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입당 예배당에서

새 예배당에 입당하면서/왕상8:1-14/2006-01-02

새 예배당에 입당하면서
왕상8:1-14





하나님이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이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아멘으로 화답하겠습니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짓게 하셨고,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후에 영광을 받으시고 복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성전봉헌식을 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지도자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봉헌식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법궤를 안치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훌륭하게 완공된 예배당이라도 하더라도 법궤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성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언약의 두 돌판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전에 법궤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화려한 장식과 기구들, 예술적 가치로 넘치는 조형과 기구들이 있더라도 법궤가 없으면 왠지 허한 장식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성전을 성전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궤가 들어온 것이었다면 오늘의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법궤, 즉 말씀이 들어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좌성하신 집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법궤는 수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사실 법궤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유랑하던 어려운 시절에 백성들이 겪는 고통과 기쁨 등의 모든 경험을 같이 나누신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법궤 자체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곧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나타내 주는 은총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 법궤는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현현을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었지만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언약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배당을 건축하여 이리로 옮겼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예배당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아름다운 예배당을 선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고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이 예배당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당이 되려면 하나님의 법궤가 먼저 안착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속에 그대로 역사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회중들입니다. 즉 우리 모두입니다. 우리 모두가 들어와서 예배드리는 이 예배당이 정말 아름다운 처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속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거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가득찬 성도들이 가득차야 합니다.



 교회에는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가 주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가 웅장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디자인이 되었다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그 심령속에 먼저 말씀으로 가득차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구제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친교단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 이상으로 우리의 심령속에 말씀이 가득차서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더욱 크게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배고픈 자에게는 밥이 필요합니다. 그 밥을 제공해 주면 생명은 힘을 얻습니다. 영적인 생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으면 영이 삽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말씀이 풍성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법궤를 누가 매었습니까? 제사장들이 매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사장만이 제사를 집례할 수 있고, 제사장만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교회도 먼저 이 담임목사가 말씀이 풍성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말씀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말씀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교회의 주요 목표입니다. 예수님도 하신 말씀 중에서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의 영생의 밥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 서 있던 군중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아이와 여자를 제외하고도 5천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거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먹이십니다. 배고픈 자에게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풍성하게 하고 떡을 풍성하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영육간에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예배당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풍상하시기를 바라며, 아울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젖과 꿀이 흐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배당은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양과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사는 오늘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도착하여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성전 뜰에 놓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에 입당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우들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도 문제지만 예배에 우리의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요한복음4장23-24절에 보면 예배하는 자들은 참으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그 때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누누이 강조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고 신명기6장4절에 말씀했습니다. 예배시간 지각하지 맙시다. 여러분! 제일 안좋은 버릇이 지각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지각하고 회사에 지각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지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회사에 출근하면서 꼭 5분 아니면 10분 지각하는 분 계십니까? 학교 가는데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데 매일 지각하도록 내버려 두는 부모님이 계시면 나와 보세요. 출근할 때마다 지각하면 회사에서 해고당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계속 지각하지도 않겠지만 지각하면 부모들을 호출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어떻게 보고 그렇게 예배를 소홀히 여깁니까? 애기가 어리다고 해서 지각하고 남편이 있다고 해서 지각하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지각하는 것, 피곤하기 때문에 지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덜한다는 것입니다. 회사 출근하는데는 결근을 할지언정 지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갑니다. 예수 믿지 않는 분들 보면 저녁에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지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녁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수요예배라고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예배라면 모든 예배를 소중이 여기시고 모두 참여하도록 힘쓰십시오. 여러분!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배드리는 가운데 휴대폰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집에서 예배드리러 나오실 때 갖고 오지 마세요. 어차피 예배드릴 때는 진동으로 신호가 온다 하더라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갖고 오지 않든지 아니면 끄든지 둘 중에 하나여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떻게 섬기라고 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한다는 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온통 마음과 몸이 예배에만 쏠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예배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토요일이 되면 내일 주일에 예배드리러 갈 때 할 헌금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일어날 시간을 생각하고 봉사할 일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란,

. 하나님의 가치를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어떤 사랑스러운 것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맛보는 것을 다른 어떤 달콤한 것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다른 무엇을 칭찬하는 것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 어떤 두려움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을 다른 어떤 존경심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상급을 다른 어떤 귀한 것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속에 나타난 수많은 인물들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인, 롯, 에서, 사울왕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도 잘못된 것인가?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가인이 물론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단을 제대로 쌓지 못했습니다. 대충했습니다. 롯도 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왕도 단을 쌓긴 했으나 엉망으로 쌓았습니다. 여기서 단이란 제사요, 오늘의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아벨은 단을 잘 쌓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하는 등 단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단을 잘 쌓았습니다. 야곱은 약삭빠르고 꾀가 많고 도둑놈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단을 잘 쌓았습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가기 원합니다” 다윗도 실수가 많았습니다. 아내가 많아서 아이들도 많이 낳았습니다. 그러나 단을 잘 쌓았습니다. 단을 잘 쌓은 사람은 실수와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단을 제대로 쌓지 못한 사람은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은혜받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힘도 은혜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잘못된 예배 문화를 바꿉시다. 새로운 예배당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잘못 드려진 예배였다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로 회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예배당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솔로몬이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55절에도 보면 솔로몬왕은 무릎을 꿇고 축복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후에 성막을 통해서 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항상 성막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행군을 하거나 진을 칠 때도 항상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져서 성막을 중간에 두고 생활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교회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게 한 후에 그 성전을 통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복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즉 예배당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배당 중심으로 생활하고 예배당을 통해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충성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예배당이 우리삶속에서 복의 통로임을 깨달아 예배당을 귀하게 여기고 예배당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대형 냉동 트럭을 운전하는 미국의 행크 우드슨이라는 사람이 일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그의 아내가 어떤 남자와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성격이 거친 그는 다짜고짜 그 남자더러 나가라고 소리치고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후에 집을 나와 다시 트럭을 몰고 미국의 61번 고속도로로 집입하여 200여마일을 운전했습니다. 운전하면서도 온통 가정문제로 상념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운전했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운전을 하다보니 피곤하여 택사스 코트 모텔로 숙박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는 방열쇠를 받고 그의 방쪽으로 걸어가다가 “크라우스기념 예배당”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당으로 들어가 주위를 돌아본 후 깊은 생각에 잠긴 순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하나님께 모두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마음에 기쁨도 생겼습니다. 그는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집에 급히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너무 내가 난폭한 행동을 했는 것 같구려. 당신의 설명을 들어보아야 하는데... 목요일에 집에 들어가겠소” 그는 문제해결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고 성장한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우리나라가 발전했다는 확연한 증거물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가 발전했다는 가장 큰 증거는 공장의 굴뚝이 아닙니다. 높은 고층 빌딩이 아닙니다. 넓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마을마다 세워진 예배당입니다. 예배당이 세워지는 곳에는 반드시 빈곤이 퇴치되고 문맹이 퇴치되고 질병이 퇴치되었습니다. 예배당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이런 복의 통로가 되는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헌신하는 일이야 말로 복중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예배당을 복의 통로임을 믿고 예배당 건축하는 일이 있으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참여하십시오. 제일 우선으로 예배당건축에 참여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우리교회 교우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큰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는 복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네 번째 예배당은 기도하는 예배당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56:7절에 보면 하나님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새예배당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동력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발전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지하에 있는 기도실입니다. 그곳은 회의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잡담하는 곳이 아닙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곳입니다. 열왕기상8장 22절부터는 솔로몬이 성전봉헌식을 통하여 드린 기도 내용입니다. 기도내용을 분석해 보면 어떤 문제든지 문제가 발생하여 그 문제를 안고 성전에 들어와서 기도하던지 아니면 성전에 오지 못해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응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할 때 성전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항상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할 때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는 기도하지 못했더라도 새로운 예배당에 들어왔으니 이제는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기를 시작하십시오. 마태복음21장 13절에 보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강도의 굴로 만들어버렸다고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집 예배당에서 다툼이나 싸움질을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는 집에서는 기도의 소리가 높이 울려 나와야 합니다. 어제 저녁 밤 자정이 넘었지만 기도실에서 찬송하는 소리와 기도하는 소리라 들렸습니다. 새로운 예배당에 들어왔으니 이제는 기도하는 소리가 더욱 높아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새로운 예배당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11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성소에 들여놓고 나올 때에 여호와의 전에 영광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예배당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영광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의 법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로 가득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에 법궤를 적에게 빼앗겼습니다. 그 때 엘리 제사장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그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 엘리 제사장도 죽었습니다. 그때 엘리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 했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법궤를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궤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께 영광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구칠고교회 예배당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이 솔로몬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그 예배당은 존재할 가치가 없어집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나타나는 교회, 그리고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 삶속에서 하나님의 법궤인 말씀을 잃지 말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교회에 가득차서 그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그 영광이 이 예배당 안에 가득 차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교회처럼 새로워집시다. 우리의 모든 믿음의 생활이 구예배당과 새로운 예배당의 모습이 확연히 구별되어 다르듯이 말입니다. 예배생활, 말씀생활, 기도생활을 확 바꿉시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교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