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벧전3:15 2003-12-08 21:38:34 read : 121
성경 원어인 히브리어에서 \"소망\"에 해당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티그바\"입니다. \"티그바\"는 본래 \"줄\" 혹은 \"밧줄\"을 의미하는 명사입니다.(수 2:18,21) 이 단어가 후대에 가서 \"희망, 기대\"의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밧줄\"이 \"소망\" 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연유로서 설명될 수 있는 이야기가 구약성경 여호수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해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유숙하였습니다. 이 낯선 사람들을 수상히 여긴 자가 이 사실을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그 밤에 정탐꾼을 찾는 무리가 라합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두 사람을 숨기고 정탐꾼을 끌어내라는 왕의 종들에게 \"그들이 왔었지만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했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면 미칠 수 있으리라.\"고 거짓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을 지붕 위 삼대에 숨긴 가운데 다시 깊은 밤중에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어 도망가게 하되 사흘쯤 산에 머물다가 가라고 일렀습니다. 이런 호의를 베푼 라합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함께 계시고 과연 여호와에 대한 소문처럼 그가 이 땅을 그 백성에게 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땅이 함락될 때 자기와 자기 부모, 온 가족을 살려 줄 진실한 표를 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정탐꾼들은 대답하기를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 온 가족을 그 집에 모아 있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붉은 줄\"은 서약의 한 징표이며 라합 가족을 구하는 \"소망의 표\"가 되었습니다. \"티그바\" 즉 밧줄이 소망의 뜻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 사건이 될 만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고 성중의 사람들을 다 죽일 때에 그의 집안에 모인 가족들은 살아 남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진 소망은 막연하거나 허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확실한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었습니다. 창문에 매달아 놓은 붉은 줄이 소망의 이유였습니다. 소망이 가득한 생활은 성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경우에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막연한 기대이거나 허황된 소망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 분명한 이유가 있는 소망들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로, 환난 중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환난을 겪게 됩니다. 가정적인 환난, 경제적인 환난, 육체적인 환난, 사회적인 환난 등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의미한 환난이 없습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 말씀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였습니다. 환난은 믿음을 견고하게 해줍니다. 환난은 믿음을 순수하게 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이 가져오는 유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환난으로 인하여 절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고후 4:17)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핍박을 받는 중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핍박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핍박 중에 소망을 가지며 핍박 중에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고 도와 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핍박 받음으로 상을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경제적인 곤란과 궁핍에 처할지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가난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재산이 많이 있는 사람은 여행하는 도중 노비가 떨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본향이 하늘 나라인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잠시 사는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비굴하지 않고 어떤 지경에서도 항상 자족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육체적 장애와 병든 중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기적적인 치유와 신유의 은혜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4~16)고 하였습니다. 모든 병이 다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장애나 연약한 상태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고 장차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늙거나, 추하여지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몸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여러분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다섯째로,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혐오하며 죽음에 직면할 때 두려워하고 절망을 느낍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장생불로의 비법은 없습니다. 거부한다고 죽음이 물러가지 않습니다. 무시한다고 죽음이 지나쳐가지 않습니다.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죽음은 인간에게 절망적인 문제입니다. 죽음은 존재의 멸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은 후 오히려 이 땅에 살 때보다 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해결뿐 아니라 죽음에도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고 하셨으며 또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잠언서에 기록되기를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잠 11:7)라고 하였고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 14:32)고 하였습니다.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망이 결코 왕 노릇하지 못합니다. \"나는 영생의 생명을 가졌고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벧전 3:15上). 누가 우리에게 직접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불신자들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망을 그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이므로 그들도 이러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소망 없이 세상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가진 특권이며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소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막연하거나, 허황된 것이 아닌 진실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라합이 창문에 매어단 붉은 줄보다 더 확실한 징표를 가졌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와 언약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또한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소망이 가득한 성도답게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여 그들도 이 같은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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