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망 예수

새 소망 예수/막16:1-7

새 소망 예수
막16:1-7





독일의 사회 심리학자 Erich Fromm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이 렇게 의미있게 정의합니다.

\"Homo esperans …, 곧 소망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꿈과 소망을 가진 존재라고 멋있게 정의합니다. Homo esperans, 소망하는 인간! 그 래서 대우 자동차에서도 Espero라 는 이름의 차종이 있어요. 이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소 망을 주는 차라는 뜻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쥐를 잡아서 독 안에 넣은 다음에 완전히 밀폐합니다. 빛이 전혀 들어가지 뚜껑을 닫아놓 으면 그 안에 있는 쥐는 3분 안에 죽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쥐인데 독 안에 쥐를 넣고 뚜껑을 닫을 때 빛이 조금 들 어가게 해놓으면, 이 쥐는 36시간이 나 살아 있답니다. 똑같은 여건입니 다. 쥐가 스스로 밖에 나올 수도 없 고, 먹을 것을 넣어준 것도 아닙니 다.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 빛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 여기에 차이가 있 습니다.

그 유명한 신학자 Emille Brunner 는

\"허파에 산소가 필요하듯이 삶의 의미에는 소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 다. 우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반드시 소 망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소망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 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에 못박혀 죽으신지 드디어 사흘 만 에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 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을 사랑했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장례 를 치르고 침착하게 사흘을 기다렸 다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무덤 가에 갔을 때 그들은 놀라운 현장을 발견합니다. 이미 무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 님은 이미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할 렐루야!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동녘의 해가 밝게 뜨는 새 아침과 함께 부 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대로 다 시 살아나셨습니다(마 28:8. 눅 24:6).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합 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 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고전 15:3-4).\"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책 중의 인물 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주님이십니 다. 예수님은 추억 속의 인물이 아닙니 다.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겨울이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새싹이 푸릇푸릇 돋아나는 봄이 오면 누구에 게든지 새 소망을 주듯이, 죽음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소 망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강조합니다(벧전 1:3). 사도 바울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였음을 상기시켜 줍니다(엡 2:12). 그렇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내일 이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 자들에 게만 산 소망이 있습니다. 믿습니 까?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갈수록 나 아지는게 아니라, 더 어두워져 가며, 나빠져 가고, 절망적이 되어 가고, 점점 더 소망이 없어져 갑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산 소망이시오, 유 일한 새 소망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절망 가운데 사는 우리 에게 새 소망이 되십니다. 미래의 산 소망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이런 절대적인 확 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시 71:5) 오늘도 낙심과 실의와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새 소망을 주시는 부 활의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새 생명을 주십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요, 또한 부활의 종교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들은 죽은 교주의 큰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덤 앞에 가서 교주를 숭배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 다. 아니, 빈 무덤의 종교라기 보다는 열린 무덤의 종교입니다. 단순히 빈 무덤(empty tomb)이 아 니라,

\"열린 무덤\"(opened tomb)입 니다.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죽음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살 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어느 학교의 선생님이 교회 다니는 학생 하나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비아냥거리며 물었습니다

\"네가 믿는 천당이 어디 있는지 나 에게 보여 달라\"

\"네 선생님, 그것은 참 간단하지요. 선생님이 가시는 길로 계속 가면 지 옥이 있고, 제가 가는 길로 계속 가 면 천국이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무덤은 모두 다 열린 무덤이 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기에 오 늘도 우리를 능히 살려주시는 분이 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 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 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 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 니하리라\"(요 11:25). 믿습니까? 이제 예수님은 죽음의 쇠사슬을 끊 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능히 살 리시는 생명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 다(롬 1:4).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 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인생의 어떤 문제도 간 단히 해결됩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실까요? 예수님의 무덤가에 다가갔던 여인들 에게는 어떤 큰 숙제가 있었습니까? 무덤을 막아 놓은 큰 돌이 있었습니 다. 예수님을 보살펴드리는데 큰 걸 림돌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 본즉 그 큰 돌은 벌써 굴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는 모든 것이 간단합니다. 인생의 그 어떤 난제도 거뜬히 해결 해주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

2. 새 용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마자 사랑하 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이름을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반석, 곧 돌입니다. 원래가 돌이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할 것 같아 쉽게 깨닫 는 여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입 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입이 싸서 부활의 소식이 빨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었 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시 자마자 맨 먼저 주신 복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본문 7절입니다.

\"그대들은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 드로에게 이르십시오. 그분은 그들보 다 앞서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들은 거기에서 그분을 뵐 것이라고 말하십시오.\"(7절. 막 14:8. 마 28:7) 우리는 이 본문에서 두 가지 점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것입 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 다. 다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제자들과, 특히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켜 주라는 것입니 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겟세마 네 동산에서 실패할 것을 다 아시 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 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 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 리로 가리라\"(막 14:8. 마 28:7) 그처럼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너무나 무력하게 주님을 배 반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 말을 전해 들으므로 얼마나 가슴 설레이 며 새 용기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강조합니다(벧전 1:3). 사기가 저하된 그들에게 새 용기를 주셨으며, 슬픔에 묻혀있던 그들에 게 기쁨을 심어 주셨고, 실망한 그들에게 소망을 품게 해주 셨으며, 좌절한 그들에게 재기의 힘 을 주신 것이요, 고뇌에 차있던 그들에게 감격스런 소식이요, 불안으로 시달리던 그들 에게 평안을 안겨 주셨고, 의욕을 상실한 그들에게 새 소망의 뉴스요, 절망에 부딪쳤던 그들에게 새 꿈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 소망을 주십니다.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 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했 으나, 주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이 메시지를 힘주어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부터가 실패의 아 픈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 1차 선교사 역의 실패자입니다(행 13:13). 그러나 그는 훌륭한 선생님 베드로를 통하 여 다시 재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베드로의 훌륭한 통역관으로 그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벧전 5:13). 우리는 여기서 참 간단한 교훈을 얻 게 됩니다.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실패자를 힘있게 일 으켜줍니다. 오늘 우리도 서로 일으켜주고 세워 주는 힘찬 크리스쳔이 되시기를 바 랍니다. 어떤 신앙인의 말대로,

\"예수님께 가 장 고마운 것은 우리가 범한 실패의 분야에서 끝까지 우리를 믿어 주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첫 출범 을 하셨던 바로 그 갈릴리 호수에 다시 오셔서 아침 일찍부터 새 소망 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시 시작한 사람들입니 다. 사람들이 안믿어 주고, 더 이상 기 대를 걸어주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 십시오. 예수님만이 당신의 산 소망이 되십 니다. 기독교는 갱생의 종교요, 새 출발의 신앙을 표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는 부활의 새 아침이 될 수 있기를 바 랍니다. 3. 새 비전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자마자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에게 찾아오시고, 그리고는 꿈과 의욕을 상실한체 고 향으로 돌아가던 두 제자에게 찾아 오셨습니다(12-13절). 낙향하던 자 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hetera morpe)으로 나타나셨습 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하루 종일 이들과 동행하 시면서 상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령은 새로운 열정 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침체와 의욕상실에 빠졌던 마음이 새로운 열정을 회복하였습니다\"(눅 24:32) 새 심령이 되었습니다. 어두운 심령 이 밝아졌습니다. 무력한 심령이 생 기가 솟아 났습니다. 꿈을 상실한 마음에 새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 났습니까? 본문 13절을 자세히 보실까요?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서 남은 제자들에게 새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여기 돌아갔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엠 마오로 내려가던 사람들이, 예루살렘 으로 다시 올라간 것입니다. 잃어버린 꿈을 되찾은 것입니다. 비 전을 회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믿는 우리에게는 왜 새 소망이 있습니까?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언 제든지 새 심령으로 회복되기 때문 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언 제든지 새 비전으로 회복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꿈과 비전의 회복 입니다. Resurrection is Restoration!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내려가 던 길에서 다시 올라갑니다. 돌아가 던 길에서 다시 돌아옵니다 상심하던 자가 다시 원기를 회복합 니다. 꿈을 잃은 자가 꿈을 다시 되 찾게 됩니다. 인생을 포기한 자가 새롭게 도전합 니다. 낙심한 자가 칠전팔기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꿈을 잃은 두 사람을 다시 비전과 확신의 사람 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힘없이 실패했 었던 베드로에게는 위대한 순교자가 되는 꿈을 갖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곧 새 비전의 주님 이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거시적 비전(Macro Vision)의 메시지입니다(15절) 이제는 용기를 회복한 제자들에게 얼마나 웅대한 거시적 비전을 품게 하시는지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 게 복음을 전파하라』 저는 이 대목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가슴이 설레입니다. 지극히 연약한 제자들, 실패한 제자 들에게 얼마나 웅대한 거시적 비전 을 품게 하시는지요! All Nations & All Peoples! 자기 믿음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 던 자들에게 세계 선교의 거시적 비 전을 품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2000년 부활의 아침이 곧 비전의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꿈 이 되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곧 비전입니다. Believing is Vision! 새 비전을 품는 새 소망의 부활주일 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초청) (찬 155장)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무덤문을 여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 니다. 새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새 비전을 주십니다. 2000년 전 부활하신 그 예수님은 오 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새 소망이 되 십니다. 그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다시 만나 십시오. 그리고 그 예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십시오. 당신 앞에 어떤 큰 돌이 가로막고 있나요? 당신은 어떤 실패와 좌절을 느끼고 계신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절망 당한 자에 게 새 소망이 되십니다. 이제 그 새 소망 되시는 예수님이 당신 가슴 속에서 다시 부활하는 역 사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