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의 꿈

우렁이의 꿈

내겐 아무런 무대도 없었다

단지 올라갈 수 있는 한치의 공간이면

어디에든 좋았다

생면부지 잡초에도

마른 벼 포기에도

그저 붙어 있으면 족했다


섬머슴 아이들의 눈을 피해

나는 늘 죄인처럼

저녁에만

수면으로 수면으로 올라갔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들

진분홍 알무늬를 수놓기 위해

까만 어둠을 태운다


내 사랑하는 피붙이들

나의 작은 꿈들 깨어나

연못을 채우고

찬란한 전설로 피어날 수 있다면

아!

이가을 메마른 볏단 사이

앙상한 껍질로 남아도 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