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은 있다

소망은 있다/벧전3:13-17

소망은 있다/벧전3:13-17
2002-07-29 13:31:20 read : 175


우리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할 세 가지 삶의 요소는 \"믿음, 소망, 사랑\"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없으면 우리의 삶은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인생을 집으로 비유한다면 믿음은 기초와 같은 것이고, 소망은 집을 지탱하는 기둥과 지붕과 같은 것이고, 사랑은 그 집을 꾸미는 여러 가지 장식과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있을 때 서로가 맞물려 온전한 집이 되듯이 우리의 신앙의 인격을 온전하게 해준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우리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해서 \"사랑장\"이라고 부른다. 7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고, 13절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사랑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사랑 안에서 믿음이 온전해지고 소망이 세워지며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분명하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라\"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모든 것이 평탄하고 순조로울 때를 위한 것이 아니고, 환난과 시련이 닥쳐오고 삶의 겉잡을 수 없는 풍파가 몰아칠 때를 위한 권면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좋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얼른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예수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안되던 일이 잘 풀리고, 병든 몸이 건강해지고, 자녀들의 진로가 형통하고, 이 땅 위에서 만사형통 한다는 것을 기대한다. 이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도 보면 그런 일들이 분명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런 목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그 소원을 성취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또한 소박한 믿음으로 그와 같은 것을 구하며 기도하여 얻은 사람들의 간증적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다.

한 성도님이 아주 소박한 기도를 드렸다.

\"주님! 봄이 되면 외출할 일도 있을 텐데, 마땅히 입고 나갈 외출복이 없습니다. 그저 적당한 외출복 하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날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티켓 한 장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구한 것보다 훨씬 비싼 옷 한 벌을 살 수 있는 티켓이었다. 평소 자주 있던 일 같으면 그럴 수도 있다 하겠으나, 오랜 결혼 생활을 통하여 처음이라고 생각될 만큼 드문 일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한 밤중에 이웃집에 가서 떡 세 덩이를 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시면서 생선을 구하고, 알을 달라하는 아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비의 마음을 비유하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11:10-13)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우리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시련이 있다. 환난이 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고,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어려워지는 듯한 때도 있다. 차라리 믿음이 없다면 세상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많은 갈등과 고통이 따름을 알고 있다.

이러한 때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분명한 이유, 곧 소망의 확실한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그 소망의 이유를 명확히 해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첫째, 열심히 선을 행하라(13)

선을 행하는 삶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을 받는다.

갈라디아6:9, 10의 말씀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거두게 하신다.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한 선행은 주님께서 갚으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가정들을 주님의 이름을 돌보는 것은 곧 주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에게는 좋은 것을 거둘 소망이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며 사십시오.

열심히 선을 행하십시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나치지 마십시오.

그 일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복이 있는 일입니다.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그리 하십시오.

땅에 떨어진 좋은 씨앗은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으십시오.(15)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12,13의 말씀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마음에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으로만이 가능한 일이다. 죄인이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성경은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12:3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사람은 옛 자아 곧 죄와 마귀의 지배를 받던 육적인 인간은 죽고, 이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새 사람이 된 것이다. 주 예수의 영이 다스리시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고, 성령의 열매를 그 인격과 삶 속에서 맺게 된다. 누구나 그 삶을 통해서 흠모할만한 인격을 이루게 된다. 이들을 성경은 성도라 일컫는다.

물론 아직도 육의 몸을 지니고 살기 때문에 가끔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삶을 살지만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처럼 무디게 살지 아니하고, 그 때 그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므로 순간순간 회개하게 되고, 주님의 사람답게 살게 된다. 바로 이들의 삶에 소망이 있다. 우리가 아직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 우리들의 삶은 날마다 성숙에 성숙을 거듭하여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4:13-16의 말씀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 말씀 안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소망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마침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되는 소망이다. 항상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단계에 머물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장성하여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다스려 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여기에 우리들의 소망이 있다.



톨스토이 세 수사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섬에 주님을 본받아 수련하는 세 사람의 수사가 있었다. 어느 날 신부가 그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가 찬 신부가 그들을 앞에 놓고 주기도문을 가르쳤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열심히 가르치고 신부가 배를 타고 그 섬을 떠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세 수사가 급하게 물 위로 걸어서 그 배로 다가왔다. 신부는 깜짝 놀랐다. 주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신부님, 우리가 그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다. 그 때 신부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자네들은 어떻게 기도하여 왔는가?\" 그들이 대답했다. \"하나님, 당신이 셋인 것처럼, 저희들도 셋인데 가르쳐 주십시오\" 이 단순한 기도가 그들의 삶을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많은 지식이 우리를 새롭게 하기 보다, 우리가 아는 단순한 지식과 믿음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



우리는 사실 영적인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처럼 굴 때가 많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장성한 사람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죄가 여러분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단에게 마음을 맡겨두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들의 결단이고 선택입니다.

항상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고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일을 결정하십시오.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인정하십시오.

잠언3:6의 말씀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마태복음10:32,33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서울에 대학을 보내고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온 시골의 어머니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모른 채 하고, 친구에게 시골 집 하녀 정도로 취급하는 못된 아들의 망령된 행실에 대하여 들어 왔다.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곤란한 자리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 아니하고, 마치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는 망령된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주님이 뭇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리라면 앞다투어 그리스도인의 행세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고난을 받고 수모를 받는 자리에서 제자들은 멀찍이 서서 쫓았고, 모두가 모른다고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네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



셋째 선한 양심을 가지라(16)

이 선한 양심은 온유와 두려움에서 생기는 마음이다. 온유라 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품을 말한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데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살아가는 데서 생기는 자유와 담대함이다.

우리는 이 마음을 요셉과 다니엘에게서 발견한다.

요셉은 항상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으로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셨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요셉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셨다. 죄의 유혹을 받는 자리에서도 주님이 함께 계심을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심각한 죄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사람 앞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득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어떤 영광도 주인의 것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이것이 그를 끝까지 겸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청지기 의식에 투철했다는 말이다.

이 때 요셉은 선한 양심을 가질 수가 있었다.

여기에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삶의 평정이 이루어진다.

지금 당장은 권모술수가 통하고, 위선과 거짓이 상대를 이기는 것 같지만 그런 삶에는 소망이 없다. 진리 때문에 때로는 핍박을 받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 때문에 난처한 입장에 놓일 수도 있지만 묵묵히 선한 양심으로 살면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받는 종이신 예수님이 빌라도의 심문을 받는 장면을 미리 예언하여 이르기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53:7)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다 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형편에 놓일 때 억울하고 괴로울 때 주님을 생각하고 묵묵히 선한 양심을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찬송510장이다.

1.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

근심이나 걱정을 사양할 수 있을까?

나를 항상 버리고 주를 따라 가겠네.



2. 빌라도의 뜰에선 주를 생각할 때에

수치 됨과 아픈 것 못 견딜 수 있을까?

길이 참고 묵묵히 주를 따라 가겠네.



3. 갈보리 산 올라간 주를 생각할 때에

나의 받는 괴롬을 비교할 수 없으리.

십자가를 짐으로 주를 따라 가겠네.

4. 무덤에서 부활한 주를 생각할 때에

환난이나 죽음도 두려울 것 없으리

승전가를 부르며 주를 따라 가겠네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행동 다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나면 주님의 뜻과는 먼 삶을 살수밖에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금욕주의적인 삶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절제된 삶이 필요하다. 참아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 자제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주님의 최후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의 소망을 바라기 때문에, 또한 주님이 살아 계심과 평가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묵묵히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이 소망 때문에 산다.

선을 행하는 삶에 맺어지는 열매를 소망하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든지 모르든지 묵묵히 선을 행하며 산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 그의 다스리심이 궁극적으로 승리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선한 양심으로 산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그 길을 따라가는 삶을 산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는 살아 계시다. 그가 다스리신다. 그가 심판하신다. 이것이 우리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이유이다. 당당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