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자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자/벧전1:13-25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자/벧전1:13-25
2002-09-02 15:31:55 read : 238


오늘 본문말씀 베드로전서의 배경을 말하자면
당시 로마 제국은 가이사 황제만 신이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흥종교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특히 A.D 64년 여름 로마의 중심가에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저 유명한 네로 황제가 저지른 방화였습니다
그는 불타는 도시 로마를 바라보면서 광증으로 춤을 추면서 시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성난 로마 군중들이 항의가 시작되자 그에게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리스도인들이 방화의 주범이라고 소문내었습니다.
그래서 줄줄이 그리스도인들이 잡혀가 로마의 원형경기장으로 끌려 갔습니다.
어떤이는 십자가 틀에서 참수를 당하기도 했고
어떤이는 맹수의 밥으로 그들의 몸뚱이가 찢겨져 죽었고
어떤이들은 기름을 덮어 씌어 밤에 불을 밝히는 양초가 되어 죽어 갔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근교 카타쿰으로 숨거나 로마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소아시아 지금 그리스 터어키 지역으로 흩어 졌습니다.
소아시아의 깊은 바위굴 속에 피신한 저들은 새로운 삶을 모색했습니다. 이 핍박의 물결이 식민지로 번져나가 기독교인들의 탄압이 더욱 심해집니다. 그러니 교인들 중에서는 배교를 하거나
아니면 국가에 반항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써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즉 그들의 삶 가운데 직면하는 박해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띄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러므로> 라는 부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라는 말은 베드로가 앞 부분에서 하는 말을 받는 부사로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잠깐 근심하지 아니할 수 없으나 그러나 거듭난 성도는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도리어 믿음의 시련은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즉 주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이 세상에서 신앙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13절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합니다.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말은 은혜를 받기 위한 자세입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말은 허리에 띠를 졸라맨다는 말로서 <2>
지난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를 향해서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신실한 종의 비유, 선한 청지기 비유에서 꼭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은혜란 이렇게 먼저 준비된 자가 받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아니하면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근신하라는 말은 중심이 잡혀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은혜 받으려고 하면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잠8:34절 [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은혜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은혜는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누립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그 날의 은혜를 맛보며 사는 자가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서도 승리하며 살아갈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라고 합니다.

유대 랍비 가운데 아카바라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가 존경받는 랍비가 된 배경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광야를 여행하는 중 날이 어두워 자게 되었습니다.
아카바는 늘 여행을 하면서
꼭 성경과 등불과 닭을 한 마리 가지고 다녔습니다.
등불은 밤에 성경을 읽기 위한 것이고 닭은 시간을 알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날 밤에는 바람이 심해 등불이 꺼져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짐승이 닭을 물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옆 동네에 가보니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알고 보니 동네에 도적 떼가 와서
사람을 죽이고 곡식과 가축 떼를 다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때 아가바가 깨닫게 된 것이
지난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내가 등불을 켜고 있었더라면
그리고 짐승이 닭을 물어 가지 않았더라면
도적들에게 나도 잡혀 죽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어 등불을 꺼 주시고
짐승을 보내 닭을 물어가게 해 주셔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때사 아카바는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등불보다도 닭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언제 가장 강하냐? <3>
은혜 받았을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이
딤후2:1절에 [ 은혜 안에 강하라 ] 고 합니다.
이 말은 은혜 받아야 강한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꼭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는 자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줄 믿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비록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이 어떤 삶입니까?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경건한 삶입니다.
거룩한 삶이 어떤 삶입니까? 거룩은 구별되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삶은 구별된 삶, 다른 삶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뭐가 달라야 합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닮아 가는 삶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와 푯대가 다릅니다.
빌3:19-20절에
[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저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사이 부유층 자녀들은 명품이 아니면 아예 쳐다보지도 안한다 합니다.
그래서 서울에는 명품 가계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명품, 소위 메이커라는 거지요.
왜 그렇게 메이커에 관심이 많습니까?
그런데 메이커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의 부랜드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메이커입니다. 뭔가 달라도 다른 것을 보여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사는 자들입니다.
꼭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의 메이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향기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메이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4>
사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에 [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거듭나기 전에 나를 주관하던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예수님 닮아갈 수 없습니다. 욕심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15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메이커 특징은 거룩이라는 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성도가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16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합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버지가 거룩하신 분이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17절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나파르트 나플레옹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나플레옹이 전장에서 병사들 막사를 순찰하는 가운데
한 막사에 오니 병사 하나가 자기에게 욕을 합니다.
[ 보나파르트 그 친구 아주 저질이고 덜되어 먹은 작자야 ] 합니다.
그래서 나플레옹이 막사에 들어가서 욕하던 병사를 앞에 세워놓고
호통을 칩니다.
그러니 그 병사가 하는 말이
[ 각하 감히 졸병이 어떻게 황제에게 욕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아니고 우리 가운데 보나파르트 일병이 있는데 이 친구가 사고뭉치라서 보나파르트 일병에게 욕한 것 뿐 입니다. ]
그러니 나플레옹이 화가 풀려져 하는 말이
[ 보나파르트 일병을 빨리 불러 오라 ] 고 합니다.
그리고 불려온 보나파르트 일병에게 하는 말이
[ 야 이 녀석아 이름을 가리든지 성을 가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가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 때문에 내가 욕을 얻어먹겠다 ] 하더랍니다.
이름을 가리든지 성을 가리든지
성도라고 하지 말든지 아니면 거룩한 삶을 살든지
선택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왜 성도가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면 <5>
2) 성도는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8절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
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 성도는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피는 생명을 지탱해주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짐승의 고기를 피 채 먹지 말라고 합니다.
이처럼 짐승의 피가 소중한데 하물며 사람의 피는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 심장이 1분에 75번 1년에 4천만번 70년 평생에 25억 번을 뛴다고 합니다.
심장은 한 번 뛸 때마다 약 4온스, 하루 3천 갤런, 1년에 65만 갤런을 방출 심장이 한 시간 동안 내는 힘은 70kg 사람을 3층 빌딩에 올리는 것과 같고 열두 시간 내는 힘은 65톤 짜리 탱크를 드는 힘과 같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힘을 가진 인간의 생명력이지만
망령된 행실은 고칠 수 없고 나를 죄에서 구속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망령된 행실에서 돌이키게 할 능력이 있습니다.
찬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오직 예수의 보혈만이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정결한 마음을 줍니다.
부정한 모든 것 맑게 합니다. 망령된 행실을 끊게 할 줄 믿습니다.
이 가슴에 예수의 보혈이 흐르는 자는 승리할 줄 믿습니다.
망령된 행실을 끊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제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모르는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거룩한 삶 하면 추상적인 말이라 사실 개념이 잘 안 잡히지요.
그런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내가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느냐? 점검할 수는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이 무엇인가? <6>
21절에 [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즉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의 특징은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20-21절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미리 계획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때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믿고 새로 태어날 때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 바로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소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믿음과 소망입니다.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나아가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딤전4:10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이
[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 믿음과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 자만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주를 위해 수고하고 진력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잣대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소망이 있는 곳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한 번 점검해 보세요.
내 시간을 지금 어디에 다 투자하고 있는가?
내 물질을 지금 어디에 다 투자하고 있는가?
자기와 자기 가정을 위해 다 소비하면서
거룩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이렇게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특히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자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22절에
1)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시119;105절 [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7>
늘 말씀따라 살려고 하는 자는 그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사람이 문화적 수준이 있을수록 몸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하루라도 샤워하지 않고는 잠자리 들 수 없을 만큼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수준은
우리가 하루라도 하나님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을 돌이켜 보며
자신을 정결케 하는 삶과 정비례합니다.

수1:8절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
지금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요단강을 건널 수 있고
금성철벽 여리고 성이 무너질 수 있는가
병법과 전략을 가르쳐 주지 않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다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먼저 굴복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세상을 굴복시킬 줄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두고 사는 자는
삶에 나타나는 또 한가지의 증거가 있습니다.
2)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요1서4:11절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오늘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성도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산다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자는
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영혼을 깨끗게 하며
그 순수한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거룩의 종교이면서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수해로 말미암아 형제가 고통을 당할 때
사랑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삶이 어디서 옵니까? <8>
우리가 마음 한 번 먹는다고 은혜 좀 받았다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23-25절까지 베드로는
우리가 거듭나서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고 합니다.
딤전4:2절에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바로 말씀의 능력이 우리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썩지 아니할 씨라고 합니다.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것은 다 변합니다.
24-25절에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
젊은이에게는 아직 이 말씀이 그렇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 6학년 졸업반이 되신 분들은 조금은 실감이 나실 것입니다.
6학년 졸업하신 어르신네들은 정말 실감나실 것입니다.
세상의 것 다 부질없는 것이다.
저는 가끔 그런 마음이 들어요.
나이 드신 성도님 가운데 하루 종일 성경 읽고 기도하시는 분들 있어요 젊은이들 시각으로 보면 할 일이 없어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같지만 아닌 것 같아요.
젊기 때문에 세상에 야망을 두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삶보다
고요하게 하나님 앞에 경건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 귀중한 삶인 줄 믿습니다.
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 마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기 때문입니다.
< 결론 >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와 지금 상황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훨씬 신앙생활 하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마귀란 녀석은 핍박보다도 유혹과 안일을 통해
하나님 백성들의 거룩한 삶을 세속화시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이 땅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벧전4:7절에 <9>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고 합니다
그래야만 은혜 받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삶의 능력은 거룩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자는
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영혼을 깨끗게 하며
그 순수한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