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예배를 드려서 복을 받습니다

올바른 예배를 드려서 복 받읍시다/말1:6-14/2004-03-30

올바른 예배를 드려서 복 받읍시다
말1:6-14





할렐루야!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진 기온을 느끼게 됩니다. 단풍이 전국산야를 물들이기 시작하면서 10월의 첫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월삭 새벽 기도회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10월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11월에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이 달에는 우리 모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열매를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성도와 반갑게 인사나누면서 서로 축복해주는 시간을 가지십시다.

”주 안에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열매 많이 맺읍시다!”

서로 복을 빌어주는 성도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도 성도여러분께 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10월에는 ’주님이 예비하신 크고 비밀한 멋진 일로 인해 주 안에서 더욱 큰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말라기서의 첫 번째 질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하나님 경외의 신앙은 그런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하나님을 경외하던 신앙은 무너져 내리고 무사 안일과 나태에 빠져 영성은 고갈되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앞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하면서 비꼬는 투로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질문 아닌 질문에 대해 ’야곱과 에서의 후손들이 이루었던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결과’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셨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던 에서와 그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이제 세인들의 기억에서 조차 사라져 버린 것을 예로들면서 만약에 그들이 혹 나라를 다시 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허물어 버리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야곱의 후손 곧 이스라엘 백성들인 너희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환난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속적인 돌보심을 통해 지금까지 보존되어져 왔음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그들을 향한 사랑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해 별로 깨달음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됨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하나 경고하십니다.

오늘은 첫 번째 경고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당시 이스라엘백성 가운데서도 신앙에 앞서 간다는 제사장들부터 엉터리 신앙을 갖고 있음을 엄히 꾸짖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드리는 제사 즉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이시간 ”올바른예배 드려서 복받읍시다”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면서 오늘 우리의 예배의 모습을 점검하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도 제사 즉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예배를 통해 주의 자녀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기는 커녕 오히려 잘못 드린 한번의 예배가 그 인생을 망친 경우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초의 살인자 가인입니다.

그가 살인하게된 분노의 동기가, 실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만 기쁘게 받으셨고 가인이 드린 예배는 받지않으셨기 때문에 동생 아벨을 시기하다가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결국 그를 죽이는 데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직접 제사를 집행하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던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역시 예배 한번 소홀히 여기고 잘못드리다가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가 똑같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으나 주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주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제멋대로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드리는 예배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심직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잘못된 예배의 모습이 발견된다면 과감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복이 될 것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려서 복받는 자가 되려면, 역으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는 어떠한 예배’인지 먼저 말씀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태도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태도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본문 6절을 읽어봅시다.

말1: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 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이란 곧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그분의 명예와 사역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무시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모독하고 주권 자체를 아예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있느냐?” 얼마나 기막힌 하나님의 탄식입니까? 이스라엘백성이 드린 예배는 하나님보시기에 마음과 성의가 없는 형식적이고 억지의 제사였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이처럼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복받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조상적부터 알려 주셨습니다.

신6: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바로 이 명령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복받고 잘살게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놓으시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가도록 아름답게 섭리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마음 중심을 다해 공경함으로 예배를 드릴 때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바른 예배를 드려 이 땅에서의 약속된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실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의 인생의 전부를 맡겼다는 의미로 주님이라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겼다면 두렵고 떨리는 경외의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100%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가르쳐주셨을 때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면서 고개를 바짝 쳐들고 덤비듯이 반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써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시대 예배는 어떤 사람이 드리게 됩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인으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이 말라기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이 말씀을 듣지 않아도 될만큼 나는 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를 향해서도 주님께서 ”내가 아비일진대 너희가 나를 공경함이 어디있으며 내가 주인일진대 너희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을른지 모르겠습니다.주님은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공경함도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이 형식에 치우쳐 자기 스스로 만족을얻기위해서만 드려지는 것이라면 오늘 주님의 이러한 책망을 들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임하는 마음자세에 대해 본문에서 너무도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자녀로서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져야 하고 두 번째는 내 인생을 모두 주께 맡겨드렸으니 주의 종의 자세로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드려져야 바른 예배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수가성 여인에게 진정한 예배에 대해 바르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4:23,24-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당 나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또한 정말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예배자체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름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생각하고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확실하게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내 스스로의 생각에 예배를 잘드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흡족하게 받으실만한 예배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보시기에 바른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인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십시다.

말1: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여길 것이라 말함을인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헌물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주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바친 헌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단에 ’더러운 떡을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떡’이란 표현은 ’제단에 드리는 헌물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결국 ’더러운 떡’으로 표현하신 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규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준의 헌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제멋대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최상의 것으로 최고의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헌물이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더럽고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8절 상반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십니다.

신15:21-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이러한 율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하니까 하나님께 드릴 헌물을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워 ”이왕에 불에 올려놓고 제물로 죽을 것인데 눈이 멀었으면 어떻고, 다리 절고 병들었으면 어때, 아니 기왕에 죽을 제물은 흠있는 것으로 골라바치고 우리의

재산이 될만한 것은 아주 튼튼하고 실한 것으로 골라 놓아야지”바로 이런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생에게 과연 이런 대접을 받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반절에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헌신 생활을 돌아보십시다. 가장 귀한 시간을 주님께 구별하여 바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위해 다 쓰고 남은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주일도 우선순위가 바뀌어 임의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개인적인 볼일에 우선순위를 두어 내 볼일을 앞세우면서’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고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로 주를 향한 헌신과 봉헌생활이 불성실하지는 않습니까? 또한 주께 드린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예물드림이 세상 총독도 기쁘게 받지 않을 예물을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