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회에 오니 희망이 있더라

이 교회에 오니 희망이 있더라/잠17:22/2003-12-17

이 교회에 오니 희망이 있더라
잠17:22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여러분! 이 시간에 지식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고 하세요.
우리에게 은혜만 역사 하면 사는 길이 있어요.

여러분! 이 말라 터지는 대지 위에도 비만 내리면 사는 길이 있어요.
그 심령에 은혜의 비만 내리면 사는 길이 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삶을 위대케 하고 발전시키는 때가 종종 있어요. 어떤 때는 깜깜한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내가 상상하지 못하던 그런 좋은 때가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삶의 때를 잘 분별하여 붙든 사람들은 인생에 놀라운 기회를 잡게 됩니다. 「돌이켜 보니까 내가 그때 그 기회를 잡았어!」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지나간 다음에야 탄식을 하며 아쉬워합니다.
「그때 붙들어야 되는 것인데」「그때 그런 결정을 했어야 되는 것인데!」「그때 내가 생명을 내놓고 그 기회를 붙들어야 되는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삶의 때를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제일 처음에 주는 복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제일 처음에 주는 일차적인 복, 그것은 삶의 기회 에요. 하나님의 복은 언제나 기회로 환산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삶의 또 다른 기회로 주시기를 원한다는 마음, 그런 은혜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 오늘은 날이 맑으면 될텐데...」그러나 비가 올 수도 있어요. 「오늘은 비가 좀 왔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날이 맑을 수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인생의 다가오는 평안의 날과 슬픔의 날을 어느 누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세상의 권세와 권력을 다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비록 세상에 자기 돈이 어디 있는지 그 돈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 밀려오는 슬픔의 날과 기쁨의 날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런 운명에 대한 눈을 뜨는 것이에요.


그러나 세상 날씨는 내가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고 할 지라도, 놀라운 것은 내 마음의 날씨는 내가 결정하므로 아무리 세상에 벼락이 쏟아져도 내 마음은 청청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바깥날이 그렇게 청청 해도 내 마음에 벼락이 쏟아지고 우박이 터지면 형편없을 수 있단 말이에요.


인생 길, 극한 슬픔이 파도처럼 엄습해 올 때에 무서운 삶의 수레바퀴에 짓밟히고 무너질 때가 있어요.
바퀴에 막 엉켜 같이 돌아갈 때도 있어요. 패배하고 파멸 당하는 때가 있어요. 대개 이런 슬픔의 무서운 바퀴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전진할 수 있는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바퀴에 찍혀서 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퀴를 타고 위에 올라가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신앙의 사람들이란 누구냐? 바퀴에 짓밟혀서 그 바퀴에 짓눌려 패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퀴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이에요! 독수리처럼 내 영혼들이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령들이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나오면 무엇이 있는지 아세요? 희망이 있어요. 주님 품에 오면 무엇이 있는지 아세요? 희망이 있어요. 이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슬픔들을 어떻게 이겨나갈까? 슬픔이 파도처럼 엄습해 올 때에도 우리가 먼저 기억나는 것은 하나님의 품에 오면, 주님의 품에 오면, 하나님의 의로움을 믿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하는, 생명을 다해 힘차게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와야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어요. 이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환난도, 곤고도, 핍박도, 기근도, 불신도, 위협도, 칼들이 성난 파도처럼 우리를 찌르고 덤벼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차게 외칠 수 있는 말은, 사망이나 적신 이나 위협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내게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사랑을 끊어 갈 수 없다! 이 위대한 믿음 이것을 우리가 탐내야 될 것입니다. 이 위대한 믿음, 이것을 선택해야 됩니다. 이 위대한 믿음, 이것을 오늘 우리가 성난 파도와 맞설 때 우리가 갖출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인 것이에요.


저는 이번 주 안에 여러분이 아시는 데로 대단히 바빴어요. 전 교인들이 한국 방송공사 한강 연수원에서 은혜로운 캠프를 했어요.
한쪽에서는 성인들이 집회를 하고 한쪽에서는 우리 민족의 후대인 우리 국가의 후대인 젊은이들이 집회를 했어요.


전 선생님들이 전 학생들이 그 미국 분들이 오시고 미국에서 오시고 우리 나라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애쓰시는 미국군인 아저씨들이 오시고... 국제적인 캠프가 됐어요. 처음으로 영어 캠프를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잘 따라와요.
또 거기 참여했다 봉사하는 선생님들이 다 은혜를 받았어요.
저도 큰 은혜를 받으면서 양쪽으로 뛰다 보니까, 휴대 전화기에 받지 못한 것이 여섯 개가 들어와 있어요.
거기에 낯선 번호가 있어서 이상하다 싶어 호기심을 가지고 그 전화번호를 돌렸어요. 누구일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여보세요? 저 전가화 목사입니다. 그쪽에서 세 번이 울렸는데 금방 받는데 아주 목소리가 대단히 탁한 음성이에요. 「정말이십니까?」 「전 목사님 맞습니까?」 「정말이십니까? 」 「아! 반갑습니다. 」 「가만 있자...」 그러면서 그 쪽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더니 「목사님, 저 그 교회에 나간지 두 달 됐어요.」 「아! 그러신가요?」 「제가 좀 잠깐 얘기 좀 하겠습니다.」하면서 전화로 얘기를 시작합니다.


\"저는 금지옥엽 하던 자식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가고, 그 자식 문제 해결하겠다고 이리 쫓아다니고 저리 쫓아다니다가 기업도 다 부도나서 날아가 버리고, 경찰서를 가도 희망이 없고, 법원을 가도 희망이 없고, 신문사를 가도 희망이 없었어요.
이러치도 못하고 저러치도 못하고 술에 절고, 분노와 원한과 만나는 사람마다 다 분노와 원한으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누가 얘기하기를 그러지 말고 그 앞에 있는 교회를 가 봐라. 교회에 가면은 정말 용기가 생긴대. 한번 가 봐!


그래서 한 번 왔습니다. 저 이층에 몰래 앉아 가지고 가만히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 하나님이 계시는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나는 모르지마는, 내가 분명히 하나 아는 것은 그 교회에 가니까 희망이 있었어요.」
경찰서를 가도 희망이 없었고, 법원을 가봐도 희망이 없었고, 신문기자를 만나도 희망이 없었는데, 그 교회에 나가서 보니까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 말은 대단한 말입니다. \"교회에 나오니 희망이 있더라!\" \"교회에 나오니 희망이 있더라!\"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의 형편이 어떻든, 우리의 위치가 어떻든, 우리의 건강이 어떻든, 어디를 가서도 희망을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희망이에요.
인류의 희망이에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슬픈 일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또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슬픈 일을 절대로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은 사람도 이 땅에는 한 사람도 없어요.
누구나 다 슬픈 일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우는 사자처럼 사탄들이 우리를 괴롭게 해요.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겨울 파도처럼 우리를 떨치려고 난리를 칩니다. 한 파도 지나면 또 다른 파도가 옵니다.
한 고민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다가 올 때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품에서 새 길을 얻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소망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인류의 소망도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나라의 소망도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집안의 소망도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자녀들의 소망도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무엇보다도 형제들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데에 투자하세요. 우리가 오늘 보니까 예쁜 교인들이 아침에 나오는데 투자들을 많이 하고 나왔군요. 옷들도 예쁘고 이 바쁜데 누구는 머리도 만지고 온 것 같아요.
힘든데 앞에다 무엇을 바르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고 왔는데 그것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이 말을 꼭 들어야 됩니다. 마음의 근심은 뼈를 녹여요. 심령을 새롭게 하는 일에 투자해야 됩니다.
시간을 써야 됩니다. 돈도 들여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화장 백 안에 있는 분 값 하나의 값이 얼마예요?


심령을 새롭게 하는 일에 정열도 투자하고 돈도 투자하세요. 시간도 투자하세요. 내 심령이 맑으면 얼굴이 맑아요. 속이 부글부글 끓고 다 타고 썩어 가는데 거기다 아무리 좋은 것 붙여 봐요. 다 가식이고 가면입니다.
썩은 것에다 썩은 것 붙이면 전부 썩어가지요. 주님은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어요. 오늘 그 심령에 투자에 눈을 뜬 사람마다 내 영혼에 자유와 희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정직을 포기한 성공이 이 땅에 있을까요? 왜 우리가 심령에 깨끗해져야 되느냐? 목회자의 삶을 살면서 사업이 무너지고 고난을 당하는 그런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제가 자주 눈을 뜨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정직을 포기한 성공이란 이 땅에 없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나한테도 그렇고, 기업도 고렇고, 개인도 그래요. 심령에 생기를 얻어야 바르게 살고 싶어집니다. 심령에 생기를 얻어야 정직의 가치를 압니다. 그렇지 못하면은 자주 세상의 사탄에게 넘어가요.


해답은 언제나 문제보다 높은 수준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의 심령을 새롭게 하므로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나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것입니다.


더 높은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으로 나를 더 높이 올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발버둥을 쳐야 됩니다. 문제 거리는 형벌이 아니에요. \"아! 어쩌다가 내게 이런 문제가 왔을까? 어쩌다가 내게 이런 고난이 왔을까?\"

문제 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형벌이 아닙니다. 더 고차원적인 삶을 위한 하나님의 초대장이에요.
문제가 왔거든 여러분! 더욱 정직해지십시오. 문제 가운데 있거든 내 심령이 더욱 하나님 앞에 생기를 얻고, 더 고차원의 삶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초대를 받은 줄 알고 달려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희망이 있어요. 하나님을 아는 자는 고난을 안다. 이런 말이 있어요.


하나님을 정말 아는 자는 고난을 알아요. 역경과 고난 앞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며 어떤 때는 「하나님! 이럴 수가?」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내 가정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내 아이 속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하필이면 우리입니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 그나마 지켜오던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다 무너지면서 「하나님! 하나님!...」 탄식 할 때가 있어요. 슬퍼할 때가 있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나 믿음의 영웅들을 보세요, 여러분! 아무렇게나 믿고 간 사람들은 이렇게 탄식과 슬픔에 잡히지만, 믿음의 영웅들을 보세요! 믿음이란 그때를 위한 믿음이에요. 믿음이란 그 사건을 위한 믿음이에요. 믿음이란 그 날을 위한 믿음이에요.


믿음의 영웅들은 어째 내 가정에! 어째 내 집에! 하필이면 나일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때를 위한 믿음이라, 이 날을 위한 믿음이라, 이 사건을 위한 믿음이라. 「주여! 내게 산을 옮길 믿음을 허락하시옵소서. 주여! 내가 산을 옮길 믿음을 가졌나이다.」 그러고 맞서는 것이에요. 그렇게 실개천 믿음처럼 구불구불 무너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귀한 믿음이란 어느 때를 위한 믿음이냐? 바로 환난과 고난과 역경에 맞서야 할 그 때를 위한 믿음이에요.


사실 이 때를 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역경과 고난 앞에, 또 자신의 결정과 자신의 실수 앞에 그것을 객관화하고 보고 웃을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기는 사람들이에요. 왜 우리가 산을 옮길 믿음을 가져야 되느냐?
그건 역경과 고난과 또 그것이 남의 실수든, 나의 실수든, 실수와 결점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삶의 여유는 산을 옮길 믿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에요. 좁은 자기 소견으로 자꾸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자기를 주장하고 통제하고 이런 것을 버려야 합니다


저희 집에 어머님이나 누님이 옛날에 수를 잘 놓았어요.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수를 자꾸 놓더라 구요. 그
런데 어느 날 수를 놓은 것을 보니까 거기 실밥이 나오고 다 엉망 이였습니다. 그래서 누나! 이것을 일이라고, 이것이 뭐냐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오시더니 얘 남을 그렇게 마음대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란다.
뒤집어 보아라, 얘야! 그래서 뒤집어 보니까 것이 거기에는 나비가 날아가고 새가 날아갑니다. 꽃이 빵긋 피었어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또 큰 실수를 한 것은 시카고에 있을 때, 지금 김영호 장로님만큼 미국 국가가 길러낸 좋은 인물 강철 박사인데 그 분이 암 병에 걸렸어요. 암 수술을 하는데 저는 밖에서 기도하고 드디어 수술을 받고 나왔어요.
그래서 보니까 기도를 할 맘이 없어졌어요. 왜냐 하면 의사 선생님한테 그렇게 내가 잘 하라고 부탁을 했는데 선생님이 막 꼬매 놓았어요.
그래서 선생님 이것이 뭡니까?
선생님도 잘 아시고 또 목사인 제가 그렇게 부탁했으면 수술 자국을 깨끗이 해 놓아야지 이게 뭡니까?,
그랬더니 이 분이 제 손을 잡고 목사님! 그냥 이렇게 해 놓으면 하나님의 신이 운행해서 다 붙여집니다. 남의 결점도 남의 실수도 자신의 결점도 자신의 실수도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늘 가지세요.


특별히 한국 사람들 조급성이 많아요. 「오! 이제는 끝이야! 우리 집 끝이야, 얘들아 우리 집 끝났다. 헤어진다. 」
지금 소망의 주님을 붙들고 마음의 모든 근심들을 정복하세요. 고통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과거의 기억 밖에는 없는 것이에요. 아! 목사님 힘들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은, 대개 다 그 일에 고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지나갔어요. 그 사람도 지나갔고 그 말도 지나갔어요.
다만 자기 마음속에 붙들고 있는 거지같은 감정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고 감정과 싸우고 있는 것이에요.

이 땅에 엄밀한 의미에서 고통은 없어요.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지우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이에요. 다 잊어버리세요.


여러분! 행복하신 가요? 여러분! 행복이 무엇일까? 하는 일 입니까? 아니면 그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입니까? 아무리 기가 막힌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요. 한심한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복은 일이 아닙니다. 그 일에 대한 자기의 생각입니다.
사람에 대한 것도 문제입니다. 사람을 바꾸면 사람은 행복 할 꺼야, 오! 바꿔! 바꿔!... 물론 어느 판단은 바꾸어야지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닥터 칵스 라고 하는 분하고 얘기를 해 봤어요. 칵스에게 물어 봤어요. 여러분! 이런 거예요. 다시 말하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사람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자기생각이 자기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한 생애를 살면서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이 땅에 어디 있을까요?


오늘은 좋은날! 오늘은 좋은날! 지금 이 순간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어요. 어제는 지나갔고 지금도 몰라요, 오늘은 좋은 날! 오늘은 좋은날! 지금 이 순간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나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금 여기 오기까지의 모든 것에서부터 아주 모든 것을 다 단절시키세요. 다 끝났어요. 다 지나갔어요. 마음의 근심을 회복하세요. 마음의 근심은 뼈를 상하게 하니 마음의 즐거움을 회복하세요.


성경의 원어의 뜻은 이런 것이에요. 약 중에 제일 좋은 약이 무엇이냐? 마음의 즐거움이 약이에요. 마음이 즐거운 약을 감당할 약이 없단 말이에요.

누군가로부터 혹은 내가 저지른 잘못된 일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서 수많은 고민들을 하고 수많은 기도들을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제거하면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을 하고 이런 것, 왜 합니까? 자신의 마음에서 지난날에 내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줬던 그런 생각들을 제거하면 돼요. 그러면 간단한 것이에요.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속에서 놀랍게도 제거의 복을 줘요. 성령이 역사 하면 우리가 감당 할 수 없던, 우리가 아프던, 그런 모든 일들을 순간에 다 잊어버리게 해요.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의 근심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이 시급히 자기 마음속의 근심을 몰아 내는 일은 자기가 이룩해야 할 오직 자기만이 해야 할, 제일 위대한, 제일 급한 대작이에요. 내 마음의 근심을 대신해 줄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다 지나갔어요. 웃어넘기세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믿는 사람들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니라.\" 웃으세요. 여기 교회에 오니까 희망이 있다! 믿으십시오..


모든 고난은 웃음으로 끝나는 거예요. 이것은 공식이에요. 한번 크게 하나님 안에서 웃고 나면 모든 고난이 끝나요. 모든 죄악도 웃음으로 끝납니다.

항상 웃고 나면 다 끝납니다.
웃음은 우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에너지입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일을 봤는데 웃으니까 그가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해방됩니다.
웃음은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해 주는 하나님의 진정한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고 그럴 때 그 영혼에 기쁨과 감격과 감화와 웃음이 터지는 은총을 받으면 살아갑니다.


오늘 여러분! 이 교회는 희망이 있어요. 하나님의 품에는 희망이 있어요. 웃고 사세요. 영혼이 웃고 가세요. 하나님을 아는 자는 웃음을 안다고 하는 위대한 말이 있어요. 하나님을 아는 자, 정말 하나님을 진실하게 아는 자에게는 웃음이 있어요. 웃음은 눈물처럼 삶의 고차원 적인 또 다른 기도 에요.
우리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특별히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눈물의 기도, 이것이 차원 높은 기도란 것 알아요.
그러나 웃음은 또 다른 고차원 적인 하나님과 접선되는 기도의 한 일종이에요. 웃음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입니다. 웃음이 있는 곳에 행운도 모입니다. 웃음이 있는 곳에 돈도 모입니다. 웃음이 있는 곳에 넉넉함도 모입니다.


국가를 경영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 삶의 지경이 넓고 그 삶의 폭이 넓은 사람 일 수록 더 잘 웃어요. 명심하세요 점점 삶의 폭이 좁아지는 사람일수록 웃음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재물을 잃어버린 사람도 웃음을 잃어 버려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마음의 근심은 뼈를 녹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그 생명에 양 약이 됩니다. 교회에 나오면 희망이 있어요. 다시 슬픔을 딛고 감사하세요. 자주 감사해야 되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것, 없어진 것, 날아간 것을 붙들고 원한과 분노를 사지 말고, 있는 것을 붙들고 자꾸 감사하세요.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리라.

머리를 숙이세요. 오 주님!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올 때의 얼굴과 갈 때의 얼굴, 올 때의 모습과 갈 때의 모습...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해요.
하나님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가족들을 위하여 지금 이 자리에 오지 않은 남편들을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입을 벌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