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예배의 회복

참 예배의 회복/삼하24:18-25/2002-10-03

참 예배의 회복
삼하24:18-25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19) 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 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구원받은 이유와 우리의 삶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시148:1-3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지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지어다!\"
시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다윗은 시29:1-2에서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원리가 있습니다.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내용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관련된 계명들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가지지 말라. 주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컽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이 모든게 예배생활을 지시하고 있는 겁니다.

계시록에 보면 하늘 나라에 먼저 가있는 성도들과 천사들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배드림\"입니다.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그분께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예배하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더구나 부름받은 성도들은 예배하는 생활에 반드시 성공해야 삶의 의욕과 기쁨이 넘치고 살맛을 얻습니다.

마귀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예배하라\'고 유혹했습니다(마4:9). 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돌려지는 예배를 훼방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승리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구원받은 내가 해야 할 급선무, 최우선 순위는 역시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배란 히브리 단어로 \"자신을 엎드리다\" 헬라어 \"…향하여 키스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마음과 행동을 다 묶어 드려야 합니다. 엎드리는 사람이 마음만으로 됩니까? 행동도 굽어야 합니다. 마음과 행동이 다 병행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예배의 참 요소는 경건함과 두려움입니다. 경건과 두려움이 예배의 필수입니다.
진실한 경건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경건과 두려움\'은 예배의 양면입니다.
로버트 베일리(Robert W. Bailey)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경외와 존경심으로 압도되는 감각을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올바르게 예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그리스도인 예배의 새로운 방법\'(New Ways in Christian Worship 이라는 책에서).

온전한 예배 회복을 위해서는 나의 희생이 치뤄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조품이나 남은 것을 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을 원하십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한번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많은 값을 치뤘습니다. 그들은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 같은 짐승들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물로 바쳐질 짐승을 키우기 위해 그들은 상당한 정성과 시간과 노력을 기우려야 했습니다. 흠이 있어서는 안되고, 듬실하고 건강한 짐승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짐승을 키우는 자체가 노력이요 희생이었습니다. 만일에 좋은 짐승이 준비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제단에 와서 많은 값을 지불하고 잘 생긴 제물을 사야 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이 모두가 희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은 값을 치룬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이 쓸데없이 인구조사를 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7만명이 백성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비극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마침 선지자 \'갓\'이 다윗 왕에게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권고했습니다.
다윗은 즉시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타작마당을 사겟으니 팔라\'고 했습니다. 아라우나는 자기 땅이 성스러운 성소로 쓰여지게 된 것이 고마운데다가 더구나 왕께서 자기 땅이 필요하시다니 너무 감격하여 그냥 왕에게 바치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드릴 소와 땔나무와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를 바쳤습니다.
아라우나가 예배드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이레!\"하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거저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자기의 희생의 제물을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열납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하24:24을 읽읍시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땅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값이 지불되지 않은 예배는 의미가 없다\" \"희생제사가 아니고는 무효다\"는 겁니다.
희생이 지불된 예배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다윗은 희생의 예배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랫더니 전염병이 그쳤습니다(삼하24:25).

진정으로 열납되는 예배는 우리의 희생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희생예배란 \'예배를 위해서 나의 것(권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양을 드린 예배는 희생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면 세 가지가 희생되어야 합니다.\"몸\"과 \"시간\"과 \"물질\"입니다.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몸을 바치고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주일날 어딜 가십니까? 무슨 일로 분주합니까? 왜 예배를 준비하지 않습니까? 왜 예배를 소홀리 합니까? 밥 웨버(Bob Webber)는 \"예배는 동사다\"(worship is a verb)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관찰이 아니라 참여입니다. 싸이버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오늘 날 인간들의 가장 귀중한 재산은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치원생들도 바쁘답니다. 이 바쁜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교회갈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 기도 시간, 전도시간, 성경상고의 시간, 하나님과 묵상하는 시간 …모두가 귀중한 나의 시간을 포기해야 드려질 수 있는 시간이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 이야기가 있다. 한 방랑자가 어느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진흙 한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진흙을 가지고 방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진흙에서 풍기는 향기가 온 방을 가득 순식간에 가득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방랑자가 재빨리 진흙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냐? 사마르칸트(Samarcant)에서 온 어떤 보석이냐? 아니면 이렇게 버릇없이 위장을 한 감송(甘松)이냐? 아니면 값이 비싼 어떤 다른 물건이냐?\"
한 줌의 진흙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옵니다. 나는 한줌 진흙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런 훌륭한 향기는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이냐, 말해보라.\"
\"선생님, 제가 알려들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저는 장미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뿐입니다.\"

우리같이 추하고 나약한 존재에게서 어떻게 \"구원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라\"(요15:15)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친구로 닥아오셨다는 것이다. 친구라면 다정하고 친절하고, 늘 서숨없이 만나 사실을 털어놓고 싶어합니다. 친구중에도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굽니까?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장 귀하고 친한 친구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에게 친구로 사귀고 싶어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나와함께 보내자고 말씀하십니다. 어떤이가 말하기를 \"주님은 다 가지고 계신데 유독 시간만은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많이 내야 그분은 시간을 내실 수 있답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눅7:36-50에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트려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그녀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너무 크기에 이보다 더 큰 것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NIV)
고후9:7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for God loves a cheerful giver)(NIV).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라 하셨습니다(창22:2). 그런데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이\"아들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창22:12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리빙 바이불은 \"하나님이 네 삶에 우선이 되었음을 아노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을까? 그것도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로…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예배에 성공했습니다.
온전한 예배만이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드리는 예배가 온전한 예배입니다. 그 예배를 회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