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ㄹ하게 반드시 필요한분(3)

   유일하게 반드시 필요한 분(3)/눅5:27-32/2009-07-26

유일하게 반드시 필요한 분(3)
눅5:27-32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27-32>



-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사람, 주님을 주님이라고 확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다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 그리고 자칭 크리스천이라 하는 자들 중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자는 아주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13:24-28>







여러분에게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란 어떤 것입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이십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지 제게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지 여러분의 입술로 무언가를 말 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여러분은 이미 답변하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았는데 무슨 답변을 했냐구요?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진정한 답변은 여러분의 행동과 가치관과 중심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분처럼 죄밖에 행한 것이 없고, 죄 덩어리였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세리 레위라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세리란 말은 그의 직업이고, 레위는 그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로마정부에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지만 그들이 내는 세금은 적지 않았습니다. 우선 삼중 십일조를 내야 했습니다. 각각 10퍼센트씩을 제사장, 성전에서 행해지는 제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소득의 십분의 삼을 내야했고, 판매세, 관세, 인두세, 토지세, 통행세, 조공 등을 로마 정부에 내야했습니다. 이 세금의 대부분은 로마의 방대한 군사 물자를 준비하는 자금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에 내는 세금은 일 년에 3주 분량의 소득을 바치는 것에서부터 모든 소득의 30퍼센트를 바치는 것까지 다양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받는 모든 임금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로마 정부에 내는 세금은 말 그대로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너무나 무겁고 부담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노동으로는 돈을 많이 모을 수가 없었던 유대인들은 고리대금, 요즘 말로하면 사채업을 하기도 하고 그 사채를 빌려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심할 경우 노예로 팔리거나 사채업자의 감옥에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정부는 이 세금을 걷는 일을 하기 위해 감찰관을 유대 지방 각 지역에 파견을 하고 이 감찰관들은 돈을 받고 세금을 걷는 권한을 유대 고위 인사들에게 넘기게 됩니다. 그러자 유대 고위 인사들은 이 세금 걷는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조세 징수원을 고용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세리입니다.

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인두세 등을 걷거나, 세관에서 근무하며 통행세 등을 받는 일을 했는데 그들은 항상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이 걷어서 잔액을 몰래 빼돌렸는데 그것은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이었습니다.

자신들을 식민지배하는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배신자, 매국노이면서 동시에 유대인들의 힘든 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세리들은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창녀와 함께 공식적인 죄인으로 평가받는 혐오의 대상이요, 더럽고 불결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과 같이 함께 살을 부대끼며 무엇을 한다는 것은 자신도 똑같이 더러워지는 것이고, 자신도 똑같이 매국노요 죄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불결해지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전통은 불결한 자는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고, 제사도 드릴 수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도 못합니다. 마치 심각한 전염병을 앓고 있는 그런 더러운 병자 취급을 당하였고, 그런 그들을 유대인들은 쳐다보기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리는 상종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세리 레위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조국, 자신의 동족 보다 돈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근무하는 동료 세리들 말고는 친구도 한 명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자신과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저 자신과 하는 일이 같아서 같이 어울리는 것뿐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들은 아니었습니다.





레위는 자신의 직업과 자신의 행동들이 나쁜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그저 통장 잔고가 불어나는 재미 앞에 모든 것을 잊고 태연한 척 남과 함께 그렇게 자기 자신도 속이며 살아오던 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보면 레위의 이런 모습이 우리들에게도 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레위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요? 사실 알고 보면 레위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우리 중에 누가 레위 보고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의 인생은 아무런 소망도 없었고, 빛도 없었고, 그저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을 위해서 살다가 동족들에게 배신자요 매국노라는 원망만을 들으며 외롭게 살다가 죽을 존재였습니다.





그런 세리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세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세관은 그곳을 지나가던 이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리들이 모여서 함께 있던 장소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더러운 죄인들의 소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누구나 이곳을 빨리 피해서 지나가고 싶어했고 웬만하면 세리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관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연히 이 세관을 지나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그 세관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레위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7, 28절을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여기서 “보시고”란 헬라어 단어 ‘에데아사토’는 “가까이서보다”,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여 보다”, “면밀히 관찰하여 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레위를 부르실 때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 더욱 정확히 말해서 구원하실 자들을 부르실 때 그냥 대충 아무나 되는대로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외적인 조건을 보고 부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돈이 많거나, 능력이 있거나, 잘생겼거나, 예쁘거나, 어디가 잘 나서 부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부르실 사람들 그리고 당신이 부르신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서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여 보십니다. 그리고 다 아십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다 아시는 겁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가장 합당하게 그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깨끗하다고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깨끗하다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부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 시간에도 여러분을 주목하여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다 아시는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죄가 많은지, 여러분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여러분은 사실 사람들 앞에서 깨끗한척 하지 않습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습니까? 거룩한척 하지 않습니까? 상처도 별로 받지 않은 척 강하게 굴기도 하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그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상처가 많은지, 여러분이 얼마나 고통당하고 있는지, 여러분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여러분에게 얼마나 죄가 많은지 다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의 눈으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분을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여 보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여러분이 유치원에 다닐 때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항상 바라보고 계셨으며, 한 번도 여러분을 주목하여 보고 계심을 그만 두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그 때 그 고통의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친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들 었던 그때, 그리고 가장 힘든 지금 예수님은 도대체 뭐하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겁니까? 내가 그렇게 고통받고 힘들었을 때,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고통 당하고 힘들었을때, 내가 그렇게 상처 받았을 때 예수님은 도대체 뭐하고 계십니까? 라고 예수님께 따지고픈 친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없애서 마치 우리가 온실 속의 화초도 아닌 조화처럼, 로보트처럼 생명력 없는 삶을 살도록 하시는 비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그 모진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서 나와 함께 해주시는 사랑, 나와 똑같은, 아니 나 보다 더 아파하시고 고통하시며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사랑”이신 겁니다. 이것은 분명히 지금까지 전도사님의 인생에서 늘 확실히 그래오셨던 신실하신 주님이심을 전도사님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도 세리 레위와 같이 추하고, 더럽고, 악하고, 교만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저를 주목하고 계셨으며, 나를 당신께로 이끄셨고, 결국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2000년 전에 세리 레위도 더럽고 추한 죄인, 아무도 상종하지 않았던 매국노요, 양심에 화인 맞은 자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요, 죄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를 죄에서 구원해줄, 돈밖에 모르는 인생에서 구원해줄 그리스도가 필요했습니다.




여러분도 레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당장 죽으면 지옥에 갈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죄밖에 없으며, 죄 덩어리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여러분은 지옥의 심판 밖에 없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2000년 전에 아무도 상종하지 않던 더럽고 추한 매국노 양심을 팔아먹고 살던 레위를 주목하여 보신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과 동일하게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을 향해 세상의 누구도 들려주지 못했던 확신과 위엄과 권능과 사랑의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시간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분명히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여러분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겁니까! 언제까지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 없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되어 살아갈 것입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죄를 즐기며, 죄 중에 있을 겁니까! 언제까지 여러분을 진정으로 만족시켜 줄 수 없는 그것들을 사랑하며 사시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을 부르시는 예수님 앞에서 이 시간 진지해집시다. 그분만을 바라보십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지금 당신을 부르십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 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분과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예수님만을 따르는 인생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예수님을 알긴 알았지만 모든 것을 다해 그분을 따르지 않았다면 이제는 나의 지난날의 삶을 모두 회개하고 모든 것을 다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긴 믿지만 나의 가진 어떤 것 때문에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했다면 이제는 내가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도 따르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만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따르지 않는 문제는 그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조금 다른 삶의 형태를 선택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상관있는 삶이냐 전혀 상관없는 삶이냐, 죽음이냐 생명이냐, 영원한 생명이냐 멸망이냐를 결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온전하게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따라야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당신, 죄인인 당신을 부르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신을 주목하여 보시는 예수님, 당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세상의 모든 것보다 예수님만을 따른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능력이 예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비전 찬양을 부르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 충분하신 예수님을 찬양하시겠습니다.





기도 : 예수님, 더럽고 추한 매국노, 돈 밖에 모르며 그렇게 살다 지옥에 갈수밖에 없던 세리 레위를 최고의 관심으로 주목하여 바라보시며, 결국에는 그를 불러 구원하신 예수님 이 시간 그 사랑과 확신의 음성으로 나도 불러 주시고, 나도 바라봐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추하고 더러운 죄인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저에게는 오직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 왔고,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리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아오던 교만하고 비참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그 음성에 순종하여 나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고, 예수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저에게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 오늘의 이 은혜와 결단이 이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의 평생동안의 진실된 삶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연약한 저를 붙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