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자 딤후3:15-17
제가 이제 영광교회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 벌써 25일째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영광교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 성도님들을 뵈면서 그리고 특히 우리 중고등부와 청년부 영혼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정말 착한 마음을 가진 영혼들이 많다. 라는 것입니다. 마치 제가 인심 좋은 시골마을 교회에 온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많은 성도님들과 중고등부 청년부 영혼들의 따뜻하고 착한 마음은 제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저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다들 저를 굉장히 나이 들게 보지만 그러나 대부분 자꾸 보다보면 동안이라고 하시는 정확한 눈을 가지신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 아직 그런 분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앞으로 그런 분들이 많이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의 외모뿐만 아니라 저의 모든 면에서 굉장히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지금까지 몇 번 함께해보신 분들은 이미 벌써 많은 부분에서 그것을 눈치채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여러분이 앞으로 저와 더 지내다 보면 실망하는 일이 많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 대한 큰 기대를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는 굉장히 마음이 약하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진심입니다. 그런 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이 사실이 참으로 두렵고 감당하기 벅찬 사실로 제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는 반드시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시간 전하려고 하는 복음의 진리 또한 그렇습니다. 제가 전하는 이 말씀들이 우리 중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언잖케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저의 부족함으로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까지 폄하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말하는 저를 바라보지 마시고, 저의 말,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저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만약 제가 전하는 이 말씀들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한 허탄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저는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제가 전하는 말씀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마땅히 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평가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다 어떤 사람은 저렇다 라고 저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미워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칭찬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 사람의 평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한 무슨 평가를 하고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의 평가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의 목적과 목표는 사람의 평가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저의 참고사항이 될 순 있으나 저의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그가 맡기신 영혼들 생사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
오늘 말씀은 자신의 순교를 예상하고 있는 바울이 지난 생애를 회고하면서, 믿음의 아들이며 복음의 동역자 된 젊은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좋은 목자로서 주님의 교회를 잘 돌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오늘 디모데 후서 3장 말씀과 같이 우리 중고등부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앞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와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며칠 전 저희 중고등부의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저희 청년인데 부모님이 교회를 나가시는 것을 반대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이제 예수님을 믿은지 3년밖에 안됐는데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주님을 섬기며, 아이들을 섬기는 교사로 섬기는 모습이 참으로 귀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중고등부에 자기보다 더 훌륭한 학생이 있다며 한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학생의 집은 교회에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학생은 교회에 오려면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발을 해야 합니다. 한참 잠이 많을 나이에, 조금 더 쉬고 싶은 휴일에 1시간 먼저 일찍 준비하고,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온다는 사실이 너무 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학생은 교회에 올 때 부모님께 교회에 간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데를 간다며 거짓말을 하고 교회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었고 그 학생이 교회에 가는 것을 심하게 핍박하는 부모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부모님은 교회에 간다는 이유로 때리면서까지 그 학생을 핍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온 저의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웠고, 또 죄스러웠습니다. 그 학생과 그 선생님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중고등부와 청년부의 귀한 영혼들을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학생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모님께 매 맞는 것까지도 감수하면서 주일 예배를 옵니다. 주일 예배를 와서 이 종의 설교를 30분이 넘도록 듣습니다. 물론 그 학생은 주님께 예배하러 나오는 것이지만, 과연 제가 준비하여 전하는 설교가 그 학생이 매를 맞으면서까지 드리러 오는 예배에 합당한 가치의 설교인가? 아니 그에 합당하게 준비된 설교인가를 생각할 때 너무 부족한 저의 모든 것들이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중고등부와 청년부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운데, 이들의 영혼이 너무 귀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리 또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저는 이들을 맡아서 양육하기에 저는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이 귀한 영혼들을 돌보는 직분에 결코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오 주님, 오 주님, 어찌하여 이 죄인을 어찌하여 이 죄인을, 이 부족한 자를 세우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무능력하고 부족한 종을 세우셨습니까? 주님의 종이라는 말도 감당할 수 없는 이 죄인을 어찌하여 세우셨습니까? 차라리 저 같이 부족한 종 말고 더 능력있고 더 뛰어난 사람을 세우셨더라면 이들이 더 은혜 받고 더 신앙생활을 잘 했을텐데 어찌하여 나 같은 죄인을 세우셨습니까? 주님 도저히 주님의 그 뜻을 이 종이 이해할 수 없나이다. 다만 우리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라고 고백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주에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큰 영광과 축복을 허락해 주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신대원 1학기 장학금을 탄 것이었습니다. 잘 안어울립니까? 처음에 날아온 납부금 용지를 받아 봤을때는 남의 것이 잘 못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쉽게 믿을 수 없었는데 제 것이 맞았습니다. 물론 전액이나 반액 장학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게 얼마나 큰 영광이면 이렇게 설교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저 이 고백이 제 자랑이 아니라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저는 고백할 뿐입니다.
사실 장학금은 저희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참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장학금이란 그것에 기뻐하는 기쁨도 잠시, 제가 그렇게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는 사실 한 가지가 저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것으로 기뻐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과 중고등부와 쳥년부 영혼들 중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너무 많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이렇게 숨을 쉬고 있지만 언제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 받을지 모르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심판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임박해 있기에 제가 한없이 기뻐만 할 수 없었고, 잠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때문에 제가 영광교회에 부임하고 설교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매주 토요일 밤마다 차마 도저히 잠자리에 편히 누울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밤에 평범하게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자체가 불충한 종인것 같아보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말씀을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더 준비해서 설교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저의 마음을 불편하게했고 토요일 밤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밤을 세우며 토요일 밤을 계속 보내왔습니다. 이 모든 이유는 우리 안에 아직 구원 받지 못한 많은 영혼들, 구원 받은 줄로 착각한 영혼들, 구원이란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영혼들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근거로 이렇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설마 내 아이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런 중요한 이야기를 함부로 한다고 생각하며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로 괜히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흔들리게 하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설교는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좋아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아마 오늘 설교 이후로 제 인기는 떨어질 지도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모두 잘못 되었음을 제가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든 구원 받지 않았든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나고 회심했는지 점검하고 확증해야하는 것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나와 있는 바이며, 그것을 점검하고 확증해 봄으로 어떤 결론을 얻든 그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유익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정확한 검증과 결론을 통해 구원 받았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면 더 큰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그를 사로잡을 것이고, 불신자들을 향한 불타는 구령의 열정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구원 받지 못했음을 알았다면 그를 통해 회개하고 거듭날 수 있는 인생 최고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고린도 후서 13장 5절의 말씀과 같이 반드시 자신의 구원을 확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에는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 볼 것이며,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우리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근거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게 어떤 영 분별의 은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중고등부와 청년부 지체들이 말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유무,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자세 그리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들과 많은 대화를 해보지 않아도 그들이 거듭난 구원받은 자인지,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아는데 그치는 기독교 종교인인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몇몇 지체들은 자신들에게 진정한 신앙이 없음을 말한 지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긴 알지만 아직 진정한 믿음과 하나님은 잘 모르겠다고 제게 말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지지난주 목요일이었습니다. 중고등부 한 친구가 제게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상담의 요지는 “전도사님이 설교하실 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고 또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세상에서 가르치는 진화론과 과학들은 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데 성경의 내용은 거짓말이 아닌가? 그것이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런 고민이 2개월 전부터 계속 있었으며 이제는 그 고민이 말할 수 없이 커져서 교회를 조만간에 뛰쳐나가고픈 마음이 가득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민 되는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결국엔 저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진리와 세상의 헛된 지식”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며, 하나님을 알지만 믿지 못하는 이 한 영혼에게 여러분은 무엇을 해주시겠습니까? 먼저 믿은 믿음의 선배로서 이 영혼에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돌보아야할 어린 영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영혼을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그리고 부모님께 매를 맞으면서까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 타고 다니며 예배하러 나아오는 그 영혼에게 여러분은 무엇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그 영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방황하는 그 영혼에게 좋은 성적이, 많은 용돈이,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이 그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중고등부와 청년부에는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아니 이것보다 더 심각한 마른 뼈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 두려운 사실 앞에서 여러분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실 것이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제가 몇 개월 전에 이곳에 부임해 와서 이런 상담을 받았더라면 저는 그 학생에게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즐겨 사용해왔던 4영리 책자를 함께 펼쳐서 거기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읽어주고, 마지막에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하게 한 뒤 너는 믿으니까 구원받은 거야 라고 애써 그를 안심시키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연계에 자연 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제 1원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고 시작하는 이 전도책자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복음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도록 편하게 만들어진 이 책자는 복음과 구원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 4영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 앞에 놓인 멸망당할 죄인이 단지 거기에 적힌 몇 가지 내용을 몇 분에 걸쳐서 듣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기도문을 따라 읽고 동의하기만 하면 구원 받는 다는 속임수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4영리는 심각하게 잘못된 전도책자입니다. 거기에는 구원의 핵심 교리인 회개와 중생과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과 멸망, 영원한 죽음에 대한 증거가 아예 제외되어 있습니다. 최소한 4영리에는 죽은 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은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최소한 200년 전까지 기독교는 이런 4영리와 같은 복음을 가르치고 전한 적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물론이고 16세기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500년 역사상 이런 복음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결코 전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축소된 왜곡복음은 19세기 초 미국의 부흥운동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인 찰스피니에 의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 시작된 한 캠퍼스 선교단체에 의해 널리 전해지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4영리는 미국의 페루 선교사인 폴 워셔 목사가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있었던 미국의 모든 이단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미국과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우리나라에까지 끼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전해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반문하겠지요, 이 4영리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도 있는데요? 그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선교단체의 수많은 지체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영혼을 사랑하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들이 많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런 복음, 그런 전도방법이 옳은 방법이어서 그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런 왜곡되고 축소된 복음 전도 방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실 자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 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정확히 알든 알지 못하든 하나님은 일하시고,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4영리에 나타난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간이 부족하므로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기도를 하라 그러면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하신 것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었고, 가장 처음 선포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에게 반드시 거듭나야만 천국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와 거듭남은 반드시 믿음과 동시에 따르게 됩니다. 그것은 모두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믿고 구원 받았다라고 주장하면서 회개하지도 않았고, 거듭나지도 못했다. 회개를 한 번도 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회개하지 않고 있으며, 예전의 죄악된 삶에서 지금의 삶이 전혀 변한 것도 없고, 열매도 없고 성장도 없다면 그 사람은 애초부터 구원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기독교의 역사적 가르침이며 그리고 성경의 일관된 교리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400년 전부터 이것에 대한 교리를 정립하였고, 어린 아이때부터 이것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쳐오는 것에 주력하고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우리 장로교가 가장 유력한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과 소요리 문답”에 보면 복음에 대해 그리고 회개와 거듭남에 대해 너무나 분명히 잘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먼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15장 2항에는 생명(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적임을 말하면서 그것을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대한 증거는 이렇습니다.
“이것(회개)에 의해 죄인은 그의 죄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질과 의로운 율법에 배치되는 것으로, 그 위험함만이 아니라 또한 더러움과 추악함을 보고 느끼며 그리고 통회하는 자들에게 향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달아 그의 죄를 슬퍼하며 미워하며 그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계명의 모든 길에서 그와 동행하기를 목적하고 또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6문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에 의해서 죄인의 마음속에 이뤄지는 구원의 은혜인데 그로써(눈에 보이고 느낄 수 있는 위험 뿐 아니라) 자기의 죄의 위험뿐 아니라 또한 더러움과 추악함을 보고 느끼고 통회하는 자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고 자기 죄를 몹시 슬퍼하고 미워하는 나머지 그 모든 죄를 떠나 하나님께 돌아와 범사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끊임없이 동행하기로 목적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동생들은 이런 생명에 이르는 회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했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죄책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자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관점으로 죄를 바라보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애통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철저하게 눈물로 자백하고 돌이키는 절대적인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대하여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로 거듭남의 표징은 죄를 회개할 때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사역의 필수적인 증거로 믿는다. 새 생명은 마음에 들어가는 순간 그 첫 번째 결과의 하나로 깊은 내적고통을 일으킨다.”
구원은 철저하게 삼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역사입니다. 구원은 성부하나님의 택정하심과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어 회개케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4영리와 우리가 쓰는 전도방법,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의 결심과 의지 그리고 영접기도를 따라하면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와 구원받은 자가 된다는 해괴한 논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삼위 하나님의 고유의 사역을 도둑질 하는 것이며, 구원의 역사를 인간 편에서 그저 흉내냄으로 말미암아 가짜로 구원받은 자들을 양산해 내고, 자신이 구원받은 줄로 착각한 그들에게 진짜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를 빼앗아감으로 결국엔 영원한 멸망으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고 그것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주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정확히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복음을 통해 역사하사 들은 그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믿어지는 마음을 주시며, 결국엔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가 바로 구원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이 회개와 거듭남에 대한 성경의 온전한 가르침, 역사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13장 5절의 말씀과 같이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확증하는 것은 회개와 거듭남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결심과 확신은 바람에 흔들리는 겨와 같아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오직 성령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거듭나셨습니까?
이 질문에 정확하고 자세하게 답변할 수 없거나 아니오 라고 답변하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것은 사실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양들에게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는 것은 제가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그 영혼들을 생명을 다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헤롯 왕을 치심같이 반드시 복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졸개들을 치실 것입니다.
저 또한 제게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진실된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치시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들을 위해 하루라도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한다면 훗날 그분 앞에 갔을 때 제가 받을 책망은 더욱 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있었던 중고등부 설교는 계속해서 이 복음을 증거해 왔습니다. 저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던 그 친구와도 매주 한 번씩 성경공부를 하기로 했고 지난 주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씀만을 증거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있을 청년부 수련회는 철저하게 이 회개와 복음에 대하여 증거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절대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프로그램”과 “긍정의 힘”이, “4영리”가 그들을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 후서 3장의 말씀처럼 오직 성경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 혼자서는 이 사역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 혼자만 세우지 아니하시고, 1차적으로 교사 선생님들을 세워두셨습니다. 교사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각자 직장일과 집안의 여러 가지 일들로 너무나 바쁘고 힘들고 지치실텐데도 아이들을 섬기기 위해서 함께 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감사하고 황송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막 요구하고 싶어도 제가 마음이 약해서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말을 잘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실제적인 도움이 조금씩이라도 모인다면, 여러분들이 헌신해 주신다면 우리 중고등부와 청년부는 진정한 부흥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아이들과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헌신으로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따뜻하게 인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헌금도 해주시고, 수련회도 함께 동참해 주시고, 예배도 함께 드려주시고, 간식도 지원해 주시고, 여러 모양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지원해 주신다면 우리 중고등부와 청년부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역사가 우리 영광교회 가운데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역사는 철저하게 삼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우리가 이 시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통하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중에 아직도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있음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들 가운데 성령님이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온전히 그 일들을 이룰 수 없사옵나이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역사하여 주시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하옵나이다. 앞으로 중고등부와 청년부 수련회가 있습니다. 주님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들에게 온전하고도 순수한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고, 그 복음과 함께 성령님도 일하여 주셔서 믿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구원의 역사가 우리 중에 있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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