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 소망

산 자의 소망/전9:1-6

산 자의 소망
전9:1-6





우리는 지금 참 많이 달라진 세상을 살고있습니다. 자연과 환경이 달라졌고 문화가 달라졌고, 인생의 가치관이 과거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하나님으로 부터 이 우주 만물을 잘 다스리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우리 인간은 문화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면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것은 사람사는 것이 그만큼 복잡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가 2,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복잡한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먹을 양식과 쓸 물자는 적었지만 그래도 사람사는 것이 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어서 오히려 마음으로는 자족하는 흡족한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떼 강도나 집단살인 같이 사람의 형상으로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단순하지만 가지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상상만 해도 그립고 포근한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 그 순박하면서도 아늑했던 따뜻한 인간적인 삶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기적인 욕망과, 파괴되어 버린 심성이 대신했고 우리는 신음하고 탄식하면서 살아가야하는 복잡하고 불안한 생활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면 그 다양한 사람들은 결국은 두부류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천한 자와 존귀한 자, 억압과 설움을 당하는 자와 억압을 가하고 온갖 특권을 누리는자, 힘없는 자들과 힘있는 자로 나누어 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오늘 성경에 기록된 바 그대로 [개같은] 약한 자 와 [사자같은] 강한 자 로 나눌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개와 사자를 무어라고 말씀하시는가요?

본문을 통하여 산 자의 소망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개와 사자의 성경적인 비교를 해 봅니다.

** 과연 개는 성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마태복음 15 ; 21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막 들어가셨을 때 일입니다. 천박하게 보이는 가나안 여자가 뛰어나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하면서 자기 딸이 귀신들렸으니 제발 고쳐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반응을 보이시지 않자 계속 쫓아오며 울고 불고 애원을 했습니다.이에 보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어 돌아가게 해 주십사 하고 청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면서 거절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이 여인은 예수님 발 앞에 절하면서 제발 도와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의 입에서는 더욱 견딜수 없는 모욕적인 대답이 나왔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고.... 다시말하면 [너는 개와 같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후에 이 여인은 더욱 간청하여 예수님을 감동시켜 결국 자기 딸을 고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시대에는 [개]는 곧 이방인을 지칭했고 경멸의 대상이고, 천하고 더러운 것의 상징이었고 무가치하고 천박한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 마태복음 7:6에는
\"거룩한것을 개에게 주지말\"라 고 하심으로 개는 천하고 더럽고, 비열한 마귀의 세력이라고 까지 상징 합니다.

** 그러면 사자는 어떤 상징이었는가요?
강한자의 상징으로 위풍 당당한 자로 묘사 했습니다. * 사사기 14:18에 불레셋 사람들이 삼손이 낸 수수께기에 대한 대답으로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고 했으며, * 잠언 30 : 29 - 30에는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개는 비천한 자들을 나타내고 사자는 강하고 존귀한 자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는 아무리 강한 사자일지라도 죽은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개가 더 낫다고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비굴하게, 푸대접 받으며 사는것 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죽는 것이 더 나을법도 한데 왜 하나님은 더럽고 치사하고 비굴할 망정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우리는 이말씀을 의미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현대인의 변질된 사고방식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곧 생명의 존엄성 상실과, 살아있음에 대한 가치 상실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저 누구나 한 번은 죽으니 죽기전에 마음껏 하고 싶은대로 하다가 아무렇게나, 아무때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욕망의 과다 표출\"로 드러납니다.
누가 뭐래도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겠다는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옳고 바른 생각을 무시하고 오직 육체의 욕구대로 살아 갑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앞에 믿음을 살기보다는 한순간 만이라도 사자처럼 군림하며 살기위해 광기어린 눈을 부라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보다가 안되면 죽어 버리겠다는 생명에 대한 경솔한 인식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죽은 사자 보다는 차라리 살아있는 개가 더 낫다\" 고...

그러므로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얻은 잘못된 지식과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늘 보이는 한쪽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또다른 한편을 생각하지 못하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생이 무엇이고, 생명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불완전한 지식이나 잘못된 지식에 잡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완전하시고 유일하신 우리의 창조주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지식과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것 입니다.

2. 산 개가 죽은사자 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나은가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 첫째 이유는 희망 때문입니다.
어떠한 최악의 경우에라도 살아있는것은 곧 희망 그 자체입니다. 설령 참으로 악하기 짝이없는 사람이 있어 그 마음에 악이 가득하고 미친 마음을 평생 품어 왔을지라도 살아있는 한 그의 남아있는 삶에서 어떤 은혜로운 변화든지 일어날 가능성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죽어 무덤에 있는 자들 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본문 3 - 4을 다같이 보십시요.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나음이니라\"

이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심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인간이 소망을 잃는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그의 글에서 인간을 죽게 만드는 것은 질병보다 더 무서운 절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버리고 자포자기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으면 현재의 처지가 말로 할 수 없이 어려운 지경이라도 결국은 성공의 열매를 거둘수 있는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내 해야 합니다.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성령의 열매 입니다.

비록 흉악한 살인마라 할지라도 죽은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부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은 비록 법의 심판에 의해 곧 죽게 될지라도 아직은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희망이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품안에 안겨 그 영혼 만큼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히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 보다는 낫습니다.

** 두번째 이유는 죽음에 대비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전도서 9:5을 보십시요.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너무나 당연한 말씀 입니다.
살아있는 자는 자기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어떻게 보면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과정이 아닙니까? 죽음을 보다 더 의미있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할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무엇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출세하면 인생을 완성 시킨 것일까요? 자식을 훌륭하게 잘 양육한 것이 인생을 완성시킨 것입니까? 예! 다 좋은일 입니다. 출세도 해야 합니다. 자식들 다 제대로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훌륭하게 이루어 내고 죽는 그 순간 직전까지의 모든 노력과 사랑과 미움에 대한 상급은 죽음과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에 죽기 전에는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참으로 훌륭하게 잘 살다가 죽기 직전에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왔던 사람도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앞에 실족하고 만다면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은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이 인생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죽기 전까지는 누구도 평가 할 수 없는 것은 누구든지 아직은 죽음에 대비할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있어도 그것은 언제든지 오판의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오직 사람이 죽음을 맞은 뒤에야 그것도 하나님께서만이 그 죽은자를 평가하실 뿐입니다.

특히 스스로 \'나는 사자같다\' \'나는 개 같다\'고 말하지 말아야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때를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잘못된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역설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은 결코 과거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아직 살아있는 이 기회에 죽음 뒤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신학자 [메튜 헨리]는 오늘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인간은 죽음이 올 때 함께 종말을 맞는 것이 4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 첫째는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이는 아무리 많이 배워 지식이 풍부하거나 혹은 인생의 경험이 남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그 죽은 자는 생전에 알던 것을 아무것도 모르게 되며, 또 그 후손이 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세상에서 누리던 모든 향락이 죽음과 함께 끝난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정말 즐길만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양한 오락들이나 스포츠, 향기로운 식도락, 또는 여러가지 향락에 이르기 까지 약간의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죽음과 함께 끝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세상의 것을 택하여 즐거움으로 삼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은 어리석음이 골수에 가득찬 자들이요, 오늘 기록된 말씀대로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자\" 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동안에 생의 즐거움을 모른척 하거나 향락을 나쁜 것만은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점에 관하여 향락을 전적으로 금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건실하고도 적당하게 선용하도록 하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전도서 9 :7 - 9절을 보십시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생의 즐거움을 모른척 하고 살라 하지 않으십니다. 향락을 나쁜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실하고도 적당하게 선용하도록 하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가져도 좋으나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이 세상에서만 필요 합니다. 영혼을 위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향락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죄를 부르는 나팔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그리고 셋째는 자신의 이름에 종말이 온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일단 일단 죽으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땅이 알아줍니까? 집이 기억해 줍니까? 단지 자기 자손에게 잠시 기억 되었다가 그리고 잊혀질 뿐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감정의 종말이 온다고 했습니다.
목숨 바쳐 사랑했던 사람도 그 절실했던 감정과 훈훈한 우정도, 미움이나 시기까지도 죽음과 함께 끝납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사람과 그의 행위는 함께 죽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곰곰히 우리 자신의 삶과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비록 내가 지금 개처럼 살고 있을지라도 육적인 것에나 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이 세상을 사자와 같이 위엄과 기품있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가 죽어 영혼이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는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개 같이 멸시당하며, 헌한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지금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당함으로 장차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가 곧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오늘 주신 이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십시오. 기억하고 노력하는 자, 그가 영육 간에 아울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