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망, 선택된 나그네의 삶/벧전1:3-7 2003-10-29 13:41:19 read : 135
제1강에서는 신자의 신분이 \'선택된 나그네\'임을 살펴보았다. 신자는 본향인 천국을 떠나 이 세상에서 정처 없는 일시체류자인 외국인으로 본향을 사모하고 본향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나그네이지만, 하나님이 영원 전에 깊은 뜻대로 예정하시고 현재 성령으로 성별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안에서 성결된 순종된 삶을 살도록 선택하신 자이다. 신자는 나그네이지만 복권처럼 우연히 뽑힌 자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영원 후 까지 신분이 보장되어 있고, 현재와 현세를 도피하는 자가 아니라 성결한 순종의 삶을 역동적으로 살도록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총애를 받는 존재인 것이다. 제2강【??\'선택된 나그네\'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1:3-7) 신자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나그네가 아니라 미래의 소망을 향하여 가고 있는 자임을 밝혀져 있을 뿐 아니라(1:3-5), 현재의 시련이 오히려 그 소망을 더 확실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체험하는 자임이 밝혀져 있다(1:6-7).
1. 신자에게 주어진 소망은 어떠한 것인가? 신자는 소망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나그네인데, 본문에는 소망이 세 가지 각도에서 제시되어 있다. 소망의 성격을 나타내는 헬라어 전치사 \'에이스\'(to, unto)가 3절의 \'산 소망\'앞에 붙어 있고, 4절의 \'기업\' 앞에도 붙어 있고, 5절의 \'구원\' 앞에도 붙어 있어서 소망(3절)=기업(4절)=구원(5절)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
(1) 산 소망(1:3) 선택받은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주신 소망은 살아 있는 소망이다. 왜 소망의 성격이 살아있다는 것일까? 본문의 소망은 내가 무엇을 소망한다고 할 때 \'소망하는 나\'에게 초점을 둔 \'소망\'이 아니고 즉, 소망하는 행위나 상태가 아니라 \'소망의 대상\'(무엇)으로서의 \'소망\'을 말한다. 소망의 대상으로서의 소망을 \'산 소망\'이라고 한 것은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산 소망에로 낳으신 자\"라는 문맥에서 볼 때, 죽음과 대치되는 \'산 소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에게 전달되었고 이 생명이 소망을 \'산 소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산 소망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 그 기초를 둔다.
(2) 하늘의 기업(4절) 산 소망은 미래의 기업( )에 대한 소망이다. 이 동일한 단어가 70인역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었던 땅의 소유를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졌던 이스라엘의 소유물이었다. 그리스도인의 기업은 적대 세력에 의해 파괴될 수 없으며 너무 익은 과일처럼 상하거나 색깔이 변하는 법이 없다. 베드로는 세 단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기업의 영원성을 점층적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썩지 않고( ) 더럽지 않고( ) 쇠하지 아니하는( ). 이 기업은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괴될 수 없다. \"썩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과 부패로부터 보호된다는 것을 말한다. 신자의 기업은 사망이나 부패가 해치지 못하는 것이다. \"더럽지 않는다\"는 것은 도덕적 부정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을 말한다. 신자의 기업은 도덕적인 부정이 전혀 없는 것이다. \"쇠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과 시간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을 말한다.
(3) 마지막 순간에 나타날 구원(5절)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구원은 미래의 구원을 말한다. 사단의 포위와 박해와 고통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을 의미한다. 여기서 구원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건져 내사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기업을 얻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순간에 나타날 이런 구원이 지금은 \"예비되어\"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의 손에는 예비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신자에게 주신 산 소망을 어떻게 지키시는가? 신자들이 소유할 소망은 \'산 소망\'이고 부패 오염 쇠퇴가 없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기업이고 마지막 순간에 계시되기로 예비된 구원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광스럽고 화려한 소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상속할 우리가 위험이나 실수나 나약으로 그것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장래에 상속할 기업이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라면 그것을 상속할 상속자도 역시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마침내 그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주어진 \'산 소망\'은 어떻게 보호되며, 상속자인 우리들 또한 어떻게 보호되는 것일까?
(1) 하나님이 해산하시므로(3절) 베드로는 하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산 소망에로 다시 낳으신 자로\"로 지적하고 있다(1:3). 여기에 하나님의 해산(解産)이 언급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신 자이시다. 하나님이 \"산 소망에로\" 해산하사 그 결과로 태어난 자들이 우리이므로 소망의 상속은 너무나 확실하고 안전한 것이다. \"다시 낳으신 자(거듭 낳으신 자)\"는 능동태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중생의 주도자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적 생명의 주인이실 뿐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많은 긍휼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산 소망에로 거듭 낳으신 자\"이시다. 하나님의 해산의 동기: \"그의 많은 긍휼을 따라\".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가리키고 \'긍휼\'은 그 모든 것을 주게 하는 하나님 자신 속의 성품을 가리킨다. 긍휼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 거기에서 구출해 주고 싶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상대방에게 은총을 받을 만한 선행과 공로가 있다면 긍휼은 불필요하다. 상대방에게 아무런 선행과 공로가 없기 때문에 긍휼이 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산 소망에로\' 거듭 낳으신 것은 우리의 선행과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긍휼 때문이다. 그분이 주도적으로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긍휼을 베푸시는 그분의 성품이 불변하기 때문에 상속자인 우리의 신분은 그만큼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다. 해산의 수단: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산 소망에로 거듭 낳으신\'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산 소망\'에로의 우리의 중생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으로부터의 새 생명이며, 이 새 생명이 신자들의 \'생명에로의 중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다시 말해서 \'산 소망에로의 중생\'에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개입된 것이다.
(2)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믿음을 통한 보호하심(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호하신다)(5절)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을 신자들은 그 출생 자체가 하나님의 해산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상속인의 안전은 그만큼 강하게 보장된 것이다. 상속인의 안전은 하나님의 해산에 의한 중생이라는 그 시발점에서만 보장된 것이 아니라, 상속인이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기까지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믿음을 통해 보호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강력하게 보장된 것이다. 5절의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에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는 원문상 \"보호하심을 입고 있나니\"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는 과거에 한 번 임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계속 진행되고 있는 \'보호\'는 마치 요새에서 보초가 보호하는 것과 같은 보호이다. 마치 무장 보초가 요소나 군부대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 기업을 상속받을 신자들을 현재 계속 보호하시고 계신다. 인간은 나약하고 또한 이미 타락한 본성을 소유한 자들이다. 그리고 세상은 인간을 타락하도록 만드는 수많은 유혹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이러한 처지와 환경 속에서 하늘 기업을 차지하는 것이 인간의 의지에만 맡겨져 있다면, 인간 자신의 능력에만 맡겨져 있다면, 그 어떤 인간이 하늘 나라의 기업을 차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 상속인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되, 우리 속에 믿음을 불러일으키심으로써 보호하신다.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이 이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고난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 기업을 믿는 것을 말한다.
(3)시련을 통한 믿음의 연단을 통해서 보호하신다.(6-7절) 하나님께서 이토록 하늘나라의 기업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데 왜 신자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며 어려움을 느끼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물이 흐를 때 같이 흐르면서 수영하는 자는 수영이 힘들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이 흐르는 대로 같이 흐르기 때문에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멸망의 폭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리면서 수영하기 때문에 세상의 거센 물살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싸워야 하지만 마침내 영광의 낙원에 이르게 된다. 신자들이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은 \'산 소망\'을 약화시키거나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산 소망\'을 붙잡는 믿음을 순화시킨다는 차원과 하늘 기업을 더 풍성하게 얻게 하는 계기가 된다. 시련으로 인한 근심에서(6절)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당하고 있는 시련을 여러 가지 시험, 잠간의 시련, 외부의 시련을 통한 내적 근심, 시련의 필요성 면에서 분석했다. \"여러 가지 시험\"에서 \'시험\'은 죄를 범하도록 유인하는 유혹들이 아니라 \'시련들, 시험의 경험들\'을 의미한다. 즉 박해로 인한 고통, 가난, 질병 등을 포함하여 온갖 가능한 고통을 총칭하여 \'시련들\'이라고 했을 것이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다양한 시련들은 시간적으로 \'잠시성\'을 띠고 있다. 이땅의 시련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잠시이고(벧후3:8-9), 영원한 영광에 비할 때 잠시이고(고후4:17),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속히 끝나기도 하기 때문에 잠시이다. 이러한 시련들은 신자들이 우연히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필요해서 당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필요한 것이었듯이, 신자들의 시련도 하나님 h시기에 필요한 것이다(벧전4:12). 시련으로 인한 믿음의 연단으로(7절) 신자들에게 시련들이 필요한 것은 시련들이 믿음을 제련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련\"은 결과의 측면에서 본 \"믿음의 연단\"을 가리킨다. 믿음의 연단 자체가 제련된 금보다 귀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연단을 통하여 순화된 결과 즉 믿음의 순수성이 제련되어 불순물들이 제거된 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반짝이는 것을 용광로에 넣어보면 진짜 금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난다. 믿음으로 보인다고 하여 모두 믿음이 아니다. 시련의 용광로에 들어가 봐야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진짜 금이라 할지라도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이 제거되듯이, 참 믿음이라 할지라도 고통의 용광로 속에서 약간의 교만, 허영, 이기심, 세속성, 관능등의 불순물이 제거된다. 용광로에서 제련된 금이 그 광채를 더욱 드러내듯이 고통의 용광로에서 단련된 믿음이 그 광채를 더욱 드러내게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상급을 베푸신다(7절). 시련들의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제거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즉 구원의 최종완성을 위하여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결과를 얻게 된다. 작은 배는 작은 배에 맞게 가까운 바다에만 다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큰 배로 만들어 많은 보물을 싣도록 하시려 한다면 당신에게 큰 파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셔야 한다. 파도의 진노를 체험하면서 마침내 \'깊은 속에서 그의 경이\'를 보게 하신다\"(Spurgeon).
3. 우리의 찬양의 근거와 참된 기쁨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8-12) 하늘의 기업을 소망으로 보장하시고 그 기업을 상속할 우리들을 낳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을 받으실 분이신 것이다.
(1) 우리의 찬양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3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찬양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들을 중생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들의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그는 우리들의 아버지로서 하늘 기업을 우리에게 상속하게 하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 양자들은 찬양해야 마땅한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양자로서 하나님의 해산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마침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속재산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항상 찬양을 드려야 한다.
(2) 우리의 기쁨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베드로는 하늘 기업을 얻도록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할 뿐 아니라, 신자들도 역시 \"크게 기뻐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신자들은 앞으로 상속받을 소망이 확실하고 그 소망을 얻을 우리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하게 보호되고 있으므로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자들인 것이다. 밖으로 다양한 시련들이 있고 안으로 그것들로 인한 심적인 고통이 있지만, 하늘의 기업을 생각하면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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