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소망

인내와 소망/벧전1:13-17,18-21/2006-10-21

인내와 소망
벧전1:13-17,18-21





1. 베드로 전서의 저자, 기록시기와 목적, 사회적 정황

베드로전서 1징 1절에 의하면, 이 서신은 사도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살고있는 나그네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되어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베드로전서가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사상과는 달리 바울이나 제 2바울 서신들의 신학과 유사하며. 여러 가지 문학적이고 수사적인 문체와 세련되고 유창한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서신의 시대적 상황이 제 1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이 아니라 제 1세기 말 경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서신의 저자를 주후 64년 경 추정되는 사도 베드로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베드로전서는 주후 1세기 말 경, 로마의 속주인 도시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당국과 이방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비방과 모욕을 받고 수난과 박해를 받던 상황에서, 바울의 신학과 유사한 신학을 가진 익명의 저자가 사도의 권위를 가진 베드로의 이름을 빌어 쓰여진 편지이다. 그리고 이 편지의 저자는 고난을 받고 있는 수신자들에게 \'산 소망\'이신 하느님에 대해 증거하고, 이것을 통해 수신자들이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교회 안에서 당하는 박해와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

2. 본문의 위치

베드로전서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산 소망을 준 하느님\'에 대한 증언(1:1-12)의 부분과, 이 \'소망\'에 근거하여 모든 고난을 이기라는 권면들의 부분(1:13-5:11), 그리고 마지막 인사(5:12-14)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늘의 본문인 베드로전서 1장 (13-17)18-21절은 1장 1-12절의 내용에 근거하여 \"그러므로\"라는 부사를 사용하면서 수신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본문을 주석하기 전에 먼저 간략하게 베드로전서 1:1-12절의 내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3. 베드로전서 1장 1-12절 : \'산 소망을 갖게된 사람들\'

베드로 전서 저자는 자신을 사도 베드로라고 밝히고 로마의 속주들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함받은 사람들, \'성령으로 거룩함을 받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사람들\'로 \'거듭난 자들\'로 특징지으면서 편지를 쓴다. 이러한 표현들은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나, 운명론적으로 택함을 받은 우월한 자, 혹은 신비적인 어떤 것에 의해 신성을 소유한 자들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보여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고 구원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벧전 1:3)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바로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게 된\' (벧전 1:2, 14, 22)사람들, \'산 소망을 갖게 된 사람들\'(벧전 1:3, 21)이라는 말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저자는 수신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를 살리신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증언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점에서 \'산 소망\'을 갖게된 사람(벧전 1:3)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은 사람들\'이며, 종말적 구원 사건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받고있는,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벧전 1: 4-5)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수신자들에게 \'시련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슬픔에 빠져있더라도, 도리어 기뻐하라\"고 권면한다(벧전 1:6)저자가 볼 때, 수신인들이 겪는 시련과 슬픔은 믿음의 연단을 위해 잠시동안 겪는 일이다 (벧전 1:7) 저자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시련을 견디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벧전 1: 8-12).

4. 베드로전서 1:13-21절 (산 소망을 가진자들에 대한 권면)

13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여러분에게 오게된 그 은혜에 대해서 끝까지 소망을 가지십시오.

저자는 베드로전서 1장 1-12절의 진술에 근거해서 \'그러므로\'라는 부사를 사용하여 수신자들에게 권면한다. 그는 수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수신자들이 받은 은혜에 관해 말하면서, 그 은혜에 대해 \'끝까지\' 소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말 성서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로 번역되어 있는 희랍어 본문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만 나타나 있다. 종말적인 구원 사건인 \'은혜\'의 사건은 먼 미래가 아니라 베드로전서 1장 2-12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이미 계시된 사건이다.

독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계시의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얻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큰 자비로 거듭나게 되어서, 산 소망을 갖고 구원을 얻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수신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만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차려서 그들이 받은 그 은혜에 대한 소망을 끝까지 잃지 않고 지키는 일 뿐이다.

14-15절: \"여러분이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으니, 전에 알지 못할 때에 가졌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한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게 되었다고 말한 베드로전서 1:2-3절의 내용을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이제는 \"전에 알지 못할 때에 가졌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한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알지 못할 때에 가졌던 욕망\'이란 무엇일까? 베드로전서 2장 1절에 의하면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들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수신인들은 그들을 불러주신 거룩한 분을 따라 예수 그리스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모든 행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2:1-5:11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독자가 처해있던 상황, 곧 이방 사람들로부터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난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고난을 참고 선을 행하는 일이다. 이 일은 주를 위하여 왕이나 총독들을 존경하는 일, 까다로운 주인과 믿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일, 한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를 베풀며 겸손하고,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선한 일을 하는 일이다. 또 그것은 하느님의 양떼를 잘 감독하고, 서로 순종하며, 정신을 차리고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대적하며 고난을 이기는 일이다.

저자는 레위기 11장 44-45절, 19:2, 20:7절의 내용을 함축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는 말을 지금까지의 권면의 근거로 이용한다. 히브리어과 희랍어에서 \'거룩하다\'라는 말은 \'구별된다\'는 내용을 갖고 있지만, 베드로전서 1장 2절과 14-15절에 의하면, \'거룩하게 된\'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게 된 자들\"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종교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리어 베드로전서 저자는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서 생활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의 체제 안에서 구체적인 행위로 주를 위해 순종하는 행위를 하라(벧전 2:13)고 당부한다.

1:17 \"그리고 겉 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나그네로 있을 동안에,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저자는 구약-유대교의 전통을 따라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는 하느님에 관해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믿고있다면, 나그네로 있을 동안에 두려운 마음으로 생활하라고 권면한다. 이 때의 \'두려운 마음\'은 단순히 무서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려움\'은 창조주이며 주인인 하느님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 주인에게 순종하며, 이웃을 동정하고 서로 사랑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한 행동을 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요구하고 있다(벧전 2:13, 18, 3:1-9). 반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불의한 자들의 위협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만들며, 정의를 위해 고난을 받고 선한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벧전 3:13-14).

1:18 \"이제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여러분의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알지만, 은이나 금과 같은 썩어질 것으로 되지 않고,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되었습니다\".

저자는 수신자에게 그들이 \'나그네\'로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들은 이미 지난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사건을 알기 이전의 헛된 삶의 방식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진술을 초대교회가 사용하던 방식, 곧 예수를 속제 제물로서의 어린 양으로 믿었던 신앙 양식으로 말한다.

1:19-21 \"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정되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에게 영광을 주셨으니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저자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정되고,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있는\" 구원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일어났음을 강조하고, 그 일로 말미암아 수신자들이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셔서 영광을 주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사건을 통해 이룩된 구원 사건을 뜻한다. 그리고 그 구원 사건은 신비적이며 비 세계적인 어떤 초월적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믿음의 생활을 뜻한다.

이 소망과 믿음의 생활은 1장 22절에 의하면 \'진리에 복종하는 삶\'으로서, 곧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사는 삶\'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 2-5장에 의하면,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느님께 소망을 두고, 그 고난을 이기며 선한 행실을 하여 마침내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대적하는\"(벧전 5:9) 행위로 승리와 영광을 얻고 기뻐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다시 한번 고난 중에서도 수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느님께 산 소망을 두고 믿음 생활을 할 것을 일깨운다.

5. 본문을 오늘의 상황과 관련시켜 설교할 때의 요점

1. 베드로전서에서 고난 당하던 그리스도인들과, 오늘 우리의 정황에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다르다. 우선, 오늘 우리가 처한 역사적 현실(외세의 지배, 분단 문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의 불의와 부정의의 문제) 문제들로 말미암아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예수의 죽임 당함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느님의 승리의 역사를 유대사회의 정황에 비추어 설명할 필요가 있고, 그 일이 어떻게 오늘도 불의의 세력들에 의해 죽임 당하고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산 소망\'과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는가를 말해 주어야 한다.

3.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도 고난과 박해와 시험이 닥쳐오면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런 때일수록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계시\', 곧 하느님이 어떻게 구원과 은혜를 주셨는지를 깨닫고, 그들이 가졌던 소망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4.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었던 행위, 곧 하느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 주어야 한다. 베드로전서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구체적인 역사 현실에서,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교회 안에서 고난을 이기며 선한 행위로 악을 대적하며 승리하는 생활이다.

5. 본문을 주석하는 동안에 나타났던 중요한 \'개념\'들을 설교 내용에서 잘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나그네\'의 개념이 역사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선택사상\'이 어떠한 우월성이나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의 사건임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예수의 피로 정결함을 얻는다\'는 내용도 인간의 공로없이 전적으로 하느님 자신의 크신 자비의 행위에 의해 모든 불의한 인간들이 차별과 공로없이 용서와 사랑을 받은 은혜의 사건임을 말해 주어야 한다.


2. 오늘의 상황과 본문 적용(이만규 목사, 수안교회)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임할 때, 첫째, 은혜 받은 과거를 돌이켜 보라. 과거 받은 은혜를 상기하면서, 그때 신실히 응답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도와주실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우리가 이미 체험한 과거의 경험에 있다. 과거 받은 은혜, 과거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 과거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기독교 신앙은 그래서 언제나 이미 받은 은혜에 근거해 미래를 조망하는 \"기억 그리고 전망\"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유월절을 영원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유월절 자체보다 가나안에서 전개될 이스라엘의 삶 가운데 유월절의 하나님을 믿고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신 것도,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심을 기억하고 앞으로 닥칠 위험과 고난을 극복하라는 의미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끝까지 소망을 견지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오게된 그 은혜를\" 기억하라고 한다. 어떻게 복음이 너희에게까지 오게되었고, 복음이 오면서 체험한 그 은혜의 역사를 기억할 때, 끝까지 소망을 붙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찬송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이다. 과거 일제 36년간, 그리고 나라를 폐허로 만든 6.25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체험했기에 이 찬송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최근 외환위기로 초래된 국내경제의 부침가운데서도 우리는 과거의 하나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00년대를 바라보며,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까지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이 과거의 은혜 체험에 우리의 신앙의 닻을 내리고 있다면, 우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라도 자신을 깨끗이 하라. 우리는 평안할 때, 일이 잘 될 때, 윤리적 도덕적 삶을 점검한다고 생각한다. 고난이 오면, 생사가 걸려있는 시급한 문제가 부딪히면, 윤리를 무시한다. 살기에 바빠 어떤 일도 정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너희가 핍박을 받더라도 모든 행실에서 자기를 깨끗케 하는 일에 등한시 말라고 권면한다. 고난과 핍박이 우리의 더러운 행실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복음을 위해서 고난받는 이 거룩한 일이 우리의 잘못으로 비추어져 평가절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고난 중에 깨끗함을 견지하라고 부탁한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구약,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 인용은 성도의 성결을 위한 노력이 상황 초월적이며 절대적임을 암시한다. 거룩함을 위한 노력은 환경과 대상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 실천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한 절대적 명령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찌하든지 상관없이, 또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개의치 말고, 하나님이 거룩하기에, 자신도 거룩함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깨끗함의 노력이 \"모든\" 행실에 적용되어야 함을 전달한다. 삶의 한 부분만으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자체가 거룩해야지 우리의 특정 부분만 거룩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성에 도달할 수 없다. 사람마다 자기가 잘 실천하고 자랑할만한 한 영역들이 다 있다. 예를 들어 교회생활 혹은 가정생활. 그러나 하나님께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잘 감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잘 못하고 있는 영역이 아직 많다는데 있다. 레위기 1장에서 하나님은 제물을 바치려거든 흠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 흠이 있는 제물은 많이 부족한 제물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제물이다. 삶의 모든 부분이 깨끗지 않으면, 흠 있는 제물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제물인 셈이다.

고난 속에 있는가? 핍박 속에 있는가? 흠 없는 제물이 되기를, 모든 행실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는 노력을 결코 등한히 여기지 말라. 그럴 때 당신이 당하는 고난은 빛이 날것이고, 당신의 삶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고난가운데 있을 때 돌아갈 고향을 사모하라. 대게 고난이 오면 우리는 고난만을 바라보기가 너무나 쉽다. 당장 피부로 느껴지기에, 그 고난을 피하고 싶기에, 고난을 주목하고, 고난을 생각하여, 고난 속에 지내게 된다. 현실 지향적, 현재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를 가리켜 나그네라고 부른다. 본향을 떠나온 나그네. 비록 나그네의 길이 힘들어도 돌아갈 본향, 안식하며, 수고의 눈물과 상처를 닦아줄 아버지가 기다리는 곳이 분명히 있는 자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그네 현실이 영원한 현실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고난은 영원히 누릴 영광을 준비하는 기회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다림의 미덕이 점점 우리 가운데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M. Scott Peck은 \"많이 가지 않는 길\"(The Load Less Traveled)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은 기다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인들은 장래에 누릴 영광을 기다리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다음의 훈련을 시킬 것을 제안한다. 숙제를 한 뒤 놀 것; 주식(밥과 국)을 먹은 뒤 후식(과일, 사탕)을 먹을 것; 손을 먼저 씻고 간식을 먹을 것 등.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다리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의 영광은 자신이 몫이기를 바라고, 앞으로 받을 상급은 남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인내와 소망이 기독교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었지만, 오늘날은 기다리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기보다 보다, 눈에 보이고 지금 체험할 수 있는 이 땅에 쌓아 두기를 원한다. 나그네의 영성을 잃어버리고 거주민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그러나 나그네의 순례를 위해 사용하라고. 그런데 사랑할 하나님을 이용하고, 사용해야할 세상은 사랑한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한 고난을 대면하고 극복할 용기를 상실하고 있다. 베드로는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분명히 말한다. 당신들은 영광을 누릴 장소와 시간이 보장된 자임을, 그리고 이 귀한 영광의 순간을 생각하며 나그네의 길을 계속 힘있게 가라고.

끝으로 고난과 아픔 속에 있을 때, 얼마나 귀한 자임을 묵상하라. 베드로는 성도들이 구원받은 것이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점 없고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되었음을 일러준다. 핍박받는 성도의 존귀함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세상 사람보기에는 이방인으로 핍박의 대상이 되지만, 우리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귀한 자로 보여진다. 그래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의 어떤 순간도 하나님은 지나칠 수가 없고, 우리가 맞는 메와 우리가 당하는 수욕을 다 세고 계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심은\"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며, 인자한 귀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 순간을 기억하자.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감격했다. 하늘 문이 열렸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해 이를 가는 자들이 많을수록, 고난이 깊을수록, 하늘에서는 스데반을 응원하는 열기가 더 뜨거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는 서서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세상의 뛰어난 자 누구보다, 당신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연약한 백성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신다. 페르시아의 영광스런 고레스 왕보다 땅 끝에서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을 \"나의 택한 백성이요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러준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억하자. 하나님은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고난을 지켜보시며, 도울 길을 마련하고 계심을.

사도 베드로는 벧전 5장 10절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잠깐\"동안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잠간의 기간을 과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모든 행실에 깨끗함을 노력하면서, 돌아갈 고향을 사모하면서, 그리고 존귀한 자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찬송: 489, 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