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성공하는 사람이 됩시다 민20:10-13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항상 성공적이며 자랑스러운 삶을 살수 있다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만은 실패한다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경주장에서 달음질할 때에 출발은 좋았는데 결승점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아깝게도 상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인생도 그러합니다. 출발이 좋았으면 마지막까지 좋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마음속 깊은 곳에 애국 애족의 마음으로 불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살인까지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호렙산에서 불 가운데서 부름을 입었고, 민족과 함께 광야 길을 걸어왔습니다. 동족들의 수많은 원망과 불평을 들으면서도 잘 참고 견디어 왔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게 되면 그는 실패하는 한 장면이 나옵니다. 곧 므리바 사건입니다. 오늘도 백성들은 원망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원망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에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고, 그 성격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한 두 번 듣는 것이 아닌데 또 원망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였으면 좋았을 것인데 모세도 사람인지라 그리고 너무나 피곤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였으나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중 앞에서 아론과 함께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함께 마시울지니라\\\\\\\" 하였습니다.(8절) 모세는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고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이 나오므로 짐승과 회중이 함께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12절의 말씀을 보세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광야 길을 40년간 걸어온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어갈 수 없다는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비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모세의 실패를 계감 삼아 우리는 마지막까지 성공하고 후회하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12절)
믿음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겉으로만 믿는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부터 믿어야 합니다. 병도 겉의 병보다 무서운 것은 속병입니다. 마음에 병들면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링컨 대통령이 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했었답니다. 교만한 병원장은 링컨에게 자신의 의술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술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부상병들의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말하고 있을 때 한 군의관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병원장에게 보고하기를 며칠 전에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병사가 방금 건물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병원장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의술만으로 사람의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온전한 의술이란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병원장은 얼굴이 붉어졌답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할 때에 헌금을 잘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봉사를 한다는 것만으로 믿음이 좋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른 평가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에 대하여 말할 때에 전인건강을 말하는 것 같이 신앙도 온전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전인건강이란 무엇입니까? 몸도 튼튼하여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마음에는 항상 기쁨과 만족이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몸은 건강한데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병이란 고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장애자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에도 온전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병과 장애는 다릅니다. 병 (Disease 디지즈)은 지금 아픈 상태입니다. 앞으로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Disorder 디스오더)는 나을 수가 없습니다. 병보다 장애자가 더 불행합니다. 마음의 병은 노력하면 고쳐질 수 있는데 장애자는 고칠 수가 없다는데 불행한 것입니다. 이 같이 영적으로 믿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지려고 하면 먼저, 마음에서부터 불신앙적인 요소가 없어져야 합니다. 영적으로 병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편리주의입니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야말로 얼마나 편리합니까? 여행이란 것은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라도 예전에는 배를 타고 간다면 몇 달을 걸리던 것이 지금은 몇 시간이면 갈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삶의 방법도 너무나 편하여졌습니다. 그런데 더 편하게 살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먹는 것도 편리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60년대 초에 라면이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요즈음에는 컵라면 그것보다 더 빨리 먹을 수 있는 1분 라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편리주의가 신앙생활에 적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안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둘째, 이기주의입니다. 예전에는 사상을 위해 목숨을 걸었었는데 지금은 실리가 되는 일이라면 공산당도 좋고 적도 친구가 되자고 하는 세상입니다. 대신 손해보면서 일은 하지 않겠다는 사상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셋째, 적당주의입니다. 외골수로 진리 보수를 고수하는 시대가 아니라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목적도 없고 방향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불신앙을 갖고 있으면 표현도 불신앙이 됩니다. 믿음을 갖기 위하여, 1. 마음에 의심을 추방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눈으로 사물을 보면 다 의심스럽습니다. 하루는 어떤 나무꾼이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리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도끼가 보이지 아니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웃집 청년을 보니 수상쩍어 보입니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허둥지둥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자꾸 숨기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구나 범인은 바로 너다 그리고는 자나깨나 그 청년의 손버릇이 나쁜 것을 잡을 생각하고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헛간에서 도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웃집 청년이 도적이 아닌 것이 드러났고 그 뒤로 보니까 그 사람이 도적같이 보이지 않더랍니다. 예수께서 이따금씩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하십니다. 의심을 버려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의심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다 의심스럽게 보입니다. 2. 염려입니다. 마음속에 자꾸 염려하게 되면 신앙이 없어집니다. 마음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우리 나라의 고통 지수가 OECD 국가 중에 최고라고 합니다. 무려 209라는 수치랍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으니까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왜 실제 상황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도적질하는 것, 간음하는 것, 살인하는 것, 이런 것이 죄라고 한다면 염려하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성결하게 살려고 하는 것처럼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하면 평안이 없어집니다. 마음도, 발걸음도, 무겁게 만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는 어떻게 할까? 라고 걱정할 때 우리 아버지는 내가 책임지마 내게 맡겨라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염려는 신앙의 적이 됩니다. 3. 불평입니다. 신앙의 마음의 적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을 감사로 바꾸어야 합니다. 적극적 사고 방식을 강조해온 필(N. V. Peale) 박사가 하루는 기차를 타고 여행하던 중이었답니다. 그의 맞은 편에 어떤 부부가 앉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불평을 시작하더랍니다. 좌석이 불편하고 시트가 지저분하다. 청소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승무원이 왜 그렇게 불친절하냐. 그러다가 그의 남편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답니다. 저는 변호사이고, 저의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필 박사가 물었습니다. 무슨 제조업을 하나요? 그때 남편이 웃으면서 불평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자가 되면 믿음이 생기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에서부터 불신앙의 적을 몰아내고 입으로도 고백해야 합니다. 말할 때마다 믿음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잘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어려움이 다 해결될 것입니다. 입으로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라는 사람을 부르시어서 온전한 믿음의 제자로 삼으실 때까지의 다섯 단계가 있었다고 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을 갖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예수님을 만나는 단계입니다. 예수에 대하여 좋게 들었다.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백의 단계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예수는 내 구주요 주님이십니다 라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주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에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사랑하기에 주님의 양을 치고 돌보는 것입니다. 넷째 단계는 증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단계는 순교의 단계입니다. 로마에서 도망하다가 주님을 만나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도미네 내가 로마로 간다라고 하십니다. 주님 로마는 왜 가십니까? 네가 버리고 온 십자가를 내가 지러 간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눈물로 대답합니다. 주여 안됩니다. 안 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순교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것이 온전한 믿음의 단계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안 된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동하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실패하지 아니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결과가 잘되면 성공이고 잘한 것이라고 칭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기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세가 반석을 쳤습니다. 결과는 물이 나왔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을 위하여 물을 냈으면 잘한 것 같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여기에 무엇이 하나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단어가 있는데 우리가 라는 단어뿐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물을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하였습니까?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하철선교회에서 글로벌케어의 주선으로 베트남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한참 가서 보니 동굴이 있습니다. 한 곳에 서서 누가 노래 부르자는 말을 한 일도 없이 한 분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주님의 솜씨 위대하도다♬ 라고 찬양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목사님들이 함께 제창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먼저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을 노래할 수가 있었다는 것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 자세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낸 것은 모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고 영광을 돌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그의 과오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하이든의 위대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파서 객석에 앉아있었습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수많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지휘자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그러자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객석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입니다. 저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하이든을 바라보며 다시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하늘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라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어떠하였습니까? 그분의 것을 갖고 내 것처럼 한일이 없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었습니까? 자기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지는 않았던 가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라는 것 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기에 교만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일인데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감사하고 이 물을 마시도록 합시다 라고 하였더라면 얼마나 멋있는 장면이 되었겠습니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일을 한 분들을 보면 대개 협력하는 이들이 훌륭함을 보게 됩니다. 이 분네들은 잘한 것은 제가한 것이 아니고 우리 지도자 누가 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다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부하가 있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말해도 다른 이들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잘된 것에 대하여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말하게 됩니다. 잘못된 것에 대하여는 앞으로 더 좋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 더 하라고 지시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우리가 왜 예배 드립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서입니다. 봉사도 그러합니다. 자기 만족을 얻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너무나 잘 믿고 있습니다. 얼마나 잘 믿는지 설거지하면서도 그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싱크대 옆에 성경 구절을 붙여놓고 암송하면서 일합니다. 하루는 설거지하면서 싱크대 옆에 붙어있는 성경구절이 \\\\\\\"그런즉 너희가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이 성경구절을 암송하다 보니 내가 지금하고 있는 설거지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인가?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시 깨달았습니다. 심방, 전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방바닥을 닦으면서도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찬송을 부르면서 일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너무 깊이 빠져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 자신만 위해 살기도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야구, 농구 외에 미식축구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이 경기가 시작되어 수 만 명의 관객들이 모여서 함성을 지르고 굉장한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 번은 미식 축구의 결승전 티켓을 구한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움에도 한 청년이 티켓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먼길을 차를 몰고 와서 제 시간 안에 입장하여 좌석표를 보니 축구장 맨 끝 뒷부분이었습니다. 너무 멀어서 백 넘버도 보이지 아니하고 그럽니다. 싼걸 샀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어 자리에 앉아서 보니 저 앞자리에 빈자리가 있습니다. 다가가서 옆에 있는 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여기 자리 있습니까? 앉으세요 너무 감격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여기 이 자리가 어떻게 하여 비어있습니까? 제 아내의 자리입니다 그럼 왜 안 오셨습니까? 자리를 예매하여 놓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친구든지, 친지를 데리고 오시지, 이 비싼 자리를 구해놓고 혼자 오셨습니까? 예 그들은 모두 장례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장례식입니까? 죽은 제 아내의 장례식이지요? 그러더랍니다. 얼마나 미쳤으면 자기 아내의 장례식도 모르고 미식축구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남의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자리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알고 자기 자리를 바르게 지킬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승리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 보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즉 순종해야 합니다.(민 20:24)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더라\\\\\\\"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렇게 아쉬운 장면이 있을 수가 있나? 싶은 마음입니다. 민족과 함께 고난의 길을 40년간 걸어 왔습니다. 그는 왕좌를 포기하고 사명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신 것을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잘하더라도 끝까지 잘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잘 순종하고 얼마나 잘 참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거역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첫 출발이 중요합니다. 출발이 늦어지면 따라가기가 여간 힘듭니다. 그러나 출발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중도에 넘어지면 안 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실수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끝까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틀림없이 성공자의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면 자기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고싶은 욕구가 있어도 아니다 라고 하면 아닌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는데 나는 이것이 맞습니다 라고 하는 자기 주장이 있으면 결과는 거역이 되고 맙니다. 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들은 므리바 사건을 기억하면서 아쉬운 패배자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순간마다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죽고 내 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매 순간마다 전적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주의 거룩한 뜻에 100% 순종하면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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