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겸손 벧전5:1-6
Ⅰ. 서론
오늘부터는 베드로전서 5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만사가 그렇듯이 은혜를 받는 데도 법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한다고 받는 게 아닙니다. 이 은혜 받는 법, 즉 은혜를 받는 비결이 성경에 나옵니다. 이 비결을 알고 그대로 살아갈 때 우리가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는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은혜 받는 비결”이라고 정했습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이 비결을 터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본론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1-3절)
사도 베드로는 본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도 동일한 장로임을 말하면서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도는 첫째, 함께 장로 된 자요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셋째,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이런 권면과 교훈을 할 수 있는 권위와 자격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장로라는 말은 치리장로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목사에 더 가까운 단어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장로가 목사고 목사가 장로였습니다. 또 오늘날 장로보다 교회에서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즉 장로와 목사의 일을 겸했다고 보여집니다. 장로는 그 명칭이 나중에 감독으로, 또는 목사 등으로 호칭하거나 그대로 장로로 부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교회를 책임진 지도자들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사도는 이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교황과 같은 상전의 입장이 아니라 같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권면 즉 호소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걸 보면 초대교회에서는 아직 교황이 왕처럼 다스리는 그런 제도는 없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로마의 교황제도는 후대의 산물(産物)이고 비성경적인 인간의 고안물이지 성경적인 제도는 아닙니다.
사도는 이 권면에서 중요한 목회의 원리를 말합니다. 3가지 해서는 안될 일과 3가지 해야할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나 목사는 1)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억지로 마지못해 목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또 목회하는 이유와 동기가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목회는 영업이 아닙니다. 이윤추구가 동기가 되어서 하는 밥벌이 수단이나 일반 직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보면 장로나 목사들이 마치 자기가 교회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다른 신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게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일부 대형교회의 당회장 목사들은 하나의 종교왕국을 건설하고 거의 교주처럼 행동합니다. 물론 목사나 장로는 존귀한 직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목사라는 타이틀, 장로라는 직분 만 내세우고 존경받을 만한 삶을 보여주지 못할 때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목사님, 장로님” 하고 부르지만 속으로는 결코 존경 안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러한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가 제시하는 목회의 3대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즉 자원하는 마음으로 또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자기 뜻을 좇아 마지못해 하는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시킨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져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2) 목회는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합니다. 목회를 즐겨야 합니다. 목회의 중요성을 알고 영혼을 구원하고 돌보려는 사랑의 동기에서 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쉽지 않지만 정말 목회는 제대로 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무생물을 다루는 직업보다는 생물을 다루는 직업이 더 어렵습니다. 또 식물을 기르는 농부나 동물을 기르는 축산업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보다 더 귀중하고 자의식이 발달한 종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인간의 신체를 다룹니다. 신체는 각종 장비를 사용하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목회는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정말 목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 즉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3)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본이 중요합니다. 말로만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만 하긴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르친 그대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하루 이틀 단기간에는 가능하겠지만 그리 오래 못 갑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그가 정말 목사인지 명칭만 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지를 대충 압니다. 그래서 목사, 장로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고 또 아무나 목사나 장로가 되려고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요한복음 마지막 장(요 21장 15-18)에 바로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둘째, 양을 치는 것입니다. 셋째, 양을 기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위기의 때에는 양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양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우리는 목회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목회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양들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고 양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목사는 벼슬이나 감투가 아닙니다.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 하는 직업도 아닙니다. 돈을 벌려면 사업을 하든지 장사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명예를 원한다면 학자가 되거나대학교수를 하거나 사회사업을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권력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권력을 원한다면 육사를 가서 장군이 되든지 정치판에 뛰어들어 국회의원 비서관이라도 되어야 합니다. 결코 사람들을 좌지우지하고 명령하는 직책이 아닙니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입니다.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위나 세상 권력으로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장군이나 대통령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이 목사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맡은 사람이요 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말만 잘 해 가지고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말은 번드르르 하게 잘하더라도 말과 행위가 일치가 안되면 그런 목사는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목사는 사람들에게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아야 하는 데 존경과 감동을 주지 못하고 감복(感服)케 못하면 사람들이 그런 목사가 하는 말을 권위 있게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목사 노릇하기가 장관, 장군, 심지어 대통령 노릇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이 때문입니다.
목사는 말을 하는 사람인 동시에 본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말로만 하는 목회는 쉽습니다. 그러나 온몸과 마음으로 하는 목회, 즉 생활에서 본이 되면서 하는 목회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과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는 영혼만이 목사직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교 나왔다고 목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와 정신이 있은 연후에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요즘 목사가 너무 많습니다. 진짜 목사는 적고 자격 미달의 목사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권위도 없고 목사가 별로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선 목회가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영적 위기의 때입니다. 진짜 목사가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많은 영혼들이 방황하고 있고 심령이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삯군 목자가 아닌 참된 목자의 정신을 가진 목사가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정말 지도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국가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모든 분야가 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인물이 필요한 때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바울과 베드로, 루터나 칼빈 같은 인물들이 다시 필요한 때입니다. 직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이나 채우는 가짜가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고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내놓는 충성된 목자들이 기다려지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런 참된 일꾼을 이 땅에 보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꾼이 나올 수 있도록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미래에도 계속 부흥 발전하여 통일 조국을 바로 이끌어 나가려면 참다운 지도자를 배출해야 합니다. 정말 인재를 키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동포를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인물들을 가정과 교회에서 양육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일학교와 학생회, 청년회 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목사와 교사가 역시 필요합니다. 어떤 본을 보이면서 어떻게 지도하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또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 특히 신앙교육은 정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습니다. 대부분 학교와 가정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부모의 신앙과 종교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부모가 믿어온 종교를 그대로 따라서 믿기 마련입니다. 물론 자기가 깨닫고 기독교를 택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부모님의 역할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목사나 장로는 바로 교회에서 교우들에게 이런 아버지나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카톨릭에서는 목사 역할을 하는 사제를 신부(fathe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본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잘 믿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대개 보면 교인은 목사를 닮기 마련입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닮아가듯이 교인들도 목사의 신앙 사상을 비스듬하게 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의 신앙 사상을 뛰어넘는 교인은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 일을 제대로 잘 하면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정말 귀하고 복된 일이 되지만 잘 못하는 경우에는 두 소경이 함께 구렁텅이로 들어가듯이 영혼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의사가 의료사고를 내면 큰일이듯이 목사가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영혼을 잘못 인도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받을 그 심판과 책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입니다.
”소자 하나를 실족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연자(硏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8:6).
하지만 본문에서 사도는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장로들에 대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the crown of glory)” 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4절). 그러한 면류관은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받게 되는 데 여기서 목자장은 모든 목사, 장로 등 모든 교회 지도자들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최고의 목자, 선한 목자 예수님의 재림 시에 목회를 잘 한 모든 주의 종들이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5절과 6절은 젊은 자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젊은 자란 육신의 나이가 젊은 사람을 가리키겠으나 신체적인 연령보다는 신앙의 연령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 지도자가 아닌 모든 교우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할아버지라도 믿은 지 얼마 안되었으면 교회 지도자인 목회자와 장로의 말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사실 모든 기독교인에게, 즉 모든 성도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다 서로”라는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원문과 영어 성경에 의하면 허리를 동이라는 것을 ”옷을 입어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겸손으로 옷을 입어라 라고 했습니다. 옷은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늘 겸손을 생활화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겸손 안에서 살아가라는 뜻인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라고 하였는데(엡 6:14), 사도 베드로는 ’진리[참]’ 대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겸손은 참된 겸손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에 입각한 겸손, 진리에서 나오는 겸손을 뜻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척은 할 수 있지만 진짜로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교만하게 되기가 더 쉽고 인간의 부패한 본성의 본질이 바로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대부분 교만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아도 이 교만의 탈이 벗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많이 알고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또 집사, 장로, 목사, 주교, 대주교, 교황 등 지위와 직분이 높아질수록 더 교만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교만한 교인들이 늘어간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너무 많이 듣다보니 말씀을 사모하지도 않고 귀중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귀는 잔뜩 높아져서 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활에 얽매여서 먹고살고 돈벌고 자기 하는 일에 매달려서 말씀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부지 중에라도 교만한 마음을 품고 살지는 않았나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목사 역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처럼 훌륭하고 똑똑한 목사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이건 교만입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진짜 종은 자기를 높이는 법이 없습니다. 묵묵히 충성할 뿐입니다. 그런데 대개 별것도 아닌 사람들이 우쭐대며 하나님보다 자기를 나타내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제일 보기 싫은 모습 중의 하나가 이렇게 자화자찬하는 모습입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이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해 줄 때 영광이요 보기 좋은 것이지 잘 난 것 하나 없으면서 잘난 척 한다면 정말 우습지도 않습니다. 항상 우리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은 다 부족한 죄인이요 교만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방심하면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자기를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인 것입니다.
겸손은 기독교의 믿음, 소망, 사랑의 덕과 더불어 가장 소중한 덕목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겸손이 없다면 그 믿음은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소망이 있다고 하면서 겸손이 없다면 그 소망 역시 의심스럽습니다. 또 사랑이 있다고 하면서 겸손이 없다면 그 사랑 역시 참 사랑은 아닙니다. 이처럼 겸손은 모든 덕의 기초요 토대입니다. 건물이 기초가 부실하면 부실공사한 건물이어서 얼마 못 가서 붕괴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의 경건과 신앙은 얼마 못 가서 다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이처럼 겸손이 빠지게 된다면 모든 덕, 믿음, 소망, 사랑, 경건 등등이 부실한 것들이 되어 얼마 오래가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예) 한때 장로로 열심히 봉사하던 박태선이 교만해져서 전도관을 차려서 교주가 되고 심지어 하나님이라고 잠칭하더니 지금 죽어서 송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 사상의 핵심이 겸손과 온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오래 믿었으면서 예수님의 골자 정신과 핵심 사상이 뭔지 모른다면 말이 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요 예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과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려고 애썼는지 아십니까? 바로 겸손의 정신이요 겸손의 영(靈, Spirit)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니라”(마태 11:28-30)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예수님은 그 중에서도 겸손과 온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절). 이러한 원리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기 전에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만한 자리에서 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내려오게 만드십니다. 그 때는 비참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스스로 먼저 교만한 자나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래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교만하다가 망했고 반면에 많은 경건한 성도들이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예) 여러분은 바벨탑 사건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교만을 알며, 또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의 교만을 아실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도 성경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반면에 억울하게 종으로 팔려간 요셉의 겸손과,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드린 마리아의 겸손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장사를 예비한 사람은 그 여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 즉 원수가 됩니다. 누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도 편안히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가 되고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교만의 가식을 내어버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줄을 깨닫고 겸손의 자리를 차지하셔야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영적 소경이니까 교만해지는 것이지 진짜로 믿고 진짜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감히 자고(自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절).
이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특히 젊은 자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형편과 상황 역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아래서 겸손할 수 있다면 때가 될 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은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하게 행동하고 처신할 때지 우쭐대며 잘 난 척 할 때가 아닙니다. 부지런히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할 때 주님이 보셔서 ”이제 되겠다” 싶으면 분명히 높여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러한 영광과 존귀가 참된 것입니다.
Ⅲ. 결론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장로들 즉 지도자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젊은 자들, 즉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오늘의 메시지는 ”겸손하라” 는말씀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알게 모르게 교만한 태도를 보였고 또 자고한 마음을 가졌다면 다 회개하고 이제 우리는 높은 자리에서 속히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우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장로들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젊은 자들은 순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겸손의 정신입니다. 진짜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기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부끄러워서 감히 자기를 높이거나 나타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다면 아직 하나님도 자기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요 성경의 초보적인 기초 원리도 못 깨달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은혜 받는 원리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핵심 교훈, 예수님의 주지(主旨) 사상이 겸손임을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겸손의 바다, 이 은혜의 바다에 푹 잠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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