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최고의 소망

   인생 최고의 소망/전3:10-15

인생 최고의 소망
전3:10-15





김삿갓이라는 사람은 \\\\\\\\\\\\\\\"사람들이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천 년 걱정을 하니 참으로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백 년도 되지 못할 이 세상의 삶에 집착하며 오직 이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삶이 종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오직 이 세상의 삶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호숫가 흙 속에서 우렁이를 잡아먹고 사는 두루미에 관한 우화가 있습니다.

우아한 하얀 깃털을 가진 백조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이 백조에게 두루미는 \\\\\\\\\\\\\\\"너는 어디서 왔니?\\\\\\\\\\\\\\\"하고 묻자, 백조는 \\\\\\\\\\\\\\\"천국에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먼 곳이니?\\\\\\\\\\\\\\\"

\\\\\\\\\\\\\\\"그럼 멀고 말고.\\\\\\\\\\\\\\\"

\\\\\\\\\\\\\\\"여기보다 퍽 더 좋은 곳이니?\\\\\\\\\\\\\\\"

\\\\\\\\\\\\\\\"그럼 퍽 더 좋고 말고.\\\\\\\\\\\\\\\"

백조는 천국의 아름다움과 호수, 강, 황금거리, 꽃들, 날씨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 두루미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곳에도 우렁이가 있니?\\\\\\\\\\\\\\\"

\\\\\\\\\\\\\\\"그런 건 없어. 그런 지저분한 것들은 천국에 들어올 수가 없단다.\\\\\\\\\\\\\\\"

\\\\\\\\\\\\\\\"그런 천국이라면 너나 가. 난 필요 없어. 나는 우렁이만 있으면 그뿐이야.\\\\\\\\\\\\\\\"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해 주면 두루미와 똑 같은 말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들만 붙들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하찮은 일로 천국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세를 믿지 못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삶을 살아갑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보고 산다면 죄를 쉽게 지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많은 부정부패가 성행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내세를 간과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세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감히 죄를 지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 세계 권투계를 장악했던 무하마드 알리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하기를 자기는 항상 몸에 성냥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성냥불을 붙여 손을 태운다는 것입니다.

성냥하나에도 이렇게 뜨거운데 지옥은 얼마나 더 뜨거울까를 생각하며 죄지을 욕심을 통제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믿기에 눈 앞에 있는 유혹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는 선악의 보상에 대한 요청으로 반드시 천국과 지옥은 존재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게 보상받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내세가 있어야 확실하게 선악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세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요청되는 것이지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게 영원한 내세의 삶에 대해 거듭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록 현세의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도 영원히 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원한 삶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의 마음과 관련하여 여러분들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거짓말 중에서도 속히 훤히 드러나 보이는 빤한 거짓말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노인의 죽고 싶다는 말, 상인의 밑지고 판다는 말, 과년한 처녀의 시집 안간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여자 고등학교 있을 때 방송반을 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월순이라는 학생이었는데 자기는 시집을 안간다는 것입니다. 인물도 괜찮고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상당히 완강하게 시집을 안가겠다고 해서 은근히 걱정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졸업하자마자 신문기자를 만나 제일 먼저 시집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처녀가 시집 안간다는 말이 거짓말인 모양이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특별히 노인의 죽고 싶다는 말은 자신의 삶이 고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뿐 실제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닌 줄 압니다.

만일 여러분이 죽고 싶다는 노인에게 빨리 죽으라고 말한다면 봉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통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자기 삶이 너무 괴롭거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일 뿐 죽음 자체가 좋아서 자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를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희망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처럼 영원을 사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창조될 당시부터 그 마음에 영원에 대한 갈망이 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본래 영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적 존재로서 영원히 살도록 지음 받은 바 본능적으로 영원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도자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고 하였습니다. 물론 인간의 범죄는 그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상당 부분을 훼손시켰고 영원한 생명도 상실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고 이 세상의 육체적인 삶에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상당 부분 훼손되었을지라도 인간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이세상의 육체적인 삶에 집착하면서도 막연하게나마 본능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종교가 있는 것도 사실은인간 안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행 17:22).

<행 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소망입니다.

밀라노 성당에는 예술적인 세 개의 아치 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 문에는 아름다운 장미가 조각되어 있고 그 조각 밑에 『기쁘게 해주는 그 모든 것들은 잠시 뿐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두 번 째 문에는 십자가가 조각되어 있고 그 밑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모든 것들도 잠시 뿐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두 번째 문을 지나면 가장 미려한 세 번 째 문이 나오는데 거기엔 조각이 없이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오직 영원한 것만이 중요하다\\\\\\\\\\\\\\\"

사회 심리학자 마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즉 그는 의식주 등과 같은 생리적 욕구를 기초로 하여 안전의 욕구, 애정의 욕구, 자존의 욕구, 자아 실현의 욕구가 계층적 구조를 형성하며 인간은 생리적 욕구로부터 각 단계가 충족될 때마다 그 다음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마슬로우에 의하면 인간의 최고의 욕구는 자아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과연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욕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아 실현 욕구보다 더 고차원적이면서도 최종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삶에 대한 욕구입니다.

물론 영원한 삶에 대한 욕구가 반드시 자아를 실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못한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도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영원한 삶에 대한 욕구는 생각의 사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한 사람은 보다 진지하게 영원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17-22에 보면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영생의 방법을 묻고 주님께서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이 사람은 재물도 많고 율법적으로도 매우 완벽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자아를 실현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그가 영생의 방법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2:16-21에도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 부자는 재물이 많아지자 비로소 자기 영혼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영원한 삶은 어느 누구에게나 인생 최고의 소망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주십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리고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태초 이래로 영생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러한 인간 노력의 하나가 바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곧 인간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의지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 형태가 전세계적으로 비슷합니다. 제단을 만들고 어떤 형상을 세웁니다. 그 형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이나 보석을 사용해 치장을 합니다. 커야 능력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가급적 크게 만듭니다. 그리고 정성을 드립니다. 정성의 정도에 비례해서 대가가 주어진다고 생각을 해서 수많은 절을 하고, 재물을 바치고, 그리고 심하면 생명까지라도 바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신이나 우상은 그 어느 것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신은 모두 거짓된 것이요 그들의 역사는 영원히 멸망할 사단과 귀신의 역사나 다름없으며 우상은 생명력이 없는 돌이나 나무 등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45:20 ;렘 10:5).

그렇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인생을 멸망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한편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이 자신들에게 영원함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발달로 질병을 극복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여 죽기 전에 냉동을 시키는 이른 바 냉동인간이 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질병을 극복하는 발전을 이루면 깨어나서 병을 고치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체의 복제는 인간의 그러한 생각들을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할 것처럼 보이게도 합니다. 그러나 과학으로는 비록 닳은 생명체를 복제할 수는 있어도 생명체가 죽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복제된 생명체는 또 다른 생명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인생 최고의 소망인 영원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또한 영원함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요 영원부터 영원까지 홀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自存)자이십니다. 따라서 그는 능히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앗아간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고 그로 하여금 우리 인생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영생을 사모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마음에 진실로 영접하셨습니까? 영생을 얻은 줄로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을 사모합니다. 또한 그것은 인생의 최고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세상적인 방법으로도 영원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방법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영생을 사모하십니까? 끝까지 주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영생을 사모하면서도 그 방법을 알지 못해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주기 바랍니다. 인간의 최고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것보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