,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을 비추어 갈 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의 빛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빛, 생명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며 또 풍요롭고 하는 빛이라는 말이지요.
어둠 속에 있는 생명은 습기가 차 있고 곰팡이가 피어 있어 죽어가며 힘이 없으나 빛 아래 나오기만 하면 그 생명이 소생하게 되듯이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빛의 세계를 알고 나면 그 순간부터 어둠의 세계를 접고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등놀이가 다시 불타 올라 찬란하고 밝을지라도 그 불꽃이 사라지면 다시 어두움이 계속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세상의 불꽃놀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무대로 해서 순간적인 아름다움으로서 찰나적으로 우리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가 곧 꺼져 버릴 불꽃들임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귀한 빛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요 0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진리를 좇는 자는 언제나 빛을 사랑하고 빛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는다는 말로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빛가운데 거하는 이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좇는 다는 것은 계속해서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즉 신실하여 계속적으로 이 빛가운 데로 걸어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그 삶은 복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성경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인도를 구하며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걸을 때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나의 것이 되며 이 빛은 여러분을 위한 빛이 됩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밝은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며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여전히 홀로 임을 느껴야 하는 우리들, 그러나 이 고독과 고통 속에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그분과 함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