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을 멈추게하ㄴ 예배

재앙을 멈추게 한 예배/삼하24:18-25/2008-06-26

재앙을 멈추게 한 예배
삼하24:18-25





인간이 하는 일 중 가장 숭고한 것이요, 가장 가치 있는 행위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인간 삶 속에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행동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도의 삶의 주제이며 중심입니다

. 하나님의 백성은 제단을 중심으로 살았고 안식일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성경을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이 나를 해석하게 해야 합니다. 억지로 성경을 해석하다가 망한 자가 있다는 말씀은 자신에게 맞도록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나를 해석하게 하고 성경이 나의 인격과 삶을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항상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문제를 내 사정에 맞추어서 풀어가는 경우고 또 하나는 지금 나의 현실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서 자기 사정을 앞세워서 주님을 만나게 되지마는 주님은 하나님에게서 문제를 풀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지 내 시각으로 보면 자신에게 속고 맙니다. 내 시각으로 보면 나는 그 일에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구경꾼이 되고 맙니다. 전도도 안 해 본 사람이 몇 십 명 정도는 간단히 전도할 수 있는 것처럼 큰 소리 치지만 해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어렵다고 합니다. 기도, 충성도 대개는 그러합니다. 주일학교에도 잘 안보내면서 앞으로 자식을 주의 종으로 만들겠다고 하고 선교사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이야기 하지 못하고 또 그 일을 위해 눈물 땀 흘려 보지 못하고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시면서 사랑을 말씀하셨고 용서 하시면서 용서를 말씀하셨고 기도하시면서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예배에도 구경꾼이 되기 쉽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말씀은 예배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자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선 사람입니다.
리델(Eric Liddell)은 철저한 청교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육상의 여러 분야에서 가령 200m, 400m, 800m, 등에서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24년 올림픽 경기에서도 당연히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승전날이 주일이라는 점 때문에 경기를 포기하고 예배에 출석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주일성수뿐만 아니라 흑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늘 흑인 선수들과 포옹이나 악수를 나눔으로써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관중들을 의아스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흑인들과의 관계가 좋게 보이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때로 뉴스거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신앙이 강한 리델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믿는 자의 책임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 당시 미국인들이 멸시하던 중국에 선교사로 나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중국에서 보냈으며 가난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 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후에 그를 기념하는 전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이 “날으는 영국인”(The Flying Scotsman)이었습니다. 이것이 영화화되어 1982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는데 그때의 영화 제목이 “불수레”(Chariot of Fire)였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뛰어난 목사나 신학자도 아니지만 그는 신앙인의 원칙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산사람이었다”

사람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이 잘되어야 오래갑니다. 실력도 기초부터 잘 다져야 합니다. 벼락치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운동선수도 기본이 잘 갖추어야 합니다. 기본이 잘되어 있지 않으면 그 선수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회도 기본이 잘되어야 합니다. 기초질서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무너집니다. 기본이 충실해야 합니다.

원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원리중의 하나가 사도들이 기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고 했습니다. 한국전쟁당시 최고의 지휘관이었던 백선엽 장군이 국가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그에게 위기 돌파 해법을 구했을 때 한 말이 “비상사태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위기일수록 변칙은 실패의 첩경입니다. 위기의 시대에는 조조 스타일로는 안됩니다. 정도를 밟아야 합니다. 나는 실패할 때마다 지금 내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 본질을 강화한 후 다시 대비했을 때에 항상 승리하곤 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도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이 안되면 아무리 소득이 높다 하더라도 선진국이 되지 않듯이 신앙생활의 연수가 오래되고 다른 사람들의 선망이 되는 직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신앙은 저급한 신앙입니다.

성도의 기본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물건을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본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시대가 타락하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 사용하고, 사용해야 할 물질은 사랑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현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기본이 안되면 처음에는 혹시 괜찮을지 몰라도 결국은 무너집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기록된 사무엘하24장 전체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9절까지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내용입니다. 다윗이 요압 장군을 시켜서 인구조사를 시켰을 때 요압은 오히려 인구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다윗 왕의 하나님께서 백배나 더할 수도 있으신대 인구조사를 왜하느냐고 했으나 다윗은 명령을 내려서 9개월 20일 동안 조사를 해서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곧 바로 회개를 합니다. 다윗의 장점입니다. 10절에 보면 다윗이 자책을 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죄를 범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어서 세 가지 재앙을 말하면서 그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7년 동안 기근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석 달 동안 적들에게 쫓겨 도망 다닐 것인가?, 온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게 할 것인가? 다윗은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해서 3일 동안의 전염병을 선택했습니다. 이 재앙으로 인해 죽은 자가 칠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또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시고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기를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시면서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의 사자인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었습니다. 17절 말씀,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이런 상황에서 갓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서 제안을 했습니다.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한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요, 여기서 제사는 오늘의 예배에 해당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서 명령하신바 갓의 말대로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아라 우나가 길을 바라보다가 다윗 왕과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올라오는 것을 보고 왕 앞에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맞이했습니다.
“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말하기를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왕의 말을 듣고 있던 아라우나가 다윗 왕에게 말하기를 22절“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그러면서 아라우나는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이때 다윗 왕이 아라우나에게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왕의 예배로부터 몇 가지 본받을 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재물을 드려 하나님의 방법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일정한 격식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예배에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헌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담아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시작도 중요하고 끝도 중요합니다. 예배를 우습게 여기면 안됩니다.

레위기9:22-24절 말씀을 저는 중요하게 믿습니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둘째, 회개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10절 말씀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7절 말씀에 보면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이렇게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제사를 드리는데 그 제사의 종류가 두 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다섯 가지입니다. 그 중에 두 가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번제는 레위기1:4절에 보면 속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다윗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를 딀 때 항상 속죄가 앞서야 합니다.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회개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너무 많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불순종과 책임전가, 남을 무시하고 분노하고, 육체를 좋아하고 악한 생각을 좋아하고, 욕심과 타협, 이기적이고 간교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분노와 자만과 비방, 거스리고 원망하고 대적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것, 나그네를 사랑하지 않는 것,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는 것, 회개하진 않는 것, 부귀를 누리는 것,

예배와 은사와 이웃 사랑을 무시하는 것, 대적하고 분열하는 것, 심히 싫어하고 노하는 것, 고난에 함께 참예하지 않는 것,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는 것, 예물을 드리지 않는 것,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는 것,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것 ,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는 것, 증오하고 대결하고 포기하는 것, 증오와 대결하고 포기하는 것, 처음 사랑을 버리는 것,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것, 주일을 범하는 것 등입니다.

셋째, 희생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라우나가 타작마당과 모든 제물과 필요한 물품을 무상으로 드리겠다고 했을 때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24절 말씀,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예배에는 희생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은 50세겔을 지불했습니다. 은1세겔은 노동자 4일 품삯입니다. 그렇다면 50세겔이란 200일 동안 벌어 모아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더 많이 줄 수도 있고 하나도 안 줄 수도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배드리는데는 자신의 권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희생의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일헌금이 나온 것입니다. 참된 헌신은 결코 이해타산이나 인색함 없이 온전하고도 자발적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고후9:7절 말씀,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자기희생 없는 값싼 예배는 여호와께 무의미합니다. 신16:16-17절 말씀,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넷째,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번제와 함께 화목제도 드렸다고 했습니다. 화목제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셨다는 근거하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과 앞으로 베풀어주실 은혜를 감사하여 드린 제사입니다.
그리고 이 제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화목제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들을 다시 하나님과 연결시켜 관계를 가지고 교통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회개를 통해서 화목제사도 함께 드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듯 예배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이 있어야 합니다. 즉 나를 희생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땀과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합니까? 바로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통해서입니다.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물질의 희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제물을 가져와야만 했습니다. 제물 없는 제사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의 희생이 없는 예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선은 여러분이 시간을 희생했습니다. 그 시간을 철저하게 희생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드리는 것이 시간입니다. 시간을 먼저 드리지 않고는 다른 제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달력에 보면 주일이 맨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주일의 첫날이 주일입니다. 그 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그것이 내가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전 새벽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매월의 시작인 1일을 하나님께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월삭이 있었습니다. 민수기28:11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그럼으로 여러분, 매월 1일을 구별하여 한 달에 한번이라도 새벽기도를 드리거나 가정 예배를 드리면 좋습니다. 예배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겨서 주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런 희생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온전한 헌신과 순수한 희생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삼상15:22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이와 같이 다윗이 갓 선지자의 말을 듣고 희생의 제사를 드렸더니 나타난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염병이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재앙, 아니 우리 가정에 내린 어린움, 나의 사업에 내린 어려움, 한국교회에 내린 재앙을 그치게 할 방법은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지금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 평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여야 합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순간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순간입니다. 예배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최고의 행복이요, 가치요,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를 회복하고 존중히 여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