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망이 있게 하시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7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7
2006-11-07 14:45:15 read : 221


성경:벧전1:3-7 3찬송(讚頌)하리로다.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矜恤)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復活)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所望)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衰)하지 아니하는 기업(基業)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看直)하신 것이라. 5너희가 말세(末世)에 나타내기로 예비(豫備)하신 구원(救援)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보호(保護)하심을 입었나니,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試驗)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너희 믿음의 시련(試鍊)이 불로 연단(鍊鍛)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들어가는 말

■ 스코트 피크가 말하는 희망

Scott Peack(스코트 피크)라는 의사가 <길 없는 여정> 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정신병원에 근무했던 경험을 소상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정신병 원에 있는 환자들 가운데 가만히 보면 아무런 흥미도 없고 기쁨도 없고 욕망도 없는 사람이든지 신비한 세계에 대한 도전이 없는 사람은 치병될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려고 소망과 의욕을 가진 사람은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소망이 죽고 사는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 말씀입니다. 오늘 분문을 통해서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하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

베드로는 기독교 초기에 로마정부의 핍박과 박해로 정처 없이 피해 다녔던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디아스포라, 즉 떠돌이 순례자의 험난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로마정부가 기독교를 가혹하게 핍박하였기에 어느 한곳에 오래 발붙이고 살수가 없어서 일평생 나그네로 살아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잠시 주막집에 머물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기독교는 무서운 박해 속에서 자라난 종교입니다. 특히 악명 높은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A.D 64년) 사건을 빌미로 기독교 대박해를 시작한 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의해 처절한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네로 당시 로마는 목재 건물로 되어 있었고 길은 매우 좁았기 때문에 대 화재의 위험성이 언제나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도시에 화재가 발생하자 로마의 전 도시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3일이 지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민이라면 이 화재가 네로의 소행임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방화한 이유로써 대 건축가로서 로마시를 재건해 보려는 네로의 야망을 지적합니다. 또한 방화의 주범으로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몰아 기독교를 발본 색인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일석이조의 속셈을 가졌다고 봅니다. 그가 방화자로 기독교인들을 몰게 되므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그 사회에서 발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의 박해로 기독교인들은 몸이 찢기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굶주린 사자가 으르렁대는 원형극장에 몰아넣어 처참하게 물어 뜯어먹도록 하였고, 또 양의 가죽을 기독교인들에게 입혀 사냥개로 물어뜯어 먹게 하였으며, 온 몸에 역청을 바르고서는 불을 붙여 인간 횃불을 만들어 죽였고 산채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 이것은 기독교인들 가운데 일부만 당하는 박해가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시인하기만 하면 그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 같은 토굴 속에서 집단으로 숨죽이며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순교를 기꺼이 맞이하게 되었던 것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산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거듭난 자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所望)이 있게 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한 말씀이 있습니다. 거듭나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거듭난 자는 위로부터 난 자들을 말합니다. 중생하고 하늘로부터 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되어진 사람이 소망이 있습니다. 중생한 자는 어린아이들을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장래가 있습니다. 미래(未來)가 있다는 이야기는 산 소망이 있다는 이야기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는 참으로 눈망울을 들어다 보면 미래가 보이며 소망이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부둥켜안고 자녀의 소망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부모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가난하고 어렵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어린 자녀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래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부모의 보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안으로는 유대인들이 율법파괴자라고 핍박하고 밖으로는 로마 황제의 무서운 해를 받아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떠한 환난(患難)과 핍박(逼迫)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信仰)을 굳게 지키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여러가지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거듭난 하나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우주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내 작은 삶에 개입하시고 나를 변화시켜서 거듭나게 하신 이 영광스러운 경험(經驗)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 놀라운 역사가 나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신(確信)하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나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영생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永生)을 얻었고 심판(審判)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死亡)에서 생명(生命)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중생의 확신을 얻은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환난과 핍박과 곤고나 칼이나 기근이나 적신이 찾아와도 신앙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이 거듭남의 신앙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산 소망이 있게 됩니다. 산 소망이 있다는 말은 죽은 소망도 있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육신의 세계이지만 영(靈)의 세계는 영원한 세계입니다.

죽은 소망은 세상적인 소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믿어 기죽지 않고 힘차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브라함 링컨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에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다가 낙방하고, 하원 의원에 출마했다가 낙방했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거듭하자, 그는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그를 염려했습니다. 링컨은 친구들의 염려대로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떠한 개선이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의에 빠졌던 링컨이 어떻게 재기하여 미국의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는 말하기를,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그에게 소망과 희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공화당에 입당하였고,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Ⅱ. 하늘에 기업이 있는 자가 산 소망이 있습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가족의 기업을 이을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택함을 받은 성도는 땅에서도 천국의 맛을 보며 삽니다. 천국의 기쁨을 맛보세요. 하루를 살아도 웃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하고, 즐겁게 남을 위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고, 선하게 살고, 자비를 베풀며 이렇게 살아가면 이것이 천국 생활을 미리 맛보는 생활입니다. 복스러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딛2:13).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골1:5).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은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봄에 새싹이 대지를 뚫고 솟아나듯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 무엇이라도 뚫고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소망에는 죽은 소망도 있습니다. 이 죽은 소망은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어느 한 곳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 이사야 선지자는 이 같은 노래 불렀습니다.

(사35:3-6)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당시의 불합리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위로 받고 살아가는 이사야 선지자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업은 누군가가 손을 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훔쳐가지 못하게 하려고 이중 삼중으로 잠금 장치를 합니다. 그래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기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기업은 세상의 재물이나 유산과 같이 누군가가 손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전하게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이런 놀라운 기업을 하늘에 깊이 간직해 놓은 것입니다. 어떤 악한 영이나 악의 세력도 그것을 훔쳐갈 수 없도록 간직해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 주석가 반즈(Barnes)는 그리스도인의 기업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은 수백 년을 써도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고, 황금 길은 그 광채를 잃지 않을 것이며, 생명수 강변에 핀 꽃들은 우리가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색깔이 풍부하고 향기가 넘칠 것이다.



Ⅲ.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 산 소망이 있습니다.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주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보호하시고 도와주십니다.



■ 모세의 경험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사고와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죄악으로부터 보호하시며, 마귀의 조롱과 공격에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거듭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보호하시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만치 많습니다.



■ 다윗의 신앙

(시18:1-6)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다윗은 기라성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난(苦難)과 불행(不幸)이 중첩된 사람입니다. 사울왕의 추적과 아들들의 반란 왕권도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한 가운데 있었습니까? 이 같은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이 순간순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심으로 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만치 많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소망이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가 있으면 아들은 마땅히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딸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가정과 직장생활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요,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입니다.

은행에 돈을 입금하면 돈을 보호해 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인출해 가지 않도록 비밀번호를 줍니다. 좋은 자동차일수록 운전자와 승객을 잘 보호해 줍니다. 그래서 안전띠를 매면 사고가 나도 웬만해서는 다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보호가 필요합니다. 내게 사고와 위험이 닥칠 때 누가 나를 보호해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보호하시고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보호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믿습니다.’ 하고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아침에 새벽기도, 한밤중에 철야기도, 어려울 때 금식기도 하는 사람, 어려울 때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이 순종치 않으면 도와주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하고 말 안 듣고 방탕하고 타락한 자식은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부모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고 봉사할 때 봉사하고 전도할 때 전도하고 충성할 때 충성해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삼상15:22).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능력과 은총을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주십니다. 어린아이는 쓰러질 수밖에 없지만 옆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손을 잡고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주듯이 하나님께서 어린아이 같은 우리를 붙잡아주십니다. 미련하고 약한 우리를 붙잡아주십니다. 길을 선택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도 택함을 받은 주의 백성들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고 그를 붙잡아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내 손에서 너를 빼앗을 자가 없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손에서 붙잡아주고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도 보호해 주십니다(6,7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잠깐 시험을 당할 때는 그것이 근심 걱정같이 보여 근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어서 주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생하고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고난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파도가 일어도 큰 연락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큰 파도를 헤치고 나갑니다. 조각배가 위험하지, 큰 배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비행기 탔는데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어떤 때는 비행기가 50m까지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12-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게 될 때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여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도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맺는 말



■ 희망이 주는 삶

얼마 전에 미국의 듀크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쥐가 얼마나 오래 물에서 헤엄을 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쥐가 전혀 빠져나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물이 담긴 큰 그릇에 쥐를 담아두었다. 그랬더니 쥐는 잠시 헤엄을 치다가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물에 빠져 죽었다. 다른 쪽에는 쥐가 빠져나갈 희망이 있는 크기의 그릇에 쥐를 담아두었다. 쥐는 몇 시간 동안을 빠져나가려고 열심히 헤엄을 치다가 결국은 빠져 죽었다. 미미한 동물인 쥐고 희망이 보일 때 열심히 노력을 하고 헤엄을 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쉽게 노력을 포기하고 죽고 만다. 쥐도 하물며 미래를 생각하는 인간은 희망이 있을 때에 어려움을 이기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1) 거듭남이 소망입니다. 2) 하늘의 소망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보호가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