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공 기준은 믿음에 있다 수2:1-21 김학중 목사
할렐루야! 새안산교회 김학중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디에 계실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십니까? 미국의 기업 창의력 전문 컨설트인 찰스 칙 콤슨 씨가 그 워크샵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떠오를 때에 관해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더군요. 10위가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9위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떠올랐다. 8위는 자다가 불쑥 깨었을 때이고 7위는 운동을 할 때다. 6위는 여유롭고 평화롭게 책을 읽을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5위는 따분하고 지겨운 회의 중에, 4위는 수면 직전과 직후에, 3위가 출근할 때, 2위는 샤워나 면도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망의 1위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가장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성공을 이루고 성공 기준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호수아 2장 1절부터 21절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공 기준은 믿음에 있다 라는 말씀으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류대로 끼리끼리 모인다는 것이지요.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낚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여서 하는 말도 온통 낚시 이야기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하는 사람과 만납니다. 성공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나누고 이야기합니다. 서로에게 성공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믿음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야 믿음에 대한 더 열정적이고 믿음에 대한 것을 한 가지라도 더 배우게 됩니다. 믿음에는 거룩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절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바울을 보고 염병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강력한 믿음의 전염성이 표현된 말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있으면 그 믿음이 전염됩니다. 따뜻한 불가에 있으면 그 온기로 온 몸이 따뜻해지듯이 믿음의 사람과 가까이 하면 믿음의 전류와 파장과 온 뜨거움들이 전달되어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십자가와 같습니다.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함께 수평적인 인간과의 관계가 확실해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혼자서 성경공부하고 혼자서 기도해도 믿음이 생겨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생성됩니다.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할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믿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자들의 모임을 강조하고 서로라든가 피차라든가 하는 관계로서의 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들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피차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이른바 믿는다고 하는 신자들 중에서도 부정적인 비관주의자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부정적인 비관 주의자들입니다. 끊임없이 비난하고 불평하고 불만하는 무리 속에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비성서적인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게 됩니다. 싱싱한 사과 10개와 싱싱하지 않은 사과 1개를 바구니에 담아 오랫동안 함께 보관해 둔다고 합시다. 얼마 후 우리는 나머지 10개의 사과도 싱싱하지 않은 1개의 사과와 더불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싱싱한 사과가 많아도 썩은 사과 하나만 들어가면 나머지 사과도 결국은 썩은 사과와 같은 운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24절, 25절에 보니까,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여러분, 무리의 법칙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무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도 믿음이 없는 자들을 내보내신 후 역사를 행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무리들 가운데에서는 기적을 베푸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맥 밀러는, 빛과의 교제는 빛을 주고 위대함과의 친교는 위대함을 일으키며 영적인 것과의 접촉은 영성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믿음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믿음의 무리,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이것이 자신에 믿음을 관리하는 첫 걸음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꿈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당장 현실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장차 이루어질 어떤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지만 미래 지향적입니다. 믿음은 꿈과 함께 가는 게 믿음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위대한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장차 되어 질 일을 보는 눈입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환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길을 섭리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자신이 버림받고 오해받은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20년 전에 자기들이 팔았던 요셉임을 알고 두려워하는 형제들에게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 형제들이 요셉을 판 일을 하나님의 섭리의 안목에서 말합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환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환경에 순종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성공 기준에 맞는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하나님의 성공 기준을 위해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냐? 첫째로 행함으로 이어진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케롤 쉐퍼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캐롤 쉐퍼는 5년 동안 10만 달러에 달하는 상을 받아 당첨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여인입니다. 캐롤은 지금까지 1천 여번의 콘테스트에서 1백번이나 당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콘테스트에서 당첨된 것이 행운의 결과만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남과 달리 창조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왔고 콘테스트의 지시를 정확히 따라 왔다. 나는 행운만을 전적으로 요하는 복권은 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생각하는 자만이 행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는 성공에 공짜가 있을 리 없습니다. 성공을 하고 싶다면 공짜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짜를 기대하는 마음으로도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이 이룰 수 있는 성공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기생 라합을 보면서 우리는 자칫 운이 좋은 여인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 믿음으로 성공에 이른 여인이었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최고로 신뢰하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에서 믿음 장 하면 히브리서 11장을 듭니다. 신앙으로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 그 신앙의 역사를 만든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라합이 끼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보십시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그런 말이 있습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하는 결단의 행위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믿었기에 정탐꾼을 영접하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만일 그 정탐꾼,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숨겨준 것이 탄로나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 주변의 모든 동족들로부터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과감한 결단을 하도록 만든 것,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그녀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믿음이 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증언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라합을 소개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것은 26절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믿음을 모범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낸 사람의 예로 라합을 든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정탐꾼을 숨겨주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라합은 어떻게 해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여호수아 2장 10절의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라합은 본래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소식조차 마음대로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떠돌아다니는 소문처럼 들린 소식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고 계시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행진시키시고 계시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우주의 창조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계신지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만큼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지식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믿음이 중요하며 믿음의 분량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십시오. 대부분의 사람은 출세를 원하고 출세하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그렇게 큰 출세를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출세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그는 빈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전국 시대에 영주인 오다노부나가의 휘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신발지기였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이 하찮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발을 지키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제일 가는 신발지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제일 가는 신발지기가 되려고 노력하던 중, 어느 추운 겨울날 영주인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에 끼고 몸으로 덮여 놓았습니다. 그 정성이 노부나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 놈은 쓸 만한 하인이구나 그렇다면 이 번에 한 번 말지기를 시켜 보자’ 신발지기에서 말지기로 승진한 히데요시는 기쁜 마음으로 아무도 할 수 없는 훌륭한 말 지기가 되어야지 하고 말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말을 끌어내라” 한 밤중에라도 노부나가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는 즉시 달려 나왔습니다. “네, 히데요시가 말을 대령했습니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손질이 잘 되어 있다가 수족처럼 움직이는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좋다. 이 번에는 회계 책임자의 일을 한 번 맡아보거라” 이렇게 하여 말단의 신발지기로 들어가 말지기, 회계 책임자를 거쳐 마침내 일본 전국을 통일하여 최고 통치자가 됩니다. 히데요시의 출세 비결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으뜸 정신이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면 그것보다 더 큰 것이 되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물론 이 히데요시의 그 독재욕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동경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가 삶에 충실했다고 하는 한 단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맡은 일을 하찮게 여기고 대안 제시도 없이 불평 불만이나 늘어놓는 사람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 진 일이 무엇이든 최고가 되겠다는 으뜸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만 성공은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라합의 믿음이 바로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단하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하나님 편에서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녀가 정탐꾼을 숨겨주었다는 사실이 적발되면 그녀는 민족의 반역자로 규탄 받을 것이며 동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자기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편에서 신앙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여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기로 각오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만일 중동의 국가들처럼 예수를 믿으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하고 승급하지 못하고 혹 내가 사업을 해도 사업의 장소가 제한되는 그런 사태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온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그래도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만일 라합과 같은 이런 시험이 우리에게도 주어진다면 우리는 얼마만큼 이 신앙의 결단을 지키는 삶 속에서 제자의 값을 지불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하시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저에게 물어보면 저는 자신 있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긍정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여 쓰레기 더미와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장미꽃과 같은 창조적인 결과를 얻습니다. 몇 해전 전 인류는 미국에서 발사한 우주선의 고장난 파편이 어디에 떨어질 것인가 하는 스카이랩 공포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측정에 의해서 밝혀진 바로는 스카이랩의 파편이 호주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 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호주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로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카이랩의 파편이 만일 내 재산과 토지 위에 떨어진다면 많은 손실을 보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떨었고 또 다른 한 부류는 스카이랩의 파편이 우리 토지 위에 떨어지면 아주 훌륭한 우주의 기념품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일간지는 1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 걸고 스카이랩 파편을 주워 오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알렸습니다. 그 결과 호주의 한 젊은이가 그 파편을 주워 그 상금을 탔다고 하는 외신 보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똑같은 현상 앞에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일에 긍정적인 태도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구원자 예수님을 모심 자들이므로 최악의 경우에도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절대 긍정적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경우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죽음보다도 더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주안에서 죽어도 복된 존재들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을 원하는 자마다 안으로는 기뻐하고 밖으로는 감사하고 위로는 기도하는 전천후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확신에 찬 신앙고백이 있게 해야 합니다. 저는 저에게 나름대로 성공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노하우를 찾으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들은 많은 시행착오와 연구 학습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것이므로 남다른 성공의 지혜와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들에게서 성공의 모범 답안을 배워야 합니다. 성공 모델 없이 스스로 개발해 낸 방법은 대부분 그 효과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효과가 이미 증명된 성공 방법들을 활용하여 최단시간 내에 최대의 효과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더욱 새롭고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확신에 찬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확신에 찬 사람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확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다고 로마서 4장 21절에 기록합니다. 믿음의 대명사격인 바울도 디모데후서 1장 12절에, ‘고난받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2장 8절, 9절을 보십시오. ‘라합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실 줄을 내가 아노라’ 그녀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듣고 믿음으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내가 압니다. 어떤 사건에 관해서 믿음으로 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영생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말과 “하나님이 나에게 영생을 주신 것을 압니다.”라는 말 중에서 어느 말이 더 강력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영생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은 믿어지지 않는 의구심이 표현된 고백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내게 영생을 주신 것을 나는 압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인 것을 내가 압니다. 내 지상의 삶이 끝날 때 주께서 나를 위해서 천국을 준비하고 계신 것을 내가 압니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라합은 이런 확실한 고백의 믿음을 표현했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무엇을 확신할까요?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즉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로마서 8장 39절의 말씀을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의 약속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라는 주님의 선언을 분명히 신뢰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단호히 물리칩니다.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신합니다.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쓰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그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는 친구 피어슨이 방문했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뮐러는 피어슨 박사에게 아이들이 내일 아침 식사를 위한 음식과 돈이 전혀 없으니 같이 기도하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은 깊은 밤이었습니다. 뮐러의 믿음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한밤중에 어느 상점 가게 주인을 깨우셨고 밤새 준비된 음식은 고아원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다음 날 2천명의 고아들은 정확한 시간에 아침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조지 뮐러나 동역자들은 그들의 사역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궁핍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온전한 믿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처럼 확신에 찬 사람들을 기다리십니다. 확신의 사람들과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대학생 선교회 CCC를 창설한 빌 브라이튼은 확신을 구체화하기 위한 네 가지단계를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첫째 초자연적으로 생각하라. 둘째 초자연적으로 기도하라. 셋째 초자연적으로 계획하라. 넷째로 하나님께로 오는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라 입니다. 확신을 가진 믿음의 사람에게 오늘도 기적은 창조됩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확신에 찬 신앙 고백을 함으로 믿음의 성공자가 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애청자 여러분, 우리 나라에 개신교가 110년 전에 들어왔을 때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 황무지와 같은 곳에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그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확신이 이기지 않았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 확신을 갖는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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