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믿음

소망의 믿음/ 히11:1-12/ 2003-03-23

소망의 믿음
히11:1-12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면 믿음 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하시고, 위대한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입니다. 그리고 심령이 아주 무디고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 입니다. 이런 인간이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고 도우시기를 원하시는데 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연약한 인간이 위대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점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믿음 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대단히 소중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것을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외면하고 그런 철학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해서 하는 것입니다. 무지하면 용감하고 어떤 일도 합니다. 많은 인간들이 무지 속에서 오만을 떨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성경은 어리석은 삶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시편14편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도움도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졌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그렇게 지어진 존재 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 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 할 수도 없고, 단지 본능으로 살아갈 따름 입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종교와 신앙이 있고 이런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조의 원리를 보면 공중의 새가 물 속에서 살 수 없고, 물 속의 생물이 육지로 나와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이것을 거절하고 부인하면 그 만큼 불행해 집니다. 다른말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이지, 독립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이를 기를때 보면 우리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의존적임을 봅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우리는 부모로 부터 조금씩 독립하게 되고 장성하면 그 부모를 잊고 살때가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부모의 필요가 없게 될 지라도 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부모 없이는 우리가 태어날 수 없고 부모님을 잃어 버리면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하나님께 종속적입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지식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고 무시하고 거부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 어거스틴은 30세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동안 어머니 모니카의 아들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탕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며 지냈습니다.

그의 고백록에는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때에 어떤것에서도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고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했고 비로소 하나님의 품에서 참된 안식을 누렸다”고 고백 합니다. 솔로몬은 이제까지의 인간들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누려본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도 전도서 첫 머리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만이 진실되다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많은 것을 누려보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믿는 믿음이 없으면 솔로몬처럼 모든 것이 헛되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에 상반되는 길로 걸어간다면 우리 마음과 몸에 고통이 오고 눈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야 솔로몬의 말에 공감하며 모든것이 헛되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삶에 가장 강한 모티브와 인센티브가 무엇입니까? 돈 입니까? 권력입니까? 이것들은 가장 궁극적이며 숨어있는 동기가 아닙니다. 그 동기는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이것 저것을 가질려고 애쓰고 소원합니다. 이런 소원들은 대개 미래적입니다. 그말은 언젠가는 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갖기를 원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대부분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이 우리가 많이 성취할 수록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착각에 빠져서 살고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삽니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는 많은 문제와 아픔과 눈물과 실패를 경험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와서 왜 고생을 하느냐고 물을때 아마 대부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현재 참으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불행한 가운데서 행복을 찾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우리 인간들은 본능에 의존하며 전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여기 모인 분들 모두 많은 시간, 돈 노력을 들여서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참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거나 우리가 모자라서거나 다른 외적인 장애물들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잠 못이르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고통속에서 살도록 할때가 참 많습니다. 물론 즐거움이나 기쁨도 누리지만 고통속에서 사는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는 교회를 안 찾다가 유학을 와서 교회를 찾아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것이고 귄장할 일입니다.

그러나 쉽게 마음의 평안이나 위로가 오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만약 우리가 여기에 완전한 해결책과 답이 있다면 우리는 굉장히 안심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간혹 종교적 관념적 신학적으로 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방법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실제적이고 당장 사용할 수 있고 나에게 힘이 되고 우리 인생 모두의 정답이며 해결책인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기 위한 위대한 아이디어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깨달아야 하고 복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제가 계속 복음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설명하는 이유가 이래서 입니다.







복음은 약간 종교적인 말로 표현해서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실 분을 준비하셨으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다른 말로 구원자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 분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간단한 진리가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뀐 삶에서는 우리가 모든 부담을 지고 생활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구원은 완전한 것인데,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눈물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비밀한 길이 있는데 그것을 잡지 못하고 다른것을 잡기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 안의 많은 신자들이 겪는 문제들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또 우리의 철학과 생각과 길을 버리면 하나님의 길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로보아야 하는데 우리 생각과 고집에 사로잡혀서 이것을 못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우리가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현실 문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까하고 생각할때 자신의 의지대로 합니다.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맺을때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때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불신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자기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우리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교회안에서 계속해서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싸우는 전쟁은 고대의 창칼로 싸우는 소규모 전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엄청나게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과 관계를 맺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전쟁은 그 규모가 미사일로 하는 현대전에 비유 할 수 있을정도로 크게 차이가 납니다.







로마서 8장 24, 25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믿으면 구원받는다와 내세의 영생을 얻는다는 소망적인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나타나는 소망은 우리의 소망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미래에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이고 또 믿음으로 이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이 소망의 믿음 입니다. 믿고 주님 바라보고 나간다면 우리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따라 축복하시게 되어있고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도 바울을 고린도 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때마다 늘 힘을 얻고 인생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림을 경험 합니다. 6장4절부터“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하는 구절이 있는데 굉장한 역설을 이야기 합니다. 이 역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기에 인생의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7절부터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여러분과 내가 바로 이런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힘이 있어서 일까요? 그것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 13절에는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런 담대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힘을주고 용기를 주는 말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소망을 이루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을 추구할 때는 오직 자신의 능력과 최선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지상에 두지 않는 삶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물질이 살아가는데 필요는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이 모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육적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만나고 영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맺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함께하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삶을 산다면, 같은 노력을 하고 같은 삶을 살아도 삶이 전혀 다릅니다. 내 힘과 노력만으로 살더라도 혹 얻을 수 있고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룰 수는 있지만 많은 상처를 입고 또 남기게 됩니다. 내 가슴에 내 가정에 내 육체에 많은 상처와 고통을 주는 영광입니다. 이런 예들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인도받는 삶은 혹 약간 적은 영광일지는 몰라도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고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말처럼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갈때 우리의 삶 속에는 사랑이 생기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주님 안에서 우리는 이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길입니다. 여러분 어떤 길을 택하겠습니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서 확실하게 잡아야 할 오직 한 길을 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살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흔히 믿음의 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믿음의 정의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삶과 그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1절에는 “믿음은 보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앞에서 소망의 미래적인 측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는 현재에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멀리 있는 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망원경의 줌을 이용해서 먼 곳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 믿음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현재 자신의 눈앞으로 끌고 와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에멀슨이란 시인이 믿음에 관해 말하기를 “종달새 알을 보고 종달새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위대한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3절에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라고 합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 역시 우리가 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처럼 믿음으로 세상이 하나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믿음으로 우리의 세계가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그 세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는 말에서는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또 신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말씀처럼 믿음에서 믿음으로 오직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개략적으로 이 구절들을 살펴보면 첫 절에는 믿음의 정의가 나오고 그 이후에 ‘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 하는 말들이 나오고 6절에서는 믿음으로 하나님 기쁘시게 함을 말하고 7절에는 믿음의 미래적인 소망의 측면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라고 합니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방주를 지어 홍수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8절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미래에 어떻게 될 바를 모르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약속의 땅으로 갔고 위대한 아브라함이 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이 하늘에 거하게 되고 또 무수히 많이 번성하여 단일 민족으로 가장 훌륭한 유대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예에서 볼 수있듯이 2절에는 이 점을 강조합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처럼 이들이 물론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많은 일을 하셨지만 이들이 죽은 후에 그 자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4절 이하를 보면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들은 세상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삶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와 동일한 믿음이 우리에게 요구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동일하시며 주님도 동일하시고 또 그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그 믿음인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7절을 보시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 회의 주의자 였던 도마가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주님은 그것을 실제로도 확인 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다”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라고 합니다. 이처럼 소망으로 보이지 않은 것을 믿으며 나아갈때 하나님이 우리 생애를 아름답게 하시는 삶을 누리는 신앙을 여러분과 제가 허락 받았습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활용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은혜와 축복을 다 경험하게 되는 우리되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이 내가 믿는고로 말한다 내가 경험 했으므로 담대히 말한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는 우리되게 하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바라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