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 눅2:8-14
프렛 크레독(Fred Craddock)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설교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강연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 밤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강한 눈보라가 몰아 닥쳐서 강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이튿날인 주일 아침 크레독은 호텔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간이 식당까지 걸어가서 아침 식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식당 안에는 좀더 따뜻한 곳을 찾아 모여든 손님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크레독은 간신히 자리 하나를 찾아서 앉게 되었습니다.
이 때 겉보기가 아주 초라한 여자 한 사람이 식당 안에 들어왔습니다. 꼬질 꼬질하게 기름때가 묻은 행주치마를 두른 덩치 큰 식당 주인이 여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물 한 컵만 주시겠습니까?\\\" 주인이 즉시 물을 가져와 여자가 앉은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그러고서는 또 숨도 돌리지 않은 채 묻습니다. \\\"자, 이제는 음식을 시키시지요.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물이면 됩니다. 저는 아무것도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 때 주인의 인상이 갑자기 험악해졌습니다. \\\"우리 식당은 음식을 사먹지 않고서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면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주인은 아주 불친절하게 속사포같이 말을 내뱉었습니다. \\\"저, 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조금만 더 앉아 있으면 안되겠습니까?\\\" \\\"부인, 똑바로 들으세요. 음식을 주문하든지 떠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세요!\\\" 결국 여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쓸쓸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손님들이 한 사람 두 사람 함께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크레독을 비롯하여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 모두가 소리 없이 식당 밖으로 나가기 일보 직전이 되었습니다. 이 때 다급해진 것은 식당 주인이었습니다. \\\"손님, 여러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제발 자리에 그대로 앉아주세요. 그 여자 분을 우리 식당에 계속 앉아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식당 주인은 따스한 수프 한 그릇까지 그 여자 앞에 무료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크레독이 이 광경을 쳐다보면서 옆에 있는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요?\\\" \\\"글쎄요. 내 평생에 저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저 여자가 이 식당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아무도 환영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크레독은 즉시 이 여자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환영받지 못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그 초라한 여자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변에 있는 불쌍한 사람 하나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하지 않는다면 예수님도 환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마 10: 42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5: 40에서도 예수님은 이 땅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으며 주변에 불우한 사람들이 있는가 둘러봐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환영하는 것이 곧 우리 주님을 환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곧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신 소식이 베들레헴 근교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2천년 전에 고대 근동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읽으면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왜 하필이면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졌을까? 옛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목자들은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사람들이 아닌 짐승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러니 옷은 언제나 땀냄새와 짐승냄새로 진동했습니다. 한번도 멋진 신사복을 입지 못했고 언제나 더러운 막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시대의 목자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이 택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목자들은 대개 유대 광야에서 늑대를 비롯한 들짐승들로부터 양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돈 많은 부자들로부터 고용된 천민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짐승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막 살았기 때문에 까다롭기 짝이 없는 유대 율법을 거의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는 율법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기 전과 먹은 후에 손을 깨끗이 씻는 관습을 거의 지킬 수 없었습니다. 또한 양들은 안식일이 언젠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양을 돌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안식일을 밥 먹듯이 어기는 것은 물론이고 유대 회당이나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 한번 제대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또한 목자들은 주인의 감독을 거의 받지 않는 상태에서 양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자들은 주인의 양을 몰래 훔쳐서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에 은밀히 방목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너무나 쉽게 양을 훔치는 일들이 목자들 사이에 다반사로 일어났기 때문에 법정에서 목자들은 아예 증인으로 세울 수 없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목자들로부터 양이나 양털 혹은 우유를 사는 행위까지도 사회적으로 금했습니다. 목자들이 거래하는 것은 부정직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지요. 이러니 그 당시 정통 유대교인들이 목자들을 어떤 눈으로 보았겠습니까? 세리나 창기들과 똑같이 죄인 반열에 올려놓고 멸시천대를 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렇게 보잘것없는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 종교 지도자들, 부자들에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9절에 보면 모세와 같은 거물급에게나 나타날 법했던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을 두루 비취기까지 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곁에 서고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이자 목자들은 기겁을 했습니다. 9절에 보면 \\\"크게 무서워했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목자들은 자기들과 같이 비속한 무리들에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서워 떠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10-11절을 보세요.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자들이 더 이상 무서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쁜 소식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오늘날 다윗의 동네, 즉 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SAVIOUR), 곧 \\\'그리스도\\\'(CHRIST), \\\'주님\\\'(LORD)이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직장에서 승진이 되었다는 소식입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입니까? 아니면 월급이 올라갔다는 소식입니까? 아니면 한국이 월드컵 사강에 들어갔다는 소식입니까? 아니면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입니까? 그런 소식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기쁨을 주는 소식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근원적인 기쁨을 주는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은 다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세상 죄를 지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소식은 세상의 기쁨과 비길 수 없습니다! 만유의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의 참주인이 되신다는 소식은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 그 누가 여러분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습니까? 부처님도 공자님도 모하메드도 대통령도 정신과 의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만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요, 그리스도요, 주님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생과 구원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 2: 4-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딤전 1: 15은 말씀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그리하여 마침내 롬 8: 1-2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 이들에게 구주, 그리스도, 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소식이 전파되었습니다. 죄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이 소식이 전해졌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문에 나타나는 목자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로 공급했던 희생양들을 치던 목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마다 흠이 없는 양들을 쳐서 성전에 바쳤던 목자들이 이제는 자신의 죄를 지고 갈 어린양(요 1: 29 참조)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길렀던 양들은 아무리 고이 흠이 없이 키워도 인간의 죄를 다 씻지 못했는데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은 단 한번에 희생제물이 되심을 통하여 인류의 죄를 영원히 씻기어 주실 구주요, 그리스도요, 주님이신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은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무신론자였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잉거솔의 동생은 이런 내용의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인생은 영원이라는 두 개의 차갑고 황량하기만 한 꼭대기 사이에 가로놓인 좁다란 골짜기와 같다. 우리는 꼭대기 넘어 무엇이 있는가 하고 찾아보지만 말짱 헛수고이다. 우리는 크게 울부짖어 보지만 유일한 대답은 슬피 통곡하는 메아리뿐이다.\\\"
실로 하나님 없는 세상은 끔찍합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세상은 죽음과 절망뿐입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위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도 목자와 같이 비천하고 부족하기만 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절망적인 세상 한 가운데에 천국의 소망을 우리에게 열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말씀드리면서 설교를 맺고자 합니다. 옛날 전쟁이 수행되는 동안 정보를 수집하는 소대원들과 함께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전세를 분석해서 보고하는 병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 병사가 정보 수집을 마친 후 지휘관에 상황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지금 전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이 병사는 타고난 낙천주의자였기 때문에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각하, 우리는 사방 어느 곳으로도 공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적으로부터 포위되었습니다.\\\"
이 병사는 희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적으로부터 완전 포위된 것을 패배와 절망과 죽음의 신호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가득찬 채 비관적인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지금 적으로부터 포위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동서남북 어느 곳이나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으로 보고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도 이와 같은 희망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희망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셔서 희망의 씨앗이 되셨습니다. 이 희망의 씨앗이 심겨지는 곳마다 거대한 천국의 나무가 되고 영생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삶을 살았던지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육의 생활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 생명의 떡을 마시고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요 6: 35, 48 참조).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예수님은 한 알의 희망의 씨앗이 되셔서 여러분 가슴에 심겨지시길 원하십니다!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전하여졌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들도 이 희망의 소식을 듣고 돌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