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굳게 잡으라

소망을 굳게 잡으라/ 히10:19-39/ 2003-10-30

소망을 굳게 잡으라
히10:19-39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저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반대로 저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
는데 이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서
세 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일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었던 휘장이 찢어진
일은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과 51절에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가복음 15장 37절과 38절에는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
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누가복음 23장 44절과 45절에는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해도 이 휘장 때문에 나갈 수 없었습니
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도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다가 주의 사자를 만나서 세례 요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고
시간이 걸렸을 때 백성들은 사가랴가 왜 저 안에서 지체하나 이상하게 여겼습
니다.(눅1: 21)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그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으
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에서 담력은 \'자격\'이라는 뜻
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예수님의 몸에
비유하면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몸이 찢어졌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재구(姜在求) 소령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약 35년 전의 일인데 수류탄
을 던지는 훈련을 하는데 부하가 너무 긴장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습니다. 강
재구 중대장은 수류탄을 깔아 부하들을 구했습니다. 자기 몸을 찢어 부하들을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찢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나님께 나가야합니다.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의 첫걸음은 무엇입니까?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모여야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서 많은 설교 제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자, 서로 돌아보자,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모이기에 더욱 힘쓰자, 그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귀기울여 들어야할 말은 모이기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
고\",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에 \"모일 필요 없습니다. 모이지 맙시다\"라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런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일요일은 모처럼 쉬는 날인데 쉬어야지 무엇 하러 교회에 갑니까? 가지 맙시
다!\'
\'예수님은 그저 마음속에 모시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혼자서 모시면 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대일입니다. 모일 필요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모이는 통계는 줄어드는 것이 교회성장의 공식입니다. 우
리 나라 교회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텔레비전이 생길 때 \"집에서 텔레비전의 예배 프로그램을 보면서 예배
드리면 되겠구나! 모일 필요 없게 되었구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6년 전에 기독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겼을 때 \"주일에는 예배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맙시다.\"하는 의견이 강하게 나온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위성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예배를 생중계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생중
계니까 더 현장감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예배볼 때는 헌금을 하고 싶어도
헌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 헌금하고 싶으면 그 다음날, 월요일에 은행까지 가
서 온라인으로 헌금해야했습니다.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 생중계에
서 \"봉헌 시간입니다\"하면 인터넷 홈뱅킹으로 그 자리에서 헌금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모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까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예배참석자 수가 줄어든다고 했는 데요 헌금은 늘어
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래도 십일조 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쯤은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교회에 나올 필요도 없게 되었
습니다. 인터넷 홈뱅킹을 이용하면 그만이니까요.
이래저래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이는 것을 방해
하는 요소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풍조에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합니다.
모여야 은혜를 받습니다. 모여야 후꾼한 맛이 있습니다.
모여야 힘이 생깁니다.

이왕 모이려면 정해진 집회에 다 참석해야합니다.
요즘 교회의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주일낮예배에 한 번 참석하는 것으
로 모이는 의무를 다한 것으로 아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 저
녁, 수요 예배, 속회 예배, 심야기도회, 새벽 예배, 빠짐없이 모여야합니다.

길이 열렸는 데도 나가지 않으면 길을 연 사람의 수고가 무익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수고를 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찢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셨으니 우리는 하나
님께 나가야 됩니다. 그 첫걸음으로 교회에 나와야합니다. 모여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죄에는 가벼운 죄가 있고 무거운 죄가 있습니
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살인죄를 무거운 죄로 여겨 중한 형벌을 선고합니다. 예
전에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을 아주 무거운 죄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어떤 죄를 제일 무겁게 여길까요?
알고도 믿음을 버리는 죄를 제일 무겁게 여깁니다. 26절을 보세요. \"우리가 진
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여
기 나오는 \'짐짓\'이라는 말은 몇 가지 뜻이 있는데 \'일부러\'라는 뜻이 있고 \'계속
해서\'라는 뜻이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 다음에 일부러, 그리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범하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죄를 짓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범이고 여러 가지 정황
을 참작할 만 것이 있어서 판사는 될 수 있는 대로 유리하게 법을 적용해서 가
벼운 벌을 언도했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 뒤에 석방되었는데 다시 잘못을 저질
렀습니다. 이번에는 알고서도 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같은 범죄를 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다시 한 번 관용
을 베풀려고 해도 베풀 수가 없답니다. 판사는 하는 수 없이 아주 무거운 형벌
을 언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용서해 주었는데 일부러 계속해서 죄를 지으
면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짐짓 짓는 죄 가운데서도 세 가지 죄가 제일 무섭습니다. 그 세 가지 죄가 29
절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죄입니다.
짓밟는다는 것은 깔본다, 오만하다,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에 천주교가 들어갔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생겼습니다. 일
본의 지도자들은 이 천주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천주교를 믿는 군인들을 한국에 내보내서 다 죽게 만들려는 것
이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에는 더 적극적으로 박해했는데 천주교인들을 잡아다 일
렬로 세우고 그 앞에 예수님의 초상을 놓습니다. 그 초상을 밟고 지나가는 사
람은 살려주고 그 초상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살려주고 그 초상을 피해 지나
가는 사람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 방법을 \'답화\'(踏畵)라고 부릅니다.
내 발로 예수님의 초상을 밟는 것도 무섭지만 마음으로 예수님을 짓밟는 것은
더 무섭습니다.
예수님은 깔보고, \'내가 예수님보다 더 잘났어!\' 하고 내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쫓아내는 것은 마음의 답화입니다. 예수님을 짓밟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서
는 안 됩니다.

둘째,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 준 예수님의 피를 거룩하게 여겨야합니다. \'예수님의 피나 동물의
피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작년 고난주일에 제가 졸업한 신학교의 채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성찬식도 인
도했습니다. 그 때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30여 년 전 이 학교에
다닐 때 성찬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일부 학생들이 성찬에 사용하고 남은 빵과
포도주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내서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학
생들이 웃어요. 왜 그랬는지 아니까요.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
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성찬의 경건성을 깨뜨리는 일이다.
남은 것은 묻어야 한다.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지난 주일에 성찬식을
거행했는데 남은 것은 묻게 했다.\"
그리고 교수님들을 향해서 \"교수님들은 학문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이런
것도 지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성찬에 사용하는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지요. 이것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마음으로 더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셋째, 성령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나와 함께 거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입니다. 이것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은 모세보다 높다.\"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심부름꾼이고 예수님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를 배반한 사람들,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 예로 고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라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모세에 대해 반
역을 일으켰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향해 \"너희들 왜 혼자서 잘난 척 하려느냐?\"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지요?
땅이 갈라져서 고라와 그 일당과 그들의 재물이 일시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여
호와의 불이 나와서 고라를 따르던 나머지 사람들을 불살랐습니다.
모세를 배반한 사람들도 이런 무서운 벌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28절
에서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귀한 분인 예수님을 배반하면 더 무서운 벌을 받는
다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판이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랑만 강조하는데 공의도 강조해야 합니다. 사
랑과 공의는 손바닥의 앞과 뒤와 같습니다.
또한 속죄를 말할 때 심판도 말해야합니다.
31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손은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지만 때로는 심판
의 손으로 우리를 치기도 하십니다.

어제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재림의 날의 가까이 올수록 더욱 열심히 모이자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은 심판
의 날입니다.
모이기를 게을리 하면 짐짓 죄를 짓기 쉽습니다. 모여서 예배 드리는 가운데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짓밟지 말고, 언약의 피를 귀하게 여기고 성령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힘쓰는 가운데 짐짓 짓는 죄를 범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어떤 존재이다\"하는 생각을 자기인식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
떤 자기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일생이 달라집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존
재야!\"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보잘 것 없이 살게 됩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군이 왕궁에 쳐들어가서 왕과
왕비를 죽였습니다. 시녀 한 사람이 어린 왕자를 데리고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이 시녀는 어느 시골에 숨어살면서 왕자를 자기 아들처럼 키웁니다. 왕자는 그
저 평범한 산골소년으로 성장합니다. 시녀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숨을 거두
기 전에 왕자에게 비밀을 말해 주었습니다. \"애야, 오늘 네게 꼭 할 말이 있다.\"
하고서 큰절을 한 다음에 \"왕자님!\" 했습니다. 어리둥절해진 소년을 향해 \"왕자
님, 지금까지 왕자님을 내 아들처럼, 시골의 천한 아이처럼, 아비 없는 아들로
키어왔지만 사실은 내 아들이 아니고 왕자님이십니다.\"하고서 자초지종을 다 말
해준 다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소년의 자기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나는 보잘 것 없는 시골 아이
야!\" \"나는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식이야!\"였는데 이제는 \"나는 왕자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이 나라는 내가
다스려야 하는 나라야!\"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애써 실력을 기르기 시
작했습니다.
나중에 이 왕자는 옛 충신들의 도움을 얻어 나라를 되찾게 됩니다.

39절은 성도들이 어떤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뒤
로 물러가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요(개역: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나는 믿음을 가진 자다.\", 이것이 성도
들이 꼭 가져야 할 자기 인식입니다. 이런 자기 인식을 갖지 못한 사람은 성도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인식이 없으면 성도답게 살지 못합니다.
아까 그 소년이 \"나는 왕자이다\" 하는 자기 인식을 가진 다음에 삶이 달라진
것처럼 \"나는 믿음을 가진 자이다\"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면 우리의 생활이 달
라져야 합니다

뒤로 물러가지 말아야합니다. 39절 앞부분,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물러가서는 안 됩니다.
그 때 예수 믿다가 박해 때문에, 또 유혹하는 사람들 때문에 뒤로 물러가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포기하지 말아라.\"
\"인내해라.\" \"이왕 고난을 견디어냈으니 조금만 더 견디어라\" 간곡하게 말합니
다.

32절을 보세요.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예수를 믿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하고서 33절과 34절에서 고난의 내용을 말하
고 있습니다. \'비방, 환난, 조롱, 재산을 빼앗김, 이런 일들을 겪었는데 조금만
더 인내해라, 큰 상이 있다!\'
소련이 개방되기 이전에 소련에 들어간 한 외국인이 지하교인 가정을 방문했는
데 집에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바닥에 앉아서 교제를 나눴는데 이
지하교인이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저도 여러 번 감옥에 다녀오고 또 벌금형도
받았는데 그 벌금 마련하기 위해서, 또 갇힌 성도들 빼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서 가구를 하나하나 내다 팔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더랍니다. 그 때 방문
한 분이 바로 히브리서 10장 34절 뒷부분의 말씀으로 위로했다고 합니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을 알고 기쁘게 감당하십시오.\"


\"나는 믿음을 가진 자이다\"라는 자기 인식이 있으면 영혼의 구원을 바라 보아
야합니다.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영혼의 구원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진리를 믿는다\" \"나는 정의를
믿는다\" 할 때의 그 믿음은 신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진리는 좋은 것이지만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정의도 좋은 것이지만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
다. 학문도 좋은 것이지만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믿음만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결국 곧…\" 무엇이라고 했습니
까? 그렇습니다. 영혼의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히브리서 11장을 살피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한 주일에 한 장
씩 살펴왔지만 11장은 구약의 여러 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에 대한 정의로 유명합니다. \"믿음은 바
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와 함께 10장 39절도 믿
음에 대한 좋은 정의가 됩니다. \"믿음은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게 하는 것\", 영
혼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이라고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
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하박국서 2장 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10장 38절에서 하박국서 2장 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나의 의인\"이라고 불러줍
니다. \"의인\"이란 \"인정 받은 사람\", 이런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
해 주십니다. 참 좋지요.
계속해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 다음 말씀,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
하지 않으십니다. 후회하십니다. \"저 녀석, 내가 괜히 인정했어!\" \"내가 괜히 의
인이라고 불러 주었어!\"

\"나는 믿음을 가진 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