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위한 자신의 정체성 이해 막7:24-30,막15:21-28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일찍이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현직 검사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청년을 만났습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관리해 가면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됐어요.
고등학교 때도 썩 공부를 잘했던 모양입니다.
전국모의고사에서 두 번이나 일등을 했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점은 나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은 저도 국가고시에서 1등을 한 사람이거든요.
강남경찰서에서 실시한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당당히 일등을 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최근에 만난 그 친구는 모의고사에도 1등하고 본고사에도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는데 저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운전실기시험에서는 무려 여섯 번이나 떨어졌거든요.
실기시험에서 여섯 번이나 떨어진 사람이 필기시험에서 수석 합격했다는 것을 정말로 자랑하고 다닌다면 그 정신이 온전한 정신이겠어요.
맛이 갔어도 한참 갔겠지요. 그런데 정작 우리 인생 가운데는 그처럼 맛이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과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 민중들도 그랬잖아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져 한 진짜 교훈에는 관심이 없고 먹고 마시는 것,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배고플 때 떡을 주셨어요. 백성들이 병들었을 때 병을 고쳐주셨지요. 주님은 그들의 1차 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에 인색하시지 않았지요. 그들의 생존욕구, 기본적인 생존권을 채워주시는 일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셨던 것이 아니에요.
더 좋은 것, 더 본질적인 것을 가르치시고 져 하신 것이 주님의 열망이었습니다. 제자들이나, 민중들이 주님의 그 뜻을 잘 알지 못하였을 때 주님은 쉬기를 원하셨습니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셨지요. 사람들이 더 성숙하기를 기다리셨던 거예요.
그래서 24저리에 보면 예수님께서 숨기를 원하셨다고 그러셨잖아요! 예수님께서 숨기를 원하셨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를 채워주시려는 예수님의 상황과, 참된 진리를 가르치시려는 예수님의 열정이 충돌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조절이 필요했다는 뜻이지요.
우리도 주님을 늘 찾습니다.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도 기본적으로 두 가지 필요 때문이지요.
하나는 주님께 배우고져 하는 열망입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원하는 열망입니다. 이 두 가지 욕구가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신앙이지요.
이 두 가지 욕구가 균형을 이루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신앙이 되서는 안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은 불 신앙이지요. 균형 있는 신앙, 건강한 신앙인격으로 자라 가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숨기를 원하셨지만 백성들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각색 병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를 알고져 하는 열정이 부족했던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병 낫고져 하는 열망은 대단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시대 이 고달픈 백성들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누가 이 사람들의 서러운 인생을 위로해 주었겠습니까? 그래도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저들의 희망이었습니다. 바로 이 백성들의 신앙이 소위 기복주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 가운데 신앙의 영웅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 안에 <신앙의 영웅>들이 숨어 있습니다.
ex)예컨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성도들이 70만 이라고 합니다. 그 70만의 신앙칼라가 무엇일까? 오늘날 지성인들이 비판하는 \'기복주의적 신앙\' 요소가 많이 베어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70만 가운데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묻혀있어서 오늘날 순복음 교회의 저력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세요.
숨기를 원하셨던 예수님 앞에 막무가내로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있었습니까? 가나안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명백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자기 딸이 귀신들린 것 때문에 고통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자기 딸 때문에 주님 앞에 나왔어요. 어느 모로 보나, 이 여인이 식견이 고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인텔리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이유! 그러나 간절하기 짝이 없는 사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온 그 시대의 너무도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식의 아픔 때문에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귀신들려 고생하고 있는 자기 딸을 고쳐주시길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식을 위해 주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자식을 위해 이 수도보니에 여인처럼, 간절히 기도해야 할 제목이 없습니까? 자식이 잘 자랐으면.... 그야 말로 망주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 감사해야지요. 자식이 잘 자라지 못했으면...그야말로 간절한 우리의 기도제목입니다. 우리의 눈물입니다.
ex)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잘 키웠습니다.
후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청년 솔로몬은 너무도 잘 자랐던 사람입니다. 아버지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일에 손색이 없이 자란 <명석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의 명찰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아들 솔로몬을 간곡한 마음으로 올려 드렸습니다. 역대상 29:17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내 아들 솔로몬에게 ①정성된 마음을 주사 ②주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③내가 위하여 예비한 것으로 전을 건축케 하옵소서\"
옳습니다. 인생이 자식을 위해 기도 쉬는 날이 있어서는 안되지요. 우리자식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지 자식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이 충만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그가 주님 앞에 나갔던 모습을 마15:22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그는 주님께 소리를 높였다고 했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듯 밖에도 큰 장벽을 만납니다. 엄청난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이 너무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자녀란 이스라엘 사람을 뜻하고 개란 이방인을 뜻한 게 틀림없지요.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의 구원을...,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한 것이 마땅하다. 나는 그 일을 위해서 왔다. 이것이 주님의 결론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그 이방여인에게 \'너는 가라\' 그건 뜻 아닙니까? 그야말로 생각도 못한 절망이었습니다. 너무도 야박하게 들리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넓게 보면 예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길러 논 제자들은 모두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제자들을 무장시켰고,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온 세계로 전파시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그러니까<내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다>는 예수님 말씀이 옳지요. 그러나 이 사건 이전에도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향해 무한한 자비를 이미 베푸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은 자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은 사실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무슨 말씀일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자는 준비된 자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시키는 일을 위해 준비된 나라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롬9:4에서 이것을 잘 요약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고 참된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복음을 위해 준비된 나라였습니다. 복음은 복음을 받을 준비된 사람들이 누리는 은혜요 영광입니다. 복음이 은혜라는 말은 인간이 복음을 누리기 위해 어떤 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뜻이지, 오만한 인간, 자신을 죄 없다고 말하는 인간에게도 마구잡이로 주어지는 값 싼 은혜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복음의 은혜는 오직 준비된 영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라고, 그 영혼이 울부짖는 사람만 그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나안여인을 향하여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는 말씀이 곧 그 말씀입니다.\" 은혜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 은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마땅치 않습니까? 그 분이 진정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마땅히 그렇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이미 그의 믿음이 견고함을 아셨을 것입니다.\'그렇다면 예수님의 시험은 그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참된 믿음을 가르치시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을 오직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하늘과 태양과 달과 별을 믿었던 믿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막연히 믿었던 믿음 모든 종교적 대상을 거절하고 오직 나를 믿었던 믿음! 이 믿음의 대상을 옮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참되게 자신을 계시하신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께로 우리 믿음의 대상을 옮기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①그 분이 인생에게 최고의 겸손을 요구하신 것은 마땅합니다.
②인생이 그 분 앞에서 진실로 무릎을 꿇을 때에야 그 거룩하신 은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창조의 순리입니다.
ex) 저는 여러분이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정주영씨 앞에서 꿀리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가질 수만 있다면 야 존경하겠습니다. 백인우월주의 앞에 굴하지 아니하고 한민족의 자존심을 잃지 않는 사람!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자기 아버지 앞에서는 다릅니다. 아버지가 자기보다 못 배웠다고 목에 힘주면 호로 자식이지요. 더더구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전혀 다르지요.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을 비천하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바른 자세입니다. 그것이 인간됨 입니다. 그것은 자존심의 손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성성의 회복입니다.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와 같은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시고..., 증언케 하심으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과연 그 여인은 믿음의 진수를 보여주었어요. 28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디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① 주여! 과연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② 제가 언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였나이까!
③ 저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④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내 사랑하는 딸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 주님께서 대답하실 차례지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마 15:28은 이 대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과연 그 소원대로 그의 가련한 딸이 완전한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여인이 받은 칭찬은 저희가 평생동안 주님께 얻고 싶은 최고의 은총입니다. 평생토록 사모해야 할 은총입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고 말씀하셨지 않아요? <네 딸이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지요. 여러분, 이보다 더 큰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네 믿음이 크도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큰 믿음을 가지시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그 믿음이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이 우리 소원대로 자라만 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노벨 평화상! 얼마나 놀라운 상입니까?
그러나 저는 노벨 평화상과 제 자식을 바꾸진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식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이 여인은 지금 너무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어머니의 소원대로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 소원대로 된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주님께서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여인의 그 큰 믿음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
이것이 그 여인의 믿음의 비결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춤이 없이, 하나님께 크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ex) 제가 당회장 되는 것을 진심으로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교회개척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기십자가를 지고 진정으로 스스로를 부인할 때 하나님은 영광의 면류관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저희들도 두 아들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어린아이들 멀리 보내 놓고 얼마나 근심, 걱정이 많았겠습니까!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 이었겠습니까? 어느 날 우리는 두 아들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한 일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나아가는 길을 홍해를 가르듯 열어주셨습니다. 그들의 가는 길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곧 저희들에게도 기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작아지십시오.
그 마음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정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의 자식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우리의 생애 전부를 맡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마침내,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길 정말 원하신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작아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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